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명의 구술자와 열다섯 명의 집필자. 이들이 건져올린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시놉시스들을 읽다보니 너무 소중한 이야기들임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그래서 더욱 부담스럽고, 그래서 더욱 설렌다. 이렇게 엮어보면 어떨까. 열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이야기처럼 흐르고, 그래서 한 사람의 이야기로도 열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품을 수 있도록. 어제 편집회의에서 아래와 같은 네 개의 장 안에 너다섯 사람의 이야기들을 담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1. 살아가다

“그/녀들도 우리처럼” 살아간다. 그/녀들의 삶은 밀양 송전탑 싸움을 하면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듯 그/녀들도 태어나고 자라고 나이 들어간다. 저마다의 꿈을 피우고 접고 다시 길어 올리고 막막해하기도 하는 시간들이, 울고 웃은 시간들이 역사가 된다. 그 시간의 어딘가쯤으로 송전탑이 불쑥/슬그머니 들어와버렸다. 그렇게 쉰, 예순, 일흔의 시간들을, 그/녀들은 다시 살아간다.

2. 싸우게 되다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이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니, 이유도 다를 수밖에. 그러나 삶이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싸움의 이유는 하나다. 싸움의 이유는 삶에 붙은 여러 이름들이다.

3. 싸움을 살아내다

그러나 싸움은 하나의 시간이 아니다. 송전탑 반대 싸움은 투사의 각오로 버티는 시간도 아니고, 피해자의 눈물로 버티는 시간도 아니다. 각오가 눈물이 되었다가 눈물이 다시 각오가 되는, 살아있는 시간이다. 가부장제 아래서 배치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가부장제를 뒤틀며 스스로를 배치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둘 중 하나만 보는 것은 나머지 하나의 시간들을 지워버린다. 연대는 그 시간들을 함께 겪는 것이다. 싸움을 살아낸다는 것은 존엄을 만들어간다는 것. 서로를 ‘인정’하는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것. 그래서 그/녀들은 웃을 수 있다.

4.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싸울 것이다.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결의도, 묵을수록 새로워지는 억울함 때문도 아니다. 이길 수 있겠냐고 묻지 마라. 이미 이겼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다. 그/녀들은 다만 끝까지, 살아가려는 것이다. 사람이 살겠다는데, 송전탑 즈그가 우예 버티겠노?

 

(이런 이야기들을 전해준 할매들을 만나고 싶다면, 소셜펀치를... ^^;;; http://socialfunch.org/halma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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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3 14:57 2014/02/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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