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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를 만나다

문재인이 밀양에 오던 날,

가만 있으려다가

사무실 동료에게 촬영이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찍어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찍었다.

이름만 올려두긴 했지만 내가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그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이 그 움막에 계셨다.

당연히 나는 주민들 얼굴을 중심으로 찍었다.

다음 날, 대책위에서 'kbs기자에게 촬영본을 좀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카메라에 있어서 백업을 해야 한다고 그랬고

그래서 usb라인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자가 노트북을 가져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참 있다 kbs기자라는 사람이 왔는데 작은 usb(아마도 데이터용인) 하나를 달랑 들고 왔다.

용량도 8기가 뿐이라고 해서 어쩌나 싶었다.

내가 USB 용량이 너무 적어서 어쩌냐고 그랬더니

"저희들은 필요한 것만 찍거든요"라고 했다.

 

그럼 나는 필요없는 거 찍는단 말이냐?

그리고 너네 필요한 거랑 내가 필요한 거랑 같니?

또 내가 너 필요한 걸 골라줘야한단 말이냐?

방송하는 인간들 중에 일부는 '설정샷-풀샷-액션-리액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누구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냐에 따라서 촬영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어쨌거나 그들이 필요로하는 장면이 담겨있는 컷 몇개를 골랐는데

(이 작업도 꽤 걸렸다. 내 카메라에는 전날 진행했던 촛불집회, 아침 127전경 등등

문재인 촬영본 외에도 다른 많은 촬영본이 있었으니까)

USB가 구식이라 400메가 전송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카피중인 노트북을 들고 어디 있나 봤더니

움막 아래 쪽 찻길에 세워둔 커다란 봉고 안에 에어콘 빵빵 틀어놓고 자고 있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외장하드 없냐고 그랬더니 없단다.

시간이 좀 걸릴 것같다고 했더니

그럼 밥도 먹고 밀양시청에 갔다올 일이 있으니 좀있다 밀양시에서 만나자고 했다.

어렵게 다섯 컷을 골라 카피를 했다.

미디어팀장님한테 전화를 해서 사용료를 받을까 물었더니 알아서 하라고 그랬다.

유에스비를 건네며 사용료 이야기를 했다.

"저희 푸른영상은 일대일 원칙이라서 그 쪽 내규에 따라서 사용료를 받는다.

kbs는 내가 알기로는 30초당 30만원으로 책정되어있는 걸로 안다"

그랬더니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저희들은 공영방송이라 다 협조를 받고, 저희들 촬영본 또한 공영방송이라 무료로 제공한다"

오 예~~ 그 기자 이름 다 적어뒀으니 나중에 kbs 동영상 실컷 써야지.

 

암튼 그렇다고 한다면 나도 비용은 안받겠다,

하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촬영본 얻으러 오는데 usb 달랑 들고오는 건 좀 그랬다.

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같은데 그렇게 힘들게 찍은 건지도 몰랐고

(모든 촬영은 힘이 든다.너네 촬영본만 공들여 찍히는 거 같니?)

대책위에서 촬영본이 있다고 해서 받으러 온거다.

우린 평소에 usb도 안 갖고 다닌다, 라고 말했다.

 

기가 막혀서

그러면 특별히 원하지도 않는 건데 주겠다니까 어쩔 수 없이 받는 건가요?

했더니 그건 아니지만 그런 복잡한 상황이 있는지 몰랐다라고 했다.

꼭 받아야할 이유가 없는 거면 그냥 가시라고 했고

그는 그냥 갔다.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인간한테 내 촬영본을 넘길 생각은 없으니까.

 

촬영본을 카피하면서 들었던 웃기는 대화

주민 한 분이 어제는 뭐하고 이제 와서 촬영한 거 받으려하냐고

kbs는 제대로 보도도 안하는데 이렇게 해갖고 가서 내보내기나 하겠냐고 물었다.

그 기자는 아주 당당하게

자기는 신노조라고 그랬다.

덕촌할매가 기자에게 싫은 티를 내자 기자가 말했다.

"세월호도 그렇고 밀양도 그렇고 왜 우리를 밀어내냐? 우리는 신노조다"

 

밀양이든 세월호든 '다뤄준다'고 생각하는 너같은 놈이 신노조니

그 밥에 그 나물인 게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니가 신노조임을 강변하면서 어제 안왔다가 오늘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네가 소속되어있는 너희 회사의 잘못을 사죄하는 게 먼저였어야 했다.

네가 신노조라고 해서 네가 kbs 소속이 아닌 건 아니니까.

127 한 주민의 말처럼 발로 뛰며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요청하고 요청하고 요청하니 한 번 봐준다는 식으로 와서

화면이 있다니까 주면 받는데 아니면 말고, 식으로 행동하는 너같은 놈이

'신노조'를 외치는 한 너희들은 여전히 기레기 집단일 뿐이다.

대책위에서는 어떻게든 밀양에 대해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 상황에서 그 기레기는 자기가 갑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그래도 그 기레기한테 그 촬영본을 줬어야했나 싶지만

줘봤자 쓸 거라는 보장도 없는 거다.

화면을 고르면서 주민들 이야기를 길게 찍은 중간에

그들이 원하는 문재인 인서트가 있는 걸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누군가 말했다.

"이걸 찾아보기나 할까요?"

 

그러게나 말이다.

결국 왔다갔다 땀 빼고 세시간 가까이 그놈의 구닥다리 USB에 화면 옮기느라

아까운 시간 다 보냈고

기차시간에 맞추느라 허둥지둥 그 곳을 떠나왔다.

기레기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여러 곳에서 기자랍시고 돌아다니며 썩은 내를 풀풀 풍긴다.

역겨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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