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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순이

생선말린 것과 곱창과 생간을 끓여서 개들에게 주었다.

그런데 별이와 보미는 잘 먹는데

도순이는 안 먹는다.

도순이는 먹여줘야 먹는다.

별이와 보미는 찹찹찹 잘 먹는데

도순이는 손으로 혹은 주걱으로 떠서 줘야 잘 먹는다.

그게 밥이라도.

도순이는 떠먹여주자 깨끗하게 다 비운다.

 

도순이는 자꾸 우리 순돌이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 순돌이는 천사의 개 골든 리트리버였다.

우리마을에 강아지 두 마리가 왔고 

나는 둘 중에 약해보이는 쪽을 선택했다.

만약 아파도 나는 그애를 끝까지 돌볼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순돌이는 오자마자 아파서 병원가서 수혈하고 뭐 그러느라 몇 십만원이 들었다.

개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들였다고 하면 사람들한테 욕먹을까봐

친구가 무료로 치료해줬다고 거짓말했다.

순돌이는 회복식으로 캔과 특별사료를 먹었기 때문에 

다 나은 후에 우리집 개들이 먹는 사료를 잘 먹지 않았다.

그 때 사택이었던 우리 집에는 네 마리의 대형견이 있었는데

순돌이만 고급사료를 주는 건 평등에 위배된다고 생각했다.

사택을 돌보는 분이 따로 계셨는데

우리집 개만 고급사료를 주다가는 나쁜 소문이 날 것같았다. 

순돌이는 나를 정말 잘 따랐다.

강화 이주 첫 해인 그 때 나는 서툰 운전으로 매일 서울을 오갔다.

서울도로에서 운전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조금만 지체하면 빵빵댔고

씽씽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늘 긴장해야 했다.

그래서 그토록 오고 싶지 않았던 강화가 늘 반가웠다.

초지대교를 지나면 내 집에 온 듯 편안해지곤 했었다

그렇게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나를 기다렸던 순돌이는 내 신발에 머리를 얹곤 했다.

나는 지금도 그 때가 너무 그립고 후회된다.

대학원 따위는 가지 말걸.

집에 있을 땐 늘 숙제하느라 바빴다.

순돌이는 다른 개들과 같이 사택을 돌보던 분이 돌봤다.

어느 주말, 숙제를 마치고 순돌이를 찾아갔는데 순돌이가 이상했다.

악취가 났고 눈은 쪼그라들어있었다

순돌아 너 왜그래..

맛있는 걸 갖다줘도 좋아하는 참치캔을 따줘도 먹지 않았다.

전화를 해서 "본부장님, 우리 순돌이가 이상해요" 하니

본부장님은 걔가 안먹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 때 본부장님한테 많이 서운했었다.

본부장님은 죽으면 죽는 거다,라고 하셨다.

순돌이를 데리고 멀리 안산에 있는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동물권 전문 감독이 소개해준곳이었다.

그 수의사는 한의학을 도입했다고 했다.

수혈을 하고 아로마테라피라고 해서 무슨 빨간 향이 나는 액을 순돌이 코에 대주고

그리고 한약냄새나는 약을 주었다.

순돌이는 혼수상태가 되었다.

우리 순돌이가 살 수 있냐고 물으니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면 그는 사기꾼이었다.

그는 순돌이때문에 정신없는 나에게 암웨이 식품도 팔았다.

나는 동물을 치료하는 데 한의학을 접목시켰다는 그 사람 말을 딱 믿었고

그 사람이 시키는대로  하면 우리 순돌이가 살아날 줄 알았다.

순돌이를 뒷좌석에 눕힌 채 안산에서 강화까지 먼 길을 운전해오는데

처음 데려올 때가 생각났다.

나는 그 때에도 우리마을에서 순돌이를 선택한 후

뒷좌석 상자에 넣은 채 집까지 운전해왔었다.

그 때에는 노래를 부르며, 말을 시키며, 즐겁게 왔었는데.

나는 안산에서 강화까지 울다가 말을 하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기도를 하다가 그렇게 왔다.

순돌이는 사흘을 앓았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끙끙 앓았다.

끙끙이 아니었어, 정확히 말하자면 휘파람 소리같은 걸 내며 순돌이는 앓았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억지로 약을 흘려 보냈다.

휘파람 소리를 내며 앓으면서도 순돌이는 내가 가면 미세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나는 후회하며 순돌이를 돌보지않은 시간을 후회하며

순돌이를 보고 또 보았다.

이틀째 되던 날 나는 강릉에 강의를 하러 가야했다.

강릉은 너무 멀었고 강의는 아침이었기에 하루 먼저 가서 자야했다. 

강의가 끝나고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순돌이 잘 있어?" 했더니

응 잘 있어, 했다.

좀 나았어? 했더니

남편이 잠시 말이 없다가 순돌이 하늘나라로 갔어. 기도하고 뒷산에 잘 묻어주었어. 했다.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나는 끝까지 무책임했다.

순돌이가 떠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가끔 한별은 "엄마, 순돌이 하늘나라에서 잘 있겠지?" 묻곤 했다.

내가 사랑했던,

하지만 나의 무책임때문에 죽어간 나의 개.

강릉강의를 하고 받은 돈이 55만 몇 천원이었는데

순돌이 병원비로 55만원이 나왔다.

나는 그 이상한 우연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도순이를 보면 자꾸 순돌이 생각이 난다.

도순이는 잘 먹지 않는다.

어느 날 손으로 떠먹여줬더니 잘 먹었다.

그러니까 도순이는 손으로 떠먹여줘야하는 개인 거다.

내가 도순이한테 손으로 밥이나 사료를 떠먹여주고 있으면

별이랑 보미가 가만히 본다.

보미는 식탐이 강해서 많이만  주면 별 불만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별이가 나를 보는 눈이 무섭다.

아줌마, 왜 차별하세요......차별은 나쁜 거잖아요.....

라고 할 것같다.

 

도순이는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다.

그렇게 먹지 않다가 도순이가 순돌이처럼 세상을 떠날까봐 무섭다.

도순이는 예정에 없던 개였다.

나는 그냥 혼자 남은 고양이 미요에게 친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남양주 동물보호소에서 유기된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고 해서 데려와야했을 뿐이다.

남편이 고양이를 데려왔는데 그 편에 도순이를 데려온 거다.

도순이와 고양이들은 지금도 같이 자고 같이 먹는다.

나는 그들을 보며 종을 뛰어넘는 우정에 감탄한다.

사랑스럽고 귀엽던 도순이는 몸이 쑥 커버렸고

이제 도순이는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개장을 만드는 게 내 꿈이다.

DY가 개장 만드는 방법을 내게 알려주었는데

이 집에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같아서

개장 짓는 일은 미뤄지고 있다.

그동안 도순이에게 별 일이 없기를.

뭐라도 먹이고 산책도 시키면서

남은 시간을 잘 견디도록 도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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