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교정에 흐드러진 벚꽃나무 아래서 놀던 아이들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친구에게 쪽지를 건네려고 설레며 기다렸던 자리, 누군가는 10년 후의 약속을 담아 묻기도 했던 자리, 누군가는 속상한 마음에 혼자 울었던 자리에서 아이들은 꺄르르 웃고 있었다. 영상은 그렇게 끝났지만 삶은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진실이 밝혀지기 전에 우리가 벚꽃의 봄을 기억할 수 없는 이유다.
세월호의 침몰 소식이 전해지고 한 달이 지나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최종 책임은 저한테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초동 대처가 미흡했을 뿐이라고 했다.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했다. 304명이 죽은 사건은 구조의 참패, 초등 대처의 총체적 무능 아니었던가?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미흡하고 미숙했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귀히 여길 줄 아는 시민들이 진실을 구조하기 시작했다.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범국민 서명운동으로 진상 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1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봄, 국가는 특별법의 마지막 숨통까지 막으려 들었다.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하는 시행령을 밀어붙였다. 동시에 배보상을 강행했다. 벚나무 아래 놀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 사라진 자리에 모욕이 들어찼다. 참사의 피해자들은 봄을 맞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물어댔다.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추궁당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무언가 필요하다 말하면 “당신은 살았잖아요.”,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려 하면 “이제 가슴에 묻어야죠.”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희생자의 가족들은 더 잃을 것도 없는 몸에서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목숨도 내놓을 수 있으니, 진실을 달라고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왜 구조되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는 진실을 ‘알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참사 초기부터 유병언 소탕작전에 목을 매더니 배상도 청해진해운의 돈으로 하겠다고 했다. 구조의 책임이 국가에 있다는 사실을 지워 버린 채 ‘침몰’이라는 사실만 남기는 셈이다. 최종 책임이 있다던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조사를 막기 위해 정부는 특별조사위 여당 추천 위원들을 행동대로 내세웠다. 사퇴도 불사하라는 문건이 발각되었다. 구조 실패의 책임을 찾기 위한 첫 청문회를 앞두고 특별조사위가 붕괴할 위기를 맞고 있다. 이게 다 대통령을 구조하기 위해서라니.
아직 수습되지 못한 아홉 사람이 세월호에 있는데 그대로 공원으로 만들자던 국회의원의 말을 기억한다. 분향소에 꽃 한 송이를 바치기 위해 걷던 시민들을 가로막은 경찰을 기억한다. 진실을 밝혀달라며 울부짖는 유가족들 머리 위로 쏟아져내리던 최루액 물대포도 그대로다. 우리의 정당한 권리들을 왜곡하고 매도하는 언론도 여전하다. 공감과 연대를 죄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에서 봄은 가능한가. 우리는 새 봄을 기다리는 것조차 막막한 시간에 갇혀 여전히 참사의 한가운데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하고 있다. 미수습자들을 기다리며 매일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선다. 잊지 않으려고 팽목항을 찾아간다. 물러설 수 없는 우리의 자리를 확인하며 풀뿌리토론을 벌여 4.16인권선언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진실과 안전을 향해 나아가야 할 길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밝혀야 할 진실을 우리 스스로 탐문하고 조사하고 세우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억을 위한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잡은 손 놓지 않겠다는 공감과 연대의 약속은 흩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다시 돌아올 봄에 고한다. 그 봄은 우리의 것임을. 그 봄에 우리는 죽은 이들을 영원히 살아있게 할 것이며, 살아남은 이들을 영원히 함께 하게 할 것이라고.
(인천인권영화제 인권해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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