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은이?

서울시가 거리노점을 활용해서 하는 광고 중. 콩나물 많이 줬으니, 집에 가면 무쳐서 태은이랑, 같이 잘 먹으라는 내용의 광고 문구가 있다. 재래시장 이용을 독려하는, '따뜻한 도움'을 호소하는 광고다.

시력이 좋은 편이라 멀리 있는 글씨를 잘 읽는다. 그런데 작은 글씨를 읽을 때 눈으로만 읽게 되는 건 아니다. 어렴풋한 모양들과 그 자리에 들어가있음직한 단어가 조합되면서 읽어지는 것이다.

'태은이'가 도저히 읽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저 단어를 확인했다. 그 자리에 사람 이름이 들어가있을 거라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내 감성이 아쉬웠다.

그런데 문득, 재래시장에서 콩나물을 팔면서, 그걸 사는 사람의 딸 이름까지 아는 관계가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우리 엄마가 단골로 자주 가는 재래시장의 몇몇 상점 주인들도 아마 대부분 내 이름은 모르고 있을 거다. 그건 재래시장이라 가능한 관계가 아니라, 시장과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해진 대화다. 서울의 재래시장도 아주 작은 지역적 커뮤니티에 기반을 두기보다는 전통적으로 컸던 시장이 그나마 남아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흥행 전략 역시 규모를 키우는 것이고. 

재래시장에는 꼭 따뜻함이 있어야 할까? 정이 있어야 할까? 재래시장은 그것으로 경쟁하는 수밖에 없을까? 뭔가 불편하다. 

재래시장에 있는 상인들도 다 장사하는 사람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좋다. 영악한 사람들이 없을 리 없다. 때로는 그런 노골적인 모습이 더 두드러져보이기도 한다. 대형마트는 직접 대면하는 사람을 통해 영악함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갖추었기 때문에. 마트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는 어렵겠지만 친절함을 느끼기는 더 쉬울 것이다. 그걸 위해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마트니까. 그리고 생산자에게 훨씬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만큼 더 싸고 질 좋은 상품들을 진열해놓을 수 있는 게 마트다. 이런 조건에서 시민들의 '따뜻한 도움'으로 재래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경쟁이 가능할까?

자본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통구조를 근본적으로 건드려야지. 시민들의 '연대'를 호소해야지. 대형마트의 권력을 해체할 때 우리가 집 근처 가까운 곳에서 훨씬 싸고 좋은 식품과 물건들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걸 말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시가 시민고객이라는 말을 폐기했다고 하더라. 정말 보기 싫은 표현이었는데 반가운 일. 그런데 새로 나온 서울시 공익광고들 중에는 "시민이 시장입니다"라는 게 있더라.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저 '시장'이 market 으로 묘하게 읽히기도 해. 일방적으로 소비자의 위치에 배치되는 '시민고객'을 넘어서 '시장'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로 능동적 행위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만 같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2/06/14 18:29 2012/06/14 18:29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aumilieu/trackback/81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대장성 2012/06/14 21: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포이에르바하를 넘어서
    대형마트의 권력을 해체하여
    그 상품력이 다시 재래시장을 활성화 할수 있다는 사고를 바꾸어야지
    재래시장이 활성화 될수 있다.
    (상품의 구성,집중과 해체,상품의 분화에서,필요재 구성으로
    단 상품과 필요재는 양극단의 절대화를 강조하지 않는다.)

  2. 미류 2012/06/17 11: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대형마트의 권력이 해체되면서 석방된 '상품의 힘'이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키지는 않을 거란 말씀이겠죠? 동의해요. 저 역시 '상품'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고 조직되고 공유되면서 나눠지면 좋을까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고민을 넘어서 2012/06/18 13: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물은 인권이다.
    공기도 인권이다.
    쌀과 밥은 인권이다.
    주거도 인권이다.
    이것이 다 상품 아닙니까,얼마전에는 물과 공기는 상품이 아니었잖아요
    인권위 독립이 어려우니까 서울시 조직속에 인권이 경제적 관점으로 새로운 실천이 필요 할수가 있겠죠
    말하자면 탑골공원에 모여든 노인들은 사실상 천만 서울의 공개적 그늘일수 있죠 가족사회의 문화가 경제적 문제,일자리 문제로 여러 삶의 질의 표본에서 자료집화 한 모습이 탑골 공원들의 노인들의 모습일수 있어요
    이들에게 서울시의 필요재의 마트를 서울시 조직의 인권위가 구성되어
    그 마트를 구성 운영 사업계획 필요재의 공급체계 수요(소비)등을 마킷과 나눔(필요재 구입이 어려운 분들) 이것이 노인들에게는 시급할수 있어요 말하자면 천만 서울시의 도시생활의 내용이 바뀌고 있잖아요
    가족사회의 사회적 문제가 많은데 아마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 보다 더 심각 하겠죠 파고다 공원에 모여 있는 분들이 이 시대가 방치하는 가족사회의 모습들이며 경제적 그늘의 언론과 정책들의 지표등이 그기에 드러나 있다는 겁니다.

    사전 현장조사,노인들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을 수요조사를 해서 서울시 예산의 회계편성에서 사회계층에 마트 형태가 필요 하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지금 필요재를 구입할수 있는 화폐와 마트가 필요하겠지요

    마트는 필요재의 체계에서 기존의 서울시 의료공공시설 노인들의 문화적 삶 그 활용과 시설 제공등.......

  4. 대장정 2012/07/08 04: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는 시장입니다'
    몹시 싫어 하겠지만....
    제가 보기엔 둘다 소박한 철학일 뿐입니다.
    아마 싫어 할수록 인권의 구체적 연대는 늘어날 겁니다.
    그것이 지금 서울의 인권 문제의 보편이라면
    각각의 영역은 심각한 현실들 이겠지요
    서울 곳곳이 천막농성이 줄을 이을 것이며...
    그렇다고 딱히 해결할 방법이 무엇 입니까?
    우리는 이상한 꽈베기의 트라우마에 갖혀 있습니다
    이것의 해법을 찾을때 천막 농성이 줄어들 것입니다.
    해법 찾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