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용산학살

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10/20
    용산, 그 처절함의 되새김질.
    칼라TV
  2. 2009/09/27
    용산으로부터 위로받는 우리자신
    칼라TV
  3. 2009/09/22
    용산의 눈물도 모르는 인간에 대한 청문회
    칼라TV
  4. 2009/07/21
    6개월의 시간 이 남긴 것...
    칼라TV
  5. 2009/03/24
    다시는 볼 수 없는 용산 4지구 모습
    칼라TV
  6. 2009/03/24
    용산참사 위령제 열려
    칼라TV

용산, 그 처절함의 되새김질.

SONG8425.JPG

 

10월 18일 명동 카톨릭회관, 용산참사 국민참여법정에서 증거물로 내놓은 동영상 자료를 보던 방청객 가운데 쏟아져 나오는 오열을 참지 못하는 소리가 군데군데 터져 나왔다.

 

사진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용산으로부터 위로받는 우리자신

093.JPG

▲ 26일, 용산참사 범국민추모대회에서 유가족의 모습에 리포팅 중이던 칼라TV 이명선 리포터는 끝내 삼키던 서러움을 터트리고 말았다.이 모습에 용산참사 유가족 한 분은 오히려 이명선 리포터를 위로하고 있다.

용산의 문제는 유가족과 철거민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단지 생산성,이윤,효율로만 평가받는 자본주의 현실의 서글픈 우리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투쟁의 날들이 길어질수록 냉동고 속의 고인들만이 아닌, 잃어만 가는 '사람이 사람다움'을 되찾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 모두들의 가슴 속 한 곳에는 용산4구역이 게토(Ghetto)처럼 자리잡았다.  

취재/사진 = ORIBAL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용산의 눈물도 모르는 인간에 대한 청문회

사진 063.jpg

 

9월 22일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자리에 용산참사 유가족인 권명숙 씨가 참고인으로 참석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개월의 시간 이 남긴 것...

SKY_7541.jpg

지난 11일, 서울역에서 열린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제 후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도로행진 중 여경에 의해 제압당하고 있다.

 

사진 = 신경영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시는 볼 수 없는 용산 4지구 모습



사람들이 거의 떠난 용산 4구역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남일당 건물 앞의 전봇대 모습. 얽혀 있는 전선줄을 보며 이 곳에서 주민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모습이 상상된다


남일당 다음 블럭에 있는 시장. 이제는 거의 모두가 떠나고 3곳 정도만 영업을 하고 있다. 시골의 5일장보다 더욱 흉물스럽게 변했다.


아직도 남아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의 모습. 아주머니는 "마음이 아프시겠어요?"라는 질문에 "에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장사도 안 되다보니 일찍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다.


야채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 뒤로 또 한 하주머니께서 장사를 하고 계셨다. 하지만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장 중간의 모습. 폭풍을 맞은 것처럼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이곳도 분명 서민들이 값을 조금이라도 깎자며 흥정을 하고, 대포 한 잔에 하루의 피로를 씼었던 곳이었을 것이다.


폐허가 된 시장 한곳에 자리잡은 나리네 반찬. 과연 나리네 반찬은 어느 곳에서 맛있는 먹거리를 만들 것인지...


한 켠에서는 건물 철거를 마치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철거가 진행 중인 와중에도 그냥 쉴 수가 없어 영업을 하고 있는 선술집. '재개발 관계없이 계속 영업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건물 및 공사현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 쫒겨난 사람도, 철거를 하는 사람도 또 공사를 하는 사람도 모두 서민이다. 결국 그 서민들은 돈 몇 푼에 가진자들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다.


전시회를 했던 건물 유리창에 붙어 있는 문구. 예정보다 빨리 끝남을 알리고 있다.


영업을 하고 있는 미용실과 주단집. 광주주단 주인은 "이사갈 곳은 정하셨어요?"라는 질문에 "아직 못 정했어요. 그 돈으로 갈 곳은 없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주인 아주머니의 모습이 안쓰러워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극구 사양했다.


광주주단 입구에 놓은 주인 아주머니의 신발. 삶의 냄새가 가득 묻어 있었다


폐허가 된 시장에서 바라본 고층 아파트. 이제 곧 시장자리였던 곳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10시 44분에 멈춰버린 시계. 한 낮인데도 그 옆에는 실내등이 켜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누구도 멈춰버린 시간에 대해서 기억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남일당 건물 뒤편 모습. 그 뒤로 보이는 대기업 빌딩이 마치 낮은 건물들을 집어삼킬 듯 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용산참사 위령제 열려

지난 3월 21일 용산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용산참사 2달, 희생자/열사 원혼 위령제'가 열렸다.

1,2부로 나누어서 진행된 위령제 사이에는 추모제도 함께 열렸다.
경찰은 추모제를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2번에 걸쳐 집회해산 방송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국민대책위)는 집회신고를 했고, 누군가가 발송한지 모르는 관할경찰서장의 직인도 없은 옥외집회 금지통고서는 효력이 없다며 추모제를 강행했다.

다행히 경찰과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과 충돌은 없었지만 자칫 추모제가 시민들이 연행될 수 있는 자리로 변할 뻔 했다.

추모제가 끝난 후에는 다시 위령제 2부가 진행됐으며 경찰은 더 이상의 집회해산 방송을 하지 않았다.



유족들의 오열 속에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접신된 무속인을 둘러싸고 유족들이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유족들의 오열은 위령제 내내 계속됐다



망자들에게 대접할 제사상의 모습



희생으로 쓰일 죽은 돼지를 앞에 두고 무속인이 굿을 진행하고 있다



무속인이 원혼을 달래는 주술을 외우고 있다



위령게 1부가 끝나고 추모제 시작에 앞서 진행된 풍물패의 길놀이 모습



약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다



추모제에 참석한 한 시민이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



한 시민이 남일당 건물 앞에 세워 둔 경찰차 창문에 푯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