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오타쿠'를 시작하며(미디어스)

2009/12/07 17:09

지난 4일 오후부터 미디어스에 접속한 네티즌이라면 생소한 이름의 칼럼을 적잖이 당황했을 것입니다. “베이스볼 오타쿠? 뭐야 이건. 그리고 신영배? 웬 듣보잡이야”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베이스볼 오타쿠’ 칼럼을 맡게 된 신영배라고 합니다. 나이는 20대 중반이고 휴학생입니다. 한 여자를 끔찍이 사랑하는 한 여자의 남자친구이구요. 지역의 언론 관련 시민단체에서 잠시 일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먼저 밝히고 싶은 건 22년간 야구팬이라는 겁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사리분별을 시작하는 시기’라고 말하는 2~3살. 제가 그 나이였을 때 야구는 TV프로그램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그리고 지역 연고 팀이었던 해태타이거즈는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시기였지요. TV를 켜면 야구중계, 부모님과 이웃들 간의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해태 타이거즈 얘기. 이렇다보니 하얀 종이를 먹물에 담그면 검정색으로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 야구와 해태타이거즈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다만 야구장에서 ‘목포의 눈물’을 부르며 지역의 한을 풀던 어르신과는 다르게 선동열, 김성한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해태타이거즈 자체가 좋아진 경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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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해 올스타전을 직관하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슬람교의 하지처럼 야구장을 방문하는 건 제게 성스러운 의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신영배

 

제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해태타이거즈의 자리를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로 바꿨지만 저는 이상하게 그러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91년 무등 경기장에서 선동열 선수의 29 완봉승 가운데 한 경기를 직관하고 나서 해태타이거즈가 제 종교가 되었지요. 아스날이 좋아 경기 때마다 메스꺼움을 느낀다는 닉 혼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이런 경험을 한 적은 있습니다. 올 해 한국시리즈 7차전 때 자꾸 헛구역질이 나오더군요. 다음 날 몸살 끼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매일 스포츠 뉴스와 ‘스포츠 중계석’, ‘스포츠 하이라이트’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결과를 확인했고 부모님을 졸라 나주에서 광주까지 1박을 하면서까지 무등 경기장을 향했습니다. 나주에서 전교 1등의 명예(?)를 버리고 광주로 올라가자고 부모님을 조른 것도 더 많은 경기를 야구장에서 보고 싶어서입니다.

 

제 인생에 ‘야구=해태타이거즈’ 라는 등식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95년인 거 같습니다. 격년제로 우승하던 해태타이거즈가 93년 이후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지요. 해태타이거즈가 없는 한국시리즈는 ‘앙꼬 없는 찐빵’이 될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롯데 자이언츠와 OB 베어스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가 벌어진 것입니다. 원년 이후 13년 만에 우승을 접하며 감격스러워 하는 박철순 선수의 모습을 보면서 해태 타이거즈만이 야구를 통해 파토스를 제공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죠. 또한 그 해 벌어진 제 2회 한일슈퍼게임을 보며 야구에 견문(?)을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그 다음해 박찬호 선수의 첫 승을 통해 메이저리그까지 접하게 되자 이거 헤어 나올 수가 없더군요.

 

이후 사춘기 시절 저를 키운 건 8할이 야구였습니다. 부진하긴 했지만 그래도 버릴 수가 없는 해태 타이거즈. 그리고 광주 팬들의 구원이었던 KIA 타이거즈, 무등산 폭격기에서 나고야의 수호신이 된 선동열, 외환위기로 인한 서민들의 설움뿐만 아니라 중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저에게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던 박찬호 선수 그리고 국어시간에서만 존재하던 비장미를 직접 접하게 해준 김병현 선수까지. 이들이 있었기에 지옥 같고 우울하던 6년을 그나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의 활력소에 대한 칼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인 거 같습니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도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송재우, 이종률 해설위원을 보면서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 첫발을 야구 칼럼을 통해 내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악명 높았던 제 글 솜씨는 오래도록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자료를 찾기 위해 영어로만 되어있는 ESPN, FOX SPORTS, Baseball America 같은 사이트를 즐겨찾기 하는 천착을 아끼지 않았지만 글을 완성시킬 수 없었지요. 노조를 만들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에 지지를 하기 위해 2박 3일 고민하며 글을 썼지만 논리는 없고 유치찬란하더군요.(우연히 방을 청소하다 그 글을 발견했습니다. 6년 만에 읽어보니 손발이 오그라들더군요.)

 

고 1때의 꿈을 이제 8년여 만에 이루게 되었습니다. 야구 저널리즘의 발전으로 인해 박동희 기자의 미사여구, 김형준 기자의 기록 분석 그리고 배지헌 (기호태)님의 논리력 세례를 받고 칼럼리스트의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제 첫 발걸음을 이끌게 해 준 이 세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물론 제가 이 세 분처럼 완벽한 글을 쓰진 못할 것입니다. 다만 1회 대학가요제에서 샌드페블즈가 대상을 받는 걸 보고 대학 밴드들이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다.' 라고 자신감을 얻었던 것처럼 제 글을 보며 야구팬들이 '평범한 어휘력에 평범한 글로도 칼럼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고 싶은 게 제 목표입니다.(야구 관련 커뮤니티에 저보다 훨씬 훌륭한 아마추어 칼럼리스트들이 계십니다. 그 분들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를 바라는 거죠.) 

 

수업 시간에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연계에서는 모든 에너지들이 엔트로피 법칙에 의해 소멸한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기록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를 계속해서 이어지게 한다." 저 역시 매주 월요일 야구와 관련한 제 의견을 까발리며 제 생각을 사라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많이 비어보일 것입니다. 많은 네티즌 분들과 야구팬들의 아낌없는 지탄을 바랍니다.

 

P.S 앞으로 매주 월요일 칼럼이 연재되겠지만 이번 주 수요일에 선수노조와 관련한 글을 작성하고자 합니다. 8년 전 2박 3일을 고민하면서 선수노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8년 전과 똑같은 주제를 써야 할 만큼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나아진 게 없다는 게 가슴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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