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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 한 가지에 빠지게 되면 어제처럼 사고를 치게 된다.

어디에도 발을 딛지 말아야 이 시간을 지날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살피는 일도, 그 감정을 발산하는 일도 금지사항이다.

 

어제는 학교에 갔고

수업이 끝난 후

회의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남았는데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는 길에

반납할 책이 너무 많아서

노트북을 두고 온 것을 발견했다.

내게는 마감을 넘긴 두 개의 원고가 있었고

어떻게든 글을 써야 했으므로

주차장의 차 안에 들어있는 노트북을 다시 가지러 가야했다.

그런데 그게 너무 싫었다.

그래도 힘을 내서 가야지, 하면서 도서관 5층으로 올라가는데

(도서관 5층의 통로를 따라 옆건물로 가서 지하로 내려가야 내 차를 만날 수 있으니까)

5층에서 영화를 했다.

학교에서는 수요일마다 영화를 한다.

요즘 시간 가는 줄을 몰라서

27일에 상영하는 <밤은 길어 아가씨야>인 줄 알고 극장에 들어갔다.

내가 알기로는 그런 제목의 영화는 일본 영화였는데

다이엘 데이 루이스가 나와서

<밤은 길어 아가씨야>가 일본영화가 아니었나, 하면서 영화를 봄.

나는 영화는 못봤지만 <밤은 길어 아가씨야>를 책으로 읽었기에 당연히 일본영화인 줄.

다 보고 나서 밖으로 나와 배너를 확인해보니 <팬텀 스레드>였다.

 

자기애가 철저한 남자가 있다. 이름은 에드워드 우드콕.

남자는 사랑에 빠지지만 자기 패턴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같이 사랑했다가 여자들은 사랑을 구걸하다가 떠났다.(이건 내가 추측한 전사)

 

알마와 에드워드는 첫만남에서 사랑에 빠지고

에드워드의 작업실이자 집에서 같이 살게 되지만

에드워드는 자기가 중요하고 자기애가 대단하하고 자기 생활의 질서가 중요한 사람.

그래서 각방을 쓰고, 알마는 늘 에드워드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사랑.

 

그런데 알마는 기다리지만은 않는다.

독버섯을 먹여서 에드워드가 자신을 필요로 하게 만들고

독버섯을 먹고 죽다 살아난 에드워드는 알마에게 청혼을.

하지만 곧 너무 다른 알마와

알마 때문에 흐트러진 삶의 패턴 때문에 짜증이 나고

상처주는 말을 하는데.

알마는 떠나지 않고

다시 한 번 독버섯을 먹임.

 

참 이상한 영화였는데

남편 생각이 났다.

남편은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내 말을 듣는다.

남편은 지금 독버섯을 먹은 상태인 듯.

독버섯을 먹은 에드워드가 알마를 애타게 구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잃고 몰락한 남편은

나에게 애타게 사랑과 관심을 구하는 중.

 

영화는 또 남편 생각을 나게 했는데

식탁에서 버터를 바르고 차를 마시면서

알마가 내는 소리를

에드워드는 못 견뎌 한다.

나도 남편의 신체가 내는 소리를 못 견디는데

그렇다고 에드워드처럼 불평을 말하지는 못한다.

 

아버지는 밥상머리에서 소리를 내지 말 것을 명했고

그래서 나는 밥도, 국도, 면도 조용조용히 먹는다.

재채기는 입을 가려야하고

한숨은 가능하면 조용히 내쉰다.

........

재채기를 크게 하고

쩝쩝거리면서 뭔가를 먹는 남편을

견디는 게 힘들다.

하지만 그렇게 자란 이에게

요구를 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다만 내 아이들에게

식사예절을 알려줄 뿐.

 

우아한 영화를 보고

이렇게 비루한 회고를 하다니

요즘 내 멘탈은 최악.

연기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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