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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7/31
    죽는 꿈(2)
    포카혼타스
  2. 2009/07/28
    평택(4)
    포카혼타스
  3. 2009/07/20
    AVE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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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7/17
    2. 고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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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7/15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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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9/07/15
    1 .
    포카혼타스
  7. 2009/07/15
    Intro
    포카혼타스
  8. 2009/07/05
    ESS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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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7/05
    닥터스카드
    포카혼타스
  10. 2009/07/02
    도와주세요, 와 사랑해줘 사이.
    포카혼타스

죽는 꿈

내 룸메이트가 오늘 죽는 꿈을 꿨다고 한다.

시속 120km로 달리는(꿈에선 이런 디테일도 다 알고있을 수 있다. ㅋ) 기차에 치어서 죽었는데, 죽고 나서 자기 엄마와 오빠한테 '나 연애도 한번 못해보고 죽었어. 어떡해~!!' 이러다가 깼다고 한다.

 

 

해몽) '너 연애하고 싶구나?'

지금 죽으면 제일 억울할 것이 뭔지를 무의식이 말해주고 있는거다. ㅎㅎㅎ

친구야, 얼른 좋은 사람 만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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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 잊을 수 없을 주말을 보내고 왔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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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RAGE

모든 것은 술 때문이었다.

 

정작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서는 싫은 것을 싫다고 잘 못하고, 남 기분 상하게 할까봐 눈치도 많이 보고, 그렇다고 눈에 안띄게 요령피우는 것도 할 줄 몰라서, 억지로 술 많이 먹이는 선배나 손윗사람들과 술을 마시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많이 취하고 만다.

 

그날도 그랬다.

동문의 까마득한 선배들이 테이블 양쪽으로 주루룩 앉아있었는데,

2차였던가, 맥주집에 갔을 때 옆에 앉은 선배가 하필 위스키로 폭탄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먹어보는 그 폭탄주를 석잔인가 넉잔인가 먹여지고 나서

나는 몽롱해진 정신에도 평소 취하는 속도보다 너무 빨리 취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집에 가기 위해 무작정 자리를 떴다.

 

지하철로 가는 도중에도 땅이 점점 더 많이 흔들리고 주위가 빙빙 돌아갔다.

집까지 가는 지하철에 타서 맨 가장자리 자리에 앉아 철봉에 몸을 기대었다.

그리고 나선 아마 잠이 들었을거다.

 

다음 순간 기억나는 것은,

누군가 나를 부축해 지하철 역사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구지?' 얼핏 보니 선배 같았다.

나는 선배 이름을 부르며 집에 가야한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뭘 벌써 가냐며, 다들 이 근처에 있는데 그리로 가자고 했다. 자리 옮겨서 또 술마시러 간댄다.

바깥에 나와서 찬바람을 쐬니 정신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 때 난 그의 팔에 팔짱이 끼워진 상태로 이미 어떤 건물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술집이 아니었다.

머리속에서 알람이 울었다.

순간 그의 팔에서 몸을 빼내려고 해보았지만, 내가 똑바로 걷기도 힘든 상태라는 사실만 깨달았을 뿐이었다.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밝은 불빛을 보자 이게,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바로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데, 그런데 여긴 어디지? 이 사람은 누구지? 선배인데? 아닌가? 다들 어디간거지? 이게 어떻게 된거야! 나는 혼란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머리속에서 폭풍이 몰아치는 동안, 어느새 나는 엘레베이터에서 이끌려나와 어떤 문 앞에 서있었고 그는 그 문에 키를 꽂고 있었다.

나는 도망칠 수 없었다. 왜 그런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았냐고 물으면, 나는 너무 취해있었기 때문에 도망치다가 잡혔을 것이 뻔하다고 항변해야 한다. 글쎄, 그가 정말 나를 잡으러 왔을까? 그리고 나는 잡혔을까? 모른다. 하지만 잡으러 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도망치다 잡히면 왠지 나를 죽일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모텔인 것 같은 이 곳에서 어떤놈한테 죽는 것은, 그래, 저 안에 들어가 이새끼한테 당하는 것보다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도망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도 할 수는 없었다. 안했는지 못했는지, 나 자신에게 자꾸만 묻지만,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질문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게 한다는 것 뿐이다. 안한 것이기도, 못한 것이기도 하다. 인생 최악의 무력감을 느끼던 그 순간에도, 그래, 나는 분명 선택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될지 모를 선택을.

그런데 말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놈들은 대개 죄책감을 못느끼는 것 같단 말이다. 그래서 빌어먹을 죄책감은 그놈들 주려고 잘 놔뒀다. 늬들 분실물 내가 보관하고 있으니, 제발 좀 찾아가라고.

그래도 누군가는 빙글빙글 웃으며 이렇게 말할테지. '뭘, 사실 니가 원해서 도망치기 싫었던 거 아니야?' 

..... 엿먹어라 씨발놈아.

 

 

그래도 팔 다리 다 달려있는 몸뚱인데 내 몸이 이렇게 무력할 수가 없었다. 덩치도 커다란 그는,  버텨보려는 나를 방안에 밀어넣고, 그리고 나서 어찌어찌해서 나는 침대 위로 던져졌다. 그러는 동안 내 머리는 거의 알코올에 잠겨있는 상태에서도 있는 힘을 다해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보기 위해서 불을 켜려고 했지만 그는 스위치 쪽으로 뻗는 내 팔을 결사코 막아냈다. '어쩌면 얼굴 보면 죽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에 나는 더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내게 남은 무기가 정말이지, 정말 우습게도 말이지, 말할 수 있는 입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나를 강간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그가 내 몸 위로 올아와서 침이 흐르는 입술을 얼굴 여기 저기에 들이대려고 했을 때, 나는 도무지 누구인지조차 모르겠는 그에게 무작정 선배라고 부르며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 잠깐만요 선배. 좀 진정하고 저리 가봐요. 술취한 후배 데리고 와서 이게 뭐예요. 지금이야 선배도 취해서 이러고싶겠지만, 내일을 생각해봐요. 내일 아침. 쪽팔리겠죠? 아니라구? 뭐가 아니에요, 내가 다 말하고 다니면 어쩌려고. 선배 그리고 결혼도 하지 않았어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다 아는데. 그리고 선배 배나온거 봐요. 에그. 결혼 안했다 그러면 누가 믿겠다. 정말 지금 관두면 내가 아무한테도 얘기 안하고 용서해줄게요. 네? 걱정마요. 네?'

이런 소리를 푼수같이 조잘 조잘 떠드는 동안도 그는 나를 찍어누르고 윽박지르기도 했고 나는 나름 그를 밀어내려고 바빴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의 목표는,

'너의 발기를 막겠다' 였다.

그러던 중 그가 셔츠를 벗었는데 내 계획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는 흰 런닝셔츠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때부터 낄낄낄 웃으며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 아 근데 웬 난닝구에요! 완전 챙피하게! ㅋㅋㅋ 선배 패션감각 진짜 죽인다. ㅋㅋㅋ 누가 요즘 난닝구 입어요! 아오 선배 진짜 실맹이야. 아, 진짜 이제 됐어요. 난닝구 입고 달려들면 어떡해요, 챙피해요 빨리 셔츠 입어요. 좀. ㅋㅋㅋㅋ 선배 나 진짜 난닝구 입는것도 비밀로 해줄게요. 셔츠 입고 빨리 집에 가요. 네?'

 

 

그러자, 그는 욕을 하면서 물러났다.

 

그는 날더러 앉으라고 해서 이러저러한 얘기를 좀 더 하다가 나를 보내줬다.

그 방을 나오면서 그래도 그놈에게 한마디 했다.

'앞으로는 이런짓 하지 마라.'

방문을 나서는데, 뒷덜미를 낚아채여 다시 끌려들어가는 환상이 내 머리채를 잡고 딸려나와

아스팔트 길바닥에 까지 따라 왔다.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한테 신경 안쓰고 지나쳐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리가 풀려서 웅크려 앉아 손으로 바닥을 짚고

눈물은 적고 숨만 요란한 이상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직후부터 또다른 충격을 경험해야했다.

내 전화를 받고 거의 정신이 나간 나를 도와주러 온, 내가 정말 믿고 있었던 사람은, 사건 전말을 듣더니 내가 주체못할 정도로,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술을 많이 마신걸 나무랐다. 그리고 내가 차마 부모님이 계신 집에 못들어가겠다고 해서 그는 다른 모텔로 나를 데리고 갔는데, 울다 잠든 그 다음날 나에게 자는 모습이 어땠다느니, 남자인 자기와 단둘이 모텔에 가는데 아무 두려움이 없었던 걸 보면 자기를 정말 믿는가보다느니, 요즘 어린 애들이 모르는 사람이랑 성관계 갖는 거에 대해 엄청 개방적이라느니 하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가 정신이 나갔거나 내가 정신이 나간거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나는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는 얼마동안 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ease에서, 진단받은 건 아니니까 disease는 빼고, 대충 그것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고생을 좀 했다.

잠시라도 짬이 나면 그 때 일이 반복해서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분노에 차서 부들부들 떨고있고(자신에 대한 분노도 포함해서)

뒤에서 누가 날 부른답시고 건드리면 옷속에 벌레라도 들어간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

그리고 덩치 큰 남자들이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어찌보면 그런 일 끝에 겪는 것이 너무 당연한 증상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서 바쁘게 사느라고 증상과 기억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점차 흐릿해졌다.

 

그런데 말이다.

결코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모양이다.

 

 

정말 절망스러운 것은,

내가 겪은 특별한 불행이,

어쩌면 이 술먹은 세상의 따악 보통치 평균인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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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립

당신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 벽에 부딪혀 힘들어하고 있을 때,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경악했어요.

이 상황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얻기 위해 조언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모르게 이런 관계를 유지한다는게

단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서로 끊임없이 의식하면서도 모르는 척 해야하는 불편 뿐 아니라

관계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상대방이 아니면 내 고민을 들어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문제가 있더군요.

특히 이번처럼 상대방은 별 불편을 못느끼고 있는 상황에서는

고민의 생성부터 해결까지, 온전히 나만의 몫이 되는거죠.

 

내가 '비밀' 이 주는 특유의 스릴을 즐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처음에 당신이 이걸 비밀로 하고 싶어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당신의 그 의도가 마음에 들진 않아요.

당신은 이게 알려지면 이러저러한 놀림과 핀잔을 들을 것이 너무 싫고,

사람들이 당신과 나를 '당신-나'로 묶어서 생각하게 되고,

각자에게 이성인 사람들이 우리들로부터 어느정도 거리를 두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댔죠.

나는 (어려서 그런지) 이런 작은 것에도 내 존재와 행동이 모순되는 걸 못견뎌하는 편이라 당신한테 'Deal with it!' 해버리고 싶었지만, 당신이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었어요.

이해가 된 건 아니지만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뭔가가 있다면 그건 내가 양보해야 하는 부분일테니까요.

그런데 막상 실전에 돌입했을 땐 오히려 내가 더 훌륭한 연기자였어요. -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렇게 열연을 하다보니, 정말 아무도 눈치 못채네요.

 

그래서 지금은 좀 후회돼요. 조금 덜 열심히 연기할 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쳐다보고 싶을 때 쳐다보고, 괜히 옆에 가서 서있기도 하고, 잠깐 같이 편의점 가자고 하고, 당신이 화들짝 놀라건 말건 (다른 땐 당신이 먼저 하듯이) 덥석 손을 잡기도 하고, (다른 땐 당신이 먼저 달라고 하는) 가방을 들어달라고 하기도 하고, 짝사랑처럼 보이면 안되니까 '어제 밤에 전화했었죠? 미안 자고있었어요.' 도 확 질러주고.

아니, 난 원래 훌륭한 연기자니까 내가 이런 짓을 한다면 그건

'허술한 연기자'를 연기하는 셈이네요.

(이런식으로 당신을 물먹이는 상상을 하며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군요. 그렇지만 이정도의 복수심은 애교로 봐주시길.)

 

그랬더라면 나도 힘들었을 때 하소연 할 사람이 있었을텐데.

그 하소연이란게 '션섕님, 쟤가 나한테 모래 뿌렸쩌요!' 수준과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예전에 수많은 친구들이 나에게 했던 연애상담처럼, 모두가 그보다 더 절실할 수 없고,

들어주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가장 효과적인 Therapy이고,

나머지는 결국 그 둘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만 하는 그런 고민들을.

 

'결국 이렇게 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며, '바로 이것이 이 관계를 알리지 말아야 했던 하나의 이유' 라고 할 수도 있겠죠. 불편해진 우리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그동안 해 왔듯이 계속 '아무 일 없었던 관계'를 연기해야한다는 거예요. 나야 좋은 배우니까 이것 또한 잘 해낼거지만, 참 괴로운 연극이 되겠죠. 그래서 난 '바로 지금의 상황이 이 관계를 숨기지 말았어야 할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곧 만나게 될텐데, 그 때 내 연기가 능청스럽다고 날 미워하지 말아요.

그동안의 것은 당신을 위해서 한 연기였으니까요.

 

 

 

다음번에는 고립되지 않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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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동생이 곧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난다.

 

돼지녀석.

어렸을 때부터 나랑 무진장 싸우고 자랐다.

연년생이라 내 유년의 기억속에는 항상 그녀석이 있다.

샘이 많아서, 같이 앉아서 그림을 그렸는데 내 그림과 제것을 비교해보고는 울면서 내것을 찢은 적도 있었다. 그게 나는 네살, 그놈은 세살 때인가.

 

생각해보면 그녀석의 어린날은 나의 존재로 인해 좀 더 치열해진 구석이 있었을거다.

공부 잘하고 이것저것 칭찬 많이 받고 성실하고 말잘듣는 언니의 그늘에서

어쩌면 여러번 좌절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누구누구 동생' 이라고 불리는 것.

거기서 벗어나고싶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언니한테 바락바락 대드는 동생에게 

나는 그렇게 제너러스한 그런 언니는 아니었다. 기어오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였던가..?

한번은 나는 바이올린 활채를 들고, 그놈은 놀이터에서 주워온 각목을 들고

엄마가 외출한 집안을 개코원숭이처럼 뛰어다니며 싸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참 그러다가 자기가 들고 있는 무기가 감당이 안되고 무서워서 둘 다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었다.

부모님이 돌아오셨을 땐 둘이 어느때보다도 사이좋은 자매가 되어있었다.

차마 '쟤가 각목으로 때렸어!' '언니는 활로 때렸어!' 라고 동반자폭할 수는 없는데다가,

같이 울면서 서로의 모질지 못한 속을 확인하고, 사실은 널 해치고싶지 않아, 라는 뜻을 확인했기 때문일거다.

또 한번은 동생과 심하게 싸우다 집에서 쫓겨났는데, 동생하고 나는 나가서 엄마가 들여보내줄 때까지 놀이터에서 놀았다. 엄마가 어이없게 시소 타고 놀고 있는 우릴 보고 들여보내주는 대신 손바닥을 맞았는데 내가 맞을 때 동생이 울었다.

어쩌면 이런게 내 동생과 내가 운명적으로 타고난 관계의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동생 외에 그 어떤 사람과 다시 그렇게 원초적으로 싸우고 인간적으로, 동시에 동물적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

 

동생이 음악을 전공해 나와 다른 길을 가게 된 건 우리에게 참 잘 된 일인 것 같다.

우리는 더이상 능력이나 성적을 갖고 서로 비교당할 일이 없어졌다.

청소년기를 지나오는 동안도 엄청 싸워댔지만, 그래도 그건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같은 걸 남길 일 없는 '신경질 부리기' 같은거였다.

 

동생은 자기 길을 아주 잘 걸어갔다.

그 애는 우리 부모님이 어디가서 절대 주눅들지 않을 수 있는 조건을 선물처럼 안겨드린다.

내가 지금쯤 깽판 좀 쳐도 부모님이 견뎌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버퍼가 될거라고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그렇게 동생은 지금도 가족들을 흐뭇하게 하며 바다를 건너간다.

 

얘가 오래 떠나 있는다니까 새삼 마음이 찡한것이 한달도 안남은 기간동안 매일매일 봐야하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음주에 오프 받으면 돼지 보러 집에 열심히 가야지.

이십몇년 살면서 한번도 돼지녀석이 필요하거나 보고싶은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얘가 보고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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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당신은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있는 사람이랑 사귀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가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그 때 가서 헤어지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를 했었죠.
 
    이 말에 제가 꼭 반박을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말실수 하신 걸 내가 걸고 넘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터무니없는 말이라. 당신은 군대에 가거나 감옥에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스스로 들어간 그 ‘다른 시간계’를 정말 군대나 감옥에 비유하고 싶으신가요? 그 어떤 외적인 속박과 당신의 삶을 제한하는 것들에 ‘아니오’라 외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모든걸 당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이 상황을 군대나 감옥에 끌려간 것에 비교하시다니...
    그곳에 갇힌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그들은 스스로 감옥에 들어간 당신을 비웃을지도 몰라요.
 
     나는 내가 무수한 갈림길로 짜여진 이 삶의 순간들을 최대한 의식 위로 끌어올려 한 땀 한 땀 짚어가며 살 수 있기를 바래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매일 무료하고 불만족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몸이 안 따라준다’는 당신의 말을 이해해야만 하게 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한계 그 끝까지를 느끼고 경험하며 살고 싶어요. 그 곳이 바로 내 자유의 영역이고 내가 뛰어 놀 수 있는 나의 무대라고 여기면서.
    그런데 당신은 왜 당신의 무대에, 그리고 필연적으로 나의 무대에까지 그러한 무기력한 관계의 울타리를 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는 거부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의 관계 사이에 군대의 경비초소나 교도소 담벼락을 세우려는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닌 나를 감옥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는 거니까요. 당신은 한평짜리 몸 누일 곳만 있으면 불편을 못 느낄 지 모르지만,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있는 나는, ‘봐요 내 안에 이런 세상이 있어요!’ ‘봐요 저것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봐요! 저건 대체 왜 저런거죠?’ ‘당신 때문에 난 이걸 새로 발견했어요, 들어볼래요?’ 로 가득 차있는 나는, 당신의 말을 들으면서, 마치 잡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막상 잡힌 것은 쇠창살인 듯한 절망감이 들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실제로 갇힌 건 내가 아닌가요?
 
 
    여기까지 들으셨으면, 지금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무심코 한 비유를 가지고 너무 깊게 판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원래 좀 한가지가 머리에 꽂히면 계속 파대는 버릇이 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말에 내가 갖는 신뢰가 그만큼 크다는 뜻도 되고, 당신이 뭔가를 ‘비유’씩이나 할 때는 그렇게 무심코 하지는 않는다는 걸 봐왔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냥 오래 연락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그리 비유한 것’ 이라고 하신다면 제 대답도 간단해요. ‘그 오래 연락 못하는 상황이란 게 전혀 비슷비슷하지 않다는 얘기를 한 거예요. 여태까지.’
 
 
    아, 당신이 한 말의 뒷부분을 까먹고 있었네요.
    ‘다른 사람이 좋아지면 그 때 가서 헤어지면 되잖아요.’
    그럼 나는 그분이 나를 구하러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으라는 건가요, 그것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나한테 연애라는 것은,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귀기로 한 그 날부터 하루씩 날짜를 더하는, 그래서 100일이 되고 1년이 되고 '오래 한 연애'가 되는 그런 status가 아니에요. 그보다 매 순간이, 내가 하고 있는, ‘연애질’인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부로 헤어진다’ 는 선언이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나는 이 순간 연애를 하고 있거나, 하지 않고 있거나, 그래요. 
    그래서 '그 때 가서 헤어지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지난 한달 남짓한 시간이, 연애를 하고 있던 나한테는 매 순간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어요.
 
    ‘잘 모르니까 그냥 가르쳐달라’고 하셔서 한가지만 그렇게 가르쳐드릴게요. 이런 경우, 이건 당신이 나를 떠난 거예요. 그치만 자존심 땜에 내가 당신을 떠난 형식을 취하고 싶어지면 말을 바꿀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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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이건 당신한테 말하는 형식을 빌렸지만 사실은 나에게 하는 말이에요.
‘후기’를 남기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이 이야기들을 쓰기로 했어요.
당신, 여기 와서 이 글을 발견했다고 너무 놀라지 말아요. 어차피 당신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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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E

우울이 점증하던 어제 밤

멍하니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다가, 배터리가 다 되어가는 무선마우스를 배가 위로 가게 뒤집힌 채로 침대 위에 던져놓고, 가방 매고 숙소를 나왔다. 어차피 멀리는 못간다. 콜 오면 바로 뛰어올 수 있는 거리까지만.

 

일부러 길을 에둘러 둘러, 토요일 여름 밤에 바람쐬러 나온 사람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한참을 빠른 속도로 걸어다니는데, 어라, 기분이 나이지질 않는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인라인 타는 사람들, 줄넘기 하는 사람들, 베드민턴 치는 아이들, 돗자리 깔고 맥주 마시는 사람들, 그냥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 시어머니 흉보는 아줌마들, 일부러 아는 욕은 다 섞어가며 대화하고있는 10대 아이들, 노래하는 여자아이들, 디엠비를 보면서 빨리걷기 하는 사람들.....

이 모두가 스쳐가면서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다.

마음만 먹으면, 아니면 굳게 먹은 마음만 풀어주면 눈물이 뚝 떨어질 것 같아서 당황스러웠다. 

나는 걷기 말고 이 사태를 해결해줄 다른 방책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물 사러 들어갈 땐 아무 느낌 없었는데... 편의점 알바와 눈이 마주치는데 왜 떨리냐.

 

마음에 미리 정해놓은 담배가 있었다. 황동색 에쎄.

담배를 안피는 내가 '선호하는 담배' 가 생긴 것은 저번에 했던 실험 때문이다.

나한테는 담배 냄새가 다 거기서 거기고 싫을 뿐인데, 사람들은 다 자기 입맛에 맞는 담배가 따로 있는 것이 나한테 '과연 담배맛에 정말 차이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피우는 것 같은 에쎄로다가 색깔별로 하나씩 사서 동시에 불을 붙여놓고 하나씩 빨아봤다. 하나 피우고 나선 맛 교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로 입가심까지 해가면서. (순서대로 서너번쯤 빨았는데 갑자기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고 식은땀이 나서 실험을 마치고 일어서다가 쓰러질 뻔 했었다...ㅋ) 그 때 결론은 '맛이 다르긴 다르다.' 였고, 내 입에는 황동색 에쎄가 젤 맞았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담배 이름만 블랭크로 놔두고 대사까지 마련해서 카운터 앞에 섰는데 편의점 알바가 에쎄 있는 줄을 딱 가리고 선거다. '뭐가 필요하세요?' 하는데 '어....어.. ' 이러면서 옆으로 몸을 굽혀 그 뒤에 있는 에쎄 이름을 찾아헤맸다. 그 친구도 잘 보이게 비켜준다.

황동색.... 찾았다!

'ESSE blend in 3'

뭘 세개 섞었다는건지 모르지만,, 암튼 저거 맞다.

'에쎄 블렌드 인 뜨리 주세요..... 아..... 그리고 그거... 뭐지? 아... 라이터도 하나요;'

'라이터는 뒤에 있습니다.'

'아... 네...'

근데 웬 라이터가 이렇게 색깔이 여러종류냐. 크기도 다양하고. 나는 라이터들을 만지작거리다가 하나를 집어 카운터에 올려놨다.

'삼천원입니다.'

지갑을 꺼내는데 종업원이 덧붙인다.

'그리고 신분증좀 보여주세요.'

헉!

나는 정말 '헉!' 이라고 말했다.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냐!

물론 내가 어려보여서 신분증을 요구했을거라는 추측에 기뻐한건 단 1초정도에 지나지 않고, 곧 나의 담배 사는 폼이 하도 어리버리하니까 혹시나 해서 보여달라고 했을거라는 해석, 또는 단속 나온걸로 의심했을거라는 생각쪽으로 흘렀다.

어쨌든. 의외의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지갑을 꺼내니 주민등록증은 없고 옛날 학생증이 있다.

내 주민번호 앞자리를 확인하더니 그 친구가 약간 '죄송해' 한다. ㅡㅡ;

 

담배랑 라이터를 가방에 넣고 나와서 갑자기 막막해진다.

길에서 담배피는 사람 뒤를 따라가며 괴로워했던 것을 생각하면 길에서 피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남들 운동하는 공원에서 피우는 것도 민폐고,

오직 담배 하나 피우기 위해 술집을 찾아들어가는 것도 배보다배꼽이커지는 사태가 되고...

그렇게,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계속 걸었다.

그런데 정. 말. 담배 피울 곳이 없더라.

그렇게 걷다가 홈플러스가 나와서, 코팩이랑 커피콩이랑 유선마우스를 사갖고 나와서

11시를 훌쩍 넘은 걸 보고 깜짝 놀라 숙소로 돌아왔다.

 

옆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안깨우려고 불도 안켜고 잘 준비를 하는데,

가방을 열었더니 웬 반짝거리는 네모난 것이 있어서 꺼냈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웬 담배???

 

 

ㅡ,.ㅡ

 

나 진짜 우울증인가보다.

우울증이 노인에선 인지기능 저하로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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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카드

인턴 숙소에 카드회사 직원이 왔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ㅡㅡ;) 경어체를 쓰면서

엠디 프리미엄카드를 홍보했다. 의사선생님들만 만드실 수 있고.. 어쩌고 저쩌고..

 

연회비 무료에 각종 혜택들에 입맛을 다시다가

우리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아서 카드 신청서를 하나씩 썼다.

 

그리고 어저께 그 아저씨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카드가 잘 만들어졌다는 것과 아저씨 이름과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시라, 잘 지내시라는 내용이었다.

 

아저씨한테 수고하셨다고, 고맙다고 답문을 보냈다.

아저씨한테 좋은하루 되시라고 답문이 왔다.

님두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답문을 보냈다.

 

이놈에 카드 한장 만들면서 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괜히만들었나...

이거 만들어서 쟤들의 신용구분의 틀에 들어간 것 같다. 몸 베린 기분이다. 구리다.

카드회사 아저씨의 경어체도, 특권의식을 대놓고 자극하는 카드 이름도 영 찜찜하다.

나도 거기에 넘어간거 아닐까?

 

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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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와 사랑해줘 사이.

궁구/궁상님 블로그에서 퍼옴

 

<< 태초의 언어는 리듬과 악상(악센트)에 의해서 지배됐다. 그것은 물질적 필요의 저작이나 노동하는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감정의 충동과 욕망의 도약에 연관된다. [...] 루소에 따르면, 분절이 풍부한 (유럽) 북반구 언어는 필요와 추론의 언어가 되고; (반면) 열정적 언어는 멜로디와 악상의 굴절에 기대는데, 즉 "(열정적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말하기 대신에 노래를 부른다 (1)". (여기서 우리는) 자,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최초의 말은 "도와주세요"가 아니라, "사랑해줘" 이다 (2). >>

 

분절이 풍부한 언어와 열정적 언어 사이 어딘가에서,

'도와줘 ↔ 사랑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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