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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6
    하돌의 영어공부(2)
    하루

나도...여성영화제

당신의 고양이님의 [] 에 관련된 글.

 

네 번 갔고 네 편의 영화를 보았다.

개막작 <텐텐>, <34세 노처녀.,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 <엄마...>

 

<34세 노처녀>는 하늘의 토요학습장 기록을 위해 여성영화제에 갔다가

선택의 여지없이 보고만 영화이다. 하늘은 재미있어했지만

같이간 하늘의 친구가 너무 괴로워해서 중간에 나와야했다.

할리우드 흑백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인터뷰 소리만 깔아서 만들었다. 

시도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텐 텐> 중 허즈 앳 래스트 한국ㅣ2008ㅣ18minㅣHDㅣcolorㅣ헬렌 리

헬렌 리 Helen LEE
1965년 서울에서 출생. 캐나다로 이민. 토론토대 영화, 영문학 전공 후 뉴욕대 영화이론 석사를 받았다. <샐리의 애교점>(1990), <먹이>(1995)와 <서브로사>(2000) 등의 단편 영화가 오버하우젠, 끌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에 연이어 소개되면서 촉망 받는 한국계 캐나다 여성 감독으로 떠올랐다. 2001년 <우양의 간계>로 장편 데뷔하였다. 토론토의 영화/비디오 배급사 DEC에서 일하며 온타리오 예술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하였다.
 

삼십대 초반쯤 돼 보이는 독신 여성화가 명진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몽골여성 소롱고가 주인공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늘 또래의 아이가 두 여성을 계속 따라다니는데 명진이 과거 떠나보냈던 아이일 거라고 추측(예전 진가신 감독의 <고잉홈>에 나왔던 유령 아이에 대한 기억 때문에). 소롱고가 임신을 하고 낳을지 안낳을지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절에서 예불을 드리는 순간, 아이가 방긋 웃었다.

떠돌던 아이가 정착을 했거나(낳기로 해서) 아니면 소롱고 또한 아이를 떠나보내기로 했을지라도 나름대로 위로를 받아서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 또한 떠나보내야했던 사람에 대해 나름대로 예를 갖춰야했던 건 아닌가 문득 생각했다.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도.

 

<위기의 주부들>에서의 가브리엘이 유산한 아이를 떠나보내는 장면을 볼 때에도

나는 그동안 슬픔은 슬픔대로, 절망을 절망대로 '떠나 보내기' 혹은

'감정을 그대로 헤아리기'를 제대로 못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으려고만, 없었던 일로 애써 생각하려고만 했던 건 아닌가.

Let it be..... 이제라도 내 삶에 대해서 내 감정에 대해서 견지했으면 하는 태도.

 

변영주 감독의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 중에서는

박완서 씨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요즘의 내 고민이 연상되어서일 것이다.



전쟁으로 졸지에 가장이 되어버린 박완서씨가 견뎌야했던 일상은 비루했을 것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억울한 일을 겪으며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잊지 말고 기억해서 나중에 꼭 써야겠다'는 태도였다.

<엄마...>를 만들면서 내가 새롭게 발견한 길도 그와 비슷한 거였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카메라를 매개로 말하기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그 선택에 대해서 찬찬히 돌이켜보는 중이다. 

 

<엄마...>의 GV를 준비하며 전경린의 여행 에세이를 다시 읽었다.  

'소설을 쓰게 되면서 생은 나의 질료가 되었다.

비통과 고뇌와 방황과 파괴와 고독과 그 많은 눈물들은 내가 짠 물감처럼

팔레트 속에서 굳어 갔다. 때론 복종했고 때론 결사 항쟁했고 때론 생을

헌신짝처럼 버렸고 때로는 생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끌려가면서.

어쨌든 생이 주는 과제를 내 방식대로 치열하게 정직하게 치러온 셈이다'

 

'매혈의 고통'에 대한 부분은 끝까지 찾지 못했다.

영혼의 매혈. 내가 견디고 살아가는 시간의 세세한 부분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리라.

글쓰기가 '쓰는 자와 쓰여지는 것 사이의 고요한 표면장력'을 요구하듯이

다큐멘터리 또한 사는 것과 말해지는 것, 놓여있는 것과 찍히는 것 사이의

긴장관계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어느 순간,그 팽팽한 긴장을 견디는 일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고민중.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만나는 모두에게 물었다.

사무실 동료들에게, 좋아하는 선배에게, 내놓는 영화마다 마음을 울리는 동료에게. 

 

누군가는 숙명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자기도 못 견디겠다고 하고

또 또 누군가는 비슷한 고민을 했던 영화감독을 알려주었고

그리고..... 누군가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실천 속에서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자, 그 만남들을 정리하고 내 선 자리를 정비해야할 때이다.

그동안 또 김재영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헬렌 리의 영화를 보면서 극영화로 선회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고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공부를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고...

그리고 어제 내 영화의 주인공을 다시 만나서

나는 카메라도 없이 밥만 꾸역꾸역 먹은 후 체기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이뤘다.

 

나는 지금 괴로워하는 건가? 아니, 괴롭다기보다는 하고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데

새 날개가 쑥쑥 돋아나고 있는 것같은데 날개를 펼 공간이 없는 것같기도 하고.

아니 나한테 날개가 없는 건 아니었잖아, 하고 나의 것을 새삼 펼쳐보기도하고.

그러다 황윤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서는 촬영연습을 더 해야지, 혹은

나도 이번 영화에서는 스텝을 잘 꾸려봐야지 하는 다짐을 하기도 하고...

어쨌든 드넓은 밭을 대중없이 마구 파헤치고 있는 듯하다.

파헤치다보면 땅콩도 나올 거고 감자고 나올 거고

누군가 가져가서 텅비어있는 구덩이만 발견할 수도 있을 거고 뭐 그러겠지.

 

그리고 최초의 고민.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을 보면서 나는 내 변화를 본다.

5년 전에 여성영화제를 보면서 느꼈던 것.[엄마]영화, 밥, 엄마

당시에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을 보는데 주인공 엄마가 너무나 멀어보였다.

많이 배웠고, 고급 승용차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멋지게 춤을 배우면서....그러면서 자아의 상실을 얘기하는 그 엄마가...

언뜻언뜻 공감가다가도 다시 저만치 물러나버리고....그랬었다.

5년만에 다시 본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

그리고 처음으로 관객의 입장에서 본 듯한 <엄마...>.

5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 사이를 헤아린다.

누군가 <엄마...>를 보고 물었다. "셋째언니는 뭐가 힘든 거지요?"

나는 그 때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같다.

유학까지 갔잖아.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공부까지 하면서 뭐가 힘들어?

 

내가 <가족 프로젝트>의 엄마를 보면서 느꼈던 거리감과

질문을 했던 그 누군가가 <엄마...>를 보면서 느꼈던 거리감은 다르지 않다.

나라는 사람의 얄팍함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중이다.

하늘이 입학 후 새로이 만나는 하늘이 친구의 엄마들을 보면서

비교할 수 없겠지만 비교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의 차이에 대해서

층층시하 시부모를 모시며 낮잠자는 남편 대신에 아이를 업고온 j엄마를 보며

더 말할 것도 없는 무수히 많은 여성들의 삶을 보며

나는 내가 느끼는 부당함이라는 것이 하잘 것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발언하는 순간 그것이 공감이 아니라 

"호강에 초치고 있네"라는 비아냥으로 돌아올까봐 전전긍긍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다시 <가족 프로젝트>를 보며 나의 자리를 생각한다.

감독의 엄마는 대한민국 최고학교를 졸업하고 아나운서까지 한 초엘리트이지만

스트레스가 쌓일 때에는 고급차를 몰며 드라이브를 하는 사람이지만

여성이라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좌절당한 채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그녀가 체제에 순응하건, 연대를 하건, 또 어떻든 간에 그 좌절을 이해하고 싶다.

세대의 차이,빈부의 차이, 사회적 지위의 차이에 따라서도 수많은 선과 벽들이

당신과 나 사이를 갈라놓고 있다. 당신의 고통은 나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참고 있는데 너는 참지 못하기 때문에,나는, 혹은 당신은 

고개를 돌릴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외면마저도 나는 감수할께요. 그것이 운명이라면.

문득 그런 생각도 해보며 지금 이 시간을 찬찬히 헤아리는 중이다.

 

기쁜 소식 하나는

<먼길>의 완성을 1년 더 미룰 수 있게 되었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에게 내 상황을 솔직히 알렸고

1년의 시간을 더 벌었다.(해명서는 써야 한다고 하셨다)

사무실에 그 사실을 알리고 잘됐죠...했더니

선배가 말한다.

"이자가 더 늘어났는데 부담되겠다..."

그래요 부담스럽지만 어쨌든 깜깜한 망망대해가 아니라서

저기 멀리서 등대처럼, 완성에 대한 약속이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결국 가느다란 실 하나라도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짊어지고가야하는 이 부담까지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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