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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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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량해고 사태에 대규모 총파업으로 맞선 노동자 아빠를 응원키 위해 아기가 아빠의 품에 꼭 안겼다. 

사진 = ORI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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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결의로 가득찬 쌍용자동차 평택현장

6월6일  화창한 날씨의 주말 늦은 오후, 서울광장에는 모처럼 경찰의 차벽 봉쇄가 풀린 광장 잔디 위에는 시민들이 한가로운 주말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기자 또한 보수단체의 서울광장 집회예고를 듣고 달려 갔지만 시국상황에 눈치보기인지 서울시청은 보수단체의 현충일 집회를 불허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모처럼 접한 한가로움에 취재거리를 찾던 기자의 휴대폰에는  쌍용차 평택현장의 소식이 전해져 한걸음 달려갔다.

오후 7시경, 현장에 도착한 쌍용차 평택 공장의 정문은 5m 가량의 콘테이너 벽이 서있었다. 곧 닥쳐올 경찰의 공권력 투입을 대비해 쌍용차 노조원들의 대응의 긴장감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막힌 정문 옆으로 펜스를 따라 이동해 보니 조그만한 울타리 문이 있었고, 거기에는 투쟁결의를 담은 붉은 머리띠의 노조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기자증을 제시하고서야 들어설 수 있었던 쌍용차 현장 광장에는 족히 3000여명이 넘어 보이는 노조원과 연대단체들이 연좌투쟁을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그을린 이들의 얼굴엔 강한 긴장감과 결의로 정적감이 감돌았고 기자의 알량한 인터뷰 따위로 말 한마디 건네기 조차 힘들었다.

법정관리 중인 쌍용자동차의 노사(勞使)는 회생방안을 찾지 못하고 '노조의 전면파업, 회사 측의 직장폐쇄'라는 최악의 대치 국면으로 치달았고, 노조는 이에 생산직 500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려는 사측 계획에 정면으로 반발해 지난달 21일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 와중에 5월 27일 쌍용자동차 조립4팀 엄인섭씨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장기간 스트레스를 받아오다  집 주차장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대량 뇌출혈로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4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독선적 정책이 불러온 경제위기와 상하이 먹튀 자본을 고스란히 방관한 쌍용차의 무능 경영진이  불러온 대량해고는 또 다시 노동자의 피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쌍용차는 이에 맞서서 저항하는 노동자에게 경찰의 공권력 투입을 예고하면서 노동자에 대한 천대적 마인드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쌍용차의 평택공장 광장에는 이번엔 해고통지서를 받은 조합원 뿐 아니라 쌍용차 해직자 가족들, 공동투쟁본부소속 전국 활동가들과 학생들,진보신당과 민노당, 각 사회연대모임 등 1000 여명도 같이 공동투쟁전선을 형성하였다.

항상 방만하게 저질러온 정책 아래 불러온 경제위기를 늘 노동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무능한 정부와 부도덕한 자본가,이에 맞서 저항하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이들과 함께하는 이 들, 그 뜨거운 몸부림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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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 평택공장의 정문, 5m 높이의 콘테이너로 쌓은 벽은 앞으로 다가올 경찰의 공권력에 대한 긴장감의 강도를 반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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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공장 70미터 굴뚝 가장 높은 곳에는 노조원 김을래,김봉민,서맹섭씨가 지난 5월 25일부터 25일째 고공농성늘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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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용차 조합원 뿐 아니라 진보신당,민노당,학생,사회단체가 함께 연대를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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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은 지난 울산 북구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도 연대를 밝히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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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 함께한 백기완 선생도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주저앉을 정도로 혼신을 다해 쌍용차 노조원들의 총파업 결의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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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원들의 가족 또한 이 들과 함께 하며 가족을 위해 싸우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노조원들을 응원키 위해 함께하였다.

한 아기는 투쟁중인 아빠의 검은 피부를 연신 부비며 떨어질 줄 몰라 주위의 시선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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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쟁결의에 가득 찬 노조원들의 무릎 밑엔 노란 봉투가 하나씩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봉투에는 각 자의 이름이 적힌 해고 통지서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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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원들의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조함원들에 대한 사랑과 감사, 위로의 메세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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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원들은 각자의 해고통지서를 관에 넣어 화형식을 치뤘다. 그리고 불길은 '함께 살자"라는 쌍용차 노조원들의 의지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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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 내내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만이 아닌 노조원과 가족들, 연대 단체들과 함께 하는 대동놀이로 뜨거운 투쟁결의를 나누며 마무리했다.

 취재/사진 = ORI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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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노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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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장을 끝내고 수원 연화장으로 떠나가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운구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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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시청광장에는 경찰에게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안중에 없었다

5월 29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됐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국민들 마음 속에 자리잡은 '노무현'이란 울림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인간 '노무현'이던, 정치인 '노무현'이던 상관없이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나라의 위정자들에게 국민들은 큰 분노와 함께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난달 29일 저녁부터 30일 오전 5시 30분경까지 시민들은 다시 찾은 서울광장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아울러 현 정부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고, 소통이 부재된 이 나라를 국민들이 힘을 모아 국민의 목소리를 정부에 일깨워주고자 자유발언과 함께 논의가 이뤄졌다.

마치 작년 여름을 관통했던 '촛불'이 다시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듯 경찰은 동틀 무렵이 되자 평화로운 거리와 시청광장 그리고 대한문에 마련된 분향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경찰들은 30일 새벽 5시쯤 헬멧을 쓰고, 방패를 들어 시민들을 거리에서 몰아낼 준비를 했다. 그리고 5시 30분이 되자 방패 앞에 있던 20여명의 시민들을 순식간에 길가로 몰아내고 그 넓은 대로를 가득 메운 채 시청광장을 향해 진격했다.

시청광장 입구에 다다르자 시청광장에 있던 시민들은 화들짝 놀라며 밀물이 빠지 듯 광장 밖으로 빠져나갔고, 무대 위에서 자고 있던 일부 시민들은 어쩔줄 몰라 허둥지둥거렸으며, 기자들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경찰이 시청광장을 진압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안 되는 듯 했고, 일부 경찰은 시청광장으로 들어오지 않고 대한문 앞 분향소로 이동해 분향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시민들이 빠져나간 그 넓은 광장은 순식간에 경찰버스로 둘어싸여졌으며 남아 있던 몇 명의 시민은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광장에서 나가라고 하느냐?"며 따져 물었지만 경찰들은 이내 항의하던 시민을 연행했고, 그 연행을 막기 위해 나선 시민을 폭행에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현장을 취재하던 민중의소리 기자를 밀쳐 쓰러트려 놓고서는 집단 폭행을 가하기도 했고, 무대에서 부상자를 취재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밀쳐내고, 끝까지 취재를 하던 YTN 기자를 "내려가라"고 소리치고 윽박질렀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기자들이 항의했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실제로 취재하던 나를 팔꿈치로 치고 가길래 "왜 기자를 때리느냐?"고 바로 항의하자 "내가 언제 그랬냐?"며 정색을 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경찰의 폭생과정에서 안경을 잃어버려 기자들과 시민들에게 안경을 찾아달라고 호소하기도 했고, 경찰의 폭력에 정신을 잃었던 60대로 보이는 시민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이 돌아왔다.

시민들과 끝까지 남아있었던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현장 책임자가 누구냐?"며 현장에 있던 경찰간부들에게 따져 물었지만 그들은 "나는 모른다"로 일관하며 자리를 피하기 급급했다.

결국 나중에 찾아낸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이 "당신이 현장 책임자냐?"는 질문에 끝내 답을 하지 않았고, 이 의원은 "당신이 지시한 거냐? 아니면 서울시경에서 지시한 거냐?"며 따져 물었지만 그 질문에도 역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이 "상황 보고하라"고 지시하자 "카메라가 많아서... 카메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답변했다. 언론에 꿀리는 것이 있지 않았고, 만약 경찰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소신이라도 있었으면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직원들이 몸으로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을 막아주는 사이 줄행랑을 쳐 경찰들 속으로 사라졌다.

이 의원은 "거기 서"라며 명령했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바빴다. 게다가 한 경찰(나를 팔꿈치로 때린)은 "국회의원이면 다야"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5월 30일 새벽 고인을 추모하는 분향소는 쑥대밭이 됐고, 그 건너편에 있는 서울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만든 시청광장에는 시민도, 기자도, 국회의원도 없었다.

오로지 경찰들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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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광장으로 가는 인도 벽에 가지런히 놓인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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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민이 서울광장 한 쪽에는 용산 희생자를 위한 분향소에 예를 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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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에서 마련한 공간에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두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당은 달라도 예를 표하는 마음은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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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만에 다시 든 '촛불'. 시민들은 평화롭게 촛불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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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시민이 도로 한복판에 놓아둔 촛불 너머로 전경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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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5시경 전경들은 헬맷을 쓰고, 장비를 갖추며 곧 있을 진압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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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들 앞에 놓은 노란 풍선들.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마음이었지만 경찰들은 무참히 풍선을 터트리고는 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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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도에 있던 시민 20여명과 기자들을 방패로 밀어내는 전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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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무전을 주고 받으며 서울광장의 시민들을 분산시키기 위해 경력을 이동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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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들이 서울광장 입구에 진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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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은 순식간에 서울광장 주변을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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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을 몰아내고 서울광장을 점거한 경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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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에는 소수의 시민들과 기자들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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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시청광장에서 나가라는 말에 항의하던 한 시민을 연행하고 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항의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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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또 다른 시민 한 명을 연행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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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의 시민들이 합세하여 강제연행을 막고자 경찰에게 달려들고 있다. 경찰 오른쪽에 보이는 중년 신사는 결국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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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시민을 연행하려 하자 주위에 있던 여성들이 달려들어 경찰을 제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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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한 시민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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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진압 현장을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를 손을 들어 막으려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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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의 강제해산을 막으려다 부상을 당한 60대로 보이는 시민. 이 시민은 의식을 잃었다가 구급차가 도착할 때 쯤 의식을 찾아 병원에 이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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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당한 시민을 무대 위에서 촬영하던 OBS 카메라 기자를 경찰들이 밀쳐 무대 아래로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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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당한 시민을 취재하던 YTN 촬영기자를 경찰이 "내려가라"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YTN 촬영기자는 "찍고 내려가겠다"며 실랑이를 벌였고, 결국 촬영을 한 후에 무대 단상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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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과 취재기자들을 채증하는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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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보좌진이 경찰에게 "현장책임자가 누구냐?"며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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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간부는 이정희 의원 보좌진의 물음에 "난 아니다", "잘 모르겠다"를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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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의원이 "현장 진압에 대해 보고하라"고 남대문경찰서장에게 명령했지만 서장은 "카메라를 치우면 얘기하겠다"고 대답하고는 계속되는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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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남대문경찰서장은 이 의원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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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원과 보좌진 그리고 기자들이 자리를 피하는 남대문경찰서장을 에워싸고 질문을 하는 중간에도 경찰은 이 의원과 주변 사람들을 채증했다. 이 의원은 "카메라 치우세요"라며 명령했지만 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채증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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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경찰서장은 부하 경찰들의 엄호를 받으며 자리를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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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원과 취재진들로부터 도망친 남대문경찰서장은 경찰들 사이로 몸을 숨겼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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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경찰서장이 도망치자 어이없어 하며 화가 난 이정희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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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여경들이 나타났다. 당시 서울광장에 있던 여성은 이 의원 혼자였다. 여차하면 여성인 이정희 의원도 광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여경들이 동원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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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의원이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간단하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의원은 "(추모제가) 어제까지는 합법이고 오늘부터는 불법이냐?"며 강제진압을 한 경찰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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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한 이른 아침에도 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조문을 했다. 분향소 주변이 매우 어지럽혀 있는 것으로 철거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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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막은 철거됐지만 남아 있는 집기로 분향소는 다시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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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에도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천막 사진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사진/기사 = 락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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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에 도착한 오체투지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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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30분 시청광장에서 출발한 오체투지 순례단이 청계광장과 종로를 거쳐 오후 4시30분경 조계사에 도착하였다.

사진 = ORI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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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생명,평화의 길을 따라 서울에 입성한 오체투지 순례단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선 오체투지 순례단은 지난해 9월4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계룡산을 지나 묘향산으로 가는 참회와 성찰의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눈물과 땀방울로 길을 이어 103일째인 5월 16일 서울에 도착했다.

고행의 선두에 선 문규현신부, 수경스님, 전종훈신부 3인은 독선과 오만과 독단이 앞서는 소통 부재의 시대, 기다렸다는 듯이 군부독재의 시절로 역주행하는 이 땅의 천인공노할 현실을 묵도하면서 고행의 길을 걸어왔다.

그 고행은 안으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잘못인 동시에, 밖으로는 백성의 뜻을 제대로 아우르지 못하는 소통불능 현정권의 죄가를 순례단은 처절한 참회와 성찰의 자세로,  위기의 한반도를 생명과 평화의 땅으로 일구고자 간절한 기도의 자세로 오체투지라는 극한의 고행을 오랜시간 해왔다.

그 고행의 날 103일 째, 현 시대의 '소돔과 고모라' 격인 서울까지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터온 이 들을 위해 1000여명의 시민들이 순례단을 맞이하러 갔다.

쏟아지는 봄비와 바람, 추위 속에서 이 들의 고행의 뒤를 함께 밟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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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오전 9시, 오체투지 103일째인 순례단은 과천역을 기점으로 고행의 길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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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신부, 수경스님, 전종훈신부는 이 날도 합장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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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의 많은 사람들이 온몸이 흠뻑 젖는 추위 속에서도 경건한 자세를 지키며 순례단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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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의 기름 찌든내, 타이어 분진에 이어 도로에 차오른 봄비가 순례자들의 얼굴까지 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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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언론악법 규탄과 YTN 지키기에 나선 시민들도 고행에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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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TV 이명선 리포터도 개인자격으로 오체투지 순례단의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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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인 수브라씨도 오체투지 시작시 부터 현재까지 함께 고행의 길을 순례단과 함께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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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아빠의 손을 잡고 순례단의 뒤를 놓치지 않던 어린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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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중 잠시 휴식을 갖던 이명선 리포터의 빨간장화에는 한가득 빗물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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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서 서울로 오는 남태령 고개길, 오르막 길에서 흘러 내리는 빗물조차 끊임없는 고행을 막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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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진입 경계선을 통과하던 순간, 순례단 참가자 일부는 서로를 안고 고행속 환희를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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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운하'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현 정부의 환경파괴를 간절한 기도로 막고자 하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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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서 따라 붙던 경찰도 서울로 진입하자 확연히 강경해진 기존의 경찰 이미지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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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단의 후미를 소위 '꼬리자르기'로 막아선 경찰은 시민들을 서서히 압박해왔지만, 참가자들은 침묵의 묵상으로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순례단은 오후 5시경 경찰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남태령 역에서 이 날의 일정을 마치고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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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인 5월 17일 오전 9시, 사당역에서 순례자들의 오체투지는 변함없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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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도 말없이 순례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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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우려와는 달리 경찰의 교통통제 속에 이수교차로 방향으로 순례단의 일정은 무리없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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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역 부근 가구거리에서는 매장의 직원들이 직접 생수를 들고 나와 순례단의 목을 축여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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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명까지 불어난 순례단은 동작대교위의 강풍에도 오체투지로 한강을 건넜다.  순례단은 오후 4시 반 경 동작대교 북단에서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이 날 일정을 모두 마쳤다. 

 

5월 18일에서 21일까지 서울시내에서 이루어지는 순례단의 일정은 다음과 같다.

 ◎ 5월 18일(월)
■ 순례구간 | 서빙고동이촌지하도(이촌역)-용산참사현장-용산2가국민연금공단 맞은편(남영역)
■ “용산참사 현장 순례”
· 16:00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과 기도
■ “광주민중항쟁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
· 19:00 용산참사 현장(신용산역 2번 출구) 

◎ 5월 19일(화) - 휴식 

◎ 5월 20일(수)
■ 순례구간 | 용산2가 국민연금공단 맞은편- 명동성당
■ “명동성당 시국미사” 
· 17:00 명동성당 성모동산
· 시국성명서 발표 
* 미사 참례자는 오전, 오후 오체투지순례에 함께하여 주십시오. 

◎ 5월 21일(목)
■ 순례구간 | 명동-시청-청계광장-조계사
■ 시청(서울광장)에서 조계사까지 - “서울시민과 함께 하는 오체투지 순례” 

1. 행사 개요
□ 취지 : 사람.생명.평화의 길을 찾아 작년부터 오체투지 기도순례를 진행 중인 순례단을 따뜻이 맞이하며, 서울시민들이 직접 오체투지에 동참함으로써 몸과 마음으로 생명평화를 느끼는 체험 마당
□ 일시 : 2009년 5월 21일(목) 오후 1시 ~ 4시 
□ 코스 : 시청 앞(서울광장) - 청계광장 - 종각 - 조계사(1.8km)
□ 주최 : 불교시민사회단체연석회의
□ 주관 : 불교환경연대, 정토회
□ 후원 : 대한불교조계종 환경위원회 

2. 순례일정 
13:30 집결(시청 앞 광장)
13:40 출발준비, 출발의식 
14:00 오체투지 순례시작(각 종단 성직자, 시민사회, 정토회 등)
14:25 청계광장 도착
15:20 종각 
16:10 후미 대열 조계사 도착
16:20 순례 마무리 의식

취재/기사 = ORIBAL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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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들이여,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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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과 용산참사로 희생된 열사들에게 김광석의 '일어나'를 연주하며 열창하는 김강산(7세)군 - '광주민중항쟁기념 및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미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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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순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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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서울 입성 직전에 있는 오체투지 순례단 참가자가 맨발로 빗길의 남태령 고개를 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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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TV 개국 1주년 기념 생중계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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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년 5월10일 오후9시 용산재개발구역 '레아 호프' , 생중계 토론회 [여기 촛불이 있다. 여기 칼라TV가 있다.] 중 패널들의 모습

- 왼쪽부터 진중권교수, 정태인 칼라TV 대표, 송경동 시인, 이명선 앵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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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광장에 재입성한 촛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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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하이서울페스티발 개막식이 열린 시청광장에 '이명박타도'를 외치며 올 해 처음으로 시청광장에 선 촛불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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