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덜 지저분한 글

4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5/17
    예술 맞다(4)
    말걸기
  2. 2008/04/17
    이랜드비정규노동자와 함께하는 4.17 블로그행동의날(3)
    말걸기
  3. 2008/03/12
    탐욕스런 울타리(8)
    말걸기
  4. 2008/02/11
    숭례문 홀라당(4)
    말걸기
  5. 2007/12/12
    논술의 딜레마(6)
    말걸기
  6. 2007/11/08
    돈 독 오른 MBC(4)
    말걸기
  7. 2007/06/29
    재섭써(5)
    말걸기
  8. 2007/06/27
    <미녀들의 수다> 보고 나서(1)
    말걸기
  9. 2007/02/23
    차라리 '언니'가 어떨까?(5)
    말걸기
  10. 2007/02/09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기(2)
    말걸기

[옮김] [6월 30일 성명서] 사제들은 탄식하고 통곡한다

 

2008년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서울광장에서 열린 시국미사가 거행된 날 발표한 성명이다. 이 미사를 칼라TV 생중계로 봤는데 감동이 있었다. 성명서가 맘에 들어서 옮겨 놓고자 한다.

 

-----------------------------------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함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마태 7,15)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주권재민을 힘껏 외치는 시민들의 고뇌를 마음에 품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하여 사제들이 오늘까지 이렇다 할 의견표명과 행동 없이 침묵 중에 지냈으나 이제 그런 절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했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끓는 국민여론을 제압하기 위하여 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써 촛불에 담겼던 간곡한 뜻은 짓밟혔고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을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궤적을 잘 알면서도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빚어낸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번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드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오늘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재앙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 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입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협상이나마 정부의 주장대로 이에 복종하는 것이 한미 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혹시 경제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설령 옳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양극화 현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입니다. 결국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 1,5)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의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천봉쇄와 강경진압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압수수색과 체포 따위로 진실을 어둠에 가두려고 하겠지만 이런 모진 마음 때문에 국민이 받은 상처와 모욕은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

 

1. 국민은 너그럽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2. 먼저 들으셔야 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진실을 깊이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길 바랍니다.


3. 국민은 현명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이를 보증할 검역주권입니다. 일부 언론이 쇠고기 문제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핵심을 왜곡하지 말아야합니다.


4.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그리하여 존엄을 바라는 국민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랍니다.


5. 국민 여러분에게도 호소합니다. 촛불의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 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2008년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명박을 고양시장으로!

 

"이명박을 고양시장으로?

대통령 되어서는 사고만 치는 사람이 기초자치단체장 된다고 사고 안 치겠냐?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해라!"

 

라고 해도 할 말 없다. 그런데 진짜 이명박이 당장 대통령 그만 두고 고양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끔씩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친다.

 

우선 대통령 그만두면 미국산 쇠고기나 대운하 등 몇 가지 문제는 해결의 여지가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지금과 비교해서는 당분간은 상황이 나아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럼 대통령 그만두고 말 일이지 고양시장은 왠 뻘소리일까만 사정은 이렇다.

 

요즘 고양시가 하는 짓 보면 이명박보다 나은 게 없다. 상가 상인들 장사 안 된다고 수십억 들여서 노점상을 싹 쓸어버렸는데, 그 돈을 노점상들 소득 파악하는 데에 쓰면 여럿 좋은 것 아닌가 싶다. 어차피 돈 별로 못 버는 저소득 노점상들이야 면세 대상일 뿐만 아니라 상가 상인들 수입을 얼마나 줄이겠냐. 돈 꽤 버는 탈세 온상 노점상들은 조져서 세금 물어야 할 대상이니 소득 파악하면 좋잖아. 이 기회에 상가 상인들도 함께 조져서 탈세 못하게 할 수 있잖아. 얼마나 좋아. 이런 좋은 일을 상가 상인들 로비 때문에 안 하고 애꿎은 노점상들만 밟아버리는 아주 무식한 짓을 고양시가 했다. 여기까지는 이명박과 다를 게 없겠구나.

 

이왕 별 재수 없는 것들이 기초단체장 할 거면 차라리 이명박이 나을 것 같은 점은 바로 '버스' 문제다.

 

고양시에 등록된 노선 버스를 타 보았는가? 이런 길거리 개똥만도 못한 대중교통은 아마 구미시에나 있을 것 같다. 구미시 버스로 말할 것 같으면, 시내를 시속 100Km로 주행하며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승하차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아예 태우지도 않고 승객이 많은 구간은 돈 많이 내야 하는 좌석버스 노선만 있고 온갖 기록 조작에 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노선변경도 사장 맘대로 한다. 끝내 주지 않는가?

 

이 악명 높은 구미시 버스만큼은 아니지만 고양시 버스들도 장난 아니다. 난폭 운전에 승객 생까고 안 태우기는 기본이고 불친절도 하늘을 찌른다. 중앙차로가 만들어지면서 버스길이 구불구불해졌는데 이 길을 마구 달리면 몸이 오른쪽으로 쏠렸다 왼쪽으로 쏠린다. 서 있는 사람들은 팔뚝 굵어진다. 썅!

 

서울에서 고양시 곳곳에 들어오는 버스들이 늦게까지 있으니 고양시 대중교통 상황이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사 와서 살아보니 고양시 안에서 버스 타고 다니기란 정말 괴롭다. 뱅글뱅글 돌거나 비싼 광역버스 타야 하고 등등 노선이 비합리적이다.

 

이명박이 고양시장 되면 버스 하나는 처리하지 않을까 싶다. 어디 땅 파고 싶은 데 찾기는 하겠지만 지금 고양시도 여기 저기 땅 파고 있으니 크게 다를 것도 없겠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서울시 버스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노선도 정리되었지만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버스기사들의 운전 행태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아직도 가끔은 운전 이상하게 하는 버스기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는 이명박이 서울시장할 때 서울시내버스업체들을 갈군 결과라는 얘기가 있다. 버스업체를 돈으로 지원하면서 운전기사 급여나 복지에 약간의 향상을 요구했고 이에 항의하는 업체들을 혼내기 위해서 양대노총 출신을 시에서 고용해 감독토록 했단다.

 

난폭 운전과 승차 거부 등 버스운행에 문제가 있다면 운전기사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기업이 서비스 정신을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린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노선 합리화와 인간적 서비스를 위해서는 나름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하고, 과거 행적으로 보아 이명박이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 글은 '이명박 유용론'이 아니라 '고양시 버스 개똥론'이다.

 

 

예술 맞다

 

호치랑님의 [김홍석 마초예술가의 국제갤러리 & 창녀 찾기 퍼포먼스] 에 관련된 글.

 

 

말걸기가 세상에 말을 걸지 않은 지가 참으로 오래도 되었나 보다. 이렇게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호치랑님의 위 글에 "사람을 그 자리에서 완전히 소외시킨, 왕따시킨 행위를 예술이라는 말로 과연 표현해야 될까"라는 문구가 있다. 이러한 생각은 글의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호치랑님이 쓴 이 문구의 가장 주요한 뜻은 "예술 한답시고 그 따위 짓 하지 말라"로 이해했다. 이 뜻은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말걸기가 위 글에 대한 다른 견해를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위 문구가 김홍석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에서 행한 오프닝 퍼포먼스가 '예술'이 아니라는 뜻도 가진 듯하여, 이 때문에 예술, 도덕, 아름다움, 그리고 '아트 월드(Art World-전문가 집단, 카르텔)'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사람들은 대체로 예술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름답지 못한 것은 예술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또한 예술은 통념을 거스르기도 한다는 걸 알면서도 '악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 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는 어렵다. 그래서 아름답지 않거나 악의적이면 예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도덕과 아름다움의 관계는 복잡하다. 사람들은 이 둘이 항상 함께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긴다. 아름답지만 도덕적이지 못하거나 도덕적이지만 아름답지 못한 사물, 상황, 행위를 당연히 구별하지만 이 둘이 제대로 결합이 되면 '예술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경향.

 

역사적으로 인류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지녀왔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위한 예술의 역사는 짧다. 예술은 언제나 목적이 있었는데 아름다움이 궁극의 목적인 적은 예술의 역사에 비하면 짧다. 아름다움이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이해는 근대 서양의 산물이었고 이 관념이 (최소한) 한국 대중이 예술을 이해하는 근간인 것은 분명하다. 이 관념은 아름답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에 있다는 것도 포함한다.

 

그러나 현대 예술의 목적은, 특히 아트 월드의 목적은 '남이 못하는 것 하기'에 가깝다. 이른바 작가의 창조성은 이것으로 발휘된다. 작가들은 "저걸 어떻게 했지?", "저런 생각을 어떻게 했지?"하는 감탄을 노린다. 심지어는 남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도 하지 않는 너무 평범한 것을 수행한다. 이것이 아트 월드의 예술이자 이 시대의 예술이다. 인정하든 안 하든 말이다.

 

아트 월드는 작가, 비평가, 기획자, 컬렉터들의 세계이다. 이들이 사실상 무엇이 '예술 작품'인지를 결정한다. 대중들은 아름다움과 도덕적 허용에 관심을 두는 사이에 아트 월드는 (이것들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지만) 다른 데에 관심을 쏟는다(그 중 하나는 돈이겠지만 여기서는 제껴두자). 즉, '남들 못하는 것 하기.'

 

그러다 보니 극악한 도전정신이 발휘되어 도덕, 인권도 가차없이 파괴하는 심성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한편, 시대와 사회마다 인간에 대한 예의의 기준을 갖고 있고 이 중에는 부당한 기준도 있다. 예술은 이에 도전해서 그 부당한 기준을 철폐하는 데에 일조하기도 한다. 결국 역사적으로 볼 때나 현대의 상황에서 볼 때 예술 작품이 지닌 가치관은 도덕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술 작품, 예술 행위를 평가할 때 도덕, 특히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핵심 기준으로 삼으면 혼란에 빠진다. 이게 예술인지 아닌지 구별부터 해야 할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말걸기는 김홍석의 포퍼먼스가 예술 행위라고 받아들인다. 김홍석은 아트 월드의 일원인 미대교수이다. 얼마나 영향력 있는 구성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정도 이력이면 만만치 않은 사람일 것이다. 김홍석이 아트 월드의 일원이기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의 이번 퍼포먼스가 예술 행위일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아트 월드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김홍석의 이번 퍼포먼스는 대단히 비도덕적이다. 사람들의 상식은 이렇다. 나쁜 짓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그 똑같은 짓을 하면 도덕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의 신(神)이 창궐하는 시대에 사람들이 '창녀'를 찾아서 낙인 찍는 행위를 비판하기 위해 '창녀 낙인 찍기'를 돈으로 유혹하는 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이게 상식이다.

 

그런데 김홍석이 이걸 몰랐을까? 이것이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는 통념과 상식을 파괴하기 위해서 '예술적 행위',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되는 관람자의 비도적적 행위와 이를 부추긴 자신이 비도덕적 행위, 그 두겹의 모순을 보이는 꽤 수준 있는 예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김홍석은 당연히 비난을 예상했을 것이고(그 크기나 범위는 예상치 못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자신이 행한 예술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김홍석이 끝까지 이 비도덕적인 행위가 예술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 보다 그 행위가 이 시대에는 예술일 수밖에 없는 객관적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김홍석은 대학교수이고 자신의 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는 유명 갤러리에서 행한 퍼포먼스라는 데에 있다. 만약 대학교수도 아닌 김홍석이 돈을 왕창 후원 받아서 룸살롱이 즐비한 유흥가에 가서 이 퍼포먼스를 했다면 예술이 되었을까? 김홍석이 비도덕적인 예술을 갤러리에서 보였다는 건, 한편으로는 그에게 '안전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말걸기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예술 작품이란 게 도덕적이거나 도덕적인 아름다음을 지녔을 것이란 관념을 버리면 예술의 세계가 더 잘 보이게 된다. 그래서 비도덕적인, 반인권적인 예술 작품이나 예술 행위를 한 작가를 더 집요하게 도덕적으로 심판할 수 있다.

 

사람들이 "예술 같지도 않은 엉터리 예술 하지 말라"고 얘기하면 작가는 "예술인데"라고 당당하게 도덕적 비난을 피해가려 것이다. 예술도 비도덕적일 수 있고 따라서 그 예술을 행한 작가가 마땅히 져야 할 응분의 대가를 지도록 하려면 예술에 대한 통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

 

"네가 한 게 예술 맞아. 근데 예술도 책임을 져야 하거든."

 

말걸기는 이게 아트 월드의 오만함을 흔들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랜드비정규노동자와 함께하는 4.17 블로그행동의날

 

지난 달에 reds가 전화를 걸어왔다.

부탁할 일이 있단다.

오늘(4월 17일) 이랜드비정규직과 함께하는 '온라인 행동'을 하기로 했는데 도와달란다.

5~6년 전이라면 모를까 다 까먹고 감도 잃어서 달군님께 부탁해보라고 했다.

진보넷 전화번호 알려주면서... ㅎㅎ

제대로 넘긴 것 같다.

 

이랜드비정규노동자와

 

 

탐욕스런 울타리

 

파란꼬리의 친구가 지난 일요일 정읍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3월 8일은 파란꼬리와 말걸기의 결혼기념일인데 뭐든 신나는 일을 꾸미고자 했던 우리는, 결혼식 당일 새벽부터 헐레벌떡 수선 떨지 말고 전날 내려가서 여행 기분 좀 내고자 했다.

 

결혼식 전날 저녁 정읍으로 내려간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맛없는 정읍 음식을 먹으며 결혼할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짝꿍들과 잠시 놀고선 자정을 넘기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은 둘의 여행 중 신혼 여행을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아침 일찍 일어난 날이었다.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시장통에서 국밥 하나씩 먹었음에도 오후 1시까지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가을 단풍으로 으뜸이라는 내장산에 다녀왔다.

 

애초에는 산에 갈 계획은 없었기 때문에 맛만 살짝 볼 요량으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정장 차림에 구두 신은 사람들을 가끔 산에서 볼 수 있는데, 이제는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그런 '정신나간' 차림으로 산에 왔구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쨌든 서비스 정신 밑바닥인 내장산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가 근처에 있다는 능선으로 오르고 있었다.

 

 

산비탈의 나무들은 아직 봄의 기운이 없었음에도 매력적이었다. 눈에 보기에도 생김새가 참으로 여럿인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뭇가지 모양도 가지가지였다. 빛깔이 탁한 이 계절에도 저리 풍성한 느낌을 주니, 가을 단풍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만 해도 기대가 되었다.

 

케이블카에 오르다 눈에 확연이 띄는 곳이 있었다. 케이블카가 오르는 능선과 마주선 서래봉 아래 비탈이었다. 푸른 나무숲을 뒤로하고 하얗게 모습을 드러낸 곳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전망대로 가 보았다. 서래봉 아래 양지바른 비탈에 웅크리고 있는 건 벽련암이었다. 내장산 내장사의 사내암자 중 하나인 벽련암은 660년 백제 의자왕 20년 환해선사가 창건하였단다. 1539년 조선 중종 때 폐찰령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25년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또 소실되었단다. 현재의 전각은 1986년 문화재 관람료로 중창되었고 현재는 설법전이 복원 중이란다.

 

안타까운 역사를 지닌 이 암자는 20세기 후반 건축물이다. 이 20세기 현대 건축물의 특징은 정말 20세기다운 모양새이다. 전망대에서 병풍처럼 장막을 두른 서래봉 능선을 바라보면 눈을 자극하는 곳이 보인다.

 

 

하얀 담장과 도로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비탈 한 가운데를 차지한 벽련암에서는 자연에 대한 겸손을 볼 수 없었다. 인간의 문명이란 게 다 그래 보일 수는 있지만 숲과 함께 공존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느낄 수 없었다. 숲을 파헤치고 들어와서는 '여기는 내 땅이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왠지 구멍이 뻥 뚫린 흉터처럼 보였다.

 

 

사찰들은 한반도의 산과 함께 살아왔다. 전쟁과 박해로 사라진 건 안타깝다고 할 수 있지만 존재했다는 기록만으로 없어진 그 터에 죄다 현대적 이념의 사찰 건물들을 짓는 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적절한가 싶다. 저 울타리를 그을 때 얼마나 많은 미물들이 부처를 원망했을까.

 

지난 대선 때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가 후보초청 토론회를 열었다. 파행이었다지만 그들이 참석을 요구한 후보들에게 보낸 토론 질의 중에 이런 문구가 있다. "불교계가 실질적으로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에 비해 정부예산의 지원 폭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전국 산지에 분포한 폐사지 역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복원과 보존대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벽련암이든 어디든 내장산 내 사찰 근처에도 가지 않은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2,000원씩 내고 국립공원에 입장했다!)

 

2002년 대선 때 조계종은 각 정당에 질의를 빙자하여 이런 요구를 하였다. 익산 미륵사와 경주 황룡사를 지어달라는 요구였다. 10여 년 전에 익산 미륵사터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그 터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주춧돌만 보더라도 그곳은 사찰이라기보다는 궁궐이었다. 그 거대한 사찰을 국민 세금으로 지어주면 자기네들이 영업해서 돈 벌겠다는 속셈을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낸 요구였다.

 

그 당시에 별로 재미를 못 보았는지 5년이 지난 2007년 대선에서는 뭉뚱그려 '폐사지 복원'을 요구했다.  아니 전국 2곳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곳의 복원을 요구하니 탐욕이 더 커진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문화유산을 복원한다는 건 주춧돌만 있는 곳에 21세기 건물 올리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 오랜 역사의 사건들의 결과로 현재의 모양이 되었다면 그 모양이 유지될 때만 역사적인 것이다. 복원은 더 이상의 인위적 훼손을 막음으로써 역사성을 드러내고, 그래서 결국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불교계는 지난 대선 후보초청토론회에서 '환경-생태 분야' 질의라고는 아래 하나 달랑 물었다.

 

"이미 우리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석굴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전 및 종묘와 세계기록유산인 승정원일기, 팔만대장경판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가야산, 지리산, 경주권역은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환경적 가치가 우수한 복합유산이기도 한데요, 후보께서 생각하시는 복합유산의 보존방법,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각 후보 진영에서 제시한 공약 중에 불교환경과 관련된 정책이나 입장이 있는지도 아울러 말씀 해주십시오."

 

자기들 이익만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까. 이해관계가 비슷한 자들끼리 모여서 이익단체를 구성하고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돈 버는 자들이 세금도 안 내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 돈 내놓으라는 것도 가증스럽고 생명 존중을 교리로 삼는 이들이 숲의 파괴에 앞장선다는 게 한심하다.

 

산과 숲과 들에 오랜 동안 터를 이어왔다고 해서, 오래 전에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 터를 잡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해서 산과 숲과 들이 자기네들인 것 마냥 탐욕스런 울타리를 치고자 하는 불교계가 이명박의 대운하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평소에도 '빽' 좋은 기독교에 밀린다는 의식까지 있는 마당에 이명박이 오만불손하게 하나님을 들먹이니 더 재수 없어서 그런 건지, 산 속에 울타리 친 자기네들 '사유지'가 훼손될까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다.

 

 

탐욕스런 울타리 만큼이나 케이블카도 인간의 이기심의 결과이니, 아이러니한 내장산행이었다.

 

 

숭례문 홀라당

 

숭례문이 홀라당 다 타버렸다.

두 시간 동안 앉아서 불에 휩싸여 재로 변한 숭례문만 쳐다 봤다.

이 사건을 보고 생각 난 것들.

 

 

1. Live 중계, 참 끝내준다.

 

하얀 연기, 붉은 불꽃, 무너지는 지붕. 911 때 CNN이 송출한 Live 중계가 떠올랐다. 두 번째 무역센터 빌딩에 비행기가 출동하던 그 장면. 두 채의 빌딩이 무너지는 장면. 안타까움, 공포, 분노 등의 감정이 일지만 가장 강한 감정은 호기심이다. 어떻게 될까? Live는 이런 거다. 벗어날 수 없는 몰입.

 

 

2. 대한민국 관료들은 참으로 무능하다.

 

과거로부터 배우는 게 없는 무능이다. 예전에도 목조 문화재들이 타버렸으면 이제는 화재가 나지 않도록 하고, 만약 불이 나면 잽싸게 끄는 방법을 고안했어야 했다. 이건 두 가지가 결합된 결과이다. 권한을 가진자들은 '공익'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나 '생색'에 꽂혀 있다. 실무자들은 권한을 가진자를 설득할 용기가 없으므로 하던 거만 한다. 그래서 관료사회는 총체적으로 무능하다.

 

 

3. 대한민국 언론은 책임감은 눈꼽만큼도 없는 극황색언론이다.

 

목조 문화재가 여러 번 불에 탔던 과거를 언급하며 언론에서 말하기를 "그때 뿐이다"라고 주절댔다. 지들이 그때만 지껄여 놓고선 그런다. 화재의 원인, 붕괴의 원인을 잽싸게 '구성'하는 그들의 능력은 탁월하다. 황색능력이 어찌 그리 선명한지. 이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한다. 그래야 또 기사로 울거먹을 수 있다. 수 년 안에 문화재 화재 사건을 가지고 또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친다'는 똑 같은 패턴으로 기사 쓸 거다. 감시 좀 해라.

 

 

4. 다들 세금 걷자는 얘기는 안 하면서 예산 타령하고 자빠졌다.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얘기들이 있다. 중구청이 주말 야간에는 경비 인력을 두지 않았다는 둥, 서울시가 화재보험 대충 들었다는 둥. 문화재청이 어쩌구. 소방당국이 돈도 없는데 목조 문화재 화재 맞춤 서비스를 하겠냐. 돈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그러면 그 돈 하늘에서 떨어지냐? 세금 걷어야 할 것 아니야. '공익'을 위해서 티도 안나게 돈 들기 마련이다. 세금 얘기 나오면 부담이 어쩌고 하는 것들이 사건만 터지면 예산이 어째느니 한다. 세금 좀 더 내지?

 

 

5. 21세기 목조 건물 자랑하려고 복원하냐?

 

숭례문 복원하는 데 200억 든단다. 이제 와 200억을 복원하는 데 쓰지 말고 그 돈으로 문화재나 제대로 관리했으면. 지금 잿더미가 된 숭례문이 무너지거나 비와 바람에 씻겨 나가지 않도록만 하고 그 모양 그대로 보존했으면 좋겠다. 이거 다시 복원하면 예전 거랑 새 거랑 구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겠나. 너무 닮아서 잿더미로 변한 이 사건, 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도록 한 이 사회의 수준을 잊어버리지 않겠나. 무엇보다 나무 잘라야 하지 않나.

 

 

논술의 딜레마

 

한참 논술 알바를 하고 있다. 이걸 하면 할수록 대학 논술 시험 대비는 학생 혼자서는 제대로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수능 시험에는 정답이 있지만 논술 시험에는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이 동영상 강의나 책을 보고 직접 문제의 답안을 작성해 보아도 그걸 평가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학생의 실력은 늘 수가 없다. 그리고 동영상 강의든 책이든 다 돈 주고 사야하는 것들이다. 물론 대학물 제대로 먹고 나이 들어서 다시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야 예외겠다.

 

결국 학생과 학부모들은 논술 시험 대비를 위해 사교육비를 추가 지출해야 한다. 이는 대학의 입학전형이 자율화 될수록 사교육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학, 혹은 대학교수 입장에서는 A를 읽어 보라고 하면 B로 이해하지 않고 A로 독해하고, B에 대해 말해 보라고 하면 C가 아닌 B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학생을 가르치고 싶어할 것이다. 논술 시험은 대체로 이런 걸 묻고 있다. 각 대학의 논술 시험 문제들 중에는 가증스럽거나 멍청하기 짝이 없는 문제들도 있지만 논술 문제의 답안을 잘 작성할 수 있다면 확실히 대학에서 공부할 준비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논술을 잘 할 정도라면 살아가면서 스쳐가는 정보들, 텍스트들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자질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소양을 갖춘 시민으로서의 자질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논술을 잘 한다는 건 100%는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교육 시장에서 논술을 가르치는 많은 사람들은 학생들이 세상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소양을 갖추길 바란다. 정의롭게 살고자, 사회가 더 정의로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돈도 벌면서 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가 논술을 가르칠 능력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이를 비판하거나 한탄한다.

 

논술을 가르치는 학교들도 있지만 충분한 교육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논술을 제대로 가르칠 교사가 별로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육과정에 없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유에 대해서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낸다. 교사의 질을 우습게 안다. 정말 자질 없는 교사 수두룩하지만 자질 없는 학원 강사도 수두룩한 것 보면 교사 자질을 도마에 올리는 건 본질적으로 사교육 시장에서 자기 가치를 올리기 위한 방법이다. 교사를 깎아 내려야 강사가 상승한다. 이는 윤리적 차원에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라는 게, '경쟁'이라는 게 그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두번째 이유인 교육과정 문제가 사실은 더 중요하다. 수능과목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도 학원 강사가 교사보다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그러고 보면 교사보다 잘 가르치지 못하는 학원 강사는 형편없는 초짜이거나 사기꾼이다!), 교육과정에도 없는 논술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는 학원이 학교보다 백 배는 경쟁력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에 없다면 그걸 담당하는 교사를 양성하지 않는 게 교육행정이다. 그러니까 학교가 논술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게 교사들이 자질이 없어서라고 한다면 교육현실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논술의 딜레마는 바로 이것이다. 논술 능력은 대학생 뿐만이 아니라 시민에게도 필수적인 소양임에도 불구하고 그 배양을 사교육시장에 맡겨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요한 걸 학생들에게 아니 배우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걸 돈 주고 배우라고 할 수도 없다. 이 딜레마를 대학입시 제도 개혁, 혹은 그것을 포함한 대학평준화로 풀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대학평준화는 입시 압박을 없앤 중등교육까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자체를 제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중등학교까지의 교육은 경쟁적인 대학 입시에 기괴하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대학입시 경쟁을 없애버리면 중등학교까지의 교육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교육운동 진영을 아주 거칠고 무리하게 나눈다면 한 편은 대학개혁 쪽에 무게를 두고 있고 다른 편은 교육과정 정상화나나 학내 민주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양쪽 모두 논술의 딜레마를 풀기에 적절한 대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교육운동 진영의 코어 중 일부는 대학문제와 교육과정 문제, 나아가 여타의 교육 문제를 분리하지 않고 일관되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체로 이들의 고민이나 나름의 대책들은 교육운동 진영, 더 확장된 진보운동 진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교육운동 진영에서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는 교육운동 주체들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고, 진보운동 진영으로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교육운동 주체들의 정치적 레토릭을 비판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학평준화가 무상교육과 함께 진보적 교육정책의 핵심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대중들의 정치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 복잡한 대안 교육 정책 중에서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대학평준화가 이루어진다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해결을 촉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코 이것과 무상교육만으로 교육문제가 높은 수준으로 해결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다른 교육 부문과의 충돌로 결국에는 이들도 좌초할 수 있다.

 

논술의 딜레마에서 깨달아야 할 점은 이렇다. 하나는 논술교육을 '학교가 못하는 걸 학원에서라도 한다'가 아니라 '학교에서는 못하게 하고 학원에서 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중등교육까지의 교육과정 개편 없이는 교육을 통해 실질적이고 궁극적으로 획득해야 하는 목표인 '민주적 시민 양성'에는 다가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대학평준화' 구호는 그 가치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의 정치적 레토릭이라는 것이다.

 

 

돈 독 오른 MBC

 

MBC 뉴스데스크 보다가 욕 튀어 나왔다.

 

 

['미드'가 몰려온다]는 타이틀의 뉴스는 이렇게 시작했다.

 

"최근 CSI 같은 미국 드라마들이 대거 몰려오고 있습니다. 엄청난 제작비에 구성도 탄탄한 이른바 미드 공세에 맞설 대책마련이 시급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났다.

 

"이에 맞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원확보가 급선뭅니다. 방송위원회가 신문협회 등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간광고 재도입을 결정한 것은 이 같은 난제를 극복하기 위한 고육책의 일환으로 풀이됩니다."

이 가증스러운 뉴스는 결국 미국 드라마에 대항하기 위해서 공중파 중간광고를 확대하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게 공영방송이냐? 돈 독 오른 민영방송이지!

 

 

이 뉴스에 따르면 '프리즌 브레이크'는 편당 30억 원, CSI는 15~20억 원의 제작비를 들였단다. 한국 드라마는 흥행작들이 1억 원 안팎이라면서도 '태왕사신기'는 18억 원을 퍼 부었단다.

 

솔직히 말해서 '태왕사신기'를 편당 30억 들여서 만들었다면 아마도 전투 씬, 부대 이동 씬에서 말대가리 수나 왕창 늘렸을 것이다. 한국처럼 스탭 피 빨아가면서 만드는 영화/드라마가, 사전 제작 방식으로 편당 18억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같은 '태왕사신기' 수준이라면 기본적으로 시나리오를 제대로 못 써서, 내용이 후져서 미드에 밀린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한국 영상컨텐츠 중에서 영화가 미국 헐리우드에 돈 때문에 밀린다는 설명은 이해가 간다. 그래서 스크린 쿼터에 목숨 거는 심정도 알 만하다. 그런데, 한국 공중파 TV 드라마가 미국에 밀리는 건 돈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한미FTA와 연계된 방송쿼터 문제도 있고 해서 미국드라마에 더 많은 시장을 빼앗길 우려는 있다. 그러나 공중파 방송사들이 기획하는 TV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경쟁할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들인 돈만큼만이라도 잘 만들면 된다.

 

요즘 별일 없으면 '태왕사신기' 본방 사수하고 있는데 이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긴장감도 떨어지고 등장인물들 간의 감정의 고리들이 참으로 어설퍼서 재미가 슬슬 사라지고 있다. 이게 돈 때문이냐? 돈을 더 갖다 주고 이 드라마를 찍게 했어도  제작진들이 돈을 어디다 써야 할 지 몰라서 말대가리 수나 늘렸을 것이다.

 

 

MBC는 언제부턴가 아주 저질스런 뉴스를 송출하고 있는데, 중간광고가 방송컨텐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는 이 따위 뉴스가 이에 해당한다. 광고가 는다는 것은 그 방송이 점점 더 기업에, 자본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고, 의존하는 만큼 공공성을 상실한다는 뜻이다. MBC는 그저 돈 쳐 벌어서 자본에 개가 되고 싶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 XX!

 

하여튼 공중파 방송들을 죄다 KBS로 통폐합하고 수신료 올려야 한다니까! 방송위원회도 독립기구 권한 빼앗고. 이래야 공중파 방송들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해져서 돈 독 오른 개소리를 안 지껄이지.

 

 

재섭써

 

뭐냐 이게.

진짜 하네.

 

 

 

이거 하면 진짜 '악성 댓글' 줄까?

진짜루?

만약 안 줄면 누구 옷 벗나?

 

 

<미녀들의 수다> 보고 나서

 

한국에서 일을 하거나 공부하는 젊은 외국인 여성을 모아놓고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마초적인 발상일 거라는 선입견 때문에 <미녀들의 수다>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는 열심히 보기 시작했다. 매번 꼬박 챙겨 보는 건 아니지만 리모컨 돌리다 걸리면 끝까지 본다.

 

지난 25일 방송에서 일본인 준코씨가 성희롱 당한 얘기를 듣고서는 "이럴수가!"가 아니라 "그렇지,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 사회가 쪽팔릴 만한 사건이니 민망하긴 해도 '심각하게' 분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을까? 옳지 못한 일에 내성이 생겼나?

 

준코씨의 경험이 방송되어서 외대는 발칵 뒤집혔고, 준코씨에게 '같이 자면 성적 줄께' 했던 강사는 모가지가 댕강 나가 떨어졌단다. 방송 중에는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기만 했다는 걸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보니, 최근 벌어진 모단체의 활동가의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로부터 직접 들었는데 - 피해자가 상당히 마음을 추스린 상태에서 차분히 말해서 그런지도 모르나 - 부글부글 분노하며 '공감해 주기'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말걸기의 감성이 이상해진 것 같다. 이런 일에 분노하지 않으면 말걸기가 잘못해도 스스로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고 반성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다 그렇지, 뭐"가 "말걸기가 이런 짓 하건 안하건 세상이 달라지는 거 있겠어, 설마"가 되면 어쩌지?

 

 

다시 <미녀들의 수다> 얘기로... 25일 방송에 출연한 외국인 여성들은, 한국의 환경을 기준으로 삼자면, 참 용기 있는 '증언'들을 했다. 그들은 외국인이니까 노골적이고 솔직하게 얘기하기가 한국사람보다야 쉽겠으나, 그게 그리 쉬운 일만을 아니지 않겠나.

 

얼마 전에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출연한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는 말걸기가 경험하는 한국 사회와 참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출연한 외국인 여성들의 개성도 제각각이고 자기들 나라 얘기도 해주면 재미를 더해준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한국인 출연진은 수준이 너무 낮다. 외국인 여성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기도 한다. 지들이 사는 나라 얘기를 해주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걔들이 하는 얘기는 하나도 재미없다. 그래도 '인내심 많은(글쎄?)' 외국인 출연자들은 오래오래 걔들을 상대해 준다. 도대체 그 프로그램 PD는 무슨 생각으로 걔들을 출연시킬까? 웃기지도 않는 것들을.

 

 

어쨌거나 <미녀들의 수다> 보고 나서 말걸기가 '못된 놈' 되어가는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받게 되었으니...

 

그나저나 도미니크 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