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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깡?

하늘이 데리러 공부방에 갔더니 공부방 선생님께서

"하늘이는 용돈 없어요?" 물으신다.

원래는 일주일에 500원씩 주기로 했지만 피차 잊어버리고 있던 차였고

지갑에 500원이 있긴 하지만 하늘이는 지갑을 안가지고 다닌다.

 

수요일엔 3학년 언니들도 4교시라서 모두들 모여서 함께 공부방으로 가는데

그렇게 모이면 곧장 마을버스를 타는 게 아니라 문방구도 들르고 놀면서 온다 한다.

네 명의 아이들이 문방구에 들렀는데 모두들 뭔가를 하나씩 사는데 돈이 없었던 하늘,

천원을 가진 같은 학년 아이에게 자기가 버스카드를 대신 찍어줄테니 

천원짜리 은행놀이를 같이 사자고 했다고 한다.

문제는 공부방에 돌아와서 함께 놀 때 일어났다.

그애는 자기 거라고 그러고 하늘은 자기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을 했는데

결국 공부방 선생님의 중재로 은행놀이는 그냥 그애거로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공부방 선생님은 하늘에게도 용돈을 주라고 하셨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건 용돈 문제가 아니다.

용돈 천원을 줘도 2천원짜리 물건을 갖고 싶을 수도 있는 거니까.

자기가 가진 돈과 욕망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

그런 것과 관련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앞서서 버스카드도 문제였다.

 

하늘이가 어떻게 카드깡 같은 행동을 생각하게 되었을까는 쉽게 이해가 되는데

하늘이 어느날 "엄마, S가 돈이 없어서 내가 대신 찍어줬다? 나 착하지~"하고 묻길래

그래, 잘했다 칭찬을 해주었다.

또 어느 날은 버스카드로 공중전화 거는 법을 가르쳤는데 또 며칠 후에

S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한다고 해서 버스카드를 쓰게 해주었다고 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버스카드는 그냥 고마운 만능 카드 이상은 아니었던 것같다.

그러다 공부방 언니 한 명이 버스비가 없어서 그 날도 대신 카드를 찍어줬는데

그 언니네 엄마가 그 얘기를 듣고 버스비 300원을 하늘에게 주셨다.

아마도 하늘은 그 때 처음으로 버스카드가 돈으로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 것같다.

 

 

 

 

카드깡 사건이 있던 날, 저녁밥먹는 자리에서 하늘이 말하기를

"오늘 S엄마가 나보고 앞으로 S 버스비 내주지 말래. 돈 없으면 버스아저씨한테

 다음에 준다고 하면 되니까 나보고 하지 말래"

이건 또 다른 사건인 것같았다. 아무튼 이래저래 버스카드와 관련해서 정리한 건

1. 비상금 1,500원을 지갑에 넣어서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기 

2. 만약 문방구에 갔는데 갖고 싶은 것이 비쌀 때에는 나중에 엄마 아빠에게 말하기

3. 버스카드는 앞으로 하늘 혼자만 쓰기.

 

이 정도였다.

세번째에 대해서 하늘이 이의를 제기했다.

하늘 -친구가 돈이 없는데 대신 버스카드 찍어주는 건 착한 일 아니야?"

우리들-버스를 탈 계획이었으면 버스비를 준비하는 것도 배워야하는 일이야.

          정 버스비가 없으면 걸어갈 수도 있는 거거든.

 

하늘-S는 돈이 자주 없는데 어떻게 해?

우리들-특히 S와 관련해서 그래. S엄마가 그렇게 말을 했으면

           걔네 엄마 말을 따라야해.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좋은 게 아냐.

           또 네가 괜히 버스비 내주면 S가 엄마한테 혼날 수도 있어. 그러니 니거만 내.

 

100% 이해한 것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정리.

 

사실 이런 정리가 쉽지는 않다.

우리 집 가훈은(가훈 정하기가 숙제다... ^^;) '서로 돕고 살기'이다.

남에게 피해주지 말기와 더불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니 것, 내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돕고 산다는 것의 의미는

생활 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공부방 언니 H는 자주 버스비가 없다.

그런데 그 이유가 얘네 집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버스비를 다른 데 쓰기 때문이다.

다른 데 쓰고 버스카드 가진 하늘에게 부탁하면 '서로 돕기 살기'가 가훈인 이 아이는

기뻐하며 버스카드를 찍어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자랑하는 것이다.

공부방 친구 S의 버스비도 하늘이 자주 내 줬다.

이 얘는 신변처리를 잘 못하는 애라서 돈을 자주 흘린다.

혹은 이 아이의 엄마가 바빠서 돈 챙기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나는 S의 엄마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얽힐 때마다 솔직히 답답하다.

내가 일주일에 사흘씩 두 아이를 책임질 때엔 1년 동안 데리고 다닐 것처럼 얘기하더니

자기 아이가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 되자 예행연습 없이 그냥 아이를 혼자 다니게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마을버스를 탔더니 S가 가방이 열린 채로 입구 쪽에 서있었다.

공부방은 종점인데 타자마자 내릴사람처럼 입구 쪽에 딱 버티고 서있는 거다.

 

불안해서 그런 것같은데 지나가는 아주머니들 마다

"얘는 가방이 다 열려서 어떡하냐.."하면서 밀치고 내리셨다.

불러서 의자에 앉히기까지는 했는데 그 이상은 내 몫이 아니니 별 말은 안했다.

그냥 그 날 공부방 선생님한테 그 애기를 전했을 뿐이다.

공부방 선생님은 "어린 애가 얼마나 힘들겠어요.."하셨지만

그건 걔네 부모가 알아서 할 문제이지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너무 매정한 듯 싶지만 어설픈 참견은 서로에게 안좋은 영향만 미친다는 것을

지난 한 학기 동안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어제 하늘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

그동안 밥 일찍 먹어서 일찍 나오더니 어제 또 청소란다.

아무튼 오래 기다려서 하늘이 나와서 안아주는데

S가 나를 보더니

"우리 엄마가 오늘 나보고 기다리라고 했는지 혼자 오라고 했는지 모르겠다"며

엄마한테 전화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공중전화로 전화해. 내가 봐줄께"라고 했더니 버스카드가 없단다.

동전을 넣고 전화하는 법을 알려줬더니 S는 통화후 엄마가 온다고 좋아하며 뛰어갔다.

 

운동장에서 우연히 그 애의 엄마를 만나서 공중전화 쓰는 법을 알려줬다고 했더니

자기 딸을 보며 "앞으로 그렇게 전화하면 되겠네" 한다.

별로 말 섞고 싶지 않아 얼른 버스정류장으로 갔는데 하늘 친구 둘이 나한테 온다.

날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오던 그애들은 나보고 "슬러쉬 주세요" 한다.

내가 "나 슬러쉬 없어." 했더니 맞은 편 가게를 가리키며 "저기 있잖아요~!" 한다.

너무 더워서 슬러쉬를 사 달라는 얘기인 것같았다.

사줄까 말까 망설였지만 결국 그냥 보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하늘에게

"누군가 너한테 아이스크림을 사줄 수도 있겠지만 니가 먼저 사주세요~ 하지는 마"

했더니 "왜 그러면 안돼?" 하고 묻는다.

사실 낮에 일을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다시 꺼낸 것은

1학기 때 하늘이 어떤 엄마에게 "아이스크림 사주세요"라고 했다는 걸 들어서였다.

그 때 그러지 말라고 얘기했었는데 오늘 현장에 함께 있었으니 짚어야할 것같았다.

하늘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남편은 또다시 예의에 대해서, 욕구에 대해서 다시 얘기를 했던 것같다.

하늘이 또 얼마만큼 이해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린 서로 많이 배운다.

 

요즘 가장 많이 느끼는 건 씩씩이 어린이집 시절이 그립다는 것이다.

씩씩이어린이집이 없어지지 않았어도 다 자란 하늘은 다시 거기 갈 수는 없겠지만 

뜻과 마음이 맞는 부모와 선생님들이 섬세하게 사건들을 나누며

서로를 자라게 했던 그 시간과 공간이 참 그립다.

아이들은 자란다. 하지만 그냥 착하게 순탄하게 부드럽게만 자라지 않는다.

때로는 미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뒤통수도 치면서 그렇게 자란다.

 

씩씩이 시절엔 그런 모습들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함께 조언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그런 신뢰관계가 가능했던건 모두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기때문이다.

최선을 다했다는 게 단지 시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이 맞벌이부부였고 다들 자기 일이 있었다.

아이를 맡기는 시간동안 이모들에게 감사했고 아이들의 성장에 대해서

문제에 대해서 사건 사고에 대해서 서로 교감하며 나눴다.

부모가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때(강조하지만 시간이 아닌 마음!)

이모들은 엄하게 꾸짖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해갔던것같다.

 

하늘이 3살 때 ㅅㅇ이라는 애한테 많이 맞고 다녔을 때에도

우리는 그애 집의 처한 상황에 대해서 들었고 그애의 심리상태에 대해서 이해했고

또 하늘이 다른 시공간에서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이모의 말에 따라

예방주사를 맞는 심정으로 함께 두 아이를 지켜보았었다.

함께 키운다는 건 바로 그런 것이다.

나도 항상 써야할 글과, 준비가 많이 필요한 강의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고

다른 부모들 또한 상황과 조건은 다르겠지만 모두들 분주하게 살아간다.

그 시간과 마음을 쪼개가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

뭐 어쨌든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고 아이들은 자랄 것이다.

나는 이제 다시 매일 하늘을 데리러 다닌다.

학교가 끝난 후의 시간을 운용하는 것도 하늘이 할 일이라고 생각을 했으나

하늘이 강력하게 원하고 또 원해서 그렇게 됐다.

공부방 선생님과 남편과 함께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논의했을 때

공부방 선생님은 그 청을 거절하는 게 맞다고 얘기했다.

그건 엄마 결핍증 같은 거기 때문에 하교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 마음을 극복해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결국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함께 하는 시간이기에 하늘의 청에 따르기로 했다.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지고 설득하는 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2~3개월 정도의 이 시간동안 못해줄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초엔 운동장을 가득 메웠던 엄마들이 이제는 그리 많지 않다.

하늘은 뭐든 느렸다. 어린이집의 전설이 될만큼 힘겨운 적응 과정을 거쳤고

지금 학교도 그렇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애의 속도에 발을 맞추는 것 뿐.

그렇게 이 가을을 보내야할 것같다.

 

요즘 자주 혼나는데 이 날도 아마 혼나고 있었을 듯. 뾰루퉁한 얼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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