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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8

98년 8월 19일.

<검은 사슴>의 1쇄 발행일이다.
나는 그 1쇄를 보았다.
28살에 나는 한강의 <검은 사슴>에
그리고 주인공 인영에 깊이 매료되었다.
나는 28살에 인영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외로움을 집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외로움에 힘들어하지 않는
강인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의선의 고향인 어둔리, 를 
강원도에 갈 때면 늘 찾았다.
정선과 서울을 오가는 낡은 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강원도 산간지방의 국도를 지나갈 때면
휙휙 지나가는 표지판들을 하나하나 빼놓지않고
살피며 '어둔리'라는 지명을 찾으려했다.
 
'"...만일 그대가 밤의 어두움과 불빛의 따스함에 대해, 사람의 창의 애처로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원도 산간 지방의 그믐밤 국도를 달려보라. 어둠 속에서 드문드문, 마치 끊길 듯한 기억처럼 하얗게 맺혀 있는 등불을 기억하라. 거기 사는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부자리를. 겨울산의 굽이굽이를 돌아 작은 읍내를 지나쳐갈 때면 잠시 그 창들의 수효가 많아지기도 하지만, 다가오는 빈 들의 어둠 속으로 이내 삼켜지고 만다. "
 
셀 수 없이 많은 밤동안 그 길을 오갔다. 28살의
나는 늘 <검은 사슴>의 인물들과 어둔리를 생각했고 46살이 된 나는 <검은 사슴>을 다시 보며 28살의 그 막막했던 밤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 서울에 도착하면 신촌의 '씨저스'에 가곤 했다. 쪽지에 음악을 적어 내면 꼭 나오던 곳. 온전히 한 세계였던 그 곳에서 듣던 음악들.
 
그래서 나의 28살은 한강과 검은 사슴과 어둔리와 씨저스와 게리 무어와 로이 부캐넌과 더 메시아 윌 컴 어게인과 동백아가씨. 러브레터. 충무로의 필동해물. 독협의 화려한 방석. 그리고 내가 찢고 태워버린 나의 사진들. 그런 것들.
 
작년이었나 나의 사진을 찍었던 이가 전화를 해서 자신의 두번째 결혼식에 와달라고 했다.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너 바람피웠니?"라고 물었고 상대는 아니라고 했다. 전화를 꾾고 나서 28살의 내가 이런 담담함을 간절히 바랬다는 걸 기억해냈다. 
 
모든 것은 지나가지.
미움도 슬픔도 
너든 나든 죽어버리길 바랬던
헛된 바람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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