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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자

미요를 보고 있으면 '단독자'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단어의 연원을 알고 싶어 구글링했더니

키에르케고르가 처음 썼던  말이라고 한다.

'단독자'라는 제목의 책도 있었다.

서평의 시작 문장이 이렇다!

별 볼일 없이 태어났어도 별을 보며 가는 거다!
- 지금 필요한 삶은 ‘위대한 개인주의’

미요는 후포항에 밥 먹으러 갔다가

주먹만한 고양이가 노끈에 묶여 있길래

주인에게 부탁해서 데려온 고양이다.

그때 그 식당의 주인집에는 새끼고양이가 많았기 때문에

주인은 우리의 제안을 반가워했다.

그때 우리 집에는 토토가 있었다.

토토는 서울의 추운 골목길에서 어떤 분이 구조했다가

동거인이 알러지가 있어서 반려인을 구하길래 우리가 자원했다.

우리집 첫 고양이 토토는 사려깊고 의리가 있었다.

새로운 고양이가 집에 오면 3~4일 정도는 

화장실 모래, 사료, 물,  잠자리를 갖춘 창고에 지내게 한다.

안그러면 영역에 대한 애착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라

집을 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3~4일이 지나고 창고 밖에서 생활하게 했을 때

토토는 친절하게 안내하는 듯했다.

식당에 묶여있다가 우리집에 온 고양이 미요의 유일한 소통대상은 토토였다.

미요는 사람과는 교류하지 않았다.

2013년에 이사를 해야 했다.

토토는 이사하기 열흘 전부터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과 곳곳을 돌아다니며 토토를 찾았지만 토토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낮에는 토토를 찾고 밤이면 짐을 정리하던 그 즈음에

미요가 병이 났다. 밥도 먹지 않고 잠만 잤다. 감기인 것같았다.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몇 번 동물병원에 데인 상태라

차라리 내가  돌보는 게 나을 것같았다.

지저분한 털을 대충  닦고 이틀동안  집안에서 함께 지냈다.

이사짐을 나르는 동안에 나는 미요를 데리고 새집에 먼저 가서 준비를 하고

미요를 한적한 곳에 데려다놓은 후 짐정리하는 틈틈이 돌봤다.

그 시간 때문일까.

미요가 나를 보기 시작했다.

몸이 나아지고 새집에서도 며칠, 창고 안에 있은 후

이제 미요는 예전처럼 야외생활로 돌아가야하는데 

창고방 작업실에서 일하고 있으면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내가 나가지 않으면 천정에 올라가서 발을 구르고.....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이전처럼 우리가 집을 공유하는 관계

인간은 밥과 숙소를 제공하고

고양이 또한 자기 생활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랬다.

그래서 고양이 전문가들과 몇번 상담한 후에

고양이 사회가 필요한 듯해서

동물보호소의 유기동물 중에 진이와 연이를 데려온 것이었다.

셋이 잘  지내길 바랬다.

하지만 진이와  연이는 오히려 함께 온 강아지 도순이와  더 친했다.

셋은 같이 먹고 같이 잤다.

추운 겨울엔 도순이의 집에서 진이가 함께 자기도 했다.

진이와 연이, 그리고 연이의 새끼인 양이는 이제  셋이서 일가를 이뤄

늘 붙어다닌다.

미요는 여전히 혼자 지낸다.

괜히 관여한 것같다.

누구든 태어났으면 자기 별이 있는 거고

그저 그 별을 보고 가면 그 뿐인 거다.

다른 존재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은

그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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