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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ovement of the movements

포카혼타스님의 [마르꼬스 인터뷰: 사빠띠스따의 모래시계] 에 관련된 글.

 

 

운동들의 운동?

 

여전히 세계에 힘을 떨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지난 10년간 총체적 승리를 거두는 가운데에도 저항의 골짜기들, 즉 사방이 포위된 한줌도 안 되는 국가들, 산발적인 공장노동자의 파업들, 작은 급진적 정당들은 그 이전 시대로부터 살아남아 왔다. 하지만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저항들은, 그 지지자나 반대자 모두가 언급하듯이 '반지구화 운동' 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새롭다. 시애틀, 워싱턴, 프라하, 퀘벡에서 장관을 이룬 행동들의 통일된 표적은 지구 전역에서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자유로운 상품과 자본(그러나 노동은 제외된)의 흐름을 강요하는 국제기구들이다. 이 시위들 뒤에는 온갖 이질적인 조직과 힘들이 놓여있다.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은 여전히 국가적 정치배경에 뿌리박고 있는 반면, 가장 새로운 힘은 혁명적 노동운동이 빛을 잃은 이래로 볼 수 없었던 일종의 인터내셔널리즘으로 향하는 노력이었다. 사실상 뚜렷한 이념 간 갈등이 없는 현 정치질서의 단조로움 속에서, 이데올로기적 합의를 뒤흔드는 어떠한 것도, 언론의 상당한(심지어 걸맞지 않을 정도의) 관심을 끌기가 쉽다. 이것은 저항의 반향을 의도하지 않게 키운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역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저항과 반자본주의적 중추의 연대는 명민하게 남아있어야 한다. 맹아 수준의 운동의 규모나 업적을 과장하는 것은, 무관심이나 방기만큼이나 쓸모없는 일이다. 인터내셔널리즘이 헤게모니 체계를 실질적으로 패배시키려면, 다자주의의 장막 뒤에서 미국 실세들을 성공시키고 있는 WTO나 IMF와 같은 경제기구들 만큼이나, 지구화의 군사·정치기구들(발칸반도, 중동을 포함해 세계 전역에 있는 UN 안전보장이사회와 그 하수인인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또한 타겟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정된 지평일지라도, 전혀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뉴레프트리뷰>(NLR)는 이번 호에서 새로운 항의의 주둔지들로부터 나온 인터뷰와 문헌들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 새로운 항의의 기원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강행되자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EZLN)이 그것에 대한 무장저항으로서 치아빠스 주의 6개 마을을 점령했던 1994년의 첫날이었다. 멕시코를 넘어서 뻗어나간 도덕적 리더십은 그 뒤로 줄곧 사빠띠스따들에게 남아있다. 아래 글에서 부사령관 마르꼬스는, 멕시코 의회가 산 안드레아스 협약을 뿌리째 뽑아내기 이전인 2001년 3월 EZLN의 멕시코시티 입성 이후의 원주민의 권리를 위한 싸움의 전략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또한 그는 한 명의 사상가로서의 자신의 성장과정에 대해 말한다. 사빠띠스따 이후 가장 활동적이었던 것은 북미의 저항전선이었다. 나오미 클라인은 그 중 가장 선두에 선 목소리들 중 하나이다. 여기서 그녀는 겸손과 자기서술의 리얼리즘에 대해 논한다. 하나의 운동이 아닌, 다양한 힘들의 그물망(web)에 대해서, 그리고 지구화에의 반대가 아닌, 사유화에 대한 반대를 하면서. 다음호에서는 이 힘들 가운데 하나인, 미국을 움직이는 '러커스 쏘싸이어티'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윗글은...

<뉴레프트리뷰> 2001년 5,6월호에 실린 서문. 원제는 ‘A Movement of Movements?' (new left review 9 may ju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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