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른 일을 구하지 않으세요?" <사람꽃을 만나다>에서 해고자들에게 집요하게 던지는 이 질문을 보면서 나는 또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왜 다른 데로 이사 가지 않으세요?" 철거민들이 듣게 되는, 말이 아니라 시선으로 듣게 되는 질문이다. 

 

철거 투쟁은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다. 싸움에 이기더라도, 병을 얻게 되거나 일을 잃게 되거나 관계로부터 고립되는 경험은 고스란히 남는다. 그런데도 왜 그리 모질게 싸울까. 단지 갈 곳이 없기 때문일까. 가지고 있는 돈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집을 옮기거나 장사할 곳을 찾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건 정말 사람마다 다르다.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 것도 아니고, 먼저 떠난 사람들이 모두 충분한 이주대책을 제공받은 것도 아니다. 이건 단순히 '집'이나 '가게'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윗층에 살던 집주인과 음식도 나눠 먹고 아이들도 서로 봐주며 지내다가 어느 순간 '주제 파악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내집'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맛있게 사 먹어 줄 때마다 흐뭇했던 음식 솜씨가 내일 갑자기 못하게 돼도 아무렇지 않은 '별 것 아닌 기술'이 되어 버린다. 학교에 오갈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잘 컸다고 기특해하던 아이는 '부모 잘못 만난 아이'가 되어 버린다. 저녁에 출출하다고 모여서 함께 막걸리를 마시던 사람들이 패가 갈리고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에 따라야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는 '집' 으로부터 기원하는 권리가 아니라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으로부터 기원하는 권리다. 해고당하지 않을 권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영상의 불가피한 이유'와 '일자리' 사이에서 논쟁될 권리가 아니라, 그 일을 해왔고 앞으로 할 '사람'의 존엄-사람다움을 걸고 찾아가야 할 권리다. 

 

나는 "왜 다른 일을 구하지 않으세요?", "왜 다른 데로 이사 가지 않으세요?"와 같은 모진 질문들이 더 많이 던져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해고나 강제퇴거를 이해하는 쉬운 방식은, 먹고살 길이 없어졌다는 호소다. 그 호소로부터 발원하는 공감은, 때로는 안타까움을 동반한 연민이나, 아직은 먹고살 만한 나에 대한 안도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이게 복지와 인권 사이의 긴장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한다.) 나는 이렇게는 '연대'가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득이나 건강 상태나 주거 환경이나 교육 정도 등 모든 것들은 '사람다움'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람은 한 달에 이백만 원을 버는지 오백만 원을 버는지에 '사람다움'을 걸지 않는다. 열다섯 평 집에 사는지 서른여덟 평 집에 사는지에 '사람다움'을 걸지 않는다. 처지가 같아야 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청소노동자와 대기업 금속사업장의 노동자가 연대할 수 있는 이유는 처지가 아니다. 그/녀들이 지키고 싶은 '사람다움'이 모두의 권리이기 때문에 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권이라는, 사람답게 (먹고)살 권리.

 

그래서 나는 누군가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해 싸울 때 그/녀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걸 듣는 것이 연대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의무로서의 연대가 아닌, 권리로서의 연대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당하기도 하고 찌질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만들어보자고 함께 하는 연대. (그럴 때 먼저 이사 갈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사람들, 더이상 집회에 나오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꽃을 만나다>는 참 소중한 책이다. 굳이 말하자면 아쉬움도 없지 않다. 책을 내려고 했던 취지, 아마도 서문과 들어가는 글에 담긴 고민,이 모든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가끔은 취지를 거스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인터뷰 질문이 조금은 '작위적'이라는 느낌도 들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었겠지만 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지고 정리하는 사람의 몫이 크기 때문에 이건 글을 쓰고 책을 엮은 이들이 더 고민해주면 좋겠다. 그래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그 이야기들이 너무 짧은 것도 큰 아쉬움 중 하나다. 그래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더욱 많이 물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인지, 당신은 왜 싸우고 있는지. 다만 상처를 헤집는 질문을 건네기 위해, 들을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 궁금증을 채우기 위해 묻는 것이 아니라, 연대하기 위해 묻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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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14:24 2012/05/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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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위 2012/05/31 09: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사람꽃을 만나다>는 알라딘 같은 데서는 못사나 보내요. 지금 알아본 방법으로는 후원금 내고 메일 보내고 해야 받을 수 있네요. 이따 시간 나면 해봐야 겠습니다. 예전에 인권영화제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관객이 그 다큐에 출연했던 이주노동자에게 묻더군요. "모국으로 돌아가면 될텐데 왜 이렇게 힘들게 싸우세요?"

    • 미류 2012/06/01 10:59 고유주소 고치기

      출판사 통해서 책으로 내지는 못했나봐요. 작은 자료집처럼 만들어져있어요. ... 같은 질문도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어서,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질문은 건네기가 못내 부담스러워요. 워낙 싸워왔던 시간들이 있는 사람에게 마치 당신의 싸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도 있으니... 다양한 방식의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아요. ... ^-^

  2. 비밀방문자 2012/06/12 23:4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미류 2012/06/14 17:53 고유주소 고치기

      저도 여기나 페북이나 자주 들르지는 못하는데... 저는 긁적거리는 버릇이 없나봐요. ㅎㅎ 노래 좋았다니 고마워요! 뭔가 제안할 게 생기면 연락주세요~ ^^

  3. GomGomLover 2012/07/08 07: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진보넷블로거진 타고 들어왔다가
    공감공감합니다
    이스라엘이 의도적으로, 그리고 수많은 제3자들이 그냥그렇게 하는 말도 같거든요
    주변에 수없이 많은 아랍국들이 있으니 가서 살면 되는 거 아니냐, 는.

    • 미류 2012/07/12 09:21 고유주소 고치기

      아 그렇네요. 정말 여러 장소에서, 사람들은 장소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요. ㅡ,ㅡ;;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