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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애서가들은 서가가 넘쳐서 책을 어쩔 수 없이 처분해야 하는 위기상황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이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에게 주죠. 도서관에는 기증 안 합니다. 나는 도서관을 싫어해요. 문헌정보학과도 별로 안 좋아하죠. (웃음) 물론 도서관의 존재 이유는 긍정하지만, 도서관이란 책의 존재감이나 물질성은 보지 않고 내용에 실려 있는 기호만 보관하는 곳이거든요. 새 책이 오면 겉표지를 벗겨 신간 안내판에 압핀으로 꽂아놓지 않습니까? 합법적으로 책을 학대하는 곳이니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도서관은 적이죠.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2007&article_id=39794

                        -씨네21,  한국 책의 숨쉬는 역사,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 인터뷰 중

 

1주일전 강화에 놀러온 바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IPTV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엔 보육시설에 설치하는 IPTV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배급과 관련한 얘기였다.

"저희는 1년에 한 번 극장을 갈까 말까 해요. 일하는 여성들에게 극장은 너무 멀거든요."

 

사람이 뭔가에 빠져들면 객관을 잃게되나보다.

이 평범한 사실을 나는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아이를 돌봐야해서 극장에 가지못한다고,

그래서 연극놀이를 하고, 보육도우미선생님을 청했던 건데...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

일, 육아, 가사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이뤄진다.

주어진 시간표, 타인의 욕구를 쫓아 바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 틈새에서 겨우 시간을 내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영화까지 짜여진 시간 안에 바삐 움직여서 봐야한다는 건

어쩌면 그 향유까지도 굉장한 에너지를 바쳐야한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결론은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극장이나 공동체상영보다는 IPTV가 유용하다.....

 

저 결론을 아직 나의 결론으로까지 가져오진 못했지만

온라인배급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엄마...>에 대해서도

그리고 지금 어떻게 배급할까를 고민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다시 고려해야할 것같다.

사실 나는 내 영화가 DVD나 다운로드된 파일을 통해서 컴퓨터 모니터로 보여지는 걸 싫어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모든 감독들이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상영회가 잡힐 때마다 오빠한테 연락을 드리고

오빠가 시간이 안된다고 그러면 아쉬워하면서도

그러면서도 절대로 DVD를 건네지 않는 건

오빠가 내 영화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시공간이 극장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 영화가 극장에서 보여지는 건....아마도 올 가을 정도 까지일 것이다.

그것도 가능성일 뿐 영화제에서 떨어지면 자비로 극장을 대여하지 않는한 그럴 기회도 없다.

벌써 인권영화제에서는 떨어졌다. (ㅜ.ㅜ 나는 인권영화제 너무 좋아하는데.... 슬프다)

 

한 컷 한 컷, 한마디 한마디를 어떻게 붙였는지, 거기에 얼마만한 정성이 들어갔는지를

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영화란 단지 내용이라든지, 기호만은 아닌 것이니까.

소리와 소리 사이의 그 여백, 컷 하나의 길이는 예민하게 집중된 상태에서 정해졌고

그것을 정한 감독의 마음은 관객이 영화의 호흡에 나를 온전히 맡겼을 때 살아난다.

내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감독이기를 바라는 건

영화를 메시지 전달의 도구로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본 세상을 당신에게

단지 보여주려고 할 뿐 아니라 느끼게 하고 싶다.

나는 그래서 좀더 좋은 환경에서 당신에게 내 영화를 선물하고 싶은 것이다.

여의치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안타까움 또한 어쩔 수 없다.

 

IPTV와 관련해서 이피디와 상담을 하니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고 한다.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

 

그리고 일주일.

여성영화제 개막식이 목요일이라 가지 못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보지 못했다.

폐막식 또한 목요일이라 가지 못했다.

역시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는데 보지 못했다.

무리를 하면 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공부를 했다.

사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면서 안갔다.

그냥 아직은 새로운 흐름에 적응해야 할 것같다는 생각.

그리고 전날의 여흥이 가시지 않았다는 자책.

 

그 전날, 난 수업을 같이 하는 학생들과 영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디다큐 봄 프로젝트의 멘티들을 만나고

다시 신촌으로 돌아와 저 두 영역의 사람들과 함께 또 밤을 보냈다.

신촌은..... 20대때 자주 밤을 보냈던 곳인데

그곳에 다시 가니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좋아했던 곳은 다 없어졌다.

시저스의 주인은 판자집으로 옮긴 것같은데

그런데 그 분이 정말 그 분이 맞을까?

단지 인상이 닮은 것일까?

시저스의 바깥에서 시저스의 사람들을 아는 척 하는 건

공공연한 금기같은 거라서

나는 한 번도 입 밖에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또 그렇다고 그 때 그 당시 시저스를 함께 다녔던 사람들과 완전한 타인이된 지금,

그 의문의 해소를 위해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도 없는 상태.

 

어쨌든 시저스도, '놀이하는 사람들'도 없어서

2시가 넘은 시간에 비틀거리며 "자, 이제 어디로 가지?" 하다

'모기장'에 가자, 했는데

(거긴 예전에 '모기의 주크박스'를 운영했던 사람이 차린 술집인데

 술을 마시다보면 고양이 두 마리가 와서 부비부비해준다.)

A의 아이폰으로 더듬더듬 찾아가서 "여기다~"하고 기뻐했지만

주인장들이 '"끝났어요~"하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다시 또 더듬더듬 헤매다 '시드니'에 갔다.

니모네 아빠가 그렇게 찾아헤매던 곳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 곳은

전직 연극인인 YM이 '아는 형네 술집'이라고 소개해서 가게 되었다.

신촌 설렁탕 옆집이라는데 A가 신촌설렁탕을 찾아주니

YM이 여기 아니라고 그래서 잠깐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 앞에 활짝 핀 벚꽃들이 나타났다.

강화는 아직 쌀쌀한데 서울은 벌써 봄이라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때부터 시간은 왠지 비현실적으로 흘러갔다.

시드니에 들어가니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주가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엔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A는 자기의 노래로 다른 이들을 모두 쫓아버리겠다며

열심히 노래를 하고(하지만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YM은 플라스틱 도끼를 들고 춤을 추다 쓰러져 잤다.

 

어쩌면 다음에 신촌엘 가게 되면

또 찾아갈지도 모를 그곳.

내내 고요했던 U감독님이 함께 있어줘서

편안했던 밤.

 

하지만 경고등 하나.

어쨌거나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하는 이 때

다시 알콜의 유혹에 빠져든다면

아이들도 남편도 엄마도 볼 낯이 없잖아.

그런데 너무 재미있었다. ㅜ.ㅜ

내 몸에 흐르는 피의 색깔을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할 듯.

 

새로운 일주일은 일과 공부에 빠져들려고 글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다시 그립다 그 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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