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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에 대한 섬세한 성찰; 박일동감독의 <개가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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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길잃은 동물들을 많이 봤는데 들이 넓은 강화에서는 죽은 동물들을 많이 본다. 어떤 날은 서울로 가는 출근길 도로 위에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연달아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하루 종일 우울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늘 그 시신들이 아스팔트가 아닌 도로 옆 흙에 놓이기를 바라지만 단 한 번도 실행해본 적이 없다. 일단 운전이 미숙하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하더라도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 가운데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기도를 한다. 그럴 때의 내 기도가 얼마나 자기만족적인 행위인지를 알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기에 나는 기도를 한다.이제 막 만들어진 박일동 감독의 다큐멘터리 <개가 있던 자리>가 고마웠던 것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내 마음과 같았기 때문이다.

 

박일동 감독은 반려견 초코 때문에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닥스훈트종인 초코는 활동적인 사고뭉치다. 첫 반려인이 결혼 때문에 다른 이에게 보내고 그 사람이 다시 한 달을 못 견디고 감독의 형한테 맡겨서 결국 감독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된 초코. 초코는 어머니의 가방을 물어뜯고 공놀이를 하자며 쉴 새 없이 떠들고 아무 데나 입을 들이대서 어머니가 질색하는 말썽장이이다. 초코의 이야기를 하던 가족들은 뽀삐라는 얌전하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잃어버렸던 아픈 기억을 꺼낸다. 그래서 강아지, 그러면 뽀삐만큼 사랑스럽고 얌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 가족에게 초코는 짐작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지만 혀를 차면서도 감싸안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미안해” 일 것이다. 감독은 늘 미안해한다.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바다에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그래서 어느 날 허공을 바라보는 초코의 표정을 보며 혹시 가족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초코의 가족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애견샵 개들이 어떻게 키워지고 팔려가는가를 알게 되면서 영화는 확장된다.

 

영화는 그렇게 개들이 도구로 다뤄지는 애견산업의 현장, 줄에 묶여 평생을 살아가는 시골집 큰 개들, 유기된 개들을 돌보느라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못하는 동물보호소의 자원봉사자, 로드킬을 당한 아스팔트 위의 이름 모를 야생동물, 굶주린 길냥이들을 돌보는 캣맘에게 까지 가닿는다. 자막으로 조근조근 자신의 마음과 생각들을 들려주면서 감독은 자신의 죄스러운 과거까지 드러낸다. 어린 시절, 친구에게서 받은 강아지를 골목 어딘가에 유기하고 돌아온 거다. 거기가 어디였을까? 비슷비슷한 풍경들 속을 자신의 반려인과 함께 서성이며 그 때 그 곳을 찾아다닌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이 정말 찾고 싶었던 것은 그 때 그 곳에 강아지와 함께 두고온 책임감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떠도는 개들이 안타까워 한 마리씩 거두다가 이제는 40마리를 돌보는 파주동물보호소의 운영자의 말에서, 사무실에서 키우는 길냥이 까미를 주말이면 집으로 데려오는 감독 부부의 말에서 ‘책임감’이라는 말은 반복해서 등장한다.

 

“좋아하다는 것과 책임진다는 것 사이는 천지 차이예요”

 

좋아하다가 책임질 수 없어서 버려진 개들, 그 개들을 돌보느라 하루도 쉴 수 없는 동물보호소 운영자는 그래서 말한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예요. 그냥 한 마리, 두 마리 데려오다 보니까 어느 날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물건이라면 벌써 내다버렸을텐데 생명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가 개와 함께 버린 책임감을 함께 가져온 탓에 동물보호소의 운영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출퇴근하며 빈소를 지켜야했다. 그래서 말한다.

 

“이 애들을 돌보느라 사람구실 못하고 살아요”

 

‘한 나라의 도덕성은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격언을 떠올려보면 <개가 있던 자리>에 등장하는 인물들 덕분에 이 나라의 도덕성은 그 평균이 살짝 올라간 것같다. 평균을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이 영화를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아름다운 신비이기 때문이다. (문의:02-746-9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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