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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0

얼마 전 언니가 카톡 대화중에 인간관계에서 좀 더 너그러웠어야 했다는 후회를 했다.

자신의 후회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게 살아와서 외로우니 더 늦기 전에 태도를 바꾸라는 언니의 조언이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새로이 누군가를 만나고 친구가 되는 게 가능한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언니는 내 의문(어쩌면 반론)에 이렇게 말했다.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잖니, 

늙어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네 살 더 많은 언니는 가끔 그렇게 호호할머니처럼 말한다.

 

너그럽지 않다....

그런 표현이 낯설었다.

내가 너그럽지 않은 거였나.

나는 그저 사람들과 긴밀하게 지내는 게 힘들었을 뿐이다.

내가 교류하는 사람들은 푸른영상 동료들이 유일하다.

그리고 푸른영상 밖의 동료 작업자들.

긴 시간을 지나면서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MY, J.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인지 뭔가 통했던 MY는 내 결혼식 들러리까지 설 정도로 친했는데

(가끔 집에 늦게 들어갈 때에는 남편한테 욕먹지 않으려고 집에 같이 가기도 했었다)

유학을 가고 현지 남자를 만나고 작업세계가 달라지면서

1년에 한 두번 정도만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시간걱정하지 않고 하소연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였는데

MY는 어느 날부터인가 나와 내 동료들의 작업세계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고 나는 MY의  그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너와 나는 다른 미학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네가 나의 작업 방식에 대해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바라보는 건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도 내 앞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의 sns에 그런 말들을 쏟아놓으면

나는 이렇게 나의 블로그에 혼잣말을 하고 있을 뿐.

1년에 한 두번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건  이런 조심스러움 때문일 수도.

 

p는 남편의 친구이자 나의 선배.

p는 나보다 남편을 먼저 알았고

나는 남편보다 p를 먼저 알았다.

남편과 타인으로 살아가던 20대 중반 이후 나는 p에게 바람피지 말라는 잔소리를 여러 번 했었다.

p는 나의 대학후배와 사귀는 중간에 아는 언니와 바람을 피웠고

나의 후배는 깊이 상처받고 유학을 떠남.

그런 일은 몇 번 반복되었고

비슷한 잔소리를 10년 넘게 해오다가

4년 전쯤에 그냥 연애를 끊으라 조언한 후에는 그 화제는 말도 꺼내지 않는다.

가끔 외롭다고 하소연을 하면 그냥 참아, 또 누구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하려고!

와 같은 찬바람 쌩 부는 멘트를 날리니 요즘 그의 연애사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내가 영화인들과는 절대로 러프 어페어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p였다.

사실 20대 중반, 그 때 '남자'. '영화인'들의 애정행각은 참으로 어지러워 눈 둘 데가 없을 정도였다.

 

어쨌든 my와는 서로의 힘든 점들을 나누는 사이여서,

p와는 성적 긴장없이 내가 그를, 그가 나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사이라서,

이토록 긴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20대 이전의 인간관계는 가족 외에는 단 한 명도 없고!

대학시절의 인간관계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남아있다.

사실 my도 캐나다에 살고 있으니 간간히 연락을 주고 받는지도.

그러니 가족, 푸른영상, 말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p가 유일하네.

 

my와 p와 나의 공통점은 병적일 만큼 착취에 민감하다는 거다.

"나는 누구의 것도 훔치지 않았습니다."

라고 우리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90년대 말부터 my는 독립영화계에서 최고로 기획서를 잘쓰는 사람이었던 것같고

그런데 그애는 개인활동가라서 최고로 기획서를 잘쓰는 사람이라는 명예는

큰 단체에 있는 나,에게 가끔 씌워지곤 했다.

물론 더 잘 쓰는 사람은 많았겠지만 우리들이 동료들로부터 각광받았던 이유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줬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낌없이!

는 절대 아니었다.

독립영화 1세대인 H언니야말로 기획서를 잘쓰는 사람이었지만

그 언니는 엄해서 아무도 그 언니에게 기획서를 좀 보여달라거나

혹은 기획서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으니 도와달라는 말을 못했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게 전화해서 기획서를 좀 보여달라고 하면

나는 아무 말 못 하고 보여줬던 것이다!

my가 만나는 사람의 폭이 좁은 반면

나는 무려 푸른영상이라는 곳에 있었으므로

그리고 나는 '친절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말라'라는

벤야민의 말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이었으므로

누군가 전화해서 "어디어디에 기획서를 내야하는데 샘플이 필요하니 좀 보여줘"라고 하면
네~ 하고 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내밀한 정보가 포함되어있으니 참고만 하고 꼭 지워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음에도

검색하다 누군가의 블로그에 통으로 올라있는 걸 보고 부르르 떨기도 했었다.

 

내년이면 푸른영상에 들어온지 20년이다.

푸른영상에 들어오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내 앞날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엄마, 내가 앞으로 아무리 잘 되어도 돈을 벌거나 권력을 가질 수는 없을 것같아.

그런데 명예는 가질 수도 있을 것같아. 선배들 보니 그래"

라는 말을 했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명예는 지명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자기 색깔을 가진 채 세상에 존재감을 가지는 것, 이었다.

 

그리고 20년 가까이 활동하는 동안 

내가 가장 조심해야할 것이 명예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욕이나 권력욕은 이 바닥에서는  성사자체가 불가능한 욕망이니 말해 무엇하겠어.

하지만 명예욕은 다르다.

자기가 땀흘려 이룬  것을 웃도는 명예를 욕심내는 사람들을 안다.

누군가 몇 년을 맨 몸으로 건져올린 영상을 갖다 쓰고서 입닦은 사람을 안다.

나의 문장을 가져다쓴 사람도 안다.

후배를 맘껏 착취한 후 오로지 자기가 이룬 것이라 시치미 떼는 사람도 안다.

 

나와 my와 p는 그런 짓을 절대로 안할 뿐만 아니라

그런 짓을 한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나 나는 그런 사람이 활동하는 곳은 피해 다닌다.

그래서 내가 가는 곳은 점점 줄어드는 듯.

올 3월에 우연히 어떤 파티에서 그런 사람 중 누군가를 만났는데

나는 집에 얼른 돌아왔다.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으니까.

나는 네가 저지른 악행을 아는데 멀쩡한 얼굴로 다큐가 어떻고 진정성이 어떻고

떠드는 그 상황을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신기한 것은 나나  my나 p는 점점 외로워지는 반면

그런 인간들의 영역은 점점 넓어져간다는 거다. 

가끔씩 이러다 나 고립되는 거 아닌가, 

my는 타국에라도  있지만 나는 이 강화에서 그냥 고립되는 건 아닌가 

두려워질 때가 있다.

가서 얼굴도 내밀고 인사도 하고 살살거리며 최소한의 끈은 가져야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냥 멈춘다.

아니야. 나는 영화감독이잖아. 결국은 영화로 말하는 거니까

나는 정치가가 아니니까. 

쥐뿔도 없는 정치력으로 그런 데에 끼어드는 건 내 능력 밖이다.

그래도 영화제나 큰 행사에 가서 혼자 동그마니 앉아있다 보면 좀 걱정되기도 한다.

새로운 얼굴들은 새로우니까 모르고 

선배들은 평소 교류가 있는 사람들끼리 오손도손 이야기를 주고 받고.

그런 데 있다보면 독립영화판도 정치력 있는 사람들의 필드가 되어버리려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쨌든 나 혼자 외톨이로 남더라도 결국 나는 영화로 말하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하고 먼 길을 돌아 집으로 오곤 한다. 

나는 점점 만나기 힘든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같다.

일단 어딜 나다니질 않는다는 게 큰 이유이고

두번째는 원칙에서 벗어나는 일을 감당할 신경도, 바로잡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2015년에는 두가지 큰 일을 정리했고(그 때 내 마음은 온통 피투성이가 된 듯했다)

올해에만도 '너그럽지 못해서' 세 개의 필드를 접었다.

 

올해의 경우는 피투성이가 되기 전에 초반에 냉정하게 끊어냈다. 

첫번째 필드에서는 스스로를 브레인이라 생각하는 듯한 어떤 인물의 행태를 못 견뎌서 그만 뒀다.

두번째 필드에서는 나를 이용만 하는 듯해서 그만 뒀다.

세번째 필드에서는 그 모임을 책임지는 사람이 전문가 집단 안에서 나의 남편, 나의 아이들 등 프라이빗한 부분들을 거론해서 그만 뒀다. 외형적으로는 할 일이 갑자기 늘어서 시간을 낼 수가 없다는 이유를 말했지만 그 책임자에게는 정확히 나의 의사를 표현했다. "나는 내 고유의 활동으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내 남편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불쾌하다. 내가 남편 때문에 이 모임에 초대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첫번째 필드 초반에 사이가 좋았을 때 그 사람은 내게 여러 번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어떤 지위를 가져도 될만한 위치에 있는데 지나치게 겸손하다."

나는 이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나중에, 아주 나중에 알게 된다.

그 부분을 정리하는 일은 좀더 성찰이 필요하다. 

한 순간, 딱 끊고 돌아나온 내 행동이 적절했는지도 여전히 말하기 힘들지만

어쨌거나 나는 또 한 번 고립을 자초했다. 

 

예민하다는, 까다롭다는, 유별나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웬만하면 참으려고 하지만 나는 결국 못 참는다. 그렇게 모임을 그만두고나면 돌아서서 걱정한다. '성질 더럽다는 평판, 더 늘겠군'

불합리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일을 참지 못하겠다. 트러블 메이커라는 꼬리표를 감수하면서도 불합리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사안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나름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사람들은 다 내게 치하를 보내지만 하지만 그들이 나를 다시 찾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작년부터 올 3월까지 진행했던 어떤 모임의 사람들은 자기들 대신 말을 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자기들도 다 느꼈지만 말을 못하고 답답해했었다고  했다. 그런 일들이, 그런 말들이 처음이 아닌 나는 혼자 웃었을 뿐이다. 

 

그래,  나는 너그럽지 못하다.

정치적이지 못하다.

아마 나는 점점 더 외로워질  것이다.

나의 사회성은 점점 더 고갈되어가고있고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피로함을 느낀다.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웃음으로 회피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싫은데

그 싫은 인간 앞에서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무진장 힘들다.

올 11월까지 진행해야 하는 어떤 사업을

나는 정말 살얼음판을 딛는 기분으로  진행하고 있다.

요즘 계속 주문처럼 외우며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은 "모드변환을 잘해라"이다.

그냥 흘러갈 사람이다, 스쳐지나갈 사람이다, 

감정소모하지 말고, 사무적으로, 미끄러지듯이,

이 시간을 지나가자 지나가자 지나가자, 아 쫌, 제발 그냥 지나가자, 뭐 이런 식.

 

그러니 결국 나한테 지금 문제는 너그러운가 아닌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불가피한 콜라보 상황에서 기대없이 파트너를 만나야한다는 거

그게 아닌가 싶다.

앗! 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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