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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2015년 20주년 인터뷰

 

 

인디포럼 2015 /20주년 기념

1. 우선 요즘 근황을 알려주세요. 얼마 전 세월호 집회에서도 카메라를 들고 계신 감독님을 봤었는데요. 좀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랬어요. 밀양에서도 촬영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2013년 10월, 회의시간에 푸른영상 강세진감독이 ‘밀양에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말을 해서 밀양에 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밀양은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하지만 그 작은 도시의 평화는 송전탑 때문에 깨진 상태였어요. 765kw라는 엄청난 용량의 송전탑이 들어선다고 하자 평생 일궈온 땅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은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밀양765kV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미디어팀'의 임시 구성원이 되어 밀양 상동면 109번 공사부지에 올라갔을 때, 주민들은 손바닥 만한 제 작은 카메라를 반기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방패를 든 경찰들이 겹겹이 막고 있어서 공사 현장은 볼 수도 없었는데 가끔 할매 한 분이 “우리 산 얼마나 파헤쳤는지 보자” 하고 다가서면 경찰들은 방패로 물샐 틈 없는 벽을 만들어 할매의 앞길을 막았습니다. 그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서너 대의 경찰 카메라들이 몰려들어서 주민들의 얼굴을 찍었습니다. 제 작은 카메라가 그런 경찰들을 찍기 시작하자 할매들은 “우리도 카메라 있다!”면서 가슴을 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더라구요.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때의 제 처음 자리가 거기 있었어요. 주류 카메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고 싶어서 저는 푸른영상에 들어간 거였거든요.

밀양을 경험하면서 저한테는 이런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다큐멘터리감독으로서 내 주요 관심사는 돌봄과 교육이지만 시민으로서 내 역할이 있다는 것. 대학 시절에 학생으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신문에 나오지 않는 소식을 시민들한테 전하려고 유인물 배포활동을 했던 거랑 비슷해요. 공부방 다큐멘터리 작업도 열심히 하고 지금 내가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세월호 관련 미디어 활동도 하는 거지요. 열심히 하지는 못해요. 여전히 세 아이를 돌봐야하고 이런 저런 이들이 많아서요. 지금은 주변의 독립영화감독들이나 미디어활동가들에게 일을 소개해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밀양을 포함한 탈핵, 그리고 세월호 참사 관련해서 카메라가 많이 필요하거든요.

 

2. 감독님께서 <엄마...>를 제작하신 게 벌써 11년이 되었네요. <엄마...>를 제작하셨던 때와 지금을 생각해 보면 활동영역이나 여러 가지가 삶의 조건들이 바뀌신 것 같아요.

이제 그때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엄마...>제작하게 되신 계기에 대해서요.

 

<엄마....>를 만든 게 벌써 11년 전이네요. 결혼으로 시작된 그 즈음의 제 시간은 정말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을지 두려웠고 나만 애를 키워야하는 사실 때문에 남편이 미웠어요. 그래서 정말 많이 싸웠어요. 이혼까지 생각을 했었죠. 그 와중에 김동원 감독님이 엄마로서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노동, 양심수, 장애와 같은 공적 이슈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저는 그 때 눈물이 났습니다. 서운해서요. 하지만 다른 작업을 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업고 할 수 있는 작업이라서 시작했던 영화입니다. 카메라 앞에 맨 몸을 내어주는 게 다큐멘터리인데 누가 아이업은 엄마의 카메라에 자신을 내어놓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 엄마가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지요. 좀 가증스러운 딸이죠. 제가.

 

 

3. 인디포럼 2004에 상영하셨을 때 그때 분위기 생각나세요? 관객들과의 만남은 어땠는지 (좀 오래 되었지만...;;;), 그때 영화제 분위기 등요. 인디포럼이 다른 영화제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죠? (이후에 상영 됐던 영화제들과 비교해주셔도 되고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세요? (아이를 맡기고 왔다든지, GV 사회자가 누구였는지, 관객 중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 지 등)

 

인디포럼은 제게는 가장 선진적인(?) 실험적인(?) 영화제라서 <엄마...>가 상영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여성영화제나 여성들이 주 관객인 공동체상영회에서는 제 영화는 관객들의 기억을 끌어내는 문고리가 되지만 영화를 많이 보고 영화를 좋아하는, 생활과 예술 사이에 미세한 필터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에게는 제 영화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인디포럼 상영 소식을 듣고 기쁘면서도 걱정되었지요. 관객과의 대화 때 아무 질문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저 아줌마는 애키우는 거 갖고 뭔 영화까지 만들었대?’ 하는 시선이 느껴지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했지요. 다행히 반응은 뜨거웠어요. 자식의 입장에서 어머니 이야기를 하거나, 비혼의 입장에서 결혼에 대한 걱정을 하는 반응을 접했어요. 제 영화는 생활영화이고 그래서 관객과의 대화도 상담과 고백이 주를 이루더라구요. 가장 인상적인 관객은 윤성호감독님과 그분의 x여친. 그 분이 영화에 대해서 재밌었다고 얘기해줘서 의외였고 기뻤습니다. 뭐 자식 입장에서 고생한 엄마에게 치하하는 입장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여전히 합니다만.

 

4. 다큐멘터리 작업이라는 것은 감독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요. 자신의 고민과 삶이 제작에 밀접하게 담기니까요. 어찌 보면 감독님 작업은 그런 면에서는 교과서 같은 예가 아닐까 싶어요. <엄마...>를 제작하시면서 어려움, 그리고 얻은 것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후 제작한 영화들에 기준이 될 만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에서도 살짝 말씀드렸지만 <엄마...>를 만들까 말까 고민하던 게 2002년 정도였는데요 그 때만 해도 사적 영역의 이야기가 많지 않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김희철감독의 <나의 아버지>가 있었지만 남성감독이 ‘군대에 미친’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거라서 ‘애 키우는 이야기’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요. ‘집에 가서 애나 봐라’라는 말이 여전히 쉽게 나올 정도로 모두가 하고 있는 그 일을 가지고 영화로 만든다고 하면 유별나다는 말을 들을 것같았어요. 그래서 기획단계에서의 <엄마...>의 제목은 <엄마, 그냥 엄마로만 남아있으면 안돼?> 였어요. 엄마의 연애를 계기로 ‘노년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 다루려고 했던 거죠. 다큐멘터리는 공적 의제를 다뤄야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이 심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여성학을 공부하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건 아주 한참 후의 일이었으니까요.

<엄마...>를 만들까 말까 고민하던 그 시기는 무척 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농사일 때문에 아이를 묶어놓고 들일을 나갔다거나, 자는 아이를 두고 시장을 보고 왔다는 엄마나 언니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확실히 우리 세대의 육아는 윗세대보다는 편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애 보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려다가도 슬그머니 입을 다뭅니다. 훨씬 더 어려운 시간을 지나온 윗세대 엄마들한테는 젊은 엄마들의 말이 공감보다는 반감을 생기게 한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입을 다물다 보니 나중에는 말이 가슴 밑바닥에 고인 채 굳어가는 듯했습니다. 선배엄마들한테는 "그게 무슨 고생이라고?"라는 말을 들을까 봐, 결혼하지 않은 후배들한테는 "아기 얘기 좀 그만해"라는 말을 들을까 봐, 하고 싶은 말이 가슴 가득 고여 있는데도 말을 아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심적 부담이 컸지요. 유난떤다는 말 들을 것같았거든요.

집안일을 해야 해서 주로 삼각대에 놓인 카메라가 촬영을 해야 했고, 엄마가 어디 가실 때면 아이를 업고 촬영을 해야 했던 일들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이것이 영화가 될 것인가라는 걱정이었습니다. 영화가 완성되고 여성영화제에서 공개되기 직전, 푸른영상 후원회원들과 함께 진행했던 내부 시사회에서 남성회원이 “우리 엄마는 지금도 맞고 사는데 그게 뭐가 특별한가?”라는 말을 해서 ‘아, 실패했다’는 실망감을 맛보았고 우리 오빠도 “메시지가 선명하지 않다”라고 해서 더 좌절했습니다. 최초 공개 상영이었던 여성영화제 상영은 그래서 정말 걱정이 심했지요. 그런데 그 날 그 자리의 경험이 이후의 삶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성관객들은 영화이야기 대신에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딸이라서 차별받았거나, 아내라서 희생했거나, 엄마라서 힘들었던 기억들을 가진여성들이 자신들의, 혹은 자신들의 엄마 이야기를 하며 울었습니다.

그렇게 제게 새로운 문이 열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제게 소재거리가 되고 저는 설득력 있는 발언을 하기 위해서라도 제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좀 더 혹독하고 좀 더 절실하게 겪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고르는 과정이 어느 순간 성찰의 시간이었고 때로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제 작업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같아요. ‘땅에서 1cm정도 떠있는 상태에서 나의 일상을 기록하기’. 모든 것이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만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쉴 틈이 없는 힘든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보람은 있습니다. 그 보람 때문에 자꾸자꾸 영화가 만들고 싶어지는 것같아요.

 

5. <엄마...>를 보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혼, 출산 등 여성의 삶의 조건들에 대한 성찰이 있잖아요. 개인의 이야기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해요.

 

제 영화는 한계가 많지요.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부부 중에 한 쪽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집의 이야기이니까요.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숫적으로 다수가 처해있는 상황을 담을 수 있고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라는 장점이 있지요. 장점과 한계는 제가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제 작업 세계의 양면성입니다. <엄마...>의 언니와 제가 가지고 있는 욕구불만에 대해 어떤 여성들은 “결혼이라는 안정적인 제도를 선택한 것의 댓가일 뿐”이라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다만 앞서 말한 이 세계에서 다수가 처해있는 상황을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내가 겪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나의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처지와 상황을, 더 나아가서 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6.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전언에 의하면, 요즘 유난히 가족 관련한 작업들이 많이 나오는 데요. 특히 부모가 등장하는 작업들 중 독립하지 않은 혹은 못한 감독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하네요. 사적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와 이해가 있지 않나 싶어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제 주변에도 사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럴 때 사적 영역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대해 먼저 물어봅니다. 또는 자연인으로서의 당신의 고민 중에서 어떤 부분을 삭제하고 어떤 부분을 부각시킬지를 묻습니다. 개체로서의 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민하는 나’는 세상에 오직 유일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늘 생각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부모가 등장하는 작업들 중 독립하지 못한 혹은 못한 감독들의 이야기가 많은 것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엄마...>에 호응했던 관객들은 일차적으로 저와 같은 여성들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여성들’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절망해본 적 있는 사람, 포기해본 적 있는 사람,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도저히 안되는 어떤 상황 앞에서 절망해본 적 있는 사람 등의 의미입니다. 명확한 정답을 앞에 놓고도 몸이 따라가지 않는 상황을 겪어본 사람에게는 유려한 명언보다는 ‘나도 당신과 같은 경험이 있다’라는 고백이 힘이 될 때가 있거든요.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과 소통하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은 의미 있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들‘만’, ‘소통만’ 한다고 비판받기도 하죠. 저도 많이 받은 비판이고 사적 다큐멘터리를 만드려는 감독들이 각오해야할 비판일 것입니다.

 

7.(4와 연결해서) 당시 얻은 경험, 생각들이 이후 영화들에 관통되는 건 어떤 것이 있는 지 이후 작업들을 언급해서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듯해요.

 

<엄마…>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니까요. 평범한 제가 그 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 영화를 만들자,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기억을 불러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만들었던 <아이들>은 촬영 단계부터 공통의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장면들을 담는 데 주력했습니다. <아이들>을 보고 나서 어떤 관객이 썼던 "나도, 그도, 우리 모두 지나온, 기억할 수 없지만 존재했던 시기의 애틋함"이라는 문구처럼, 저는 제 영화가 기억의 문을 여는 문고리가 되길 바랍니다. 생활의 격랑에 밀려서 엄마들이 흘려보냈던 그 모든 시간은 고스란히 마음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제 영화가 그 반짝거리는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기를, 그 기억의 문을 여는 작은 문고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의 모토는 ‘열심히 살고 그 시간을 담아 영화로 만들자’입니다.

 

8. 2015년, 11년의 시간, 오랜 시간 작업을 해온 감독으로서 영화는 어떤 것이 되었을까요? 궁금해요. (처음과 지금의 생각이 다를 수도 같을 수도, 다르면서도 같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초기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 때의 주요 고민은 ‘내가 본 세상을 어떻게 당신에게 보여줄까’ 였습니다. 그 전제는 새로운 세상, 다른 세상을 보는 거였어요. 지적 장애인이 주인공인 제 첫 번째, 두 번째 영화처럼요.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이제는 ‘당신과 같은 세상을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를 어떻게 잘 표현할까를 고민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처음에도, 지금도 제게 구원입니다. 20대에 갈 길을 몰라 방황하던 그 때에 제게 반짝반짝 거리며 삶의 길을 보여주었고 40대 중반이 된 지금은 평탄하지 않은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자, 그리고 이 시간을 어떻게든 영화로 만들자. 뭐 이런 식.

9. 이후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그리고 20살 먹은 인디포럼에 대해서 한마디 해주세요.

 

2013년 10월에 기획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따뜻한 손길-아이들2>는 집 밖의 육아와 사회적 엄마들의 목소리를 담을 다큐멘터리입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없는 아이’로 살아왔던 저는,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보다도, 아버지가 없으니 문제가 있을 거라는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한 시선들 아래에서 저처럼 열심히 살고 있는 소위 말하는 ‘비정상 가족’의 아이들을 봅니다. 여전히 한 인간의 문제적 인성의 원인을 부모와의(특히 엄마와의!) 애착관계 실패라든지 성장 단계의 불완전한 이행에서 찾는 가족주의, 그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 어떻게든 항변하고 싶은 마음에서 <따뜻한 손길-아이들2>를 만들고 있습니다.

 

1회 인디포럼 때 저는 다큐멘터리감독을 꿈꾸던 잡지사 기자였습니다. 그 때 검열문제로 종로구청 공무원이 행사를 방해하던 현장에 제가 있었는데 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는 그 현장에 있는 영화감독들이 너무나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 여전히 저는 인디포럼에서 상영되는 영화감독들이 부럽습니다. 상투적인 사람이 되어버릴까봐 늘 두렵고 제 영화가 상투적이지 않기를 바라며 늘 고민합니다. 모든 독립영화는 상투적인 영화공식을 거부하지요. 인디포럼은 상투적인 것을 가장 치열하게 거부하는 영화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60이 넘어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고, 그 영화가 인디포럼에서 상영된다면, 내가 아직은 쓸만하구나, 라고 기뻐할 것같아요. 함께 나이먹으면서도 여전히 젊은 인디포럼에게 부러움과 찬사를 전합니다.    -2015년 6월 26일

 

인디포럼 특별전 선정작 리뷰 

11년 전에 만들어진 류미례 감독의 <엄마...>를 보고 있으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그리고 <엄마...>에게 많은 것을 빚졌구나 생각하게 된다. 요즘이야기 가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감독이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감독은 영화 도입부부터 어쩔 수 없이’ 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양해의 고백이 아니어도, 관객은 쉽게 영화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인생에 한 번 쯤은 자기가 서있는 자리가, 어쩔 수 없이 서 있는 자리란 것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아이를 돌봐야하는 감독은  ‘어쩔 수 없이’ 주변을 돌아본다. 마침 엄마는 연애를 시작하셨다. 엄마의 연애 소식에 처음에는 엄마가 여전히 엄마로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가벼운 죄책감이 들었고 감독은 엄마의 연애를 응원하고자 영화를 시작한다. 시작은 창대했다. 아저씨(엄마의 애인)와 엄마가 셋째 언니가 있는 러시아로 떠나 자유롭게 연애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감독은 비행기 표를 끊고 신나게 해외 촬영을 설레며 준비한다. 하지만 연애가 그렇듯이, 아니 다큐멘터리 제작이 언제나 그렇듯이 예상은 늘 빗나간다.

 

엄마의 연애 이야기로 시작한 <엄마...>는, 어느새 엄마이거나 딸이거나 혹은 엄마이며 딸인 여자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영화에서 그 변화하는 부분은 몽환적이고 순간적이다. 잔치에서 흥에 겨워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는 엄마를 촬영하는 감독은, 이내 자기 아이가 다른 사람의 손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그리고 이야기는 과거로 훌쩍 돌아간다. 엄마가 자신을 잘 돌보지 못했던 과거, 그리고 엄마한테 받았던 상처들, 직접적으로 엄마의 돌봄을 받지 못한 언니와 오빠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여기서 이야기가 적당히 마무리 되었다면, 우린 그리 많은 것을 <엄마...>에게 빚졌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러시아로 날아간다. 엄마의 연애는 뒷전에 놓이고, 맘 놓고 딸들이면서 동시에 엄마인 여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셋째 언니는 혼자 힘으로 유학을 갈만큼 똘똘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공부를 중단했다. 감독은 셋째 언니에게 자신의 미래를 보며 불안해한다. 어쩌면 <엄마...>는 불안에대한 영화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그랬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여자감독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더이상 영화를 계속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시작한 영화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 불안을 견뎌내며 현실을 담아낸다. 감독의 엄마를 경유해 그 시대를 살아낸 여성의 이야기를 한다. 이제 감독의 엄마는 더이상 이상한 엄마가 아니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혼자가 되어 6명의 아이들을 챙기며 그 시대를 살아난 여자다. 그리고 셋째 언니는 아이 때문에 공부를 포기한 그저 그런 지식인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했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아나갈 여자이다.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던 자신의 딸들을 지켜낼 힘을 지닌 여자가 되었다.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 엄마의 연애를 지켜보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영화를 마무리하면서 감독은 여자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넘어 선다. 하지만 훌쩍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엄마이거나 딸이거나, 여자의 삶이 과거에도 그럿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담담하게 영화를 마무리한다.

 

 

가족을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감독이 현실과 하고자 하는 이야기 사이의 긴장감에 지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감독의 가족들을 통해 여자로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해나갈 수 있다. 요즘 만들어지는 가족에 대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나,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엄마....>도 처음에 그렇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시작했지만 봐야하는 영화로 만든 감독을 보면서, 봐야하는 영화에 대해 질문하는 모습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지 생각하게 된다. 역시 여러 가지로 <엄마...>에게 빚을 졌다.  -주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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