노래를 잘하고 싶다

집에 들어왔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쌍차 추모문화제에서 갑작스럽게 노래를 부르게 됐다. 오늘의 문화제를 준비했을 이가, 원래 계획된 공연이 취소돼서 노래를 부르라기에 못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사회자가 이름을 불러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횡설수설했던 게, 지금까지도 어떻게 했어야 할지 모른 채 부대끼고 있다. 부탁할 수 있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냥 편하게 생각한 건 괜찮다. 하지만 정말 부탁했던 거라면, 적어도 나한테 동의는 받아냈어야 하지 않을까. 잠깐이라도, 무슨 노래를 부르면 좋을지 생각할 시간은 줬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잘했다거나 잘못했다거나 얘기할 문제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나가서 노래를 한 건 나다. 정말 못하겠다거나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나가지 않았을 거다. 그 마음이 뭔지 해명이 안돼 부대꼈던 것이다. 

 

2월 어느날이었다. 사랑노래가 입가에 맴돌았다. 한때 참 좋아했던 노래다. 학교가 잠깐 휴업을 하던 때, 동아리방에서 혼자 몇 번씩 불러봤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떠오른 건 쌍용자동차 때문이었다. 평택에서 만났던 그들의 얼굴이 눈에 어른거릴 때 이 노래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가로등만 외로운 어두운 밤골목에서 조용히 소리내어 불러보기도 했다. 공장 불빛은, 빛을 바래고, 술 몇 잔에, 털리는 빈 가슴, 골목길 지붕, 어두운 모퉁이, 담장에 기댄, 그림자 하나, 어떻게 하나, 슬픈 사랑들아, 뭐라고 하나, 떨린 가슴으로, 하나 없어라, 슬픈 사랑노래여, 심장에서 굳센 노래, 솟을 때까지. 2절이 유난히 더 생각났다. 노래를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를, 슬프지 않게 부르고 싶었다. 그건 노래 연습이 아니라 사는 연습이 필요한 것임이 분명했지만, 노래 연습밖에 할 게 없는 때도 있더라. 

 

4월부터 기타를 다시 들었다. 올해 안식년 계획 중 하나였다.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것에 익숙해지기. 배우고 싶어서 알아본 모임이 있는데 자리가 없어서 포기했던 참이다. 우연한 기회에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만든 밴드인 콜밴 연습에 끼게 됐다. 우연이라고 말하는 건 조금 거짓말이고, 기타를 다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끼기 시작했다. 자기가 연습하는 만큼 기타가 편해지고 실력이 느는 건 사실이니까. 같이 연습하는 건 즐거웠다. 기타를 치다 보니 이런저런 욕심도 번져 나갔다. 사랑노래를 슬프지 않게 부르기 어렵다면, 슬프지 않은 사랑노래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욕심. 그래서 또다른 사랑노래가 만들어졌다. 기타를 치면서 부를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긴장이 필요한 것 같아서, 이름하나못짓고 멤버들에게 연락을 했다. 오랜만에 공연 한 번 해보자고. 우연히 알게 된 보컬 멘토링 클래스를 신청하기도 했다. 선정되지 않았다는 문자메시지를 오늘 받고, 당장 전화를 걸어 선정 기준이 뭐냐고 묻고, 대기자로 겨우 올려둔 상태다. 노래 역시 자기가 연습하는 만큼 편해지고 느는 것이겠지만, 잘 부르고 싶다는 욕심이 막 났던 것이다.  쌍차 동지들에게 들려주고 싶었고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중 오늘 추모문화제에 불려나가게 된 것이다. 당혹스러웠다. 일단 나는 추모문화제에 참석하려고 대한문에 갔던 게 아니었다. 물론 쌍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려고 친구를 기다리던 중이기는 했지만, 내 마음은 추모문화제에 있지 않았다. 게다가 기타나 반주음원도 없었다. 술자리 뒷풀이라면 모를까, 문화제 프로그램으로 그냥 노래만 한다는 게 영 어색했다. 스피커로 노래 소리만 나가는 게 듣기에 그리 좋지 않은 건 분명하다.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할지도 막막했다. 노래부르라는 얘기를 듣고 못한다고 자르기는 했지만 속으로 생각해보기는 했다. 만약 부른다면 뭘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부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 생각이 날 리 없었다. 문화제에 발언만 있는 게 아쉬웠을 주관 단위의 고민을 짐작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문화제에 발언만 있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문화제에 뭔가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걸 미리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니, 정중하게 사양하는 게 맞았다. 

 

이쯤 되니, 내가 나가서 노래를 부른 이유는, 노래를 잘 한다는 자의식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노래를 잘한다고 얘기해주면, 별로 잘하지 못한다고, 아니라고 빼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이 정도면 쫌 한다'는 생각을 한다. 겸손은 자만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말은 진실이다. 오늘도 그랬던 것 같다. 못할 것도 없지, 그냥 어떻게 되겠지.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 들어줄 사람, 함께 나눌 사람들은 마음에 담지도 못한 채 순서를 때운다는 생각만으로 나갔다. 노래를 부르고 들어온 후 뭔가 계속 부끄러웠던 이유도 그것이다. 분향소를 앞에 두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어떤 것도 나누지 못했다는 느낌. 물론 스피커로 튀어나오는 노래가 뻘쭘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빼어나게 노래를 불렀더라도 뿌듯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로 나눌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잘한다는 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그건 '가창 실력'이라고 불릴 법한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내가 노래를 잘 부르고 싶었던 이유를 모두 잊은 채 혼자 부르다 나온 게 못내 부끄러운 것이다. 

 

노래만이 아닐 것이다. 잘한다는 건 잘 나누는 것이다. 마음이든 생각이든 기술이든 지식이든. 노래를 잘하는 건 아직 멀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편해지네. 헤헤. 오늘 노래를 부르러 나가는데 무대 앞쪽에 있던 고동민 동지가 표정과 손짓으로 격려해줬다. 노래를 부르고 나서 부끄러웠던 것과 같은 이유로, 고동민 동지에게 괜히 미안했다. 이제, 무엇을 어떻게 사과하면 좋을지 조금 투명해졌다. 나는 다시, 사랑노래를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노래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다시 붙들어맨다. 잘하고 싶었던 이유를 잊지 말자는 다짐도 한다. 그리고 정말 노래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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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4 22:45 2012/05/0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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