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내 시간들

 

** 우울해질지도 모르는 글이니.....한번 더 생각하고 읽기를 바랍니다. ^^

 

엄마 집에서 밥을 먹고 치우다가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사진들을 발견했다.

내가 아니라 남편이.

나는 그 때 화장실에서 앵두를 씻기는 중이었다.

내 옛날 사진들을 엄마가 가지고 있었고 그 중 일부를 버린 것이다.

엄마가 내 사진을 버린 이유는 딱 하나, 내 옆에 남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웃었다. 남편도 웃었던가? 그건 잘 모르겠다.

 

친했던 그들은 모두들 너무 멀어져있다.

한 사람은 미국에서 살고 있고(그애는 고등학교 때 가족들이 모두 이민을 갔다)

한 사람은 수도원에 있고(물리학 박사과정까지 마친 후에 신학교에 들어갔다)

한 사람은 00경제TV의 사업본부장이다.(자기 말로는 꽤 높다한다. 그래서 푸른회원도 가입해주었다)

그 사람들과는 연애를 하지 않았다.

연애를 할 때엔 절대로 사진을 찍지 않았다.

첫 연애 때엔 열심히 학교만 다니느라 사진을 찍을 일이 없었고

첫 연애의 실패 이후, 연애라는 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안 이후에는

받은 걸 돌려주고, 돌려주지 못할 건 버리거나 찢거나 태웠던 경험을 한 이후에는

그런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어서 사진은 절대로 찍지 않았다.

 

그런 걸 모르는 엄마는 괜히 애꿎은 애들 사진을 버리려 했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누군가를 사귀었고 또 헤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

서른을 앞둔 겨울에 엄마가 "여자 나이 서른이면 인생 끝이다. 너는 이제 재취로밖에 못간다"

그렇게 말하며 서럽게 울었을 때, 그 이유는 단지 나이 때문만이 아니라

나의 거듭되는 실연 때문이기도 했었다.

나보다 엄마가 더 많이 울어서 나는 좀 억울했다. 정말 울고 싶었던 건 나였는데.

 



과거의 연인들을 헤어진 후에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첫번째 연애의 배경이 되었던 학교에는 25살 이후 아직까지도 가지 않고 있다.

실연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거듭될수록 더 힘들었던 것같다.

두번째 실연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별 짓을 다 했었다.

인터넷 상담센터에 가서 상담까지 해봤다. 그 때의 답이 "그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였음에도 나는 "어떻게 그럴 수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함께 일하던 언니가 차라리 연락을 끊어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뭐라도 바꾸고 싶어 머리색깔을 바꾸고 화장품을 사고 밤이면 술을 마시고...

그래서 "니가 정말 미쳐가는구나"라는 선배언니의 말을 들으며 그런가 싶기도 했었다.

그 와중에 다큐멘터리 공부를 시작했고 동기들과 양심수 후원주점에 갔는데...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났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으면서 "왜 그렇게 연락이 없었어?" 하고 물었고

그 남자가 "나 새로 연애 시작했어" 라고 해서 하하 웃으며 "잘 됐네" 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서 동기들과 술을 마셨다. 아주 즐겁게(보이기 위해 애를 쓰며).

그 남자는 두 번 정도 쟁반을 나르다 술병을 깨뜨리다가

여자친구를 바래다주기 위해서 가야한다고 해서 그래 잘가, 잘 지내~ 하고 손을 흔들어 준 후

다시 또 술을 마시다가 다큐선생님 사무실로 동기들과 우루루 몰려간 후 마음 놓고 울었다.

그 때 나의 스승이었던 박기복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시기를

"너 몰랐냐? 보통 남자들은 나쁜 놈 소리 듣기 싫어해서 마음이 변해도 헤어지자라든지,

새로 애인이 생겼다라든지 그런 얘기 잘 안해. 힌트를 주지" 라고 해서 또 속상해했던것같고.

어쨌든 그 사건 때문에 다큐 0.7 동기생들은 더 친해졌던 것같다. ^^

 

그 남자랑은 그 후로도 참 이상하게 자주 만났다.

결혼을 며칠 앞두고 개량한복을 빌리러 인사동에 갔었는데(결국 못 빌렸다. 너무 비싸서)

남편하고 무슨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서 그 남자가 걸어오고 있는 거였다.

더운 날씨라서 땀을 뻘뻘 흘리며 후즐그레한 몰골에 찡그린 얼굴로 걸어오고 있는데

나는 웃던 김에 더 크게 웃으면서(이 순간, 무수히 많이 상상하며 연기했던 노력이 빛을 발함)

모른 척 스쳐 지나갔다.

 

또 한 번은 여의도에서 아르바이트 방송을 끝내고 버스를 기다리며 신문을 보고 있는데

그 남자가 신문을 툭툭 쳤다.

그리고 아주 어두운 얼굴로 신문기사를 봤다고 했다.

(영화 찍다 결혼한 이야기가 신문에 났었는데 그 때 임신중이었던 하늘이가

 장애아일지도 모른다는 사연이 들어있었다.)

무척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 남자의 핸드폰이 울렸고 

버스가 와서 난 "버스 왔네~" 하면서 안녕~ 하고 손 흔들며 그냥 왔다.

 

또 한 번은 인디포럼에서 영화를 상영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는 연인인 듯한 여자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정말 참 이상한 인연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출신학교가 있는 도시도 다른데 말이다.

정말 참 이상한 인연이다.

돌아보면 나에게 세상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가르쳐준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그 당시에는 너무 미웠고 힘들었지만 어쨌든 나는 그 시간을 거치면서

스스로가 무척이나 의존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꿋꿋이 서있어야,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누군가를 멋지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았다기 보다는 주문처럼 무수히 반복해가며 나에게 주입시켰던 사실이다.

세 번째는, 네 번째는... 더 힘들고 아프게 이별을 하면서 그러면서 깨달았다.

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애라는 이름의 관계를 만들 때

치러야할 몫은 더 크고 더 혹독하다는 것을.

 

사람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담담하게 바라볼 즈음에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에 대해서 모든 기대를 버렸을 즈음에

남편을 만났고 곧 결혼했다.

서로 미워하며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남편은

사랑이 변했다라거나 새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것을 솔직하게 말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몇 번이고 부탁했다.

혹시나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제발 나에게 알려달라고.

최초의 시작을 알지 못한 채로 갑자기 이별을 통고받는다면

나는 당신이 내게 한 말, 한 행동, 보여준 웃음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믿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들인 채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달라고.

사랑이 옮겨가고 있을 때, 내게 꼭 얘기해달라고

그렇게 부탁을 했다.

사랑이 변한다는 것을 아니까, 그래도 변하기 전에 내게 머물렀던 마음만큼은

믿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남편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선배언니들이 내게 타이르기를

거리를 두고 살아가라고 했었다.

거리를 둔다는 건 벽을 치고 살아가라는 얘기가 아니라

나의 영역, 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얘기로 이해했다.

내게 그런 식의 관계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던 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아이라는 존재 때문에 공유하게 되는 세계가 생겨서인지

좀더 친밀해지고 좀더 신뢰를 갖게되었고.

 

아직도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꺼려진다.

학교와 관련된 모임은 여자동기들 모임에만 나가고 있고(몇 년만에 한 번씩 열린다 ^^)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데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과거에 연인이었던 사람을 만날 일을 생각하면 그냥 접고 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르겠다.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본 적 있어요?)

 

사랑이 끝났을 때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알리지도 않은 채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않은 채 새로 사람을 사귀고

어느 날 전화로 '헤어지자'라고 말하고 끝낸 사람이나

주점에서 당황하며 '연애를 시작했다'라고 끝낸 사람을

그래서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배신감 때문에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했던 시간

차라리 죽어버릴까, 내가 죽어버리면 최소한 그 사람은 죄책감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을까

그런 밤과 그런 시간을 선사한 사람을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저 지금 생각하는 건

그 만남을 원치 않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만나지 않는 게 옳은 것 같진 않지만

뭐 어때. 내 맘이지. 정도이다.

이제 와서 십몇년동안 만나지 않아서 그래서 스러져버린 관계들을 아까워하는 건

나의 미련일지라도 그 만남을 아까워하기 보다는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잊지 않아준

ㅅㄱ언니에게 ㅊㅎ형에게 그리고 후배 ㅈㄱ에게 고맙다고 고맙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뭐 그 정도.

 

사진 안 찍기는 참말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문득 하며. ^^

 

참, 그리고 새 글 올라왔어요. 한 번 읽어봐주세요

영화 <검은 집>의 장애인 모습에 대한 생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