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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차함을 견디는

얼마 전 '문학의 집' 강연에서 좌장으로 함께 참석했던 시인 김혜순 선생이

강연에 대한 감상이랄지 소회랄지를 썼는데 참 통쾌하게 읽었답니다.

엉뚱한 데서 쓸데없이 서성대지 말고 빨리 당신 자리로,

당신의 길로 돌아와라 하는 소리로, 좀 너절하고 구차하기까지 한 내 눌변에

일침을 가한 것이었는데 아플 것이 겁이 나서 정작 본인은 손을 못 대는 상처를

뜯어내준 것 같은 쓰라림과 후련함을 맛보았지요.

 

글 못 쓰는 변명이 날로 교활해지고 구차해지는 제게 더 이상 그런 소리를 못 하게

"우리는 그것이 싫다. 작가는 전적으로 해탈하지도 승화하지도 않는 사람이 아닌가.

작가란 구차함을 견디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작가에게 타락하고 그 구차함을 견디라고 말하고 싶다."

라고 한마디 따끔하게 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들이 그러하듯 생활도 문학도 닻이자 덫일진대 그것을 알면서도

비생산적인 강박증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되돌아보아집니다.

어떠한 일이든 성취든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망하는 자, 구하는 자의 몫이

아니던가요. 특히나 문학은, 문학 하는 행위는 비정하고 엄혹한 것이어서 그것에

장애가 되는 어떤 문제도 구실도 남루한 변명에 지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오정희, 내 마음의 무늬 중 필담2

 

오랜만에 '직접' 촬영을 했다.

예전에 변영주감독은 '일어날 일은 다시 일어난다'라는 생각으로 등장인물들과 시간을

보냈고 결국 <낮은 목소리2>의 촬영기간은 한달 정도밖에 안되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하고 큰 깨달음을 얻은 듯 그 얘기를 전하니 김동원감독은

"그 말도 맞지만 너무 기대지 말아라. 어떤 경우엔 그 생각이 바로 독약이 된단다"

라며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했었다. 그게 99년의 일이다.

 

지난 2년의 시간이 마치 꿈결같다.

나는 매번 '이 순간을 꼭 찍어야지, 다음 번엔.' 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다.

뭔가 안 풀리는 문제라고 붙들고 있는 것도

사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 순간이 너무 죄스러워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건 아닌지.

지아장커는 신디2008에 와서 마스터클래스를 하고 갔고

나는 그 현장을 지면으로 대하면서 시간을 내서라도 갔어야하는데

뒤늦게 후회한다.찰나는 항상 그런 식으로 휙! 지나가버린다.

 


이 가을에 촬영을 해야만 내년에 편집을 할 수 있다.

이 가을에 촬영을 하려면 가구성안을 튼실하게 짜야만 한다.

내게 8시간만 통으로 허락된다면, 그러면 할 수 있을 것같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8시간이 통으로 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4시간 만이라도 통으로 난다면 그 시간의 마디를 이어이어서

지금 선 자리를 가늠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그릴텐데.

나를 알아주는 믿음직스런 촬영감독이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잡힐 듯 섬세하게 들려주면 된다.

 

그렇게 이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나면

내년 봄, 나는 아기를 맡기고 편집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이다.

월요일에는 어린이집에 가서 앵두를 대기자명단에 올려놓았다.

정원 10명은 벌써 다 찼다고 한다.

내년 3월 모집인데도 모두들 벌써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언제쯤 자리가 날지 모르지만 내년 3월에 행운이 찾아오기를.

 

마음에 여유가 있을 때에는 이런 저런 생각을 뒤져보며 할 수 있지만

여유가 없으면 우는 아기도 짜증스럽다.

아니, 아기에 대해서만은 연민 같은 것이 솟고

이런 상황에 처하게 한 남편에 대한 분노같은 게 활활 타오른다.

그 불꽃은 또 금방 사그러들어 결국 어스름 저녁이 되어서 큰애들이 돌아오면

모두에 대한 연민 같은 감정에만 깊이 잠긴다.

일주일째 남편은 아프다. 

겨우 일주일 뿐인데도 아픈 남편을 두고 집나가는 아내의 심정을 알것같다.

그래도 평상시 남편은 최선을 다했기에 그 노력을 알기에 나는 도망가지 않을 것같다.

그래도 모르지. 이런 시간이 몇 년이 지속이 된다면..... 말이다.

이 시간을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가는 과정으로 보는 게 좋을 것같다.

 

아래층에 사는 어떤 분이 계속 눈에 걸린다.

50몇평에서 살다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쫄딱 망해서 이 곳에 들어왔다는 그녀는

남편은 도망가고 시누이집에 얹혀살다 쫓겨나서 두아이와 함께 이 곳에 왔다고 한다.

아래층 17개 방 중에 한 곳에 살려고 그녀가 이사온 날, 집앞은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50몇평 살림을 3~4평 방 한 칸에 넣을 수 없어서 몽땅 버려야했던 그녀를 보면

사람일은 모른다, 뭐 그런 생각도 들고 더 진하게 내 앞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침마다 곱게 화장을 하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선그라스를 낀채

두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차를 기다리는 그녀를 보노라면

"나는 당신들과 달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온 몸으로 주장하는 듯하다. 나는 그녀를 외면하고 싶다.

 

한달 전쯤, 옥상에 빨래를 널러 가려는데 옥상 들어가는 층계참에

반짝이는 손톱이 달린 손이 쑥 나와있었다.

깜짝 놀라서 들여다보니 어떤 여자애가 자고 있었다.

재혼한 아빠가 3년만 나가있으라고 해서 떠돈다는 그 애는

원래 우리 옆집 청소년그룹홈에 들어왔다가 그애 말로는 '텃세가 심해서'

나왔다고 한다. 갈 데가 없어서 잘 데가 없는 날은 거기서 자는 거다.

 

그리고 또 어떤 날은 집앞에 14살 남자아이가 서있었다고도 한다.

그 날 남편은 1층에서 미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집에서는 나와 세 아이가 놀고 있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남편은 대문 앞에 서있는 그애를 보았다고 한다.

밥은 먹었다고 해서 돌려보냈다고 하는데.

그날 그 얘기를 듣는데 소름이 쫙 돋았다.

 

푸른영상에 정기적으로 힘든 아저씨들이 찾아오셔서 1~2천원씩 받아가시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오시는데 다들 얼굴이 다르다.

우리들은 어느 날 "여기 소문났나 봐~" 하는 농담을 했었는데...)

우리 집과 옥상도 그렇게 소문난 건가? 조금 무섭다.

그애는 3층에서 살다가 독립해서 나간 한부모가정의 아이였다고 한다.

독립을 했으나 엄마는 알코홀릭이었고 아이는 방치되어 떠도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단다.

청소년 단기 쉼터는 싫어라하고

장기쉼터(그룹홈)도 역시나 싫어라하고

그래서 그렇게 씻지도 못한 채 거리를 떠돈다.

공부방 아이들과 미디어교육을 하기로 했는데

그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하려는 일들이, 모든 일들이 사치같다.

 

이제 추석 연휴가 시작되고

사무실 동료들은 활동비도 없이 고향에 내려갔다. '

풍성한 추석,이라는 말은 최소한 내 이웃, 내 동료들의 처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도 모쪼록 풍성한 추석이 되길.

잊었던 얼굴들을 만나고 사는 이야기 나누면서

함께 마음 나눌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도 가슴 따뜻해지는 그런 시간이 되길.

 

옥상에서 자던 여학생은 남편과 한 심리상담사의 노력으로

새로운 쉼터에 적응을 시작해보겠다고 결심을 했다 하고

우리 집 앞에 서있던 남자애는 장애인센터 선생님 한 분이

(아들이 그애와 동갑이라며 너무 마음아파하시던.....)

시골의 할아버지께 데려다주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 걷는 길이 어둡고 팍팍할 지라도 모퉁이 돌다 보면

불빛 하나 기다릴 수도 있는 거고

뭐 여전히 길은 평탄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런 작은 만남에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그 사실에 잠깐 편안해지고 싶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거나

세상이 왜 이 모양이야, 라고 한탄하는 일은 안할 생각이다.

나는 그저 아이들을 키우고 내 일상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쓴다.

만남과 사연들을 새롭게 받아들이려고

찰나의 그 감정들을 카메라로, 혹은 글로 담아두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싶다.

내가 만나는 한 사람, 내 영화를 보는 한 사람, 내 글을 읽는 한 사람

그 한 사람과 마음을 나누도록 노력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카메라도 털고 닦고 있고

블로그도 열심히 꾸며보려 한다.

굿 휴가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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