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 공선이라는 소설을 읽어 보셨는지? 일본 계급주의 문학의 거장인 고바야시 다키지가 1929년 발표한 소설로서 작년부터 일본에서 재발견되며 50여 년만의 정권교체에 큰 영향을 미친 걸로 알려져 있다.

 

그 소설의 첫 문장은 “어이, 지옥으로 가는 거야!” 이다. 노동 착취와 심각한 노동 환경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문장이 왠지 남의 이야기가 아닌 거 같다. 비정규직, 워킹 푸어(Working Poor),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자주 보일 만큼 노동자에게 지옥인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자신의 입장을 공론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분단 때문일까? 아니면 국익이 우리시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일까? 하여튼 노동자가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면 ‘빨갱이 짓’이라고 매도당했다. 87년 6월 항쟁과 뒤이은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노조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시도를 대낮에 고담시를 활보하는 배트맨처럼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편견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수 존재한다.

 

프로야구 선수들도 이런 편견에 자유롭지 못한 거 같다. 지난 2일 선수협의회는 제10차 정기총회에서 노조설립안건을 표결에 붙여 205명 성원 중 188명의 찬성을 얻어(91.7%) 통과 시켰다. 노조 설립을 위한 1차 토대는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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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 중 손민한 선수의 부진에 대해 선수노조를 이야기 하며 욕을 하던 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진은 어깨 부상 때문이었습니다.만약 계속 손민한 선수의 부진과 선수노조를 연관시키는 팬이 있다면 저는 그에게 "차라리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더 논리적으로 들린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사진 출처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몇몇 팬들은 ‘시기 상조론’과 ‘고액 연봉자 노조 무용론’을 이야기하며 선수노조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 물론 대다수의 팬들은 이번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지만 선수협의회 측에서 ‘팬과의 대화’를 1주일 전에 급하게 준비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시기 상조론의 경우는 이미 용도 폐기되었다는 얘기로 끝내고 싶다. 어떤 목표를 두고 그걸 달성하면 뭔가를 해주겠다는 ‘조건부 복지’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허상임을 지난 60년 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1년 선수협의회를 허락하며 KBO 측에서 내건 조건이 ‘600만 관중 동원 시 선수노조 허용’ 아니었던가. 시기상조론으로 선수노조 설립을 반대한 이유는 명분이 없어 보인다.

 

대신 선수들의 고액 연봉으로 인해 선수노조 설립을 반대한다는 의견에는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다. 물론 프로야구 선수들 중에서 서민이 받을 수 없는 고액 연봉선수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1년 내내 짜여진 틀 안에서 훈련과 경기를 치러야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생활하다 보니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도 쉽지 않다. 여기에 몸을 쓰는 직업이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프로야구 선수가 고액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그만 빙하 밑에 큰 얼음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보다 1군 최저연봉보다 더 적은 1,800만원을 받는 선수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거기에 가장 짧은 정년기간을 가진 직업임을 고려해 본다면 당장의 고액 연봉으로 모든 걸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야구선수들의 열악한 노동환경(!)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올해 초 WBC에서 이용규 선수가 우츠미 선수의 공에 맞고 괴로워한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야구팬들이 놀란 건 얼마 되지 않아 ‘X-Ray로 본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라고 발표된 것이었다. 구장 내 의료시설에서 찍었다는 소식도 함께 접하면서 말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예비군 훈련에서 초기 응급처지의 중요성을 교육시킬 때 나오는 사례 중의 하나가 임수혁 선수의 경우라고 한다. 이후 9년이 지났지만 김태균 선수가 뇌진탕을 당했을 때 야구장 내 응급조치의 문제점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홈구장으로 쓰이는 7개 구장 중 4개의 구장이 인조잔디라는 건 또 어떤가. 대전, 대구, 광주는 계속해서 구장 현대화가 이야기 되고 있지만 이루어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선수들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통로가 있을까? 선수 개개인이 인터뷰를 통해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뿐이다. 임의단체다 보니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결성 목적 중 하나가 ‘쾌적한 작업환경 보장’ 임을 생각해 본다면 ‘여러 가지 처우 개선이 필요한 선수들에게 선수노조는 필요하다’는 명분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선수 노조 설립을 반대하는 야구팬들은 94년 메이저리그의 파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선수노조가 그렇게 단체 행동권을 쉽게 쓰진 못할 것이다. 몸 안에 플레이에 필요한 감각들을 기억해야 하는 선수들에게 파업으로 인한 경기불참은 장희빈이 마신 사약만큼이나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94년 메이저리그 선수파업 이후 침체기에 빠졌던 펠릭스 호세(前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거기에 개인사업자에서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게 되면 세금이 올라간다. 분명 선수들에게 손해임이 틀림없다. 단체행동권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고 물질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선수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반대를 주장하시는 야구팬 분들은 한 번 더 심사숙고 해주길 바란다. 이젠 야구계도 말이 통할 수 있고 팬들이 수긍할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노조의 힘이 약해지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정부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길 바라며 선수협의회의 선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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