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풀님의 [분노는 나의 것, 감동도 나의 것.] 에 관련된 글.
모자를 쓴 V.I.레닌의 초상, 잭슨 폴록 스타일로 I
1979, 캔버스 위에 올려진 나무판 위에 유화와 에나멜
1.7×1.2m, 개인소장, 파리.
Art & Language (group; Terry Atkinson, Michael Baldwin)
born 1942, born 1945
* 지금 읽고 있는 책 (브랜든 테일러, '오늘의 미술')에 나온 김에 올린다. 디카로 대충 찍었더니 꼴이 말이 아니다.. 책에 인쇄된 사진만 봐도 훨씬 섬세하고 견고한 느낌이 든다. OTL
윗 그림은 영국 그룹 Art & Language '미술과 언어'의 작업이다.
책에 나온 설명에 따르면 '몸짓의 순간에는 스텐실을, 눈에 드러나는 레닌의 이미지에는 공식적인 공산당 도상을 사용함으로써, 그러한 회화들은 어느 쪽에도 적용되지 않는 바탕 위에서 액션 페인팅과 "당파주의자 partiinost"를 충돌시키고 전멸시킨다. 바탕 위에서 액션 페인팅과 "당파주의자"를 충돌시키고 전멸시킨다.'라고 나와 있다.
폴록으로 대표되는 1950년대 형식주의를 타파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한다.
폴록의 작품과 거의 흡사한 모습을 보며 제목으로 보고는 푸헛하는 느낌을 순간 느끼게 된다.
폴록의 뿌리는 추상화의 방식이 뿌리는 행위 자체도 이론으로 신성화 되고, 그 과정을 거친 결과물도 신성화되고, 작품을 만드는 온 과정이 통째로 '하나의 이상적인 형식'을 이루도록 '작업'한 작자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텐실이라는 방법을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스텐실은 대충 "무늬를 도려낸 형지·금속판 등을 직물 위에 놓고 그 위에서 스크레이퍼(scraper:날염물 긁개)로 날염풀을 칠하여 무늬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미술과 언어'의 작업에서는 표현주의자의 기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표현주의적인 그림들이 제작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고 한다.
찰스 해리슨이라는 사람이 '미술과 언어' 그룹의 레닌 연작을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이제 하나의 실제적인 형식으로서 회화의 가능성은 개념미술의 전설에서 벗어나 미술과 언어 그룹으로 나타났다.....회화사 자체는 회복과 수정에 노출되어있다..... 회화 문화는 이제 회화에 의해서만 비평적으로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브랜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모더니즘 이후의 모더니즘에 대한 해석은 소수의 전후 미술가와 비평가들(말하자면 폴록과 그린버그)을 표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만 흥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히 영어로 행해진 소란스런 모더니즘 논쟁과는 거리가 먼 교육을 받은 미술가들에게 그러한 강령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결코 절대적 형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또 다른 남성 미술과 필사적으로 투쟁하면서 남자다운 특질을 보증하는 이론적 태도를 혐오하였다. 건조하고 학술적인 어조의 논쟁은 철학적 비판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흥미를 기대하기 어렵다. .."
찰스 해리슨의 이해는 가지만 구역질나는 발언은 운동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과 언어' 그룹이 표현해 낸 '미국의 추상과 소비에트 사실주의의 낯뜨거운 조화' 는 냉전이 완화되었다고 해도 한창이던 시기에 2007년 현재보다 더욱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다만, 폴록이라는 화가와 그린버그라는 무시무시한 미술평론가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제목이 주는 '레닌'의 빨강색과, 폴록 스타일의 알 수 없는 추상화(게다가 방법까지 스텐실!)가 보일 뿐이다.
이중으로 거부감이 들지 않겠는가..ㅋㅋㅋ
그렇다고 옆에다가 폴록 그림도 전시하고 그린버그의 평문도 함께 전시하면 정말 웃길 것이다.
삼중으로 거부감....ㅋㅋㅋㅋㅋㅋㅋㅋ
암튼,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싶은가를 선택하는 것이,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그림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것도 그 그림을 이해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지점이라는 것을 잊어버리면.. 어쩔 수 없지만.
다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면 단지 그림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시각적 인지물들을 만든 자가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좀 더 분명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
Pollock, Jackson (American, 1912-56)
Lavender Mist No. 1
1950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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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고ㅠㅠㅠ ㅋㅋㅋ 너무 웃겨요.
저는 추상화는 전혀 이해가 안 가는데 그 중에서도 이건 정말 어디가 레닌이라는 거지...-_-;;
근데 이 글을 읽으며 자세히 깨달았는데, 며칠 전에 미술치료 워크샵에서 처음에 에이포 종이만 사용해서 자기를 표현해 보라고 했어요. 사람들은 종이를 구기고 여러 해석이 가능한 추상적인 걸 만들었는데 전 그런 게 이해가 안 가고, 안 돼요. 구체적인 것만 이해가 가요. 그래서 가장 구체적인 거 만들었음-_-;;; 이 글을 보니까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아요. 너무 개인적인 얘기다 킁킁
폴록이란 이름에, 레닌이란 이름을 붙인거죠 뭐.. 기존 미술권력과 체제에 대한 그 업계식 공격이랄까..^^;
추상도 구체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뿌린 물감, 뿌려지고 있는 물감..
뿌리는 행위의 의미,, 뿌리는 사람의 의식...뿌리다, 겹쳐지다 ㅋㅋㅋ
'그게 뭐?'라는 면에서 논란의 여지는 많겠지만요. ^^
미술치료 웍샵,,저도 한 번 접했을 뿐이지만, 그닥 잘 이해가 안 가도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거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누가 종이를 구겼다면 '구겨진'이라는 데 촛점을 맞추어 볼 수 있겠죠. 사람들은 '미술치료 워크샵에 와서 종이를 구긴 사람'을 보겠죠. 하지만 만든 사람은 '종이'-'구겨진'-'구겨진 내 마음'-'그래도 종이'-'하얀색'-'더럽힘'-'폄'... 식으로 불연속적으로 연상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제 생각에 이야기는 그 구겨진 종이와 관계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연상 과정에서 종이 등 자신이 만든 물건을 매개로 여러가지 마음을 풀어내는 것 같더군요.
애고,(-ㅁ- 선무당이 사람잡는데)
저 그림, 폴록 스타일의 터치로 레닌 실루엣을 그려넣은 걸로 보였는데, 저는. 아르침볼도 그림처럼.
눈코입이랑, 콧수염이랑, 모자랑, 옷깃 같은 거 보이지 않아요?
헉, 아르침볼도의 환영...-ㅅ-;;;
분명 무슨 실루엣이 보이기도 하네요! *ㅅ*
그래도 우울한 건 우울한 거죠. 전 사실 이런 식의 충돌에 의한 전멸은 믿지 않아요. 열 받을 뿐이죠. 목표로 하는 것이 레닌이 아니라 폴록이기 때문에 더더욱.
진중권씨 책 '놀이와 예술, 상상력' 초반에 나오는 그림같네요. 책에서는 레닌이 분명하게 보이던데요. 그게 갖는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의미를 찾자면, 史적 맥락에서 해석해야하지 않을까요.
미술사적? 역사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