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일상투쟁과 노조집행부 장악

일상투쟁과 노조 집행부 장악, 집행부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활용수단으로! 김 준 태(버스노민추 정책국장) ◎ 노조가 어용일 때도 현장을 바꾸기 위해 소수의 힘으로 투쟁해 왔다 민주노총으로 조직변경을 해서 형식적으로 민주노조라고 불리는 많은 사업장들의 경우는 버스현장보다는 훨씬 나은 조건이다. 즉 현재 버스현장에서 각종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부당하게 당하는 수많은 일상적인 탄압과 착취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곧 바로 사측과 맞서게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과도 대면해야 한다.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있는 노동조합이 회사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조합원들의 조직된 힘이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조합들은 문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조합원들의 일에 노동조합에서 딴지 걸지는 못한다. 이런 어려운 조건은 비단 버스사업장 뿐만 아니라, 어용 한국노총 소속의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공통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어려운 조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건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타령만 하는 순간조차도 조합원들은 신음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버스현장의 활동가들은 이런 어려운 조건을 바꿔보고자 활동하고 투쟁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버스현장의 상황은 변하지 않아왔다. 오히려 사측이 더욱 세련되게 형식적인 절차들을 지켜가면서 활동가들을 탄압해 오고 있다. 나아가 여전히 70년대식 노무관리의 풍토도 어려운 조건이지만 최근의 비용절감을 핵심으로 하는 구조조정이 들어오면서 어려움은 더욱 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제조업의 노동자들 하면 공돌이, 공순이라고 비하했지만 지금은 어떤가? 대표적인 예로 현대자동차 제조업 노동자들은 지난 7월 직업인기 조사에서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속적으로 투쟁하면서 고용안정, 임금․단협을 쟁취해 오면서 현재는 버스노동자들보다도 훨씬 안정적이고 나은 조건을 받고 있다. 불과 십 여년 전만 해도 버스노동자들, 특히 고속버스노동자들의 대우는 제조업 노동자들에 비하면 월등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렇게 버스노동자들의 처지가 열악해 졌는가? 그 대답은 단순하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건설한 이후 끊임없이 사측에 맞서 투쟁해왔다. 민주노조로서 처음의 투쟁에서는 오히려 더 탄압받고, 열악해 졌을 수도 있었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오히려 버스노동자들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해 온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받은 사례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강력한 투쟁을 전개한 노조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그나마 투쟁한 번 제대로 해오지 않은 한국노총 산하의 노조들도 민주노조로 넘어갈 까봐 떡고물을 챙길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서울지하철노조의 경우 2000년 배일도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노사 상생’, ‘신노사문화’를 외치면서 그 전까의 소위 강성 노조에서 온건 노조로 탈바꿈했다. 그러자 공사와 정부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면서 노동조합 내부에서 십수년간 투쟁을 통해 단련되어 온 활동가나 노조 간부들의 반발을 줄이고자 불과 3년 사이에 35%에 상당하는 임금인상을 하는 등의 당근을 던져주었다. 그러나 현장의 투쟁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죽었다고 판단하자 이제와서는 배일도 집행부에게 더 못준다고 배짱을 부리고 있다. 어용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민주노조가 떡하니 버티고 있을 때이다. 사측과 정부는 민주노조를 죽이기 위해서 어용노조를 키워야 하고 어용노조의 비위를 일정정도 맞춰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지하철노조에서 보듯이 민주노조의 씨가 사그러들면 어용노조는 곧 바로 그나마 받아먹던 것들도 뱉어 내도록 요구받는다. 과거 십 몇 퍼센트씩 민주노조에서 임금인상 등을 쟁취하자 정부와 사측은 울며겨자 먹기로 어용노조에게도 민주노조 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맞춰서 임금을 인상해 주었다. 다시말해 그나마 제대로 투쟁 한 번 하지 않아왔던 버스현장에서도 매년 임금인상 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조 사업장들의 투쟁 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 자신들이 싸우면서 쟁취하지 않으면서 과거 잘 나간다고 하던 고속버스 조합원들은 자동차, 중공업 등의 대공장 사업장들보다도 노동조건, 임금 면에서 뒤떨어지고 있다. 투쟁없이 쟁취없다는 것은 현실에서 엄연히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버스현장 등의 어용사업장에서의 투쟁은 노조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이해가 아닌 사측의 이해를 대변하다보니 항상 사업주와 노조의 두개의 투쟁대상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그만큼 투쟁이 힘들고, 활동가를 지키게 만든다. 그래도 지금까지 버스현장의 많은 활동가들은 그러한 어려운 조건을 알면서도 투쟁해 왔다. 집행부의 힘을 등에 업는 것이 아니라 집행부 마저 투쟁 대상으로 놓고 싸워야 하는 현실은 많은 활동가들에게 해봐야 성과가 나지 않는다거나, 조합원들을 실제로 조직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는 등의 패배주의를 확산시키기도 했다. 많은 활동가들이 중도에 포기해왔지만 여전히 버스현장에서는 새로운 활동가들이 간간히 튀어 나오고 있다. 그리고 게중에는 상당한 성과들을 내면서 현장활동의 모범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힘든 상황임에도 계속 활동가들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버스현장의 착취와 탄압이 심하기 때문이다. 버티다 못해, 눈치 보는 것도 한도가 있기 때문에 노조와 사측에 저항하는 것이다. 어용노조를 상대로 소수이지만 지속적으로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들을 대변하는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서!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서! ◎ 노조 집행부 장악! 현장을 바꾸기 위해 가장 잘 조직된 지도부를 활용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임금 등의 당면한 경제적인 문제들을 요구하고 따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사측과의 투쟁이 관건이다. 그러나 그 투쟁을 조직할 조합원들의 대표기구인 노동조합이 어용이다보니 사측에 직접적인 투쟁은 반드시 어용노조를 민주화하는 투쟁으로 나타난다. 개별적으로 사측에 대항해서, 또는 일부 집단적으로 사측의 부당한 착취에 대항해서 투쟁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투쟁들을 지속적으로 조직해내고,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일상적인 시기의 노동조합 집행부만큼 잘 조직되어 있고,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즉 노동조합 집행부를 민주파들이 장악하려는 것은 위원장 등에 대한 자리욕심때문이 아니라, 민주적인 노조운영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 이해를 대변하려다보면 노동조합의 힘으로 사측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점을 새기지 않고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 자체를 목적으로 사고하게 되면 조합원들이 야당에게 항상 하는 얘기인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집행부되면 똑같다”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이 아니어도 일반 조합원들 사이의 현장조직을 통해 노동조합보다도 더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다면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은 그 의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일상적인 시기에 가장 잘 조직되어 있는 기구는 바로 노동조합이다. 따라서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이 현장투쟁의 전 과정에서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을 통해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하려 하고, 그 이해를 대변하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측과 마찰을 빚게 되는 것은 사측과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측은 이럴 경우 소위 당근과 채찍을 휘두른다. 집행부 몇몇에 대해 돈으로 매수하거나 여러 가지 혜택들을 주는 척하면서 매수를 하여 아예 사측에 코끼게 만들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면서까지 민주적인 노조로 가지 못하도록 침탈들을 개시한다. 사측의 매수에서 대부분 넘어가고 일부 안 넘어간 집행부들의 경우 오히려 조합원들에게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결국 사측과의 투쟁에서 집행부 인자들 소수만의 고립된 투쟁을 하면서 지키면서 민주노조의 싹들이 죽어온 경험들은 노동조합 집행부 장악이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자리잡혀왔기 때문이다. 노조 집행부 장악을 하든, 하지 않든 현장에서 사측의 다양한 억압과 부당한 착취들에 맞서 일상적인 현장 투쟁을 하나의 전체 과정으로 놓고 그 과정속의 한 부분으로 노조 집행부 장악을 놓아야만 노동조합 집행부가 되더라도 소위 똥 누러 갈 때 마음 틀리고, 똥 눈 다음 마음 틀리다는 비아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제조업 등 다른 업종까지 포함해서)지금까지의 수많은 사업장들의 예를 들지 않고 버스현장에서의 예만 들더라도 일상적인 활동이 없는 가운데 선거 몇 달전부터 선거운동에만 본격적으로 움직이던 숱한 사례들 속에서 위원장 등 집행부를 장악한 사례들이 수도 없이 많아 왔지만 그들 사업장들 중에서 민주노조 건설을 한 사업장이 없다는 것은 가장 명확하게 이를 입증하는 사례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버스활동가들, 버스관련 단체 및 조직들의 활동방식이 바로 처음 장에서 비판한 개별적 법적투쟁, 선거주의였고, 이들은 조합원들의 의식을 조금씩이나마 바꾸고 그것이 마음속에서 썩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은 행동이라도 같이 할 수 있도록 ‘조직’하지 않아왔기 때문에 막상 노조집행부를 장악하더라도 민주노조로 갈 수 있는 준비, 민주노조로 가기 위한 자신들의 능력들이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지속적인 현장투쟁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들을 전체적으로 꿰고 있지 못하다면 순간순간 감각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하는 임기응변만이 남게 될 것이고, 그것은 나침반을 잃은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 ◎ 집행부의 활동도 일상적인 투쟁을 통해서 다져진다 현재 야당출신이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는 버스현장들은 꽤 많다. 가장 가까운 예로 중앙고속의 경우는 대표적인 예이다. 시내버스 현장의 경우도 김포교통, 우신버스, 보영운수, 한남운수 등 상당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 사업장은 어떤가? 과거 어용과 다를바 없고, 나아가 민주파 활동가들이 써먹던 일부 기술들을 배워 조합원들 탄압을 더욱 정교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버스 현장이 30-40년의 어용의 역사들을 가지고 그 기간동안 노조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해왔다. 조합원들도, 어용노조를 바꾸자고 외치는 야당활동가들도 말로만 외치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흐릿하게만 통박때리고 있지 구체적으로 자기 몸에 배어있지 못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순간 집행부를 장악한다고 민주노조가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집행부 장악은 민주노조의 완성이 아니라 민주노조로 가는 어려운 길의 첫발을 내미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직변경을 했던 버스현장들 조차도 불과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어용한국노총 산하로 들어가면서 그 현장은 다시 조직하기가 더없이 힘들어진 경우들이 있다.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준비를 일단 집행부 장악하고 해보자는 것은 무책임한 생각이다. 한 번 경험적으로 닥쳐보지만 그것이 실패하게 될 경우 그 사업장의 변화는 몇 배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계적인 교육이나 자기 몸에 실천을 통해서 배어있지 않다면 실패할 확률이 거의 대부분이다. 즉 막상 닥쳐보고 그때부터 준비해보자는 것은 사실상 그 사업장을 피폐하게 만들어 버리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자! 그럼 그런 준비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갖춰질 수 있는가? 지속적인 일상활동은 조합원들에 대한 선전, 교육이 포함된다. 또한 선전과정을 통해서 집행부에 조합원들의 의견을 어떤 식으로 피력을 하는지를 보여주고 그것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일상활동을 앞장서서하는 활동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나 의식들이 현장활동의 결과 나타나는 오류들, 성과들로 인해 더 자신감을 갖거나 때로는 자기의 생각을 고쳐먹게 만든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측과 어용노조의 탄압에서 활동가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은 말은 잘 하는데 막상 닥치니 뒤로 빼더라, 누구는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등의 서로간의 검증이 된다. 또한 끝까지 활동하는 활동가들 자신이 탄압에 대해 단련이 된다. 조합원들은 지금까지 고향선후배, 어느 버스회사 출신 등의 인맥관계를 중심으로 뭉쳐왔던 어용의 조직적인 뿌리에서 이제 지속적으로 현장활동을 하면서 내용, 실천적으로 보여준  활동가들에 대한 신뢰를 보낸다. 이 과정은 기존까지의 어용의 조직적 뿌리인 인맥, 돈 관계를 현장활동의 실천과 그 내용으로 판단하게 하는 과정이다. 또한 그것을 판단하게 하는 과정도 어떤 실천사업 속에서 토의와 결정된 사항에 대한 행동통일, 그 결과에 대한 평가 속에서 다시 오류들을 걸러내는 과정을 일상적으로 진행하면서 민주노조의 단단한 기반인 조합원들의 의식적 각성과 민주적 절차를 몸에 익히게 하는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이 단 몇일, 몇 개월의 과정이 아닌 몇 년간의 지속적인 과정으로 현장에서 뿌리내린다면 민주노조 건설의 단단한 뿌리들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뿌리가 단단하게 내리고 있으면 웬만한 천지풍파에 대해서는 뽑히지 않는다. 그러한 지속적인 과정 속에서 집행부를 장악할 때에만 이미 준비를 해 들어가면 가장 잘 조직된 노동조합조직의 최대치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역시 일상적인 활동을 통해서만 민주노조의 기틀이 다져질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일환으로 집행부 장악이 될 경우에만 사측의 어떠한 회유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조합원 동력은 노조집행부의 의지와 그에 따른 일상적인 투쟁들을 통해 올라간다 한성여객노조의 총파업을 보면 혀를 끌끌 차게 만드는 것이 있다. “조합원 동력이 안 따라 준다”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현 한성여객노조 집행부의 핑계이다. 그렇다 이건 핑계다. 그 근거는 이미 파업 전 조합원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쟁의 찬성, 파업 첫 날 보여준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지도부 비판, 그 후 지속적으로 지도부에게 강력한 투쟁전술을 구사하라고 압박해오던 각 분임조들의 토론 및 그 결과보고, 파업 과정에서 황충구 위원장의 각종 밀실 타협 등이 밝혀지면서 즉각적인 조합원 총회를 통해 불신임 시키고 새로운 직무대행을 선임한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새로 바뀐 집행부마저 아무런 전술 구사 없이 파업현장 안에서 시간때우기만을 ‘강요’하고 여타의 어떤 제안들에 대해서는 막무가내로 잘라버리는 과정이 근 40여일을 지내오면서 조합원들은 “집행부 바뀌어도 다를 것 없고, 오히려 더 안 움직이네”라는 심각한 패배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니 현장 안에 죽치고 있어도 매사에 의욕을 잃어가고 적극적으로 임하던 각종 토론, 간담회 등에서 이제는 별반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을 보고 지도부에서는 조합원 동력이 없어서 못한다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조합원 동력이 가장 올라왔던 시기에 지도부가 어떻게든 조합원 동력을 떨어뜨리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튀지 마라”는 식의 협박을 일삼았던 부분들이 조합원들을 현재의 사기저하된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실제로 파업에 임하기 직전의 한성여객노조에서는 조합원들이 불과 전체 노동자 340명 중 100명이 갓 넘었었다. 그러나 매주 수요집회 과정에서 관리자들에 대한 타격, 흥안운수 본사에서 조장우 사장 타격, 진입투쟁 등을 통해서 지도부가 정말 할 것 같다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급속하게 조합원 숫자가 230여명이 되었고,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는 223명 중 217명 투표, 211명 찬성이라는 어느 사업장에서도 보여주기 힘든 압도적인 찬성을 했다. 그리고 그 당시 진행하고 있던 철야 천막 농성에 조합원들이 김치를 싸들고 올라오거나 새벽까지 함께 밤을 새면서 앞으로의 결의를 다졌다. 조합원들의 동력을 끌어 올리는 것은 지도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한 번 올라선 조합원들은 이제 지도부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앞서나가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조합원들의 이중적인 모습을 얘기한다. 그렇다. 대중은 이중적이다. 어느 시점까지는 함부로 올라서려 하지 않는다. 함부로 앞장서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까지 지도부가 의지를 갖고 동력을 끌어올린 후부터 조합원들은 이제 과거에 주저했던 어려운 선택들을 스스로 한다. 과거 동력이 올라오기 전에 조합원들은 자신들을 개개인으로만 생각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까지 동력이 올라가게 되면 개인이 아닌 집단, 조직의 성원으로 사고하게 된다. 그 조직 속의 일부로서 판단하고 모든 책임을 개인이 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에서 이제는 함께 책임을 진다는 조직적인 사고들을 터득하게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업장들에서 각종 파업투쟁 등을 통해서 조합원들이 임금, 노동조건 등을 쟁취한 것 외에 더 큰 성과는 개인적인 사고위주에서 조직적인 사고와 조직적인 실천을 몸에 익혀왔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조직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다. 조직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한 번 맛보고 깨닫게 되면 이제 노동자들은 과거에 억눌리고 눈치보던 무력한 개인이 아닌, 당당한 역사의 주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그 것을 힘으로 투쟁하는 것은 이렇게 당장에 쟁취하는 성과물뿐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고 그 힘이 어느만큼 강력한가를 몸소 맛보게 하는 눈에 안보이는 더 큰 성과들을 주게 된다. 조합원들의 동력은 어느 정도 올라가면 지도부를 뛰어넘으려 하지만 그 동력을 처음에 조직하고 상승시키고 계속 유지시키는 것은 지도부의 의지와 그 의지를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유하면서 가능하다. 이것은 어용노조의 관성에 굳어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피곤하다고 여겨질 수 있다. 실제로 어용노조에서 민주노조로 건설하는 과정은 그만큼 힘든 과정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 과거 어용과 마찬가지로 집행부만 어떻게든 장악해보려는 개인적 욕심이 아니고, 진정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과정은 필수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 조합원들의 의식적 성장은 바로 민주노조가 어용의 각종 음해, 사측의 탄압 등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는 기반이다. 이 기반이 허물어진다면 당연히 민주노조도 흔들린다. 핵심은 이 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 강화하기 위한 일상적인 활동이 집행부를 장악하더라도, 집행부에 올라가 있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