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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을 점쳐 보시라!(11)
    말걸기
  2. 2009/02/20
    이런저런 이야기(18)
    말걸기
  3. 2009/01/12
    결투 ②(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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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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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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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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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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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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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7/14
    고사리죽(5)
    말걸기

운명을 점쳐 보시라!

 

제목은 거창하게 붙였으나 가끔씩 구전하는 각자 푸는, 점치는 퀴즈류일 뿐.

 

 

● 문제 ●

 

'나', '거북이', '다리', '문', 열쇠', 이 다섯 낱말을 활용해서 상황, 사건을 만들어 봅시다.

 

※ 여기서 '다리'는 bridge. (감비님 덧글 보고 수정)

 

 

● 풀이 예 ●

 

[파란꼬리의 답] 나는 다리를 건너 열쇠를 쥐고 문 앞에 서 있다. 거북이는 다리 아래에서 가만히 있다.

 

[말걸기의 답] 거북이가 다리를 건너 열쇠로 문을 열었더니 그곳에 내가 있다.

 

 

 

잠시 쉬어가고 싶은 분들은 이런 놀이로라고 해 보심이...

풀이는 반응 봐서... ^^; 하면 안 되겠죠?

하루  쯤 있다가 풀이를 올리도록 하지용. ㅎㅎ.

 

 

이런저런 이야기

 

1. 집안일 하는데 계획표까지 짜?

 

얼마만인지도 모르겠다. 해야할 일을 대충이라도 정리해서 일정을 만들어 놓고 매일매일 계획대로 처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짓 말이다.

 

3월 5일이면 홍아가 태어난다. 홍아가 태어나서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준비해 둘 것이 많다. 홍아의 복은 태어나기 전부터 터져서 홍아는 이미 부자다. 작은 방 하나를 가득채울 옷가지와 물건들이 홍아를 기다리고 있다.

 

홍아는 복이 터졌고 말걸기는 일복이 터졌다. 방 하나를 싹 비워서 홍아를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그 방에 있던 물건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결국 집 전체를 정리하지 않으면 홍아가 살아가기 불편한 집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말걸기도 불편해지겠지.

 

2주도 남지 않은 날동안 할 일을 정리해서 계획표도 간단하게 만들었는데, 일이 일을 부르는지라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녔는데도 일이 밀린다. 피곤하다. 만삭 파란꼬리는 더 피곤하다.

 

 

2. 심각한 불황 속 최대 호황?

 

말걸기네는 지금 이 시절 세계 불황 가운데에서도 집안 역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호황은 알뜰하신 파란꼬리, 파란꼬리와 말걸기의 어머니들, 두 사람의 지인들 덕이다. 말걸기의 역할은 이 호황을 잘 타는 것이다. 여기서 호황이란 돈 잘 번다는 뜻이 아니고 호황 때 못지 않게 물질적인 풍족을 누린다는 뜻이다.

 

홍아가 입을 수 있는 옷을 하루님이 이마안큼 보내주셨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입이 딱 벌어졌더랬다. 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전에 파란꼬리의 주변에서 한 벌 두 벌 선물을 해 주었는데 그게 또 이마안큼 쌓였다. 게다가 홍아의 아빠의 엄마께서, 홍아의 아빠의 누나의 딸과 홍아의 아빠의 형의 딸이 쓰던 옷가지와 물건이라며 이마아아아안큼 가져다 주셨다. 오호~!

 

옷과 함께 이런저런 출산용품과 육아 물품으로 방 하나가 가득한데, 바리네, 슈아네에서 책과 장남감 등으로 채워주었다. 파란꼬리 동료들도 적지않게 보태주었다. 파란꼬리와 말걸기가 육아박람회에서 사가지고 온 물건도 꽤 많지만 선물 사이에 묻힌다. 히요~!

 

어제는 아가 옷 삶는 세탁기가 배달되었다. 홍아의 아빠의 엄마가 보내주셨다. 그 보다 꽤 오래 전에는 홍아의 아빠의 누나가 홍아만 타고 다닐 수 있는, 바퀴가 8개나 달린 잉글레시나 유모차를 사 주었다. 히익~!

 

파란꼬리와 말걸기는, 아기가 생기면 자동차가 있어야 편하다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에 귀가 얇아져서 모닝 한 대 뽑을까 작당을 하다가, 돈도 없는데 관두자고 포기를 했더랬었다. 그러던 어느날 홍아의 엄마의 엄마께서 돈을 부쳐 주셨다. 그래서 오늘 새빠 아반떼 뽑았다. 허억~!

 

일단 호황은 누릴 만큼 누려 보자. 아직도 파란꼬리와 말걸기, 그리고 홍아의 호황에 기여하지 못한 분들은 서둘러 동참하길 바란다. 아반떼 두 대 필요 없고 잉글레시나 두 대 필요 없다. 행인의 짝꿍께서는 양주에서 고양까지 손수 쑤신 호박죽을 들고 오셨더랬다. 맛있다.

 

홍아는 복도 많다. 이게 파란꼬리 복이냐, 말걸기 복이냐. 파란꼬리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셋의 복!"

 

 

3. 바쁘니까 입을 다물고 산다?

 

세상에 대한 온갖 불만을 떠들고 사는 까칠한 말걸기가 바쁘니까 입을 다물고 살게 된다. 역시 시끄러운 놈은 하는 일이 별로 없는 놈인가 보다(꼭 누구 들으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고... ^^;).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과 빠이빠이 하였는데 슬프다. 한때는 오랜 시간을 진지한 카톨릭 신자로 살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말걸기 감정은 그렇다치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슬픈 사건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자면 호상이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권력자에게 불편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느낌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보수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민주화 시대 이후'에는 '각 설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개긴 몇 인'이었기 때문에 '민주화 시대 이후'에도 양심적 종교인으로서, 강자에겐 부담스럽고 약자에겐 존경받지 않았나 싶다.

 

사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고, 이 보다는 20세기 후반 한국 카톨릭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조명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후반 한국 카톨릭은 수백만 명의 신도를 거들이게 되었고 로마 교황청으로부터도 더 높으로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때 한국 카톨릭의 계급적 기반이 쁘띠부르조아에게 서서히 이전되어 카톨릭 내부에서도 권력의 중심이 대단히 보수적인 인사들로 이동되었다. 이것이 한국의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 카톨릭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보수 성향은 '민주화 시대'에는 '권력에게 불편한 양심적 인사'로서의 면모는 줄어들게 했을 것이다. 또한 그의 고령화와 함께 그도 카톨릭 내 권력에서 점점 멀어졌을 것이다.

 

한국에서 앞으로는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종교인은 없을 것 같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정치가든 뭐가 되었든 말이다. 암울한 지난 시대는 대중으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을 만들어냈지만 암울한 이 시대는 대중으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을 만들지 못할 것 같은 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더욱 슬프게 하는 이유인 듯하다(행여 이 말을 두고 '사람 중심의 사고'라며 '칫'한다면 그대는 바보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얘기 말고도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들은 많다. 교육과학기술부 뻘짓 사건과 진보신당 조직개편 논의는 정말 한국 사회 정치 수준을 보이는 표본처럼 보인다. <워낭소리>의 '이면'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생긴다. 좌파 일각에서 띄엄띄엄, 그러나 진지하게 혁명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것 두고도 하고픈 말들이 있다. 쟁점에 끼어들어서 누구 편을 들거나 하고픈게 아니고 다른 맥락에서 따져보는 것들이다.

 

할 일이 많으니 피곤하기도 하지만 맘도 바빠서 정리를 못하겠다. 다만 최근에 누군가의 블로그에 덧글 달았다가 '지적'받은 적이 있었는데(다 알겠지만 굳이 필명도 거론하지 않고 링크로 걸지 않은 이유는 논쟁을 만들기 싫어서이니 이해 바람), 이건 짧게 씨부리고 싶다. 약간 짜증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신파조로.

 

과학, 사회과학 좋아하는 사람 많다. 그런데 현실적인 구속력을 가진 법적용을 무시하면 그게 사회과학일 수 있을까? 부르조아의 법체계가 오직 자본의 운동으로만 만들어졌나? 만약 착취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만 벌어진다는 게 마르크스와 사회주의의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주장'이라면 마르크스와 사회주의는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아니면 착취라는 개념이, 그렇게밖에 쓸 수 없는 '고상한 개념'이라면 갈취라는 개념을 새로 만들든가.

 

 

결투 ②

 

말걸기님의 [결투 ①] 에 이어서.

 

 

 

등을 맞대고 섰다. 그의 등이 따뜻한 것은 내 등이 식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순간에는 냉정해야 하는 법이니까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었다. 저쪽에 듬성한 나뭇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었다. 돈을 받지도 않았는데 배심원을 노릇을 하고 있었다. 구경거리를 준 내가 그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감은 약속한 시간이 다 왔음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포기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나는 결코 그럴 수 없음을 통보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보석 세공업자는 시작을 알렸다.

“하나!”

나는 오른발을 옮겼다. 다섯에 오른발이 걸리도록.

지난 금요일이었던가. 아내는 오른쪽 발가락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두드리며 창가에 몸을 기댄 채 희미한 미소를 띠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의도했던 건 결코 아니었는데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였다. 그 소리에 아내의 그 표정은 흔적도 없어졌다. 나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와서 쓸데없는 외출이 잦아졌다느니 내 앞에서는 통 웃지도 않고 특히 내 눈을 피하고 있다느니 등등. 아내도 지지 않았다. 부엌에 빵이 떨어지지 않은 날이 있느냐고 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했고 아내가 그를 만나러 외출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그 그림이며 방금 전 그 미소며 전부 그가 준 걸 안다고 했다. 아내는 딸의 새 구두를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알고 있느냐고 했다. 언성이 높아졌다. 둘 다 흥분했고 결국 그녀는 있었던 일들을 잔인하리만큼 당당하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의 상세한 묘사는 나의 상상력 이상이었다. 그와 관계를 맺는 모습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녀가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모양, 머리에 기계를 씌운 모양을 떠올릴 뿐이었다.

“그는 내 몸에 손 한 번 대지 않는다구요!”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인 것 같았다. 지난주에 르몽드지에 실렸던 기사가 생각났다. 해외 토픽 기사였다. 동쪽 나라에 어떤 화쟁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림을 팔지 못해 가난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돈을 벌었다. 그의 아내는 대낮에도 남자들을 데리고 왔다. 그 화쟁이는 옆방에서 아내와 낯선 남자를 엿보기도 했다. 아내가 남자를 데리고 오기 전에 돈을 쥐어 주며 그를 내보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 화쟁이는 종일 술을 마시며 둘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둘”

나는 사뿐히 왼발을 앞으로 디뎠다. 오른손은 총을 가볍게 쥐고 어깨 높이까지 올렸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아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보이려 했다. 많은 관중을 상상했다.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손에 쥔 총에 눈을 고정시켰다. 한쪽 편에서 움직이는 건 경대 위의 표적에 불과했다.

나는 검은 턱시도와 중절모 차림이었다. 구두도 광을 내어 신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어울리는 망토도 잊지 않았다. 누구의 최후든 그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표정도 근엄하게 지었다. 나의 옷차림은 중후하면서도 깔끔했다. 최후를 위한 싸움이 쓰레기를 치우는 일과 같을 수는 없었다.

나의 아내를 설득하는 게 식은 죽 먹기와 같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일요일 아내는 외출을 했다. 그를 만날 거면서 아이는 왜 데리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맨정신으로 아내와 딸을 기다릴 수 없어 술을 마셨다. 잠이 들었었는데 아내와 딸이 들어오는 소리에 깼다. 딸은 피곤해 보였지만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를 보자 웃으면서 달려와 가슴에 안고 있는 인형을 보였다. 내가 선물했던 장난감들과는 달랐다. 과장된 눈과 다리를 가진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고양이 다와야 하는데 사실 그 인형은 고양이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그 모양이 너무 우스꽝스러웠지만 딸에게는 티를 내지 않았다. 딸은 자랑하면서 그 인형의 이름이 ‘가필드’라고 했다. 나는 그 이름이 낯설었다. 딸에게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느냐고 물었다. 딸은 그 인형 이름이 원래 ‘가필드’라고 했다. 이름을 짓는데 원래부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인형의 이름은 주인이 지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딸은 얼굴이 조금 일그러지면서 또 다시 그 인형의 이름은 ‘가필드’라고 했다. 나는 야단치듯 인형의 이름을 다시 지어 주라고 했다. 남이 지어 준 이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빤 아무것도 몰라! 얘는 ‘가필드’예요, ‘가필드’!”

딸은 엄마가 그랬듯이 소리를 질렀고 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언젠가 딸에게 읽어 주었던 동양의 옛날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홀아비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돈 때문에 딸을 바다 밑 괴물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 딸은 원망하기는커녕 키워 준 은혜를 잊지 않았다. 바닷속을 빠져나와 돈 많은 남편을 얻었고 아버지를 찾아가 평생 모시며 셋이서 풍요롭게 살았다.

“셋”

그의 차림은 상스럽기 짝이 없었다. 푸른색 바지에 엷은 미색 셔츠, 그 위에 긴 코트를 걸쳐 입고 있었다. 코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얇은 그 겉옷은 반질거리면서 붉은 빛을 냈다. 바람이 스쳤을 때 안감에 붙은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버버리’라고 씌어져 있었다. 그 사람 이름은 ‘버버리’가 아니었다. 빌려 입고 온 게 분명했다. 내가 상대를 잘못 짚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제 나의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가 자주 들른다는 클럽에 갔다. 그는 사람들을 둘러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학의 교수도 아닌 게 강의하는 투로 말을 했다. 그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말을 하고 있었는데 지구의 생명은 지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화성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먼 옛날 화성에서는 생명체들이 번성했었는데 화성에 혜성이 떨어졌다. 그 때 화성의 땅덩이 일부가 운석이 되어 지구에 튀었다. 혜성이 떨어진 화성은 그 충격으로 기상 변동이 심해 남아 있던 모든 생명체가 멸종했다. 화성에서 운석을 타고 생명체가 지구로 옮겨왔을 때 지구가 이제 막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과 산소로 덮인 건 다행이었다. 그는 그의 주장의 근거를 복잡한 운동법칙과 열역학, 화학식과 DNA 구조식, 그리고 최근 우주선에서 보낸 화성에 대한 자료에서 찾았다. 알아듣기 힘든 설명이었고 그는 그걸 노리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발견을 한 양 존경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중 하나가 대학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은 그라고 칭송했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했더라면 이런 이론은 세울 수 없었을 겁니다.”

나는 대학 문턱에는 가보지도 못한 놈이 건방진 소리나 한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중얼거렸지만 모두가 들은 모양이었다. 그에게 고정되었던 시선들이 내게 쏠렸다. 그는 앉아 있는 내 앞까지 다가와 섰다. 모두들 나와 그 사이에 벌어질 일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도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나와 그는 생명체 따위 얘기는 할 것도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는 당신에게 경고를 하러 왔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라 했다. 한참이나 서로 떠들었지만 결론은 없었다. 나는 장갑을 오른손에 쥐었다. 어제 같은 빙판길을 걸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았다. 클럽에서 집까지 길은 대부분 응달이었기 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빙판 뿐이었다.

“요즘 자네집은 추워서 잠자리도 설칠 판이라며?”

그에게 한 마디 하려고 일어서며 홱 돌아설 때 장갑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그의 어깨를 넘어 날아갔다. 지켜보던 모두가 그에게 장갑을 던졌다고 받아들였다. 이왕 던질 거라면 더 멋지게 그의 뺨을 명중할 수 있었는데 안타까왔다. 그 때 옆에서 눈치 보던 보석상 주인이 나섰다. 곧바로 모든 게 결정되었다. 네 시였다.

“넷”

주위가 침묵했다. 내 발자국 소리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숨 넘어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장도 멎어 있는 듯했다.

아내의 심장은 격하게 뛰고 있었다. 아내는 말리지 않았다.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래저래 설명할 필요도 못 느꼈다. 엄마의 어두운 표정 때문인지 딸은 겁을 먹고 있었다.

나는 얼마 안되는 전 재산을 털어 결투 비용으로 보석상 영감에게 주었고 벽에 걸려 있던 총을 꺼내 손질을 했다. 총들은 오랜 잠을 잤으면서도 따뜻했고 화약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하나는 아버지의 심장을 뚫었었고, 또 하나는 허공을 가르기 위해 총알을 뱉었었다. 하지만 난 어느 게 어느 건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오늘 확실히 알 수 있었는데 야만인이나 사냥하는 그의 총 때문에 틀려 버렸다.

“다섯”

나는 날렵하게 몸을 틀어서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났다.

2.

- 그는 내 몸에 손 한 번……

- 이건 포토예요……

- 아빤 아무것도 몰라……

- 어이 짤순이, 자네에게도……

- 요즘 자네집은……

총성은 가시고 나는 하늘을 보고 있다. 아까와는 다르게 파란 하늘이다. 배심원들이 저 멀리 날아가고 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볼거리가 없어서인가 보다. 베고 누운 것은 차갑고 단단하다. 귀 옆은 따뜻하고 질퍽하다. 손가락은 아직도 방아쇠를 힘껏 당기고 있다. 기억이 떠오른다.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내 손에 있던 총은 진동하지 않았다. 그는 예상보다 가까이 있었는데 양손에 총을 들고 있었다. 총성도 한 번이 아니었다. 저편엔 내팽겨진 크고 무거운 총들이 보인다. 이젠 가져갈 아이도 없는 총들. 지금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날 우리 아버지 얼굴에 닮아 있을까?


 

─── 끝 ───

 


 

결투 ①

 

1.

 

내가 그에게 장갑을 던진 건 어제 오후였다.

 

 

여긴 어릴 적 기억밖엔 없는 언덕인데도 와 본지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회색 하늘과 함께 으스스한 나무들은 소년 시절 경험한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아버지가 물려주신 한 쌍의 총을 가지고 왔다. 한 손으로 쏠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운 것들이었다. 열 발자국 내에서는 뭐든 맞힐 수 있는 총이었다.

 

그는 그의 사촌이 발명한 총을 가지고 왔다. 그의 사촌은 바다 건너 대륙에서 야만인을 사냥하기 위해 많은 총을 만들었다. 그의 사촌은 총으로 야만인을 사냥할 뿐 아니라 칼로 야만인의 머리 가죽도 벗겨 수집했다. 머리 벗기는 기술은 머리 가죽을 수없이 제공한 야만인들도 배워서 이제는 자기네들 기술인양 수선을 떠는 것에 그의 사촌은 분개하고 있었다. 언젠가 TV 화면에서 본 칼을 든 살인 청부업자의 표정을 떠올랐다.

 

결투를 진행할 사람은 아내의 집에서 몇 블록 건너 있는 보석상 주인이었다. 그는 길드에 속한 보석 세공 장인이기도 했고 한때는 도제도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거느리고 있었던 알부자였다. 그 때는 왕궁 사람들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의 가게는 명성이 아직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융성을 잊지 못한 귀족들만 찾아오는 곳이었다.

 

아내의 목걸이를 그 보석상에게 판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영감은 돈이 궁한 사람의 냄새를 잘 맡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투를 진행할 시간만큼 장사를 못한다기에 돈을 줘야만 했다. 첫눈으로 상대편 호주머니의 돈을 볼 수 있는 그 늙은이는 그가 부탁을 했을 때야 기꺼이 수락했다. 다른 증인도 없이 이 영감만 데리고 온 것이 왠지 석연치 않았지만 이런 일로 돈이 더 드는 것도 싫었다.

 

보석쟁이는 공평함을 위해서는 나와 그가 똑같은 총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가 가져온 총이 현대 과학의 혜택을 입은 첨단 기술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명중률이 내 것보다 뛰어나다고 했다. 콜트 45구경 권총은 다루기 쉽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보석상의 주장은 결국 결투는 한 번에 결판이 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가져온 총은 아버지의 것보다 훨씬 더 작고 가벼웠다. 나는 ‘총알’과 ‘화약’이 한데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 봤다. 그는 ‘총알’과 ‘화약’이란 말에 코웃음을 쳤다.

 

“‘탄두’와 ‘장약’이 분리되지 않았다고 해야지.”

 

보석상 주인은 내가 가져온 총은 제쳐 두고서 그가 가져온 총을 들고 나에게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괜한 짓을 한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들었다. 그 시간만큼의 돈은 아까왔다. 그 늙은이의 구차한 설명은 마치 화가의 명성 때문에 제값보다 돈을 더 얹어 지불하는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어느 날 외출했던 아내는 그림 한 점을 품고 들어 왔다. 아내는 언제나 볼 수 있게 경대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액자에 넣어진 그림이었는데 파리의 풍경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그림은 여태껏 보던 그림과는 좀 다른 데가 있었다. 선이 보이지 않았다. 천연색으로 그려진 그 그림에는 붓 자국도 연필 자국도 없었다. 색깔도 실제와 똑같았다. 파리에 가본 적은 물론 없었지만 그곳은 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내는 친구한테서 선물을 받았다고 했지만 아내의 친구들이나 친구의 남편들 중에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는 없었다. 내가 그 그림을 여기 저기 뜯어보며 신기한 그림이라고 했을 때 아내는 내 손에서 그림을 빼앗아 들고는 소리를 질렀다.

 

“이건 포토예요, 포토!”

 

아내는 나한테 이런 건 쳐다 볼 자격조차 없다고 했다. 나보고 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뭐냐고도 했다. 그녀의 과장되고 신경질적인 반응은 너무 엉뚱했다.

 

오래 전 그녀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처음 본 순간 나와의 결혼을 결심했었다. 내가 캔버스에 붓질을 할 때면 아내는 자기의 몸이 물든다고 했다. 그녀의 그런 반응은 언제나 나와 아내의 사이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나의 붓질에 관심이 없었고 얼마 후에 그 그림을 가져왔다. 그 그림은 사격 연습하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

 

 

보석상 영감은 이번은 사격 연습이 아니니까 각자 총을 직접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는 영감을 의심하는 것은 품위를 떨어뜨리는 짓이라며 손에 쥐면서도 총에는 눈길도 한 번 돌리지 않았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보석상으로부터 총을 건네받을 때에도 그의 눈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에게서 자신감 이상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게 뭔지 확실치는 않았다. 영감은 나와 그의 몸을 여기저기 살핀 다음 결투 방식을 설명했다. 등을 맞대고 서서 영감의 구령에 따라 다섯을 셀 동안 한 걸음씩 나아가다 다섯을 세는 순간 돌아서서 상대편을 쏘는 방식이었다. 너무나 흔한 방법이었고 경험은 없었지만 이런 장면을 천 번도 더 상상해 왔던 나로서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내의 인생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건 아내가 그를 만나고 다닌다는 사실을 소문으로 들었을 때였다. 아내가 하루가 멀다 쫓아다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시 외곽에 별채가 여럿 있는 큰 저택에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곳에는 그런 중세의 성 같은 집들이 꽤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도시인 이곳에 회사를 차려 놓고 보통 사람은 셀 수도 없는 많은 돈을 벌었다. 그곳까지는 지하철도 노선 버스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사실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이 두려울 만큼 부끄럽게 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곳에서 살 리가 없었다. 어쨌든 사람들을 피하는 그들의 수치스런 생활을 전혀 수치스러울 게 없는 내가 구경할 이유는 없었다.

 

 

지난 주 동네 술집에 갔을 때, 세탁소 친구가 그가 하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돈 세탁업자라 했다. 돈을 빨아 준다니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동전이야 문질러서 광을 내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만 지폐는 물만 묻혀도 냄새가 고약해지는데 그걸 빨아서 어쩌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전이든 지폐든 깨끗하게 닦았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 대가를 얼마나 지불할 지도 의문스러웠다. 그런 일로는 그는 부자일 수 없었다. 그는 실제로 백만장자가 아닐지도 몰랐다.

 

“어이 짤순이, 자네에게도 세탁하라고 돈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세탁소 친구는 화를 냈고 그날 심하게 다투었다. 어리석은 농담이었다.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돈을 세탁할 세탁소 주인은 없었다. 다음에 갔을 때 그는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등을 돌린 채 다른 사람들과 즐거운 척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었다.

 

 

─── 계속 ───

 

 

청산

 

'청산'에 대한 얘기를 또 하게 되었다. 이번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다. 여차저차 하여 Nikon DSLR과 그 친구들을 청산하기로 했다.

 

사진아카데미 수료전 준비가 끝나가고, 올해에 마감하는 사진공부도 다음주면 끝이다. 당분간은 꼭 해야 하는 사진 촬영이 없으니 12월 안에 Nikon 친구들 다수를 떠나보낼 생각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는 '갈아타기'를 하기로 했는데 새 물건은 Canon 신기종이 될 것이다. 이건 90% 돈벌이 때문이다. 개인 작업을 위해서라면 Canon으로 갈 것까지야 없지만 돈벌기 위해 거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빚'을 져서 투자하는 거지만...

 

중고시장에 내놓을 물건들은,

- D200과 몇 가지 부속품들

- 니콘105mm Macro

- 니콘28mm

- 시그마 10-20

- SB-800은 팔까 말까...

 

SLR 클럽에서 시세 알아보고 곧 팔아야지... 정 많이 든 아이들인데...

 

 

청산하고픈 관계

 

예전에는 이기적이면 나쁘다고 착각하고 살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게 자신을 위해서 좋다. 하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이란 피곤한 존재로 만든다. 결국 잘 살려면 '적당히 이기적'이어야 한다.

 

1.

 

얼마 전에 누구네 사무실엘 놀러 갔다. 그곳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에 왕창 인사하기 마련. 그 중, 말걸기는 그래도 좋게 지내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소원하게 구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컨디션 좋지 못한 날인가 여겼지만 방문할 때마다 그러길래 말걸기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나 싶었다. 적절한 때 얘기나 해봐야지 하면서도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있던 그날도 여전히 반가운 말 한 마디 없었다.

 

그런데... 한참 지나서야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말걸기에게 말을 붙였다. 나쁜 감정은 없어 보였다. 혼자서 괜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게로군... 추측이 빗나간 건 사실이었지만 내막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토록 여러 번 마주쳤어도 반가운 기색 한 번 없었다가 갑작스레 태도가 바뀐 이유는 돈이었다. 말걸기로서는 꽤 큰 돈을 쥐어주었다. 그 사람에게는 말걸기가 여전히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확인해 준 돈이었겠지만 그건 관계가 끝났다는 통보였다. 이제는 더 이상의 신뢰는 없다.

 

언제부턴가는 별로 이해관계도 없는 사이라서 친한 척 안 하다가 돈 때문에 잠시 친한 척 한 것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쩌면 진짜로 말걸기에게 서운하거나 불쾌한 일이 있어서 한 동안 냉랭했을 수도 있다. 그 감정은 숨기고 웃는 얼굴로 돈 달라고 했다면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2.

 

'적당히'를 넘어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엔 여러 종류가 있는 듯하다. 앞에서처럼 이해관계를 계산해서 방긋방긋 웃는 그런 이기심도 있지만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서 자기만 봐달라고 안달복달하는 이기심도 있다.

 

이해관계에 매달리는 사람이야 생까면 끝이다. 왜냐면 그 사람에게도 생까는 말걸기가 도움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관계를 청산된다. 하지만 자기만 봐달라고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사람은 쉽게 청산하지도 못한다.

 

말걸기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몇 있는데, 처음에는 진심으로 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아픈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다.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서 주변 사람에게 인정과 사랑을 사정없이 요구한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는 서로가 서로를 향한 게 아니다. 일방적인 요구이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할 틈이 없다. 상대의 눈치를 살피기도 하지만 그건 자기 목적만을 위한 것이다. 이건 확실히 병이다.

 

아픈 사람들에게 한참을 괴롭힘 당했다. 이들이 말걸기를 괴롭힌 이유는 하나다. 친절함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친절함은 더 큰 친절과 인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친절함이 바닥났다. 더 이상은 없다.

 

그들에게 아픈 마음을 치유할 것을 여러 번 조언했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말걸기에게는 그들을 치유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책임도 없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온전히 그들 책임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그들은 아픈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나쁜 사람들이기도 하다.

 

말걸기도 이들에게는 이기적으로 굴기로 했다. 그들은 확실히 말걸기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이들이니 생까기로 했다. 말걸기가 그들을 버린 이유를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 마음의 병이 깊어서 자기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정받고 싶어지면 말걸기를 또 다시 괴롭힐 것이다. 아마도 자꾸 그러면 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말걸기에게서 멀어지게 할 지도 모르겠다.

 

3.

 

사람이 어느 정도로 이기적이어야 적당한 건지는 모르겠다.

 

공동의 이익을 찾아서 노력하는 건 훌륭한 미덕이자 바람직한 사회를 위한 전략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거나 공동의 이익에 관심이 없는 자에게 배려를 베푸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모든 인간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서로 따뜻한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주변의 이기적이기만 한 인간들에 치이다 보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음흉해질까 두렵다.

 

 

 

 

쓰지 않는 이유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권유' 때문이어서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다 블로그에 들락거리며 지내 보니 블로거들이 서로의 글을 은근히 많이 본다는 것을 알았다. 말걸기가 하고픈 말을 전하게 되는 효과도 있고 다른 이들의 생각이나 감정을 엿볼 수 있어서 좋다. 게다가 지극히 사적인 글에서부터 무척 선동적인 글까지 다양하게 공존하는 면도 재밌다.

 

(다른 블로그는 사용해 보지 않아서 제대로 비교가 될까마는) 진보블로그에서는 블로거가 맘만 먹으면 대부분의 글을 읽을 수도 있는 규모라서 조금만 부지런하면 이미지로 형상화가 될 만큼 익숙해지는 블로거들을 많이 알게 된다. 가끔은 한 다리 건너면 '신원'도 파악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쟁점이나 갈등도 만들어진다. 독특한 동네라서 정도 간다.

 

반면, 블로거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의 밀도가 높아, 쉽게 말하자면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생판 모르고 알 필요도 없는 동네라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은 톤으로 마구 질러도 되겠지만 진보블로그에서 이는 이려운 일이다. 이런 부담은 종종 글쓰기의 어려움이나 동기 감소로 이어지기도 한다. 갈등이 다른 블로거에 대한 '기대감'이나 '신뢰' 때문에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말걸기가 게을러서 지나쳐 버린 이야깃거리가 많이 있지만 글을 쓰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주변의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만 여기서는 여자가 아니라서 침묵하기도 한다. 경험하지 못한 바에 대해서 나서는 것도 별로다. 말걸기가 느낌이나 감정,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한다고 확신할 수 없어서 조용히 있다.

 

이와 함께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대단히 정의롭고 평등의식에 가득한 '깬 사람'인 척 보이는 게 싫다. 사실은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싫다. 왜냐면 말걸기도 어떤 종류이건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갈등이 싫어서이다. 진보블로그에 올라오는 글 중에는 좌파를 가장한, 평등을 가장한 끔찍한 생각을 담은 것들이 가끔 있다. 말걸기가 보기에는 어처구니 없는 '꼴통의 소리'이지만 그것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면 시끄러워질 것 같아 침묵한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비겁하다 할 지 모르나 예전과는 달리 집중력을 가지고 끝까지 논쟁할 수 있는 정력이 쇠락해서 책임질 수 없는 문제 제기, 혹은 넋두리가 될 게 뻔해 초장에 침묵한다. 또 다른 면에서는 전혀 필요치 않은 논쟁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짜증스러워서 주변 사람에게만 투덜거리고 말기도 한다. 이를 테면 침묵하면 안된다느니, 소통을 해야 옳다느니 하면서 윤리적 태도를 보이는 글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이 경우가 가장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괜한 짓의 끝

 

파란꼬리[괜한 짓을 했다]에 관련된 글.

 

 

파란꼬리가 만만한 줄 알고 꺼내버린 500 조각짜리 퍼즐.

하루만에 모두 맞추었다.

 

파란꼬리는 다시는 퍼즐을 하지 않겠단다.

괴롭긴 하지만 그래도 할만 했는데...

 

아래는 파란꼬리가 마지막 조각을 맞추는 장면.


 

옥루몽는 잘난 놈 하나가 남의 나라 묵사발 낸 후 

여러 여자를 옆에 두고 돈과 권력으로 떵떵거리며 산다는 얘긴데...

그런 꿈이나 꾸던 놈이 썼겠지...

 

아래는 맞춘 퍼즐 크게.

라이트를 썼기 때문에 네모반듯하게 찍을 수는 없었다.

 

 

 

머릿속이 맴맴

 

꽤 오래 전부터 이러쿵저러쿵 떠들고 싶었던 얘기들이 여럿 있다. 멀리는 지난 총선 때 말걸기가 '사기공약'이라 불렀던 심상정의 교육공약부터 시작한다. 어쩌면 그 전부터 있던 일일지도 모른다. 촛불집회를 두고 '식자들'이 하는 얘기들이 가관이라 따지고 싶은 맘도 굴뚝같다. 최근에는 교육감 선거에 대한 생각도 맴맴거린다. 그리고 진보블로그의 최대 갈등인 '엄마'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도 할 말이 생긴다.

 

그런데...

 

귀찮아 죽겠다. 이 귀찮음은 기본적으로 게으른 천성에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귀찮아서 떠들지 못하겠는 하나의 이유는 집안일이다. 날도 더워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맥이 빠진다. 최근에 부지런을 떨었더니 이런다. 아침에 일어나면 계속 무언가 일을 한다. 물론 지쳐서 축 늘어져 쉬기도 한다. 어쨌든 열심히 일해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쌓여 있다. 일거리들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잡다한 일거리들은 한둘이 아니다. 해결되지 않은, 결코 끝나지 않을 집안일들은, 하면 할수록 늘어가기만 하는데 이 때문에 지쳐 있다.

 

더욱 암담한 자기진단 중에 하나는 "과연 말걸기가 열정을 불태웠던 시절은 있었는가?"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조건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6년 간의 열정이 좌절로 되돌아 왔던 상처가 인간을 이렇게 오래도록 괴롭힌다.

 

 

사기공약이나 촛불집회, 교육감 선거나 엄마 얘기들은 그 자체로 모두 가볍지 않은 주제들이다. 그런데 말걸기에게는 가볍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무척 무겁게 느껴진다. 이들을 둘러싼 주장들과 감성들이 한국 진보의 어처구니 없는 한계, 그러니까 자기 목적 상실, 열등감, 안일함, 국가주의나 도덕주의 따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주제들은, 특히 심각성을 느낀다면, 공들여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심상정이 내세운 이범은 알고 보니 극우들과 교육이념이 통하네, 촛불집회는 애초에 우익과 우익의 싸움이었는데, 교육의 정점은 교육과정인데 이게 뭔지 모르니 교육자치고 입시고 헛다리 짚고들 있지, 글은 어쩔 수 없이 그 글 속의 맥락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데 자기 의도만 강조한다고 글이 달라질까 따위까지로만 정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 생각의 시작은 단순하다. 몇 개의 토막들이 가지를 쳐서 정리가 잘 되면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글로 완성된다.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생각을 정리해서 남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앞서 언급된 주제들은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야 전달도 제대로 될 것들이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건, 그것을 글로 쓴다는 건 노력이 많이 든다. 에너지를 한 바가지 퍼다가 머릿속을 쥐어 쨔야 한다. 사적인 감성이나 일상을 표현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글 속의 맥락에 주의해야 한다. 몸이 지쳐 있어 이렇게는 글을 못 쓰겠다. 문득문득 생각의 조각들이 툭툭 터져 나오는데 정리가 안 된다. 머릿속이 맴맴거린다. 스스로도 참으로 갑갑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거리들 때문에 한숨을 쉬고 골이 난다. 화가 난 모습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데 이유는 무엇일까 스스로도 궁금하다. 아마도 한국 진보의 어처구니 없음의 한가운데에서 일하며 이에 기여함과 동시에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인 것 같긴 하다. 열정이 사라지는 이유는 지난날의 괴로움을 떠올리기 싫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모순되게도, 그렇게 괴로우면 일관되게 무시하면 될 걸 자꾸 쳐다보고 분석하고 할 말을 만든다. 이게 자학인지 미련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쳐서 정리 안 되는 머릿속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고사리죽

 

엄니한테서 고사리를 얻어 온 지 한참이나 지났다.

어젯밤에 파란꼬리가 고사리나물을 해달라며 마른 고사리를 물에 담갔다.

하루가 지나 말걸기가 나물 반찬 하나 만들겠다며 삶았는데...

압력솥에 푹 삶았더니 고사리가 갈기갈기 문드러졌다.

이거 완전 고사리죽이다.

그래도 양념에 무친 후 볶았다.

음... 이건 아무데서나 볼 수 없는 고사리볶음...

 

 

맛이 약간 쓰다.

고사리 물을 제대로 빼지 않아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