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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곧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난다.
돼지녀석.
어렸을 때부터 나랑 무진장 싸우고 자랐다.
연년생이라 내 유년의 기억속에는 항상 그녀석이 있다.
샘이 많아서, 같이 앉아서 그림을 그렸는데 내 그림과 제것을 비교해보고는 울면서 내것을 찢은 적도 있었다. 그게 나는 네살, 그놈은 세살 때인가.
생각해보면 그녀석의 어린날은 나의 존재로 인해 좀 더 치열해진 구석이 있었을거다.
공부 잘하고 이것저것 칭찬 많이 받고 성실하고 말잘듣는 언니의 그늘에서
어쩌면 여러번 좌절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누구누구 동생' 이라고 불리는 것.
거기서 벗어나고싶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언니한테 바락바락 대드는 동생에게
나는 그렇게 제너러스한 그런 언니는 아니었다. 기어오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였던가..?
한번은 나는 바이올린 활채를 들고, 그놈은 놀이터에서 주워온 각목을 들고
엄마가 외출한 집안을 개코원숭이처럼 뛰어다니며 싸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참 그러다가 자기가 들고 있는 무기가 감당이 안되고 무서워서 둘 다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셨을 땐 둘이 어느때보다도 사이좋은 자매가 되어있었다.
차마 '쟤가 각목으로 때렸어!' '언니는 활로 때렸어!' 라고 동반자폭할 수는 없는데다가,
같이 울면서 서로의 모질지 못한 속을 확인하고, 사실은 널 해치고싶지 않아, 라는 뜻을 확인했기 때문일거다.
또 한번은 동생과 심하게 싸우다 집에서 쫓겨났는데, 동생하고 나는 나가서 엄마가 들여보내줄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았다. 엄마가 어이없게 시소 타고 놀고 있는 우릴 보고 들여보내주는 대신 손바닥을 맞았는데 내가 맞을 때 동생이 울었다.
어쩌면 이런게 내 동생과 내가 운명적으로 타고난 관계의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동생 외에 그 어떤 사람과 다시 그렇게 원초적으로 싸우고 인간적으로, 동시에 동물적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
동생이 음악을 전공해 나와 다른 길을 가게 된 건 우리에게 참 잘 된 일인 것 같다.
우리는 더이상 능력이나 성적을 갖고 서로 비교당할 일이 없어졌다.
청소년기를 지나오는 동안도 엄청 싸워댔지만, 그래도 그건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같은 걸 남길 일 없는 '신경질 부리기' 같은거였다.
동생은 자기 길을 아주 잘 걸어갔다.
그 애는 우리 부모님이 어디가서 절대 주눅들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선물처럼 안겨드린다.
내가 지금쯤 깽판 좀 쳐도 부모님이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버퍼가 될거라고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그렇게 동생은 지금도 가족들을 흐뭇하게 하며 바다를 건너간다.
얘가 오래 떠나 있는다니까 새삼 마음이 찡한것이 한달도 안남은 기간동안 매일매일 봐야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음주에 오프 받으면 돼지 보러 집에 열심히 가야지.
이십몇년 살면서 한번도 돼지녀석이 필요하거나 보고싶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얘가 보고싶을 것 같다.
당신은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있는 사람이랑 사귀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그 때 가서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었죠.
이 말에 제가 꼭 반박을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말실수 하신 걸 내가 걸고 넘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터무니없는 말이라. 당신은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스스로 들어간 그 ‘다른 시간계’를 정말 군대나 감옥에 비유하고 싶으신가요? 그 어떤 외적인 속박과 당신의 삶을 제한하는 것들에 ‘아니오’라 외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모든걸 당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이 상황을 군대나 감옥에 끌려간 것에 비교하시다니...
그곳에 갇힌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당신을 비웃을지도 몰라요.
나는 내가 무수한 갈림길로 짜여진 이 삶의 순간들을 최대한 의식 위로 끌어올려 한 땀 한 땀 짚어가며 살 수 있기를 바래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매일 무료하고 불만족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몸이 안 따라준다’는 당신의 말을 이해해야만 하게 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한계 그 끝까지를 느끼고 경험하며 살고 싶어요. 그 곳이 바로 내 자유의 영역이고 내가 뛰어 놀 수 있는 나의 무대라고 여기면서.
그런데 당신은 왜 당신의 무대에, 그리고 필연적으로 나의 무대에까지 그러한 무기력한 관계의 울타리를 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거부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관계 사이에 군대의 경비초소나 교도소 담벼락을 세우려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닌 나를 감옥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거니까요. 당신은 한평짜리 몸 누일 곳만 있으면 불편을 못 느낄 지 모르지만,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있는 나는, ‘봐요 내 안에 이런 세상이 있어요!’ ‘봐요 저것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봐요! 저건 대체 왜 저런거죠?’ ‘당신 때문에 난 이걸 새로 발견했어요, 들어볼래요?’ 로 가득 차있는 나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마치 잡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막상 잡힌 것은 쇠창살인 듯한 절망감이 들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실제로 갇힌 건 내가 아닌가요?
여기까지 들으셨으면,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무심코 한 비유를 가지고 너무 깊게 판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원래 좀 한가지가 머리에 꽂히면 계속 파대는 버릇이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말에 내가 갖는 신뢰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되고, 당신이 뭔가를 ‘비유’씩이나 할 때는 그렇게 무심코 하지는 않는다는 걸 봐왔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냥 오래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그리 비유한 것’ 이라고 하신다면 제 대답도 간단해요. ‘그 오래 연락 못하는 상황이란 게 전혀 비슷비슷하지 않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여태까지.’
아, 당신이 한 말의 뒷부분을 까먹고 있었네요.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그 때 가서 헤어지면 되잖아요.’
그럼 나는 그분이 나를 구하러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으라는 건가요, 그것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나한테 연애라는 것은,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귀기로 한 그 날부터 하루씩 날짜를 더하는, 그래서 100일이 되고 1년이 되고 '오래 한 연애'가 되는 그런 status가 아니에요. 그보다 매 순간이, 내가 하고 있는, ‘연애질’인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로 헤어진다’ 는 선언이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나는 이 순간 연애를 하고 있거나, 하지 않고 있거나, 그래요.
그래서 '그 때 가서 헤어지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지난 한달 남짓한 시간이, 연애를 하고 있던 나한테는 매 순간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어요.
‘잘 모르니까 그냥 가르쳐달라’고 하셔서 한가지만 그렇게 가르쳐드릴게요. 이런 경우, 이건 당신이 나를 떠난 거예요. 그치만 자존심 땜에 내가 당신을 떠난 형식을 취하고 싶어지면 말을 바꿀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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