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 총을 뺏긴 스나이퍼? (미디어스 기고)

2009/12/02 10:27

그를 영입하기 위해 스카우터가 찾아간 건 아니었다. 당시 고교 최고 투수였던 충암고 박명환 선수(LG 트윈스)와 광주 진흥고 김상진 선수(왜 이렇게 가슴이 먹먹해지지.)의 투구를 한 번에 볼 수 있기에 직접 운동장으로 간 거였다. 하지만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온 건 박명환, 김상진의 투구가 아닌 그의 스윙이었다.

 

그의 가능성에 매료된 해태타이거즈는 그를 2차 1번으로 지명하였다. 당시 팀의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1억 원의 계약금을 그의 손에 쥐어줬음은 물론이다.

 

이후 그가 타이거즈에서 타자로서 하지 못한 거라곤 해태타이거즈 첫 유니폼을 입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의 입단 동기가 세상의 마운드에서 내려오는 걸 보기도 했고 150Km가 넘는 강속구로 10타자 연속삼진을 잡은 투수가 시속 135Km의 느린공을 던지는 두뇌파 투수로 변하는 걸 그라운드에서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때도, 팀이 최하위로 추락할 때도 그는 그라운드에 있었다.

 

10월 24일 나지완 선수의 끝내기 홈런으로 눈물을 흘린 사람이라면 그가 누군지 맞추는 건 구구단 2단을 외우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NO.1 스나이퍼 장성호. 타이거즈의 심장이라는 이종범 선수도 겪어보지 못했던 ‘재정난으로 인한 침체기’에 장성호는 팀의 중심으로 활약하지 않았던가. 천국이든, 지옥이든 타이거즈와 함께 한 스타였기에 KIA 타이거즈 홈페이지의 노른자인 '호랑이 사랑방' 윗 배경에 그의 사진이 걸어져 있는 건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 만큼 당연한 일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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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호는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기아 타이거즈 홈페이지 캡쳐)

 

타이거즈의 영혼인 그가 단지 FA 신청을 했다는 이유로 온갖 설움을 다 겪고 있다. 일부 팬의 비난은 애교로 봐 줄 수 있다고 치자. 그의 영입을 시도하는 팀이 없어 백기 투항하는 식으로 KIA 타이거즈와 재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장성호 선수가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KIA 타이거즈 타자 중 10번째로 많은 타석을 들어선 타자이며(312타석) 3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중 타율이 4위이다.(0.284) 부상과 포지션 경쟁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 속에서 나온 성적 치고는 괜찮은 거 아닌가. 거기에 득점권 타율은 0.343로 팀 내 2위에 해당한다. (타석 수 차이가 많아 직접적인 비교는 그렇지만 최희섭 선수의 0.336보다 높은 건 사실이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장성호’라는 이름값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과 장타력을 잃어버린 것뿐이다.(해석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장성호 선수를 중장거리 타자로 본다. 김태균, 이승엽, 최희섭 같은 형의 타자가 아니지 않는가. 장타에 대한 기대는 과도한 거 아닌지.)

 

또한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만성적인 손목부상은 2007년 최하위라는 팀 분위기 속에서 주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완치되지 않은 몸으로 무리하게 경기를 출장하며 생긴 직업병 아닌가. 거기에 올해 초 결장사유였던 팔꿈치 부상은 5월 17일 SK와이번스 전에서 수비하는 도중 펜스에 부딪히며 생긴 것이었다. 야구팬들 사이에 대표적인 슬로우 스타터로 통하는 그가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시점에 다치지 않았다면(분명 피할 수도 있었다. 직접 잡을 게 아니라 공을 펜스에 맞추기만 했어도...) '옛날의 장성호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까?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헌신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이런 식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에 타이거즈의 팬으로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닐지. 풋내기 칼럼리스트도 추천 수가 궁금해 자꾸 접속해 보는 데 프로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궁금해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헌법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명시한 나라에서 FA를 신청한 게 그렇게 잘못인가. KIA 타이거즈의 태도는 도무지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11월 30일 장성호 선수가 호랑이 사랑방에 직접 글을 남겼다. 그는 ‘제가 타이거즈에서 뛸 때 절 응원하셨던 것에 1%만 제 입장을 생각해주세요’라고 이야기 했다. 지금 장성호 선수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프로야구의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그만큼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연고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고 선수들의 몸값이 올라가면서 한 팀에서 꾸준하게 뛴 다는 게 어려워지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 시대에 KIA 타이거즈는 80년대 방식으로 장성호 선수를 고립시키고 있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셋. 그라운드에서 이별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다. 구단의 시대 역행적인 마인드로 인해 작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선수이기도 하다. 양준혁 선수가 자신의 기록들을 갈아치울 수 있는 선수로 장성호를 지목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영원토록 남을 기록의 순간 타 팀의 유니폼을 입으며 인사하는 장성호 선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날려 버려 날려 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 버려 날려 버려 안타 장성호. 날려 버려 날려 버려 날려 버려 날려 버려 스나이퍼 장성호♬ 이 응원가가 없는 무등 경기장을 생각해 본 적 없다.

 

기록 출처= 스탯티즈(http://www.stat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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