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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0

방금 전에 억울하면서도 황당한 일을 당했는데

어디다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

그냥 혼자 삭이다가

그래도 누군가랑 대화라는 걸 하고 싶어서

남편한테 전화를 했는데 통화중이다.

기다렸다가 또 전화를 했는데 여전히 통화중이다.

나는 친구 하나 없는 이런 사람이구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다시 한 번 전화를 했는데 지금도 통화중이다.

천지간에 정말 나 혼자 뿐이구나

하면서 스스로를 좀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며칠 전에 주문한 하드이다.

하드를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짐.

하드가 왔다.

작업해야지.

 

오늘의 옮겨적기.

사실은 오늘만이 아니라 여러 날째 옮겨적으려는 글이 있다.

한강의 '노랑무늬영원'이다.

거기 로드킬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하고 손을 못쓰게 된 화가가 나온다.

작년 10월 이후의 내 시간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아서

여러 번 울컥하면서 읽고 또 읽었다.

다 읽어서 반납해야하는데도 나는 반납하지 않고 계속 읽는다.

 

"나는, 그릴 수 없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 존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그림이었다. 그림 그리는사람 외에 다른 것이 되어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원래 나약하고 혼란스러운,

의지력이 없으며 미성숙한 인간이었지만,

그림이 모든 것을 이기고 나를 끌고 다녔다.

거짓, 나태함, 자기중심성, 비굴함, 천박함으로부터

나를 끌어올렸다.

그래서 그것을 포기했을 때,

나는 곧장 낮은 지점,

가장 동물적인 지점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먹고 배설하고 잠을 자는,

본능만으로 남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림 없이 존재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예전에 미처 알고 있지 못했다.

내 모든 에너지는 그림을 위해

삶에서 유보되었고 저축되었다.

오로지 작업을 위해 모든 것이 유보된 상태,

그것이 자연인으로서의 내 삶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살아보았던 적이 없다.

나는 사는 법을 모른다.

이렇게 비어 있을 수가.

내 지나온 모든 시간이,

완벽하게,

고스란히 비어 있을 수가,

텅 빈 어두운 방을 들여다보는 것같다. " (262쪽)

 

내겐 영화가 그랬다. 

작년 10월의 사고 이후 나는 비슷한 감정상태에 빠져들곤 했다.

그시간 동안 30대의 대부분을 의지하고 믿고 따랐던 N과 절교를 했고

몇 개의 모임을 청산했다.

바닥이 없는 진창으로 느리게 느리게 잠겨드는 것같았다.

<타잔>에 나오던, 한 번 빠져들면 절대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 늪에 내가 빠져있는 것같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서

나는, 내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막막한 질문을 던져놓고

20대때 그냥 월급생활자를 선택할  걸 그랬지

부질없는 후회를 하고.

 

아녜스 바르다처럼 살고 싶었다. 

죽기 직전까지이렇게 살 수 있을 것같아?

누군가가 물으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하며.

다른 것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가져보려 한 적도 없는 맹목과 자부심으로.

2개월만에 결혼을 결심한 것도

그냥 이 사람과 결혼하면 평생 장애인 작업을 할 수 있겠거니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자만.

내 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자만."

 

그 늪같은 어둠을 뚫고 오지 않았나.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신체와 정신이 함께 치유되었으며

이제는 내 힘으로 일상을 누린다. 

<노랑무늬영원>은 그 시간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언제 한 번 다시 돌아보자.

지금은 일단 밀린 글부터.

오늘 세 개의 글을 써야 한다.

지금 한 개도 들어가지 못했다.

괜찮아. 늘 있는 일이잖아.

6월에 온다던 카즈미 타테이시 트리오는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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