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봉에 살다보니

뭔가 국가적인(!) 중대 발표가 있을때마다 기지는 더욱 시끄러워진다는 걸 느꼈다. 

 

천안함으로 의기 투합한 한미 양국이 서해안 대규모 군사 훈련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2일 선거가 끝난 오후부터 시끄러워지더니

3일이 되선 본격적으로 헬기들이 지붕 위를 왕왕 날아다니고

유리창이 달달달 떨릴 정도로 괴롭히더니

4일이 되어서까지 윙윙 떠다닌다.

 

필시 평택에서 오는 헬기들인텐데.

오전에 군산으로 출근했다가

다섯시가 될때쯤  평택으로 퇴근 하는 듯 하다.

꼭 아침 8시에 탈탈탈 들어 와선

저녁 해가 떨어지기 전에 탈탈탈 돌아 간다.

 

아마 담주로 예정된 군사훈련 때문에 왔겠구나 싶다.

 

이런 식으로

뭔가 중대 발표가 있을때

북한이 무슨 훈련을 했다, 미사일을 쐈다 할때

옥봉리는 시끌시끌하다.

 

뉴스를 보지 않고서도

뭔가 시끄러워졌다 싶으면 무슨일이 꼭 일어나 있다.

 

정말 옥봉리에 산다는 것이

군사기지가 있는 마을에 산다는 것은

전쟁이라는 것과 가까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구나 싶다.

 

내일은 토요일이니

그들도 긴 휴식에 들어갈 터...

 

담주 훈련은 또 어떻게 견뎌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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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4 21:33 2010/06/0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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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의 긴긴 영상 마무리 작업 시다역할을 마치고

한달만에 전주 집에 갔다.

집에 간길에 머리 빠마도 하고 나의 유일한 취미인 서점에서 책보기에 돌입

물론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밖엔 없었지만

미리 봐 두었던 신경숙의 신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를 거침없이 집었다.

 

분신한 언니를 지켜 봐야 했던 그녀의 동생 미루와 그의 친구명서

엄마의 죽음에서 해어나오지 못해 상처입은 정윤과 그의 친구 단.

 

짧게 소개해 보자면

이렇게 네 젊은이들이 주인공

 

여차여차하여 네명이 서로 친구가 되고

쌍둥이 처럼 붙어 다녔던 단과 미루가 각각 세상을 떠나게 된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민주화 운동이 한참이던 그 시절 그 때쯤이 배경인듯한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열기로 가득찬 광장을 뛰어 다니고

죽음을 목격하고 또 그들 스스로가 죽기도 하면서

그 시간들을 건너온다.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소설속에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정윤의 엄마만 제외하고

단과 미루 그리고 미루 언니의 죽음은

그들이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배경은

결코 그 개인들의 선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무겁다.

 

어느날

학생운동을 하던 애인이 실종되자 그를 찾아 나섰다가 결국 사람은 찾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세상에 호소했던 미루의 언니

그리고 그 언니의 죽음을 목격했던 동생은 오래된 자괴감으로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은채 죽어가고

 

사회에 적응해 보겠다며 군에 입대한 단은

경계근무를 서던 중 자신의 총에서 나온 총알이 몸에 박혀 죽게 된다.

 

이 죽음들을 이야기 하면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러면서도 '언젠가'라는 말을 남기며

좌절이 아닌 긍정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언젠가라는 말은 참으로 요원하다.

 

언젠가  세상이 바뀌겠지

언젠가 사람이 바뀌겠지

하는 말은

 

희망과 긍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언젠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그냥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함 속에서

그야말로 언젠가 오는 것이겠지... 생각해 본다.

 

이런 의미라면

작가가 말한 비극이 아닌 희망으로 한발짝 더 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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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4 21:14 2010/06/0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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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정권교체 이후 일본의 최대 쟁점인 오키나와 기노완시의 후텐마기지 이전문제. 

일본 전체 면적의 1%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 오키나와에

주일미군 전체의 70%에 해당하는 병력이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있다.

후텐마기지는 오키나와현의 기노완시에 위치한 해병대부대로 도시 밀집 지역의 한 가운데 위치해 있다.

여중생 집단강간사건등이 발생하면서 현민들의 기지 이전 요구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그리고 2004년 후텐마기지에서 출발한 헬기가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추락하면서 기지의 위험성이 살벌하게 드러났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오키나와 주둔 미군기지의 현외이전을 주장해 왔고 새롭게 기지가 드러설 지역이었던 곳에선 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시장이 선출됐다.

하토야마는 미군기지의 현외이전을 받아들이는 듯 하더니 현재는 다시 현외이전 불가론으로 돌아서는 실정이다.

4월 25일 오키나와에서 10만이 모이는 현민대회를 결의하고 있다하니

꼭 성사되길 기대해 본다.

 

미국에 있는 단체들 등이 인터넷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니 블로그에 들리시는 분들은 참여해 주시기 바람.

메일로온 번역본을 그래로 올리니

명석한 블로거님들의 거침없는 번역 오류수정도 부탁드림.

 

인터넷 서명 주소 http://salsa.democracyinaction.org/o/357/p/dia/action/public/?action_KEY=2932

 

서명하는 과정은 ...

First Name* 성

Last Name* 이름

Email* 이메일주소

City : 도시 이름을 영문으로. 예를 들어 군산이면 KUNSAN

State/Province : 통과

Zip/Postal Code : 통과

Country Select : 나라 이름을 고르시오. 한국인 경우 Korea, Republic of 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Korea, Dem. People's Republic of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있으니 주의.

Display in list as Anonymous : 익명으로 표시하고 싶다면 여기를 체크하세요.

마지막 Sign Petition을 누르면 아래 사람이름들이 쭈욱 표시된 것처럼 서명이 완료되어 표시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최근 후텐마 이야기는 민중의 소리 기사를 링크해놓으니 참고하세요.

"하토야마 총리의 '결단'을 요구하는 오키나와 http://www.vop.co.kr/A00000289200.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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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lsa.democracyinaction.org/o/357/p/dia/action/public/?action_KEY=2932 여기에 있는 글 해석

 

Close the Base Petition 기지폐쇄 서명

Please add your name to the following petition to close the U.S. Marines Corps base at Futenma and oppose the construction of other U.S. bases in Okinawa, Japan. 후텐마 미해병대 비행장의 폐쇄와 오키나와에 다른 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반대하는 서명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I support the closure of the controversial U.S. Marines Corps base at Futenma and oppose the construction of other U.S. bases in Okinawa. 나는 논란이 되고 있는 후텐마 미 해병대 비행장의 폐쇄와 오키나와에 다른 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데에 지지합니다.

 

The Futenma base is located in the center of Ginowan, a densely populated city in Okinawa, and generates noise pollution, accidents, and incidents on a daily basis. Former Secretary of Defense Donald Rumsfeld called Futenma the “most dangerous U.S. base in the world.” In 2004, a Marine helicopter crashed into the campus of a university in Ginowan.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 기노완시의 중심부인 인구 밀집 지역에 있으며, 매일 소음 피해와 사건 사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럼스펠드 전 미국방부 장관은 후텐마 기지를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라고 하였습니다. 2004년에는 해병대 헬기가 기노완시의 대학 건물에 충돌하였습니다.

 

In 1995—following a U.S. Marine gang rape of a twelve-year-old girl—100,000 Okinawans demonstrated against the U.S. military presence. In 1996, the U.S. and Japan agreed to close the Futenma base and announced the construction of a replacement facility off the east coast of Okinawa near Camp Schwab, another Marine base at Henoko, an ecologically sensitive coastal area. The area is a treasure trove for marine life, particularly the sea turtle and the critically endangered dugong, cousin to the manatee. Local activists—supported by transnational environmentalist NGOs—protested to protect Henoko. But, in 2006, the United States and Japan agreed to relocate roughly 8,000 Marines from Okinawa to Guam, but only if Futenma Marines are transferred to Henoko. 1995년 미해병대원들에 의한 12세 소녀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10만 오키나와 현민들의 투쟁이 있었습니다. 1996년 미국과 일본은 후텐마 기지를 폐쇄하고 오키나와 북동쪽 캠프 슈와브 인근 바다위에 대체시설을 건설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지역은 해양 생물의 보고입니다. 특히 바다거북과 멸종위기종인 바다소의 사촌, 듀공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국적을 초월한 환경단체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지역 활동가들은 헤노코를 지키기 위해 저항해 왔습니다. 그러나 2006년 미국과 일본은 약 8천명의 해병대를 오키나와에서 괌으로 이전하는 협정을 체결하고 이것은 후텐마가 헤노코로 이전하는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Okinawans don't want another U.S. military base on their island. The beautiful tropical island already hosts more than 30 U.S. bases and facilities. The governor, the mayors, the newspapers, and the voters of Okinawa have consistently opposed the building of another base: at Henoko, at White Beach, or at nearby Tokunoshima island.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들의 섬에 또다른 미군 기지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아열대의 아름다운 이 섬에는 30개가 넘는 미군기지와 시설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오키나와의 지사나 시장, 언론, 시민들은 헤노코, 화이트비치, 토쿠노시마에 새로운 기지가 건설되는 것을 한결같이 반대해왔습니다.

 

We urge the U.S. and Japanese governments to renegotiate the terms of the 2006 realignment agreement. We join with the Okinawans to say: no more military bases or base expansions on this island. 우리는 미국과 일본 정부가 2006년에 체결했던 이전 협정을 재협상하기를 초국합니다. 우리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섬에 더 이상 새로운 기지를 건설하거나 확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http://salsa.democracyinaction.org/o/357/p/dia/action/public/?action_KEY=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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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2 14:13 2010/04/22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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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from 일상 다반사 2010/04/19 17:35

 

 

 

 

 

오사카 카이유칸 수족관에서 만난 해파리들

갖혀 있는 인공바다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 간절 하겠지만

카메라에 담아 오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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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7:35 2010/04/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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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스와니 영상 작업이 막바지로 가고 있는 가운데(막바지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수 있으나)

일본으로 떠난 마지막 추가 촬영.

아세아스와니 본사가 있던 시코쿠에 가는 것이 주요 목적

당시 아세아스와니의 투쟁을 지원했던 것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 조직과 일조공투

재일 코리안들을 중심으로 한 고려노련과 동포사회

그리고 본사가 있던 시코쿠의 활동가들

이렇게 세부분 이었다.

전반부 촬영이 조합조직과 고려노련 중심이었고

이번에는 시코쿠 현지 활동가들을 만나기 위해서 떠난 촬영이었다.

 

오사카의 한 동네쯤으로 시코쿠를 사고 했던 나는

첫째 일본은 엄청나게 큰 나라라는 것.

둘째 시코쿠는 일본 본토에서 떨어진 섬이라는 것

셋째 시코쿠를 가기 위해선 섬을 하나 건너야 한다는 것

넷째 시코쿠 역시도 엄청나게 넓은 섬이라는 것을 몰랐다.

 

오사카에서 장장 5시간 차를 타고 도착한 시코쿠

시코쿠는 4개의 현이 모여 있는 섬인데. 그중에서도 본사가 있는 카가와현의 시라토리를 찾아 간다.

시라토리 입구에 들어서자 충격적 장면 목격

시라토리는 한국말로 '백조'라는 것.

그러니까

이 애향심 충만했던 아세아스와니의 자본가는 자기 동네 이름을 자기 회사 이름으로 쓰고 있던 것.

 

한자로 쓰여진 白鳥를 보는 순간.

아 우리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구나 다시한번 새삼 느끼고 다시 본사로 향한다.

 

오래된 사진 자료와 영상 자료에서 확인했던 스와니 본사는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다.

본사를 거쳐 행진했던 장소

스와니 사장 집

현지 지원 사무소등을 거쳐

당시 지원활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마바리로 향했다.

이마바리까지는 차로 3시간.

 

조직된 노동자 조직이 아닌

원전 반대운동을 중심으로 하던 풀뿌리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던 시코쿠 현지 지원단.

 

통나무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다.

다들 20년만에 아세아스와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우리의 작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20년전의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고 기록을 한다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물론 나 스스로는 처음에 자발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 그런 칭찬을 듣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20년전의 여러 문제들

노동운동과 사회운동간의 운동 방식으로 인한 갈등

투쟁방향에 대한 갈등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

밤새도록 이야기가 이어졌다.

새벽 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가 7시에 일어 났는데.

그분들은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20년전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에 이어진 인터뷰

 

허겁지겁 떠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일정 때문에 아쉬웠지만

돌아서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오사카가 서울이라면

시코쿠는 전라도이고 본사가 있던 시라토리는 부안쯤 되는 시골이다.

그 시골에서 벌어진 유래없는 투쟁.

전라북도 전역에 이 투쟁을 알리려 동분 서주한 현지 지원단과

금요일 저녁에 퇴근후 출발해 토요일 집회에 참석하고 일요일에 다시 오사카로 돌아가는 식으로

지원활동을 벌였던 오사카, 코베, 쿄토의 지원자들

 

체계적인 지원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회의를 통해 투쟁 방식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이 투쟁을 지원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자유롭게 지원을 벌였다는 일본에서의 지원 투쟁.

그리고 협상과 현지 운동과의 괴리

모든 사람의 의견을 담아 종료 될 수 없었던 투쟁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아세아스와니 당사자에겐 현재 운동하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한 부채감을 남기고

오사카의 노동자들에겐 20년간의 한일 노동교류를 남기고

시코쿠 현지 지원단에겐 진정한 연대, 지원운동은 무엇인지 물음을 남겼다.

 

그리고 나에겐 무엇이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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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7 11:50 2010/04/17 11:50

말로만 듣던 경계도시2를 봤다.

경계인 송두율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경계인을 둘러싼

그야말로 경계도시에 대한 이야기이다.

 

무엇이 한 인간을 경계인으로 만들었는지

그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

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가치로 인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틀 속에서 규정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한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사실 송두율이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했는데.

영화는 그것에 대해 전면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경계인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이야기 할 뿐이다.

 

송두율이 어떤 거짓을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를 그렇게 내몰았던 그 상황,

그 도시 한국의 상황이 중요하다.

 

37년만의 조국

그러나 그를 인정하기에

이 조국은 너무나 패쇄적이고

이기적이었다.

 

그 스스로 잘못 했다며 사과할 만큼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북을 방문하고 노동당에 가입한 것?

글쎄.

이미 그는 독일인(!) 이고 조국은 이미 그를 버리지 않았는가.

저 먼 이국땅에 가서야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지 않았는가?

독일인인 그에게

한국은 국가보안법의 혐의를 씌우고 옥중에 가둬버린다.

 

그 지긋지긋한 레드 콤플렉스

경계인을 향해 팡팡 터지는 플래쉬는

마치 식인 물고기들같다.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의 영혼을 쪽쪽 말아먹는 그 찍새들의 모습

 

그리고 그를 둘러싼 소위 운동권들의 모습

다 책임지겠다며 그 먼 독일땅에서 모시고 올때는 언제고

상황이 어려워지니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줄 타격을 고민하라니...

37년만의 조국에서 얻은 그 수모도 견디지 못할 지경인데

운동에 대한 타격을 고민해야 한다고 참 뻔뻔하게 말한다.

 

사실 나는 송두율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가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는것은

우리는 언제나 억압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우리 모두에게 억압되어 있고

이 자유를 조금이라도 사회적으로 표현하면

식인물고기같은 피라미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곧장 철창 신세가 된다.

 

그런데 경계인 송두율과 나의 차이는

그는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자신을 규정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경계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 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활동한다.

나는 때때로 사회의 질서와 국가의 규제에 반대하고 저항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


경계인,

경계도시

 

어떤 사람의 경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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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6 00:14 2010/04/06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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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냄새

from 일상 다반사 2010/04/04 21:13


 

오랫만에

뒤뜰에 나가서 밭도 갈고

꽃씨를 뿌렸다.

5월이면 꽃이 만발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좋다.

파란 하늘 아래

붉은 매화가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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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4 21:13 2010/04/0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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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from 일상 다반사 2010/04/03 00:45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늘에 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온갖 의문에 휩싸인 죽음이 도대체 몇번째 인지

열 손가락으로 그 죽은 이들을 다 세어 볼 수도 없다.

 

낮에뜬달님의 [23살의 봄] 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랬겠지.

청년 실업이 만연한 요런 스산한 시절에 취업을 하고

그것도 삼성이라는 한국 제1의 기업에 취직 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꿈을 꾸었을까.

어렵고 힘들어도 조금만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수채화같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그이는 아마도 이렇게 허망하게

그꿈을 그릴 수 없다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든 죽음의 순간을 피해갈 순 없다.

 

그런데.

단지 그 일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건

너무나 억울한 일이지 않는가.

 

이미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곳이었다.

처음부터 이 일에 책임을 지는 삼성이 있었다면

그녀는 이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목숨을 구하진 못했다 해도

적어도 자신이 왜 이렇게 죽어가야만 하는지

그 죽음의 원인은 밝혀졌겠지.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몰고

사람들이 죽는 것을 빤한 눈으로 보고 있는 삼성은

명백한

살인자가 아닌가.

 

그 누가 삼성에게

살인할 자격을 부여 했는가.

 

사람을 죽이는 삼성이

 

여전히 가장 추앙받는 회사라는 이 현실에 치가 떨린다.

 

그들의 뻔뻔한 광고가 싫다.

그들의 뻔뻔한 이건희가 싫다.

 

나를 둘러싼 피비린내나는 삼성의 냄새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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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3 00:45 2010/04/0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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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날은 세차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꼭 비가 오는날 세차를 한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가 아까워서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에

집에있던 화분들을 평상에 옮겨놓고.

 

비때문에 꽃마차 아래에 쏙 들어가 있는 초롱이에게

개 사료도 슬쩍 갖다 놓는다.

 

비오는 날이니 점심엔 부침개를 부쳐 먹고

꽉 찬 배를 두드리며

장화에 비옷을 입고

세차를 하러 나간다.

 

봄날 황사로 뿌연해진 차에 비가 내리니

먼지를 가득 담은 빗물이 차에서 흘러 내리고 있다.

비에 젖은 큰 자루 걸레를 들고 앞뒤, 위아래, 슥슥 닦아 내린다.

서두를 것도 없고 세제도 필요 없다.

앞뒤로 슬쩍 슬쩍 움직이면

내리는 빗물에 먼지가 버무려진 물들이 슬슬 내려온다.

 

어디 고여 있는 빗물 없나? 찾다가

쫄쫄쫄 물 내려오는 처마밑으로 가 걸레를 빤다.

다시 슥슥 차를 닦아 낸다.

 

이제 이렇게 닦은 다음 그대로 비를 맞추면 세차가 끝난다.

한결 반짝반짝해진 황금마차를 보고 있으니 흐믓해 진다.

 

비가 오고

수선화도 한결 싹이 푸릇해졌다.

곧 노오란 꽃망울도 올라 오겠지.

 

어서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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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1 13:25 2010/03/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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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건설에 저항하는 '제주 강정마을'을 가다

주민들, 국가시책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에 분노해

 
최성희
왜 마을을 방문해 마을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했는가?

강정 마을에는 매일 몇 시간씩을 제외하고 한 달 이상 꾸준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3월 5일 늦은 밤 마을에 갔을 때, 그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1월 18일 경찰 급습 이후 마을 주민들은 해군 기지 ‘기공식’이 예정된 장소 근처에서 천막 농성을 하고 있었다.



몇 몇 신문들은 1월 18일 이후 긴장이 높아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2월 24일 해군 참모 총장이 현 도지사와 강정 마을을 방문했다. 마을회장 강동균 씨에 따르면, 퇴임을 앞둔 정옥근 해군 참모 총장은 주민들이 왜 해군 기지를 반대하는지 대화할 생각은 전혀 없고, 주민들을 만나지도 않은 채 예정지만 둘러보고 휑 갔단다. 다른 기사에 의하면, 바로 같은 날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서울에서 3월 안에 해군 기지 건설 ‘기공식’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한 기사는 “해군에 의하면, 예정된 부지의 토지 보상이 51% 이루어졌고 어업은 80%가 보상되었다.”고 썼다.

나는 강정에 무슨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또한 마을 주민들이 3년 이상 반대해왔던 해군 기지 계획에 관해 알고 싶었다.

주민들은 투쟁을 포기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답은 분명히 ‘아니다.’ 주민들은 결코 투쟁을 포기한 적이 없다. 그들의 의지는 좀처럼 변한 것이 없다. 게다가 나는 이번 방문에서 그들의 투쟁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음을 알았다.

강정은 ‘일강정’이라 불릴 만큼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태 우수 마을의 하나이자 ‘해군기지 건설예정지인 강정 앞바다는 국내에서 가장 해양생태계가 우수한 곳’이다 (녹색 연합, 녹색 습지 교육원, 2008년 5월 발표). 해안 일대는 한국 정부, 제주특별자치도, 유네스코로부터 절대 보전 지역, 환경 보호 지역으로 지정 받았다. 더구나 2010년은 유엔이 지정하는 ‘생물 다양성의 해’이다. 그런 모든 사실들을 불문하고,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밀어붙이려는 해군, 더 나아가 국방부의 계획 뒤에는 미국의 전 지구적 에너지 통제를 근본 목적으로 한 세계 지배 전략이 있다. 또한 이에 편승해 소위 대양 해군으로 발돋움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중국과 러시아 및 제 3세계 침략 전쟁에 기꺼이 동조하려는 비도덕한 한국정부가 있다.

계획된 제주 해군 기지는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몇 개 무기회사들의 이윤 때문이다. 동북아 지역을 중국과 러시아에 대항하는 전쟁 기지로 만들려는 미국의 지배 전략에 대한 모든 한국인의 각성과 도덕성을 시험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우리의 관심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해군의 여론 조작에도 불구,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지길 원하는 것이다.



천막 안은 상상했던 것처럼 춥지는 않았지만 (겨울에는 매우 추웠을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견뎌야 했던 모든 불편함과 그들이 겪는 필사적인 정신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약 4~5 명의 남자들이 매일 밤 불편한 천막에서 잔다. 그들은 곧 올 해군과의 최고 갈등이 예견되기 전의 상황을 ‘경계 상황’이라 부른다. 해군 계획 및 토지와 보상 진전 기사들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웃음’이었다.

“해군과 국방부는 해군 기지 건설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여론을 조작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언론들은 반쪽 진실일 뿐인 그들의 말만을 반복합니다. 결국 해군을 지지하게 만들려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정말로 반영하는 언론을 필요로 합니다.(주민)”

3년 전 투쟁을 처음부터 시작한 한 주민은 400년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된 마을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해군은 모든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절차들을 무시하며 단지 건설을 강행하려 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걸었던 모든 법 소송에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법 소송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가 거의 이길 것 같습니다. 해군은 그것에 대해 거의 반박할 수 없습니다. 아세요? 해군 변호사들은 그들 자신이 재판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재판을 지연시키려고 합니다. ‘해군’이 안달 나서 언론을 통해 해군 기지 건설에 대한 준비가 잘 되가는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려 하는 이유입니다.(주민)”

“왜 해군과 경찰이 1월 18일 새벽, 기자들이 거의 없을 때 우리를 급습했을까요? 그들은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랬습니다.(주민)”

“그들은 만들어질 기지가 민군 복합 관광 미항이라고 합니다. 해군은 제주에 기지가 건설되면 크루즈가 항구에 올 때마다 마을 주민들 개인당 5천 달러의 경제적 혜택이 있을 거라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해군 고위 관리였던 강창수가 몇 년 전 해군 기지 계획에 관해 말했을 때 크루즈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게다가 강정 흙은 제주도에서 제일 좋습니다. 강정은 강(강을 의미함)과 정(물을 의미함)이란 이름이 암시하듯 물이 많은 축복받은 땅입니다. 강정 어디서나 물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근방에 이런 땅을 결코 찾을 수가 없습니다. 1960~70년대에 강정은 대부분의 농작물이 감귤로 바뀔 때까지 쌀농사 수확이 잘 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해군이 기지와 함께 들어오려는 지역은 한때 도민들 전부를 먹여 살리기도 했던 논들이었습니다. 어떠한 농작물을 재배하던, 그것이 쌀이던, 마늘이던, 감귤이던, 최고의 수확을 올릴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최고의 농사짓는 땅을 경제적 효과가 기만적일 것이 분명한 해군 기지 따위를 위하여 포기해야 합니까?(주민)”

왜 마을 주민들이 해군 기지를 반대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주민의 설명은,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미군기지 확장으로 남한에서 가장 좋은 논들이 2007년 강제로 빼앗겼던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를 떠올리게 했다.

“보세요. 해군은 50%의 토지가 이미 보상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과장이고 거짓입니다. 왜 제가 강정이 400년 동안 형성된 자연 부락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아셔야 해요. 강정에서 아파트 단지를 보셨나요? 아니죠. 대부분의 다른 마을들과 달리 여기에는 아파트가 없습니다. 자연 부락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한 양상이기도 합니다. 자연 부락 내에서는 규제에 의해 5% 이상의 토지를 팔수가 없습니다. 해군이 사들이 대부분의 땅은 강정 내 땅을 소유한 외지인들로부터 샀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주민)”

다른 마을 주민의 말에 따르면, 해군 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은 물론이고 찬성하는 주민들도 토지를 판 사실이 없다. 왜냐하면 해군이 제시한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제주의 감귤 밭은 토지가 안 좋은 지역일 경우 평당 30만 원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정 등 토지가 좋은 일대는 기준의 50% 이상이 더해져, 또는 2배 이상으로 대부분 산정되며 땅값이 평당 50만 원 이하로 내려가는 곳이 없다. 특히 해군 기지의 일부가 들어서려는 강정천 유역은 평당 75만 원선이다. 그러나 해군은 15년 전 유원지로 지정되었기 전 공시지가에 단지 30%를 더했을 뿐인 38만 원선으로 가격을 제시했고 여기에 응한 주민들은 없다고 한다.

해군이 외지인으로부터 산 대표적인 땅은 풍림 콘도 소유이다. 이것도 풍림 콘도를 윽박질러 싼 가격으로 구입했다. 주민에 의하면, 해군은 일단 원래 풍림 콘도의 땅을 자신 소유로 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데로 5월 안에 기지착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방파제 일대 노른자 땅은 아직 강정 주민들이 갖고 있다.

한편 농어촌 개발 공사는 3월 둘째, 셋째 주안으로 토지수용위원회에 공탁을 걸겠다고 했으나 아직 강정 마을에는 통보된 사실이 없다. 토지가 더 수용되지 않는 한 토지수용위원회가 주민들의 땅을 강제로 수용하려면 무리가 따르게 된다.

주민들은 해군이 언론을 통해 어업이 80% 보상되었다 하지만 실제 보상이 이루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전했다. 해녀들 개개인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복잡한 분배 절차로 인해 돈을 얻지 못했다.

결국 2007년 8월 10일, 700여 명 중 680여명이 반대표를 던지며 기지를 반대했던 대부분의 강정 주민들은 아직도 애초의 신념에 충실하며 해군은 책임 있는 계획을 보이지도 않고 있다. 주민들은 ‘국가 시책’이라는 이름으로 강행되는 제도적인 이름의 ‘국가 폭력’에 분노하고 있다. 주민들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조작된다. 그것이 마을 주민들을 미치도록 화나게 만드는 것이며, 사람들이 진정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점이다.

주민들은 투쟁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마을회장 강동균 씨는 마을 주민들이 2009년 4월 국방부 장관을 대상으로 한 국방·군사 시설 사업 실현 계획 승인 무효 소송을 포함, 모든 소송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확신한다. 해군이 절차를 거쳐 승인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실제 주민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한 불법적인 날치기였다. 해군은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으며 주민은 해군이 소송에서 질 것으로 예견했다. 소송은 3월 25일 경 공판이 있을 것이며, 소송에서 이길 경우 주민들은 모든 행정 절차에 대한 가처분 신청에 들어갈 것이다.

6월 2일에 도지사 선거에서 해군 기지가 뜨거운 감자가 될 거란 것을 아는 야당 후보들은 해군 기지를 원점에서 심의하겠다고 말한다. 그 중 하나는 애초의 후보지였던 화순으로 단지 장소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기만이 되리라!)

그렇지만 2014년까지 기지 건설을 엄포했던 해군이 강정 기지 계획을 강행하려한다면 마을 주민들은 물리적 충돌을 각오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마을회장 강동균 씨는 무거운 목소리로 전한다. 또한 해군이 기공식 또는 착공식을 소송 재판 일정이나 경과들에 상관없이 4월 중순에 하려 할지 모른다고 예견했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은 건설이 시작되면 해군은 모든 갈등을 피하려 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용역업체들’을 자신들 대신에 투쟁의 전면에 세울 것입니다. 일대의 우익 깡패들도 고용되면 주민들에 대한 위험한 폭력은 쉽게 상상이 가는 일입니다.”

강정마을 주민들, 연대를 요청하다

현재 해군이 기지 건설의 시초인 항만 건설을 위해 고용한 건설 업체들은 삼성과 대림이다. 이들은 2009년 1월 20일 발생한 용산참사에 깊게 관련 되어 있다. 주민들을 향한 물리적인 폭력이 발생하면 600여 가구, 2000여 주민들이 사는 그 작은 마을은 위험한 장소가 될 것이다. 그것이 주민들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한 이유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강정으로 가서 주민을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강정에는 많은 문화 활동가들이 필요하다. 현재 한 영화 평론가가 춥고 바람 부는 중덕 해안의 천막에서 6개월 이상 살아왔다. 또한 문화 활동을 해온 두 만화가도 있다. 마을 주민들은 강정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알려나갈 많은 예술가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다.

강정 주민들은 열심히 싸워 왔다. 그것은 마을회장 강동균 씨는 계속 한탄하며 말하듯, 국가 시책이란 이름아래 주민들을 갈가리 찢어 놓은 국가라는 거대한 공권력, 그것에 유착한 대부분의 언론과의 거대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주민들은 과연 자신의 마을일이라고 생각하여 싸우는가. 아니다. 한 주민이 말하듯, 해군 기지가 세워지면 노무현 전 정부가 4. 3의 아픔을 승화하자고 공표한 ‘평화의 섬’과는 전혀 다르게, 제주도 전체가 군사 기지, 전쟁 기지가 될 것임을 알기에 그 절박함에서 싸우는 것이 크다. 주민들은 생명과 평화의 삶이 유지되는 평화의 섬 제주도를 꿈꾸고 있다.

주민들은 해군기지가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며 미국에 의해 확실히 이용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남한의 미사일 방어망을 완성하는 것이자 또한 동남아, 중동, 아프가니스탄 등 중부 아시아, 아프리카의 에너지 강탈을 위한 미국의 지배 전략의 또 다른 전초 기지로 활용될 것이다. 제주도가 전쟁 기지 아닌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도록 해군 기지에 맞서는 주민들과 투쟁을 함께 하는 것은 나의, 우리의 역사, 도덕적 책임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최성희 님은 우주의 무기와 핵을 반대하는 글로벌네트워크 한국자문위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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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94 호 [기사입력] 2010년 03월 17일 17: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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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3 11:52 2010/03/23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