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배는 서서히 침몰했다. 배와 함께 304명의 목숨도 수장됐다. 국가는 없었다. 적어도 우리의 상식 속에 있었던,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국가는 없었다. 어지럽게 오보와 왜곡보도를 일삼는 언론이 있었고, 희생자 가족들 주위를 배회하며 감시하는 경찰이 있었을 뿐이다. 한 달도 더 지나 대통령은 ‘최종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책임은 없었다. 1년이 지나도록 바다 속에 갇혀 있는 실종자가 아홉 명이다. 그러나 그들을 찾기 위한 인양을 ‘검토’할 줄밖에 모르는 대통령이다. 심지어 최근 검토결과를 발표한 정부는 인양을 검토하면서도 시신유실 가능성은 검토하지 않았다.
작년부터 가족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4년 5월, 진실을 밝히자며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모든 국민에게 서명운동을 제안했다. 진실이 어둠 속에 갇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2014년 11월,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많은 참사를 겪어온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법이 만들어졌다. 가족들이 늘 말해왔듯 더 이상 참사는 없어야 한다는 마음과 의지들이 만든 법이다.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갖추지 못한 미완의 법이지만 가족들은 독립적인 조사를 시작으로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특별법에 따라 조사위원회가 제대로 출범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하기 위해 세세한 내용을 담은 시행령이 만들어져야 했다.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 가능하도록,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되도록, 모두의 회복을 위한 지원이 잘 이루어지도록, 특별조사위원회는 직접 시행령을 만들어 정부에 보냈다. 그런데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진상규명의 주요한 역할을 정부 파견 공무원이 하도록 하고, 조사 내용도 기존 정부조사의 분석 검토로 제한하고, 안전사회 업무는 해양선박사고에만 한정하도록 했다. 이대로는 가족과 국민이 바라던 특별조사위원회가 될 수 없었다. 정부는 특별법이 만들어졌는데도 진상규명을 원천봉쇄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이 정부시행령을 폐기하라고 집중농성을 시작하자 정부는 배보상 절차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보상금 몇 억, 비용 몇 억, 이렇게 돈다발을 흔들며 가족들을 모욕했고 국민들을 협박했다. 작년에는 어딘가 수상한 유언비어가 전국적으로 유포되더니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가족들을 음해했다. 가족들은 삭발을 했다. 세상이 이런데 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더라며 눈물을 흘렸다. 인권옹호자들은 배상이 피해자의 권리며 정부의 책임이고 진실과 거래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더 이상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 작년 유언비어는 여론을 흔들었지만 정부의 음해는 여론을 오히려 가족들에게 이끌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상복을 입고 영정을 가슴에 품고 안산에서 광화문으로 행진을 했다. 죽은 이들에게 전할 말을 얻지 못한 채 멈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배가 기울었다고 전화한 아이에게 안내를 잘 따르라고 말한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아빠가 있다. 해경이, 헬기가 너희들을 구하러 가고 있다고 안심을 시켰던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엄마가 있다. 자식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송곳처럼 긁어대는 미안함을 지울 수 없는 부모들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로지 진실이다.
배의 침몰에 관한 신뢰할 만한 기록도 아직 없다. 침몰하기 시작한 이후 배가 물속으로 거의 가라앉을 때까지 누가 어떻게 관여했는지도 아직 다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선장은 퇴선 명령을 제때 하지 않았으며, 해경은 승객들을 코앞에 두고 배에서 나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밖에 없다. 이게 끝이라면 현장에 있던 몇몇 책임자들이 거대한 참사의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참사를 막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작 퇴선안내방송밖에는 없다는 말인가.
구조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들었던 해군 함정과 민간 어선들을 막은 것이나, 가족들뿐만 아니라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전원구조 오보, 세월호에 대한 꼼꼼한 지적사항을 담은 국정원 문건 등은 참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인가. 7시간 동안이나 긴급한 대처에 나서지 않았던 청와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 304명의 희생자는 죽어도 되는 사람이었단 말인가. 피해생존자들의 남은 삶은 이대로 사그라들어도 그만이란 말인가. 기어이 정부는 진실보다 권력을, 회복보다 배제를 택하려는 것인가.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2015년 1월, 가족들은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실종자들이 캄캄한 바다 속에 기약 없이 갇혀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많은 국민들이 가는 길마다 함께 했고 2월 14일 팽목항에는 3천 명이 넘는 국민들이 함께 인양을 촉구했다. 인양 촉구 서명이 이어졌다. 정부는 1년이 다가오자 선심을 쓰듯이 인양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미 수개월 전에 검토된 내용을 이제야 발표한다. 정부는 기약 없는 기다림의 고통을 이고 살아야 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염려하지 않았다. 인양이 정부의 책무임을 거부하고 여론을 얻기 위한 카드로만 사용한다. 정부는 참사를 무마하려 들 뿐, 참사 이전의 사회로 혼자 돌아가려 애쓰고 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수도 없다. 가족들은 이미 참사 이후의 다른 사회를 열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평범한, 인간의 시간이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네 엄마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랑의 시간이다. 네가 남긴 숙제를 꼭 마치겠다고 약속하는 다짐의 시간이다. 타인의 슬픔과 분노에 응답할 줄 아는 연대의 시간이다. 가족과 국민들은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외치며 참사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제 ‘시행령을 폐기하라’고 외치며 참사 이전의 사회와 단절을 선언해야 한다. 다시 인간의 존엄을 선언해야 한다. 진실이 정의를 일으켜 세우듯 연대가 존엄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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