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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오래 전에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은 수화로 말을 한다>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책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옮긴이 서문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 같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다"

아마도 더 멋진 말이었을 것이다.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 

높낮이없이 평등한 새 땅,

과 같은 말들은 천지간에 둥둥 떠다니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 정말 그런 순간을 선사했을 때,

특히 '마서즈 비니어드 섬 사람들'처럼 그 평등과 조화를 실현시켰을 때

같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고 고맙다.

그곳에서 당신들이 그랬다면 이 곳에서 우리들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볼 수 있으니까.

 

열흘 쯤 전에 전철에서 세월호 기사를 보고 있었는데

옆자리의 선하게 생긴 커플이 폰을 보며 웃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들아 배고프지?"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사진.

그리고.... 그 사진 위에 이런 자막이 써있었다.

"아들도, 엄마도 바다오염"

일베의 게시물이었을까..

 

아팠다. 

슬픔이 주는 아픔은 내장 어딘가가 오그라드는 것같은 아픔인데

이 아픔은 날카로운 칼로 심장 언저리를 싹 베어내는 것같은 거였다.

목까지 차올라있는 듯했던 눈물은 쑥 사라지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놀람인지 분노인지 증오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사진에 적혀있는 글씨들과, 그것을 보는 그 커플의 웃음이....

절망스러웠다.

세월호 사건 이후 새누리당, 정부관료들의 2차 가해를 지켜보노라면

같은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절망스럽다.

 

어제 청계광장 만민공동회 토론 후

광화문으로 가려는데 경찰들이 막았다.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방송에 화가 났던 건

정부에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왜 시민으로 보지 않냐는 거다.

채증하는 경찰놈의 뺀질뺀질한 얼굴이 너무 꼴보기 싫어서

바로 앞에서 나도 그를 찍었다.

시스템의 일부라서 어쩔 수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식의 눈빛은 너무 야비했고

그 표정은 너무 뻔뻔했다.

내 손을 잡은 할매가 뺑뺑 둘러싼 경찰의 벽을 가리키며

"산에서도 저런다. 나 집에 가고 싶다" 하는데

경찰놈들은 세번째 경고한 후에는 다 잡아가겠다는 협박.

홧병이 그렇게 생겨나는 걸거다.

  

그래도....이계삼 선생님의 글들이 위로가 된다.

우연히 잡은 <변방의 사색>을 읽으며

어떻게든 일상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이 엉망진창인 세상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고

선한 사람들의 부드러운 기운은 

저 악한 기운만큼 뾰족하지 않아서

그 존재감이 약할 뿐이라고 믿고 싶다.

 

은별은 오늘 생일이었다.

하루 종일 케익을 기다렸다고 했다.

언니가 붙인 촛불을 후~ 불고서

행복해했다.

 

한별이는 "선장때문에 개콘을 못 본다"고 투덜대다가도

바람이 불면 "세월호 형 누나들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그애는 오랫동안 형 누나들이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은은 카스를 시작해서

악뮤의 얼음들 뮤비를 보며 슬퍼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천진하다.

 

아이들은 절망하지 않는다.

이 엉망진창인 세상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있다.

아직 사람을 잡아먹은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사람을 잡아먹지 않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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