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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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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시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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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호시탐탐-김상조 교수] 2010년 우리의 주머니 사정은 나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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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주노총 위원장 이갑용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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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TV 성명서] 경찰의 과잉진압 영상, 국민이 다 봤다

 2009년 6월 10일,

 그 날이 특별했었던 건 6.10항쟁 기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날은 2008년 촛불에 밀려 힘겨워했던 경찰이 시위진압을 위한 신무기를 선보인 날이기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경찰이 그 날 선보인 신무기는 물론 호신용품을 판매하는 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삼단봉이지만, 현장에서 봤던 반짝이는 은빛 쇠몽둥이는 집회 참가자 뿐 아니라, 취재하는 기자들까지도 겁에 질리게 했습니다.

 

 그 쇠몽둥이는 갑작스레 진압을 시도하는 경찰들과 도망가는 시민들 틈에서 취재하던 칼라TV스텝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칼라TV 리포터와 카메라를 향한 경찰의 몽둥이질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고, 생방송 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곧바로 10만뷰를 올리며 인터넷의 뜨거운 화두가 되었고 네티즌수사대에 의해 얼굴이 공개되고 소속이 밝혀졌습니다.

 

 사건이 발생된 한 주 내내 공중파 9시 뉴스를 통해 경찰의 폭행장면이 여과없이 방송됐고, 녹화된 화면이 10만뷰를 넘기는 상황에서 경찰에 의한, 해당 경찰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지난 26일 검찰은 해당 경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유가 "시위진압 중 우발적 행위"라는 겁니다. 

 


 

 작년 5월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경찰은 비슷한 변명을 했었습니다.


 대한문의 노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철거한 것 역시 일부 경찰들이 지휘부의 명령없이 실수로 철거를 강행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칼라TV가 촬영한 영상 속에는 무전기를 든 지휘부의 철거명령이 수시로 하달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두 사건만 보면, 경찰의 지휘체계는 허술하기 짝이 없어 일선 경찰들은 지휘부의 명령 따위를 발톱의 떼 만큼으로도 여기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직무능력 역시 현저한 수준미달이기에 우발적으로 폭행을 휘두르는 일이 잦으니 앞으로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처하는 경찰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현장에서 시민들의 박수와 격려를 받으며 방송했던 칼라TV에게 경찰은 유난히 적개심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흑백TV'라는 조롱에 '니들이 무슨 언론이냐'는 멸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방패로 때로는 삼단봉으로 맞았지만 칼라TV는 또 다른 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칼라TV는 옳다고 믿는 것이 오는...올바른 세상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뛰겠습니다.

 

 

 

* <한국일보>인터넷방송 기자 폭행 혐의에 "시위 진압 중 우발적 행위" 결론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001/h2010012622381622000.htm
 
* <세계일보>검찰, 과잉진압 논란 경찰 ‘무혐의’ / 고소인 “재수사” 항고장
 
* <경향신문> 6·10대회 과잉진압 경찰 ‘무혐의’ 논란 / 검찰 "폭행 입증할 증거부족", 민변 "녹화테이프 증거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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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어이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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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나의 생각은 누구인가 _6.2지방선거와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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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의원 의정비 부당인상 / 환수 활동에 대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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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대연합으로는 한나라당 못 꺾어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칼럼에 이어 강연회서 '한나라당 독주 흔들어' 주장.

한나라당의 영토를 깨지 못하는 이러한 '민주대연합'이 과연 승리의 '조건'일까?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고 결집도 잘하듯, 극단주의자들과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은 열성적이며 결집도 잘한다. 오늘 스스로 민주를 표방하는 세력이라면 적어도 ‘연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민주의 자격이 없다고 말해야 할 만큼 엄중한 때라는 점을 지방선거가 있는 2010년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 '민주-반민주 대립구도와 오늘' 12월 23일자 <한겨레>

 

 

별 차이가 없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맞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한나라당 독주 구도에서는 작은 차이도 중요하다고 답해야 한다.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다시 찾아왔다고 말한다면, 한나라당 독주 구도에서 비판적 지지가 올바른 지지의 형태라고 말해야 한다.

- '흔들어라, 한나라당 독주 구도를' 1월 6일자 <한겨레>

 

연말연시 칼럼 두 편으로 진보진영 내부의 논쟁을 촉발한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그는 1월 24일 열린 강연회 <나의 생각의 주인은 누구인가? - 6.2지방선거와 지역자치>에서도 '민주대연합' 논란을 피해가지 않았다. 강서양천시민모임이 주최하고 진보신당 양천당원협의회 준비위원회가 후원한 이날 강연회에서 그는 초반부터 자신의 지론을 역설했다. "중앙 정치에 국한되어 변화가 있었다. 이로 인해 착시 현상이 생겼고, 호된 학습효과를 받고 있다. 절망과 무기력이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다"며 이번 지방선거를 갈림길로 지목했다.

 

   홍세화 기획위원, "수구, 극우세력을 패배시킬 '승리의 조건' 찾아야"

 

홍 위원은 "지난번 쓴 칼럼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았다"면서 "저로서는 시대에 대한 (사회과학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반응이었다. 그 기조를 앞으로 지방선거까지 견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날도 민주대연합론의 취지를 이어가는 칼럼을 송고했다는 그는 '연합의 조건'은 '승리의 조건', 즉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수구극우 세력에게 패배를 안겨줄 조건을 앞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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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월 24일 양천에서 열린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강연

 

그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가 우리의 전범이라고 주장했다. "지방선거에서 제2, 제3의 (김상곤) 교육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가 관심사다." 이어서 그는 한나라당의 독주 구도를 흔들지 않고는 절대로 불가능함을 거듭 강조하며, 진보정치세력의 힘을 위해서도 극우, 수구 세력의 힘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극우, 수구 세력'은 다름아닌 보수를 참칭하는 가짜 보수주의자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한번도 제어되지 못했고, 뻔뻔하고 막무가내이고 오만방자한 데다가 너무 힘이 강하다는 것이 홍 위원의 인식. 하지만 그가 진단하기에 진보 진영은 현실에 너무 익숙해진 동시에 한편으로 절망만 하고 있다. 이는 열성적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극단주의자들과 대조된다. "그들은 똘똘 뭉친다. 사익이 돌아오면 연합이고 뭐고 다한다. 그런데 우리는 공익을 앞세우기 때문인지 이념을 앞세운다."

 

청중의 첫 질문은 자연스레 강연 전반부를 채운 이러한 내용을 향해 던져졌다. "선생님 주장은 어떻게 보면 민주당 중심의 민주연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역이 민주당으로 채워지면 진보적 가치가 구현되는가?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선생님 말씀에 맥이 빠진다."

 

홍 위원은 그러나 '워낙 뻔뻔한' 한나라당이 약해진 반대급부를 설령 '얄미운' 민주당이 독차지하더라도 민주대연합으로 가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약화되는 만큼 진보 정당이 지지율이 높았던 전례도 상기시켰다.

 

"저도 칼럼 쓰면서 씁쓸하게 썼다. 하지만 뻔뻔한 세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틈새가 없다. (약화시킨다면) 희망의 단초를 제공하고 그것을 차차 진보 쪽으로 견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 열리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수도권에서 세 군데를 한나라당이 독점해버리면 어디서 뭘 기대할 것이냐. 진보 세력이 강화되기 위해서라도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이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시너지도 없는 '끼리끼리 연합', 다수 서민과 동떨어진 일상을 고백할 뿐 

    

하지만 홍 위원의 '작전'은 "단기적이지 않은 중장기적 전망을 하고 싶다"는 스스로의 포부에 부합하는가? '연합의 조건'이 아니라 그가 중시하는 '승리의 조건'에 비추어 따져보자.

 

일단 그가 재현하고 싶어하는 경기도 교육감 선거는 여느 선거와 달랐다. 첫째, 김상곤 교육감은 진보개혁적 색채가 뚜렷한 후보자였다. 둘째, 교육감 선거에서는 정당공천은 물론이고 정당소속 후보자의 출마자가 배제된다. 그러다 보니 진보진영은 적극 선거에 참여했고, 민주당은 이를 거들거나 적어도 방해하지는 않았다. 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교육감 선거를 빼면 기초의원선거에서까지 정당공천제가 실시된다.

 

광역지자체 선거에서 어쨌든 당선가능한 후보를 중심으로 한 반한나라 연합이 이뤄져도 전망은 어둡다. 얼마 전 <한겨레>가 발표한 광역시장선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는 호남을 빼면 전패하는 것으로 나왔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의 지지율을 죄다 얹어도 우열은 뒤집히지 않는다.

 

선거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에 관해서도 냉철히 계산할 필요가 있다. 과거 여러 차례 후보단일화를 반기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왔다. 허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다자구도를 정리하려는 유권자의 의지 뿐이다. 예컨대 지난해 울산북구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후보단일화를 지지하는 여론은 압도적이었지만, 단일 후보의 실제 득표율은 거기에 크게 못 미쳤다. 한나라당을 찍거나 기권할 사람들조차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가 단일화되면 좋겠다”고 응답했다는 얘기다. 이외에도 단일 후보의 최종 득표율이 단일화하는 후보들의 지지율 합을 밑돈 사례는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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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연회에 참석한 시민들. 이날도 '민주대연합'론이 관심을 모았다.

 

 

다른 한편, 절반 가량의 유권자는 야권대연합에 심드렁하다. 홍세화는 이날 강연에서 “일상에서는 극복해야 될 대상을 만나지 않는다.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이다. 여기서 서로 적대시하고 편가르기가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가까운 사람들끼리 적대시하지 말자’는 손쉬운 결론이 ‘일상에서부터 극복대상과 부딪혀나가고, 가까워야 할 사람들을 일상에서 만나자’는 대안을 대신해 버렸다.

 

부자정당 한나라당은 서민 다수에게도 지지받고 있다. 반면 그 반대편 정당들의 기반은 하나 같이 30대, 수도권 시민, 고학력, 전문직 및 사무직, 중소득층에 몰려 있고, 이 밑천을 두고 다분히 엘리트주의적으로 갈등과 연합론을 반복한다. 이런 배경을 흔들지 않으면 미국식 양당제가 고착되어 기껏해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5년 또는 10년 단위로 정권을 주고 받기 마련이다.

 

진보정당이 대변한다는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는 민주정부시대 10년동안 사회양극화를 뼈저리게 겪었다. 상대적으로 약자를 더 대변하리라고 기대했던 이들은 특히 더 큰 배신감을 맛봤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의 민주당이 예전 무엇을 했는지, 어떠한 집권층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민주대연합으로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넘어서는 것은 물론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이길 수도 없다.

 

     '한나라당 약화 => 진보 강화'는 ‘착시 현상’

 

2002년과 2004년, 한나라당이 약화되어 진보 정당의 지지율이 올랐다는 홍 위원의 주장도 ‘착시 현상’이다. 2002년 권영길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오른쪽 구석으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다. 2004년 노회찬 의원이 열린우리당 당원이었다면 대통령탄핵의 후폭풍은 민생담론과 어우러지지 못하고 협소해졌을 것이다. 또 민노당은 민주당 계열이 참패한 2002년,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번은 약진했고 다음번은 10퍼센트 이상의 지지율을 사수했다. 선거명부에 진보정당이 없으면 홧김에 한나라당을 찍거나 기권하는 유권자만 늘어난다.

 

 

2002년과 2004년 자유주의 정당과 진보 정당은 '동반 성장'했다. 당시 전자 쪽은 ‘노풍’과 ‘전국정당화’로 요약되는 쇄신을 결단했고, 후자는 소수파임에도 거대한 시민, 민중을 선도적으로 대변했다. 홍 위원의 정치공학은 이 변화를 그대로 따라하기에도 너무 서투르다. 연합에 있어 잊어서 안 될 전제가 있다. 진보정당은 치고 나가는 맛이 있어야 하고, 민주당은 스스로 뜯어고치는 멋이 있어야 한다.

 

 

1996년 총선에 출마한 한 후보가 있었다. 소속 정당은 야권에서도 비주류였으니 ‘2중대’라는 비난과 사표 심리에 포위되었고 결국 그는 3위에 그쳤다. 그러나 그는 그 선거의 당선자보다도 앞서 청와대에 들어갔다. 비록 나중에 재벌 출신 후보와 단일화하게 되지만, 고군분투하며 쌓은 독자적 에너지가 없었다면 그런 기회조차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14년전의 그보다도 딱히 인기도가 높을 게 없는 오늘의 진보 진영이 곱씹어야 할 일이다.

 

 

선거구명

선거인수

투표자수

유효투표수

무효투표수

기권수

후보자별 득표수

종로구

 

 

신한국당

국민회의

민주당

자민련

대한당

한독당

무소속

무소속

무소속

 

 

 

이명박

이종찬

노무현

김을동

김이준

박종구

김연수

방세현

이정남

150,189
(3,400)

99,365
(3,241)

40,230

32,918

17,330

6,602

63

118

129

462

253

98,105

1,260

50,824

▲ 1996년 종로 국회의원 선거 개표 결과. '반MB'를 거부한 한 후보가 눈에 띈다.

 

 

 

 

 

 

 

 

 

 

 

 

선거관련 발언 내용 영상

 

 

/ 숨인씨 blog.daum.net/cito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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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의빨간장화_이갑용은 노동자다. 그렇다면 우리의 계급은?

 "이갑용이 누군데? 아,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다구? 그리고 이번에 책을 냈고? "

 

 내일이 인터뷰라는데, 이. 갑. 용 이름 석자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일단 책부터 샀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란 책 제목 위 '골리앗 전사 이갑용의 노동운동 이야기'라는 부제를 보면서 '내가 아는 골리앗은 용산에서 본 철거민들의 투쟁 망루인데, 노동 운동가라며 골리앗은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난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또 이.갑.용 이란 사람에 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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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성공회대 느티나무 앞에서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 이갑용'을 처음 만났다. 동그란 얼굴에 단단한 체격, 50을 넘긴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역사학자 한홍구와는 술 친구라고 하더니, 그의 노동운동 이야기는 역사학자의 연구실에서 많은 역사책에 둘러쌓인 채 집필되었다. 그렇게 2년 간 다듬어진 책<길은 복잡하지 않다>를 한울노동문제 연구소장 하종강은 노동운동 사료로의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20대 마도로스의 꿈을 접고 사번 8407669를 받아 현대중공업 7급 노동자가 된 이갑용은 그의 말대로 정말 짐승처럼 일했다. 특전사 출신의 경비들에게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이고 감시받으면서.

 

 -말로는 날마다 '우리는 한가족'이라고 하면서 회사는 '가족'인 노동자들의 머리를 강제로 깎고, 정해진 작업복에 안전화로 군인을 만들어서 출퇴근 시켰다. 이건 '가족'이 아니라 '군대'였다. p33

 

 후에 민주노조가 생긴 후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터트린 불만은 임금인상이 아닌, 두발자유였다고 한다. 그렇게 자본은 일터를 군대화시켜 노동자들을 복종과 충성에 따른 산업전사, 산업역군으로 만들고, 관리직에게 잘 보이는 사람들만 성과급을 올려 노동자 자신이 다른 노동자를 배신하는 노노경쟁으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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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민주화 바람은 울산에도 불어닥쳤다. 회사는 전 직원 야간 근무 명령을 내려가며 노동자들을 공장 안에 가두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해 7월 5일. 현대 엔진을 중심으로 현대 그룹 내 노동조합이 처음 결성되자, 현대 중공업은 한국노총의 지시에 따라 7월 21일 어용노조를 만든다. 뜻밖의 어용노조 출현에 당황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11인 대책위'를 중심으로 어용노조를 퇴진시키고, 민주노조 초대 위원장을 선출해 거리로 거리로 나갔다. 그러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노동자들의 차량 방화 사건을 시작으로 9월 초 울산 시청과 회사 총무부 사무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한다. 이를 빌미로 경찰은 대의원과 간부를 구속한다. 그렇게 1987년 7, 8, 9월의 노동자 대투쟁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역사는 6월 항쟁과는 달리, 3개월에 걸친 노동자 대투쟁을 그저 구전으로만 남긴다.

 

 이갑용과의 인터뷰 중 1987년 당시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들었다.

 

 "이명박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어요. 87년 우리가 처음으로 노조 만들어서 회사하고 싸웠어. 정주영까지 다 합의된 거예요. 현대그룹사 임원들 50명이 단상에 섰고, 자축하는 날인데, 합의됐다고 같이 만세 부르려고 했는데 우리 식대로 진행했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는데 50명 중에 유일하게 손을 흔드는(팔뚝질) 한 놈이 있는 거야, 우리하고 같이. 저게 누구지 했는데 그게 이명박인 거야. 현대 있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그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서 이명박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한다니까. 그런 형태로 이 사람이 살아왔던 거죠. 아무도 안 하는데 혼자서 팔뚝질할 정도면 소신 있는 것 아니냐, 우리 편 아니냐고 착각했었다니까. 현대건설 사장했던 시절인데 현대중공업 와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고. 그때가 벌써 20년 전이니까 40대에 뛰어난 정치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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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은 복잡하지 않다>는 곳곳에 일명 매뉴얼, 노조가 사측과 마주 앉았을 때의 지침을 따로 적어 놓았다. 1989년 현대 중공업이 128일 간의 파업에 들어간 부분에 "협상의 기술"이 적혀있는데, 12개의 지침 끝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한미 FTA 협상의 수석 대표였던 김종훈은 TV에 나와서 "나는 책임자인 대통령에게 협상을 타결하라는 명령만 받았다. 협상을 결렬시켜도 된다는 명령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타결 명령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걸 양보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권을 위임받은 게 아니라, 무조건 타결하고 오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인데, 미국 측에서 이 조항을 양보 안하면 결렬을 선언하니 이쩔 수 없이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p68

 

 협상의 기술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대한민국 최고의 협상가 김종훈 수석대표는 그렇게 광우병 쇠고기를 들여왔고, 여중생들은 2008년 5월 "미친 교육. 집워 치워!"와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치며 청계천에서 촛불을 들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반정부 시위대가 처음으로 청와대 앞까지 진격한 5월 31일. 투쟁의 달인 이갑용도 역사학자 한홍구와 경찰에 연행돼 닭장 투어를 했다. 

 

 1995년 민주노총이 탄생하고, 1996년 1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이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 시키면서 전 국민의 65%가 노동자 총 파업을 지지. 해방 이후 가장 큰 총 파업이 벌어졌다. 그러나 해를 넘겨 파업 20일이 넘어가면서 현대 자동차 노조가 현장 노동자들의 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표했고, 민주노총은 전면파업이 아닌 수요파업으로 투쟁강도를 조정한다. 이는 연맹과 지도부가 지도력을 갖추지 못하고 대기업 노조에 흔들리게 되는 선례가 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이갑용은 진단했다. 철저하게 계급 싸움이 되어야 할 노동운동이 정치 싸움처럼 명문만을 앞세운 결과였다.

 

 "노동조합을 만든 목적과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모여서 뭉치라는 것을 경험과 내용 토대로 법으로 만들어놓은 건데, 이게 자꾸 깨지고 있는 거예요. 대중 조직의 역할과 임무가 몇 사람 보호하려고 하면 관변단체 만들면 되지. 민주노총은 그렇게 하는 조직이 아닌데. 그 싸움의 근흉을 언제 없앴냐 하면 지난 10년 정권 사이에서 힘을 다 없애버린 거예요. 시민단체까지 다 정부 편으로 만들어서 민주노총이 싸우려고 하면 왜 싸우냐고 했던 그게 다시 다 화살이 돌아오고 있는 거라고.(중략) 싸우려는 투쟁 의지가 다 꺾여버린 거예요. 한나라당이니까 다시 싸우러 나가자. 그런데 한나라당 바꾸면 뭐할 건데, 바꾸고 나면 너희들이 해 줄 게 뭐가 있는데, 이게 없는 거예요. 이게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인데 민주당은 알 리가 없고.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들이 이걸 찾아내서 끌고 가야 되는데 못하고 있어요. 중심에 노동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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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의 달인이자 협상의 달인인 이갑용은 현대 중공업 노동자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거쳐 울산 동구 구청장을 지냈다. 자신의 계급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알고 있는 이갑용은 이제는 적당히 곰삭은 홍어가 됐다. 그런 그가 얘기하는 협상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대가리 박고 아무 생각 없이 감옥 순서 정해서 무조건 1년에서 3년 사이에 50명 만들어서 가자는 거야,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종로집회 한번 받고 가고. 실업자 1000인데 감옥 줄줄이 갔다오는 거 하자는 거야. 그 중에 나도 시켜주고. 그렇게 가는 거 아니면 극복이 안 되는데. 민주노총 건드리지 말자, 감옥가면 처리도 안 되고. 타협도 하자. 저쪽에서 타협이 들어와야  되는데 (오히려) 우리가 매번 타협하러 가는 거야. 힘이 없는 상태에서는 타협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조항을 만들어서 일부러 넣었던 것도 힘이야. 협상은 힘이야."

 

 그의 말에 코웃음이 나는가?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스스로 생각해 보라. 우리의 계급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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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도 할 수 없는 전국공무원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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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의 헌혈운동 홍보물 일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통일위원회와 대한적십자사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아름다운 선물, 헌혈' 캠페인을 원주시가 '불법'이라며 행사를 취소해 공무원노조가 반발하고 나섰다.

 

공무원노조에 따르면 지난 1월 8일부터 계절적 요인과 헌혈 기피현상으로 큰 곤란에 처한 혈액수급을 위해 헌혈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21일에는 원주시에서 진행할 예정이었다.

 

행사의 취지는 소아암 환자들에게 헌혈증서를 기증하고 전국에 배포되는 포스터를 통해 실종어린이를 찾기 위한 의미가 있었다고 노조는 밝혔다.

 

하지만 원주시는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으며 부시장과 총무과장은 "불법 단체가 하는 헌혈행사는 진행할 수 없다"고 하며 행사를 위한 전단지까지 가로챘다고 한다.

 

노조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의 헌혈버스까지 원주시가 전화해 돌려보낸 것은 물론 부시장과 면담을 하게 해 달라고 항의하는 노조원들과 민주노총 관계자에게 총무과장은 "나는 상식이 없는 사람이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노조는 원주시장의 공무원노조 및 원주시 공직자와 시민 앞에 사과하고, 아울러 순수한 목적의 이웃사랑까지도 가로막으며 공무원과 시민을 이간질시키려는 이런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헌혈행사는 2007년부터 시작해 공무원이 시민들에게 참사랄을 베푸는 행사로 원주시에 널리 알려져 있는 것으로 전국공무원노조가 아직 노동부에 정식으로 노조 등록이 되지 않은 것을 빌미로 행사를 막은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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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355일 만의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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