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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

봉천동에서 지내던 분들과 마을모임을 했다.

주1회 생활나눔까지 하는 긴밀한 모임이었는데

같이 있던 S가 "왜 우리가 같이 지낼 때 이런 걸 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시점은 현재가 되었다.

꿈은 가끔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나를 데려가는데

2000년 초반, S는 공부방교사였고 나는 일년에 한 번 하는 열린교육에

강사로 참여하곤 했었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아마도 비슷한 분쟁을 겪었을 것이며

S는 이혼을 해서 지금은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다.

지금은 페북에서만 매일 교류하는데

봉천동 시절에도 나는 사무실 동료들하고만 놀았고

S와는 가끔 마을잔치에서 인사하는 정도의 교류만 했었다.

 

그래서인지 꿈 속에서 S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왜 우리는 우리가 같이 지낼 때 이런 걸 하지 않았을까요?"

S는 지금 수원에서 지내고 나는 강화에서 지낸다.

그리고 매일 페북에서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에 대한 불안을 얘기했을 때

S 또한 결과가 안좋아서 자는 어린아들의 작은 등을 보며 울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S도, 나도, 낯을 무진장 가리는 사람들이라

현실에서는 적당한 웃음과 적당한 사교술(?) 같은 걸로

적당하게 스쳐지나가며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고

페북에서나 어떤 계기를 만나서 '아 당신도 나랑 비슷한 무늬를 가졌구나' 하면서

한걸음 가까워지는 거다.

 

어쨌거나 꿈 속에서 나는 전혀 망설임없이

"대학시절에 NL들이 자주적 학생회 말하면서

이런 생활문화소조 얘기했던 게 너무 싫었거든요"

라는 말을 한다.

예전에 편집장 형이 "니 뇌를 들여다보고 싶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나도 가끔은 내 뇌를 들여다보고 싶음.

 

아무튼 꿈 속 나는 NL을 싫어해서

유용한 모임을 할 수 있었는데도 좋은 시절 다 놓치고

이제사 해보자고 하는 거고

봉천동 시절 공부방 같은 방에 모여서

S, 나, 남편,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그러나 앞으로 친밀하게 지낼 사람들은

앞으로 우리 모임을 어떻게 잘 꾸려갈까에 대해서 논의를 했다.

 

그리고 여행계획을 잡았는데

인도차이나의 다낭에 가는 여정을 잡는데

지도에서 인천, 키예프, 인도차이나, 다낭, 뭐 이런 도시들을 선으로 이어가면서

(인도차이나는 도시 이름이 아닌데 꿈 속에서는 도시였어)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인천에서 다낭으로 직접 가면 시간이 12시간이나 걸리는데

모스크바를 거쳐가면 4시간 밖에 안 걸려요"

라는 말을 해서

아, 그럼 모스크바에서 언니랑 좀 놀다가 다낭으로 가면 되겠다,

하며 좋아하다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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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작품 상영회가 있었고 딸과 함께 갔다.

나는 우리 과 학생들과 교류하지 않는다.

과모임에도 가지 않고 뭐 그렇다.

2009년 처음 수업을 할 때에는 뭣도 모르고 그냥 좋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관계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그냥 꼭 필요한 교류만 한다.

한 해에 졸업하는 학생들 중에 나를 선택한 학생들의 얼굴만 아는 시간.

올해에는 나와 인연을 맺었던 학생들의 졸업이 많았고

그래서 크레딧 Thanks to에 내 이름이 자주 나왔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딸은 나에 대한 호감을 표명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아는 playlist를 가동시켰다.

딸은 차를 타면 늘 자기의 노래를 트는데

그래서 어릴 때에는 딸을 위한 컴필레이션 cd가 늘 차에 있었다.

이제는 멜론을 들으니 내 수고가 줄었다.

잔디처럼, 웨이백홈, 오랜밤, 그리고 제목은 잘 모르겠는 자이언티의 노래들.

그래서 내가 "그럴 필요 없으니까 니 노래 들어"라고 했고

딸은 "그냥 옛날 노래 들으면 그 때 생각이 나" 하면서

같이 갔던 방콕여행 이야기를 했다.

여행 마지막 날 갔었던 재즈바가 너무 좋았고 연주가 좋아서 녹음을 했었다는 얘기,

그런데 핸드폰을 변기에 빠뜨려서 더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그 연주곡 얘기를 했다.

내가 촬영을 했으니 괜찮아

했는데 딸은 말했다.

"아닐걸. 내가 녹음했던 음악 사이에는

'맛있니?', '맛있어?'하고 물어보는 엄마 목소리가 들어있어. "

 

다시 여행가고 싶다...

라고 말한 후 우리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그냥 노래를  따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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