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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굳은 살

아침 7시가 되면 라디오시계는 93.9를 틀어준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라디오를 켜는 것이다.

하늘은 그 라디오에서 자신의 이름과 함께 예민의 '아에이오우'가 울리는 게 꿈이고(아직 못해봤다)

나도 가끔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싶어지곤 한다.

 

며칠 전, 버릇처럼 켜논 라디오에서 <당신과 나의 전쟁> 티저영상에 흐르던 음악이 나왔다.

스승이면서,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태감독님은 선곡도 잘 하신다.

티져영상을 보면 자꾸 눈물이 난다. 또...나도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부담스러움이 등을 휘게 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하지만 올해에는 꼭 영화를 완성하고 싶다.

올해는 아버지의 30주기이고 나는 이 영화를 아버지에게 바치고 싶다.

<엄마...>의 폭군을 나는 다시 재해석하는 중이다.

당신은 고아였고 중도장애인이었으며 또한 버려진 아비였다.

그렇다고 당신을 이해한다거나 용서한다거나....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저 당신을 가여이 여기고 싶다. 당신이 가엾다.

 

마지막 촬영을 위해 갔던 해남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초라한 모습으로 누워계셨고

그리고..... 놀랍게도 무덤 위에 삐비가 있었다.

들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는 항상 삐비를 뽑아서 우리를 먹이셨다.

보드라운 삐비 세 개를 아이들에게 먹인 후 더 달라는 앵두에게 "엄마가 많은 데 안다~" 자랑하고

그 곳에 갔는데...이상하게도 한 개도 없었다.

철이 너무 이른 건가? 아니면 너무 빠른 건가?

양지바른 무덤 위라 그 곳에만 있었던 걸까?

이럴 때 신을 생각하고 내세를 기억한다. 아버지, 우릴 기다렸던 거예요?

이번 영화를 잘 끝내고 싶다. 그보다....정말 끝내고 싶다. 올해에는.

 

-쌍용자동차 파업에 대한 두 편의 영화

기타를 배우거나 철봉연습을 해본 사람은, 또는 새 신발을 신어본 사람은 안다. 굳은 살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손가락, 손바닥, 발 뒤꿈치의 연한 살에는 물집이 생긴다. 연습을 중단하지 않거나 다른 신발로 바꿔신지 않으면 물집은 계속 커지다가 어느 순간 터진다. 그렇게 굳은 살이 생기면 신기하게도 아픔은 점점 줄어든다.
마음은 어떨까? 상처를 받을수록 마음의 물집은 커져가다가 상처가 깊어지면 물집은 결국 터져버린다. 한동안은 못 견디게 쓰라리고 아파오지만 마음에도 몸처럼 굳은 살이 박힌다. 마음에 굳은 살이 박히면 아픔에 대해서도 무감해지며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통보다 처참한 인생은 이러한 마음의 관료화이다. 더이상 놀라거나 슬플 일이 없어지는 상태. 나는 항상 내 마음에 굳은 살이 박히는 걸 경계해왔다.
 

77일간의 옥쇄 파업을 벌이다 무참하게 진압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기억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마음에 굳은 살이 박히는 걸 경계해오면서 내가 선택했던 방식은 회피였으니까. 그 사건이 있던 시기에 나는 신문이나 TV를 볼 수 없었다. 파업이라는 단단한 단어 이면에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슬픔과...죽음이 있었다. 그 죽음은 박종철 열사나 이한열 열사의 것처럼 공권력에 의한 직접적인 것이 아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파업기간 중에 어린 두 아이를 두고 목을 매단 엄마도 있었다. 구속 95명, 손배 150억, 사망 7명, 부상 290명, 중상 70명, 자살기도 2명... 파업기간 중 신문과 TV뉴스에서는 스포츠중계처럼 꽉 막힌 현장 상황과 파업으로 인한 경제손실에 대해서만 잔뜩 이야기를 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스스로의 몸을 유폐시키는 옥쇄파업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아꼈다.
 

서세진 감독의 <저 달이 차기 전에>와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그 시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세진 감독은 파업현장이 전면봉쇄된 상황에서 어렵게 평택공장에 잠입한 '민중의 소리' 기자들의 촬영에 힘입어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음식물과 식수 반입 금지로 하루 한 끼 주먹밥을 먹어야했던, 단전 단수 조치로 씻을 수가 없어 덥수룩한 수염과 까만 얼굴로 지내야했던, 선무방송과 헬기소리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그 긴 시간을 관객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감성적인 내레이션은 때론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서있는 감독의 자리를 느끼게 해준다.   
 

태준식 감독의 영화는 다소 건조한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의 첫 내레이션은 핵심적인 메시지를 압축하고 있다. ‘전쟁 같은 출근을 하는 것도 축복이다. 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실직자가 300만명에 이르고 나머지 탈출구로 전 재산을 털어 창업을 해도 그중 70%가 실패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건조하고 팍팍한 현실을 내레이터는 가지런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두 영화를 통해서 새로 알게된 사실들은 참 많다. 태준식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지 그들만의 투쟁은 아니었던 것이다. 옥쇄파업을 하기까지의 상황들은 나 또한 아무 잘못도 없이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장밋빛 투자계획을 늘어놓으며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자본 상하이 차는 2009년 초 투자 약속 대신 일방적 철수선언을 한다. 자동차 핵심제조기술은 이미 다 빼돌린 후였다. 중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인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이 모든 피해를 정리해고라는 형태로 노동자들이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해고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저 달이 차기 전에>의 인터뷰에 응했던 많은 등장인물들 중 대다수, 그리고 <당신과 나의 전쟁>의 주인공은 해고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지난 6월 9일 또 한 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가 구조조정의 스트레스 속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애초에 그들은 '같이 살자'는 구호 아래서 위기상황을 같이 타개해보자는 요구를 내걸고 싸웠다. 하지만 94일간을 굶고, 77일간을 옥쇄파업을 하고, 7명, 아니 8명의 목숨이 스러져갔지만 노동자들은 해고와 고용불안 속에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얼마나 더 죽어가야 하는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비극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2010년 3월, 금호타이어가 또다시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집에 있는 아이에게 아빠의 해고통보서를 건네주는 비인간적인 행위가 만연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음에 굳은 살이 박히기 전에 들여다보고 기억하자. 두 감독의 핏빛어린 진심을 받아들고서. 현재 이 두 영화는 공동체 상영을 진행하고 있다. (문의:시네마달 02-337-2135 따미픽쳐스 02-723-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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