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명랑한 밤걸음

4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3/14
    두번째로 만나는 세상(3)
    하루

두번째로 만나는 세상

바리님의 [] 에 관련된 글.

작년 초 2개월동안 어린이집의 일상을 촬영했었다.

3월에 하면 좋았겠지만(아이들의 첫 적응을 기록할 수 있으므로)

사정이 안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내가 촬영을 시작했을 때 두 명의 아이가 적응기를 거치고 있었다.

한 아이는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서 고모가 키우던 아이로 만 48개월이 넘었고

한 아이는 만 24개월이었다.

나는 내 아이들이 거쳤을 시간을 두 아이를 통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 세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나한테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첫 아이때였다.

아이는 한 명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정말 힘이 들었다.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는 우울과 남편에 대한 서운함,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까지 더해져서 내 상태는 최악이었다.

최소한 36개월까지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한다고,

엄마도,언니도 모두들 내게 말했다.

18개월 때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내게 큰언니는

아동학대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무서운 말까지 했다.

그런 말들은 정말 속상하다.

엄마는 우는 아이와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내 인생이 뭐가 중요하다고...

내 욕심이 너를 울게 하는구나....뭐 그런 생각.

 

작년 촬영기간, 그 마음을 다시 꺼내볼 수 있었다.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절제를 배울 수밖에 없다.

자기만을 바라보던 엄마, 혹은 할머니, 혹은 고모를 떠나서

그 일대일 대응을 떠나서

4대1 혹은 12대 1, 혹은 15대 1의 다대일 대응관계를 맺어야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절제를 배울 수밖에 없다. 물리적으로, 기계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어린이집에 맡기는 시기를 늦추라는 말이 나오는것같았다.

36개월을 이야기하는 건 아이가 스스로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서인 것같고

진경과 단이는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할 수는 없지만

엄마들이 EASY를 제대로 파악하고있어 관련 정보를

보육노동자가 제대로 습득하게 된다면

주양육자 변동에 따른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있을 것같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보면 보육원 방문을 간 여고생 공지영에게

"아이를 안지 마세요. 저희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시설 종사자가 나온다.

아이들은 어떻든지 자란다.

안아주지 않는 아이들은 거기에 익숙해지며

자주 안아주는 아이들은 또 거기에 익숙해지며.

일찍 어린이집에 맡겨진 아이든,그렇지 않은 아이든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이 되면 아이들은 자란다.

결국 선택은 부모의 몫인 것이다.

 

나는 하늘에게 지금도 미안하다.

하돌은 하늘 덕분에 어린이집에서 울지 않고 적응을 잘해나갔다.

매일 전화를 받던 하늘에 비해, 하돌의 경우는 딱 한번의 전화를 받았을 뿐이다.

하늘이 1박2일로 들살이를 가던 날, 하돌은 누나가 없어서 잠도 못자고 울었다.

결국 하돌의 수월한 적응은 누나 덕분이었다.

누나인 하늘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어린이집에서 아주 힘들게 적응을 했다.

진경이도, 단이도, 그리고 우리 하돌도 지금 그런 시간을 거치고 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두번째 세상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6개월 이전에 맡겨진 아이들은 분리때문에 우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기본적인 생존의 욕구만 채워진다면 누가 누구라도 상관이 없으니까.

6개월 이후, 낯을 익히고 주 양육자를 인식하게 된 아이들이라면

분리불안은 꼭 한 번은 거치게 되는 과정인 것같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낯선 사람과 함께 있게 된다는 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큰 공포다. 그러니 세상이 끝나는 고통을 느낄 수밖에.

 

헤어지는 아이의 눈물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내 친구는 이 시간을 못 견뎌서 일을 그만 두었다.

이제 곧 있으면 아이들은 밤잠을 설치고 악몽을 꾸고 식은 땀을 흘리며

고함을 칠 것이다. 내 친구는....결국 그 잠 때문에 일을 포기했다.

밤마다 악몽을 꾸는 아이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집의 보육노동자들 때문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믿었다.

그 분들은 내게 말해주기를

할머니나 고모, 엄마가 아무리 아기돌보는 일을 싫어하고 귀찮아한다 하더라도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다.

아무리 뛰어난 보육노동자라 하더라도 일대일 대응관계가 형성되지않는 한

손길은 덜 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따라서 아이들은 욕구를 참는 법을 배울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반면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24개월 이후의 아이는 보육시설에 맡기는 것이

법으로 의무화되어있다고 말해주었다. 24개월 이후의 아이는 그런 식으로

사회성을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6개월 이후의 아가라면 필연적으로 분리불안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아기는 쑥 자란다는 것을 믿고 싶다.

 

작년, 촬영을 하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보육노동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인권보육이든 인권분만이든 또 인권교육이든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게 자란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우선시되는 이유는 그 곳이 민간어린이집보다는

자본의 질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의 보육정책이 걱정되는 이유는 보육을 시장에 맡기기 때문이다.

 

세상을 믿을 수 없어 엄마들은 일을 포기하고 육아와 보육에 전념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 그것은 낭비일 수도 있다.

기꺼이 선택한 육아가 아니라면....그 시간이 엄마에게 행복한 시간일수만은 없다. 

진경네와 단이네의 선택을 지지한다.

지금 육아에 전념하기보다 아픔이 있더라도 아이를 맡기고 자기 일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일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한 노력이기 때문에.

나 또한 그 믿음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내 아이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위해

내가, 내 아이가 좀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 힘든 시간을 잘 버텼으면 좋겠다.(힘내시라구요들~~)

 

보육노동자에 대한 깊은 신뢰,

또 내 아이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 시간을 잘 견디기 바란다.

약간 좋은 건... 아이와 떨어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엔 애정이 더 깊어질 수도 있을 것같다.

아이를 찾으러가는 길,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두근거림이 있는 시간.

그렇게 서로 씩씩하게 이 시간을 견디고 행복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하돌이가 지금 힘든 이유. 누나가 없어서.

씩씩이어린이집 안전훈련 때의 사진. 하돌의 어깨에 올려진 하늘의 손.

진경과 단이와 하돌은 지금 저 손이 없는 두번째 세상을 만나고 있는 중.

씩씩하게 잘 견딜 수 있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