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을 통해 KIA타이거즈의 불펜포수이던 변선웅 선수가 정식선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KIA타이거즈는 송산, 허승민 선수가 군 입대를 하게 되면서 포수인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혹자는 어부지리로 얻은 기회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에도 조범현 감독이 변선웅 선수의 정식선수 등록을 건의한 적이 있었다고 하니 그의 잠재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거 같다. 아무쪼록 변선웅 선수가 이번 기회를 토대로 최초의 불펜포수 출신 1군 풀타임 주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변선웅 선수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 지극히 사적인 이유인데 고3때 같은 반이었기 때문이다.(내 나이와 출신고교가 공개되는구나.ㅠㅠ) 고등학교 졸업앨범에 ‘변성웅’이라고 오타가 난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안 그래도 야구팬인 놈이 진학한 고등학교에 야구단이 있으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말로만 듣던 동대문야구장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입학 초기 들뜬 기분을 가진 기억이 있다.

 

하지만 3년 동안 동대문야구장을 가지 못했다. 우연찮게도 2001년은 광주진흥고가 2002년에는 광주일고가 광주고교야구를 지배했고 비로소 광주동성고가 지역예선에서 연승을 하며 전국대회로 진출 했을 때 고 3이었기 때문이다.

 

갈 기회는 있었다. 청룡기 야구대회에 광주동성고가 결승에 진출했었다. 준결승전 승리 후 교사 회의가 있었고 고 3 학생들도 가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당일 오전 어떤 학부모가 교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하며 그 결정은 취소가 되어 버렸다.(내가 이런 말 한다고 화 낼 분들은 『미디어스』에 들어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한 마디 하겠다. 아이를 위해 무조건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결정을 내리는 강경파 학부모들이 꼭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꼭 학부모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더라. “학생은 자기 욕심 채우는 로봇이 아니거든요.”) 

 

2001년 진흥고에는 김진우 선수(맘이 아프다.), 2002년 광주일고에는 김대우(롯데자이언츠), 고우석(KIA타이거즈)선수라는 에이스가 있었다. 그와 달리 2003년 동성고의 팀컬러는 타력이 강한 팀이었다. 1학년 때부터 주전이었던 김주형(상무) 선수를 필두로 명정주 선수, 2003년 당시 2학년이던 이원석 선수(두산 베어스) 등이 포진해 있는 타선은 그 당시 고교야구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들은 최고의 타력을 앞세워 제58회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에 진출한다. 광주고교야구삼분지계 중 하나를 차지한 동성고였지만 유독 청룡기 대회에는 우승 운이 없었다.

 

결승전 상대는 순천효천고. 팀의 에이스는 김수화 선수였다. 그 해 김주형 선수와 함께 KIA타이거즈 1차지명자로 오르내리던 선수였다. 예선에서 준결승까지 순천효천고가 3실점 이상을 한 게 배명고와의 경기밖에 없었고(13:5) 그 중심에는 김수화 선수가 있었다.

 

팀 대 팀, 학교 대 학교의 대결뿐만 아닌 김수화와 김주형의 대결에서 먼저 웃은 건 김수화였다. 2대2 동점 상황에서 순천효천고가 9대2로 멀찍이 달아난 것. 지난 해 한국시리즈 7차전 6회 초에 KIA타이거즈가 SK와이번스의 저력을 보고 절망에 빠졌듯이 학교에서 결승전 중계를 보고 있던 우리도 포기상태였다. 상대가 김수화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주하면 ‘배’처럼 고교야구 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혹사’로 인해 김수화 선수는 무너져 갔다. 8, 9회 그는 열일곱 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하던 그 김수화가 아니었다. 8회말 7:9까지 허용하더니 9회말 투수였던 강창주 선수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10회 말 그는 또 다시 마운드에 섰지만 이미 방전된 백만 돌이가 된 후였다. 두 타자 연속 몸에 맞는 공 허용.(그 와중에 김주형 선수는 일부로 몸을 공에 갖다 대더라.) 결국 1사 주자만루에서 바뀐 투수 김선규 선수가 명정주 선수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순천효천고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_1C|XWfdxzAa29.jpg|width="331" height="230" alt=""|_##]

▲ 김주형 선수가 2006년 6월 8일 롯데 자이언츠전 8회 말에 투런 홈런을 칩니다. 상대는 바로 김수화 선수였습니다. 이 소중한 정보를 알려주신 익명의 제보자(?) 분께 감사하단 인사를 전합니다. ⓒ KIA 타이거즈

 

이후 김주형 선수는 KIA 타이거즈 1차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그리고 김수화 선수는 롯데자이언츠 최대 계약금을 받게 된다. 이후 둘 다 유망주 딱지를 떼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했다. 공교롭게도 김주형 선수가 김수화 선수의 후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둘이 군대에서 이 이야기를 했을 지 궁금하다.

 

이 경기에서 뛰었던 선수들 중에 이 둘 이외에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가 임창민(경찰청), 이원석(두산베어스), 한기주(KIA타이거즈), 김선규(SK와이번스)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교야구 선수들이 졸업반 즈음이 되면 골프를 배운다고 한다. 프로 선수가 되지 않으면 골프 강사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다소 빈약한 야구 인프라로 인해 어릴 적 꿈을 포기하는 것이다. 역사를 만들었고 희망을 만들었던 많은 고교야구 선수들이 정작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꿈을 포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맘이 아프다. 아무쪼록 2003년 청룡기 결승전이란 역사를 만들었던 선수들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야구를 떠났다고 해도 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baseballkids/trackback/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