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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

운동을 너무 안해서인 듯하다.

허리가 아프다.

어제는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건강 때문에 일을 못하는 상황이 나한테도 온 거다.

나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허리 통증에 필요한 스트레칭 동영상을 찾은 후

따라 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하루 종일 누워있어서인지

오늘은 좀 운신이 가능하다.

 

 

오늘 어떤 회의를 가야하는데

나는 정말 그 회의에 가기 싫다.

갈수록  사람들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해질 뿐 아니라

싫은 자리에서 싫은 내색 참는 일을 못하겠다.

 

영토주의자. 내가 새로 만든 말이다.

영토주의자의 특징은 자기의 분야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는 걸 경계한다.

그리고 100중에 하나만 가졌어도 백을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전혀 새로운 영토, 혹은 분야에  갔을 때에

분명 그 분야에 자신은 초심자인데도 경력자인양 행동한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 미친다.

 

영토주의자들을 만나면 나는 조용히 그 장에서 퇴장한다.

영토주의자들과 함께 일하는 건 엄청나게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미디어교육에서 어떤 사람이 나한테 그랬다.

잡지사에서 내게 취재를 요청해와서 그사람을 만났고

나는 그 사람이 뭐든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라서

같이 일을 하자고 했고 처음 얼마간은 열심히 같이 일을 했다.

어느 순간 그가 나를 견제하기 시작했고

나는 피곤했고..... 그래서 그냥 다 그만두고 나왔다.

발달장애인미디어교육은 그 때  열심히 썼던 가이드북으로 진행되고있고

새로운 활동가들이  영입되었으며

그 사람은 지금 뭐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당신의 경쟁상대는 내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랍니다....

그런 말 같은 걸 해주고 싶었지만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편가르기 등등을 하는 그 사람을

두번 다시 마주대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라진 후 그는 장애인워크숍 같은 데 몇번 발표를 나가는 듯 싶었고

어느 날 나는 내가 쓴 글들 몇 페이지가 그대로 가있는 걸 보고

주최즉에 "이건 내 글이고, 출처는 어디이고, 최소한 남의 글을 쓸 땐 인용을 밝혀달라"고

요청했을 뿐이었다.

작년에 영화제에서 그를 만났을 때

나는 가볍게 목례를 했는데

그가 웬일로 내게 다가오는 듯해서 나는 얼른 외면하고 멀찍이 앉았다.

뻔히 판이 그려졌다.

그렇게 내가 떠났다고 해서 그 판이 온전히 자기 것이 될 수는 없는 거니까.

새로운 활동가들은 끊임없이 영입되고

더 젊고 더 많이 배우고 더 기발한 그 활동가들 틈에서

자신만의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그가 자연스럽게 도태될 거라는 걸

나는 알았다.

나와 둘이 그 작업을 시작했을 때, 함께 만들어낸 일 말고 그가 한 일은 없으니까.

가끔 그가 가엾다는 생각을 했고 자주 쌤통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저번 주에는 무슨 전문가 회의라는 데를 갔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 '발음이 안좋아서 아무개 피디가 나를 짤랐다'라는 내 말 끝에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다.

벌써 10년전 일이니 나에겐 그저 한번 웃는 에피소드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곧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겼고 지금까지 방송은 쉬지 않고 하고 있다.

폭소 후에 방송작가분이 내게 물었다. "그럼 후임자는 누구였습니까??"

옆에 앉아있는 문화평론가가 내 뒤를 이었다.

나와 그는 표면적으로는 비슷해보이지만 내용과 영역이 서로 다르다.

나는 영화 속 어떤 순간을 실마리로 장애현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읽고

그는 영화 속 캐릭터로 장애를 설명한다. 그 일도 이젠 그만 뒀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 방식으로 영화를 읽으면 밑천은 금방 떨어지니까.

내가 그만두고 그가 그 일을 이어했다는 게 문제가 될리는 없는데

그는 5년전에도 처음 듣는 소리인 양 딴전을 피웠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잘 몰랐는데."라고 말하고 가볍게 웃었다.

 

내가 쪼잔해보이는 건 아는데

이 사람아, 니가 알고 내가 알고 하늘이 아는데.

'상업영화 속 장애인 캐릭터 연구'는 작가언니의 제안으로 내가 시작을 했고

내가 다른 프로로 옮긴 얼마 후 작가언니가 당신을 발굴한 건

내가 들었는데 왜 그렇게 딴청을 피우는 거야?

당신은 당신 자체로 충분히 훌륭한데.

별 일 아닌 일을 그렇게 부정하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첫번째든, 두번째는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를 읽고 있을 뿐인데

당신, 영토주의자인가? 별 일 아닌 일에 그렇게 발끈하는 건? ㅎㅎ

남자들의 영토주의 본능은 참 피곤하고 가소롭다.

결국 너는 떠났고 나는 남았다.

왜냐하면 카피는 일시적이지만 오리지널은 자기 생애가 있거든. 

 

오늘 회의가 참 피곤한  것은

좀 다른 의미에서의 영토주의 때문이다.

어떤 전문성(? 경력?) 때문에 나는 영입되었다.

나는 그래서 당신들이 필요로 하는 일들을 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친한데 나만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친밀감을 형성시키기 위해 아이스브레이킹을 한답시고

노래를 시키고 무슨 앙케이트같은 걸 한다.

없는 시간 쪼개서 갔는데 그런 거 하고 앉아있을라 하면 짜증나서 돌겠다.

 

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용감한 데 놀란다.

좀 섬세해지길 바란다.

대중교육가서 몇 번 해봤나본데 이런 자리에서까지 그 ㅈㄹ하고 있으면 정말 돌겠다는.

모든 모임, 모든 성원에게 공통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아이스브레이킹은 없다.

오히려 이런 회의에서는 곧바로 논의를 시작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회의 두번만  더하면 된다니 내가 가긴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가봐. 나만 까칠한가봐. 근데 정밀 어이없어...

오늘도  참고 앉아있을 것인가....ㅠㅠ

 

마지막으로.

내가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땐 항상 초심자의 위치에 서기 때문이다.

경력이 20년이 되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땐 그 분야에 대해 새로 공부하고

조심스레  사람들을 만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수록 사람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큐멘터리야말로 가장 영토주의자들이 운신하기 힘든 영역이다.

꼭 다큐멘터리가 아니더라도

소수자감수성은 한  분야에서 예민하다고 다른 분야까지 저절로 예민해지지 않는다.

노동운동가들의 젠더블라인드니스

성소수자의 저열한 장애인권감수성

이런  모습들 보면서 나는 나를 돌아본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성취한 것들을 맛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디며 배우고  단련되기 위한 것이다.

더 투명하고 더 예민해지는 것.

독립다큐멘터리는 그 상태를 위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여정이다.

어떤 영화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그래서 영토주의자들이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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