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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활동가 대회 생각-생각

이것 저것의 잡다구리한 생각이다. 난상잡기장이라고 할까. 암튼 지난 7일 일요일에 현장활동가 대회에 다녀왔다. 앞에 '전국'글자가 붙은. 가며 오며 글쎄 난 뭘 기대하고 갔을까, 무얼 하러 갔을까 ? 돌아오고 뭐가 내게 남았을까? 나는 뭘 결의했지? 답을 모를 상황만이 내게 남겨져 있다. 정말 이상하지. 뽕 맞은 것 처럼 힘내서 올거라 생각했는데, 갔다오고 난 나의 답은 글쎄 이다..

 

 ◀내가 중간에 숫자을 세었을 때 인원은 700명이 넘었다. 좌석수를 일일이 곱하며 몇명이 어디서 왔나를 유심히 봤다. 벽에 걸리 플랭들도 열심히 보고..


조직이 애초에 없었던 학출 학생운동가에게 그리고 철저히 혼자인 활동가에게 전국적인 조직은 언제나 손에잡힐 듯한 꿈이고, 그리움이다.  정치적 지향을 같이 하고, 같은 조직의 조끼를 입고 오고, 대중들을 만날 수 있는 동지가 있다는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이제는 철저히 '혼자하는 활동'에 익숙해 진다. 생각도 판단도 정보도 철저히 혼자 가지고 혼자 사고한다. 실천도 내 맘대로 이다. 하고싶은 하고 하기 싫으면 않하고..그래서 그게 외롭고 때로는 내가 거쳐온 과거가 정말 원망 스럽기도 하다. 차라리 누가 뭐라 해도 어디 소속인 사람이 되고 싶은..

 

분위기는 만들어 가는 거다. 활동가 대회에 모인 사람들은 이곳에서 결의들을 모아내고, 자신의 실천 결의들을 밝혔다. 선언은 13일 전야제에서 전국의 문선패 동지들과 사회적 합의주의 플랭을 찢어 버리는 퍼포먼스를 하겠다고 밝혔고, 현차비정규노조 활동가는 '울산지역 공대위'와 현차민투위와의 공동투쟁을 제안했다.


 활동가 대회 유인물이다. 붉은 색의 유인물, 그리고 손수건 위에 남겨진 붉은 시선이 사람의 맘을 잡는다. '너 제대로 살아라'라고 나를 다그쳤다. 그래서 이 아저씨의 시선에 눈을 맞출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모인 사람들은 돌파구를 찾으러 온것 같다. 그것이 의자 밑의 꽃병을 찾는 순진한 활동가들의 모습으로, 노동해방을 외치며 어색한 공기들을 풀어가는 것 처럼, 전국의 동지들과 악수하며 '잘 살고 있었냐'고 인사를 건네는 그 맘 처럼 애틋하게. 그리고 같이간 참세상 방송국의 활동가들도 그랬던 것 같다. 관찰자나 집회의 제 3자가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팔뚝질도 하고 구호도 외칠 수 있었던 그날은 활동가들에게 조금은 피곤하지만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가 되었음을 느낀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실천한다는 것은 집회에 가야 느끼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이 날은 '나도 뭔가 하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갖을 수 있었다.  

 

 

         

▲약간의 사진설명을 붙이면 행사 끝나고 밖에서 사진을 찍었다. 태곤, 편집장, 소장님, 진찬, 혜리, 하은, 용욱 그리고 뒤에 녹색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자세히 보면 홍킹이다. 난 사진을 찍고..

 

 

4학년 이후에 나에겐 나쁜 버릇이 생겼다. 믿지 않고 의심부터 하는 버릇. 설령 그것이 맞을 지라도 일단은 의심부터 하는 습관. 이 습관이 내 발목을 잡는다. 내 판단을 흐린다. 내게 요번 활동가 대회에서도 엮시 그랬다. 왠지 활동하는 좌파들은 다 가야 할 것 만 같은 자리, 안 가면 제대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쫓겨서 간 자리 였다. 한번 쯤 전국의 동지들을 보며 흩어져 있어도 뭉쳐 있는 우리! 라는 자신감을 갖기에는 내게 뭔가 부족했다. 그 부족한 2%를 찾는 것이 나의 과제 였겠지만 나는 끝내 찾지 못하고 올라왔다. 그게 무엇이였을까?

 

나는 무엇을 결의해야 할까. 자신의 활동 공간에서, 자신의 조건에서 자본과 정권의 공세는 강화되고 현장이 깨지고, 조직이 깨지고 활동가들이 사라지는 이 엄혹한 시기에 내가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를 좀 구체화 해야 겠다. 조만간 나의 결의문..수정에 수정을 거쳐 게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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