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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4/25
    '난 널 사랑해'
    청올
  2. 2008/04/18
    300일이라니...
    청올
  3. 2008/04/12
    떠든 사람(10)
    청올
  4. 2008/04/12
    DD Da(3)
    청올
  5. 2008/04/07
    그저 약할 뿐
    청올
  6. 2008/04/05
    점점(4)
    청올

'난 널 사랑해'

신효범의 이 노래는 절절하다 노래의 절정에서 '난- 널- 사-랑해-' 하고 외칠 때 초점은 '너'보다 '나'에게 있다. 그래서 더 절절한 것 같다... 관계라는 건 자기와 자기가 만나는 일이니까 도대체 그 자기가 다른 자기를 사랑한다는 그 대사건이 어찌 안 그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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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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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든 사람

과외하는 중1(앗 지난 3월부터 중2;;)인 사촌동생이 '재미있게' 해준 얘기 1. 담임샘이 반 아이들 중 한 명을 '스파이'로 점찍어서 그 애한테만 살짝 알려준다. 그의 역할은 담임이 없는 자리에서 다른 과목 수업 시간에 다른 선생에게 걸리거나, 떠들거나 암튼 그런 친구를 담임에게 낱낱이 알리는 것. 스파이를 제외하곤 아무도 누가 스파이인 줄 모른다. 2. 반 아이들은 누가 스파이인지 맞추러 담임에게 가서 500원을 걸고 도전할 수 있다. 답이 틀리면 500원을 그대로 담임에게 잃고, 맞으면 1,000원으로 돌려받는다. 그 순간 스파이였던 애는 노출되므로, 다른 애로 즉각 교체된다(역시 담임과 새로운 스파이만 알게 비밀리에). 전직 스파이는 다른 아이에게 들키도록 서툴게 일을 수행한 죄로 벌금 1,000원을 낸다. 3. 최근 내 과외학생은, 친구 두 명과 함께, 스파이로 의심되는 다른 아이를 하나씩 찍어서, 각기 번갈아 500원을 내고 도전해 보았다. 내 학생과 두 친구 모두 예상이 틀렸고, 그렇게 각기 500원씩 잃었다. 그런데 어떤 다른 남자애가, 또 다른 아이에게 "야 OOO, 너 스파이지? 다 알고 있어! 나 지금 선생님에게 말하러 가는 길이다." 하였다. 지목당한 아이는 "어 나 맞는데 어떻게 알았어?" 하는 바람에 들켰다. 처음 말한 아이는 "야 진짜야?! 떠본 건데 진짜라 그러면 어떡해!ㅋㅋ" 하며 결국 선생님에게 가서 말하고 1,000원을 벌었다. 4. 스파이로 밝혀진 아이 주위에선 다른 아이들이 "야 너땜에 지난번에 나 걸렸잖아." "나도 걸렸어 그게 너 때문이었구나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하고 투정부리듯 따지다가, 그 아이가 당당히 "스파이니까. 어떡해." 해서 다들 더 뭐라 말하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 나는 꽤 당황하여 걱정하면서, 여러 가지 물어 가며, 이렇게 완성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문제도 많지만) 자칫 왕따 후보자를 양성시킬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걱정했다. 사촌동생은 내가 이렇게 걱정하고 놀랄 줄 모르고 그냥 가볍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그 떠본 아이 이야기를 재밌다고 하려던 것이었는데 내가 너무 심각해지니까) 좀 김이 빠져 했다... 그 아이뿐 아니라 반 아이들이 그걸 하나의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인 듯했다. 이 스파이 제도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무척 당황스러웠다. '마피아 게임'이 저렇게 적용될 수도 있구나. 그 담임 진짜 놀랍구나. 집에 와서 동생에게 이 이야길 하니 그는 나보다 훨 심각하게 놀라고 고민하면서 말했다. 이게 아직 학기 초라 그냥저냥 잼있는 듯이 굴러갈지 몰라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곧 문제들이 불거질 것이다. 많이 떠들었거나 걸렸거나 한 것이 아니라 '조금' 잘못해서 애매한 경우, 자기랑 친한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감아주고, 안 그런 아이는 걸러낼 수 있다. 평소 밉게 본 아이에 대해 별 거 아닌 문제를 트집 잡아서 얼마든지 '보복' 심리로 자기의 스파이로서의 놀라운 '비밀 절대 권력'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그 담임은 평소 다른 수업 시간에 다른 선생에게 지적받은 아이들을 종례 시간에 혼냈다고 하는데, 그것이 다 스파이를 통한 정보 수집의 결과였다는 것을 아이들이 이제는 알고 있다(담임이 공지는 조금 늦게 했나 보다). 혼나는 수위가 어떤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지각한 아이나 서로 싸웠는지 아무튼 무슨 말썽인가를 피운 남자아이들을 '두 손으로 두 뺨을' 쳤다는 둥 하는 얘길 그 아이가 하는 걸 보면(그 아이는 그것도 '선생님 무섭다'고만 표현했다), 게다가 만우절에 무슨 기합을 줬다느니 갑자기 달리기 시험을 본다고, 수행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며 아이들을 달리게 한 걸 보면, 평소 체벌을 포함, 아이들에게 폭력과 권위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는 선생인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나는 혼란스러운 대로 "아니 어떻게 그런..." 하고 어버버하며 몇 마디, 그건 정말 아닌데, 너무하다, 중얼중얼하다가 굳이 최대한 이해를 해서 "나도 삼사십 명 되는 아이들을 관리하다 보면 그랬을까, 그렇게라도 (해서 관리)하고 싶어졌을까?" 하고 씁쓸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래도 정말 아니라 생각해서 뭔가 이걸 제대로 문제제기해야 할 것 같은데, 네가 그곳에 인질(?)로 있다는 생각에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모르겠구나..." 할 뿐이었다. 어제 아니 목요일 인권연구소 창의 강좌에 늦게 갔다가 끝나고 다과(그보단 거의 요리를 내어 주시는;;ㅎ) 시간에 몇 명 안 남았을 때 이 생각이 나서 얘기했더니 '떠든 사람' 이름 적는 것의 발전된 버전이라 하며 다들 놀라워하였다... 스파이로 지목된 아이가 친구를 일러바치면서 뭔가 불편한 마음이 안 드나? 하고 의아해하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변하거나 조금씩 불합리한 걸 깨달아가는 데에 시간이 참 오래 걸린다는 얘기, 각자 학창시절의 그와 비슷한 경험. 심지어 선생이 '반 평균 깎아 먹은 애들'과 '잘한 애들'을 같은 수로 앞으로 불러 내어 '잘한 아이들'에게 "너희도 친구들이 공부 못하는데 도와주지 않은 책임이 있다"며(평균이라면 어차피 늘 그런 숫자는 존재하는데 어차피 또 무슨 논리?) 잘하는 그룹에게 못하는 그룹을 "때리라"고 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나도 초등학교 2학년 선생이 구구단을 못 외운 학생과 잘 외운 학생을 불러 내어 못하던 학생이 외울 때까지 잘하는 아이를 한명씩 붙여 가르쳐 주게, 훈련시키게 한 기억을 얘기했다. 그리고 어제는 TV를 봤는데 'VJ특공대'에서 '귀농해서 부자 된 사람들'을 주제로 한 한 영상이 나왔다. * 바로 뜯어 먹을 수 있는 화분 채소를 키워 파는 사람 * 여러 가지 색깔과 무지개 색깔의 장미를 만들어 낸 사람 - 진짜 이뻤고, 이걸 반차별공동행동에서 어찌 활용해도 좋겠다 집회 때 또 머리에 달면 어떨까, 참 좋겠다 하면서 보는데 어쨌든 화분에 온갖 색소 주사기를 꽂아 놓은 장면에선 좀 불편했다 * 야생 동물인 오소리를 대량 사육하여 파는 사람 - 먹이를 주려고 주인이 들어가자 온순히 모여드는 오소리들을 보며 "예전엔 이런 장면이 연출이 안 됐죠, 하지만 가축으로 다 등록이 되어 있답니다. 제가 재네들이 어릴 때부터 키우니까 정이 들었어요" 하고 말한 주인, 바로 다음 장면이 '오소리 기름'을 짜내는 커다란 기계 앞에 그가 쭈그려 앉아 관을 통해 흘러내려와 똑똑 떨어지는 기름을 받는 모습이었다. "오소리 기름이 화상과 피부에 아주 좋다고 예로부터 OO에도 나와 있구요, 오소리 한 마리가 100만원 정도 하는데 2차, 3차로 나가면 그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합니다." * 장수하늘소를 재배(?)하는 사람 - 흙 속에 빽빽이 묻혀 동그랗게 움츠리고 있는 애벌레들을 손으로 만지는 걸 보고 "징그럽지 않으세요?" 하는 질문에 "징그럽긴 왜요? 이게 다 현금인데." * 지렁이를 대량으로 역시 재배(!)하는 사람 - 지렁이 무더기를 흙 푸듯 퍼다가 진흙 묽게 탄 게 든 통에 붓고 무슨 약품인가를 넣고 잘 저으니까 '단백질이 녹아내려서' 피부에 좋은 지렁이 진흙팩이 된다. 체험하러 온 사람들이 방에 일렬로 누워 "지렁이 하나 발랐을 뿐인데, 피부가 장난이 아니네" 하고 즐거워하였다. * 시골의 폐교를 개조하여 '폐교팬션'을 운영하는 사람 - 엠티 온 대학생들이, 깔끔한 마룻바닥 인테리어 한쪽 벽(교실 앞부분인 것 같다)에 잘 보존된 칠판에 분필 낙서를 하며 논다. 여지없이 '떠든 사람'이라고 낙서하는 화면이 잡혔다. "학창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아서 뭉클하고, 좋아요." 그 영상은 "농사 지어 재벌 됐다는 얘기 듣고 싶다"는 그 오소리 농부의 인터뷰와 맞물려 '귀농해서 얼마든지 부자 되자'는 주제로 끝을 맺었다... 저 '떠든 사람'을 보고 새삼 놀란 거지. 떠든 사람의 마피아 게임 버전... 아아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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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Da

여기 진짜 맘에 들어! >.< 혼자 와 있어! >.< 근데 맘이 초조해서 뭐가 안 된다 대체 왜 사회부적응 준비만 완료해서 그 모습을, 여전히 직원들을 노예 비슷이 알고 있는 - 적어도 그 비슷하게 말하는 - 사장이란 존재 - 입장, 앞에서 나불대질 않나 당최 수위 조절을 못 하겠어- 그냥 회사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고, 그에 맞춰 내 기대 수준도 조절해야 하는데-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민주적이려면 대략 굶을 각오를...? 후앙 난 훈늉한 삶과는 거리가 아주 먼데 말야... 안 훈늉해도 그렇지 그닥 창조적이거나 좀 세지(?)도 않고- 세상 돌아가는 원리란 것이 내 머릿속이나 내가 보는 신문이나 그런 거 말고 어딘가에 전혀 따로 있는 듯? -_- 그러나, 그래도, 그럼에도, 아니 그러니까, 그럴수록, 고민을 계속할 밖에... 아 개놈자식의 총선같은놈-_- 아 난 한 것도 없지만 넘 뻔한 예상만으로도 충분히 막막해-_- 제목과 전혀 상관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새삼스럽지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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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약할 뿐

약해서 악할 뿐이야... 미안하다 약하다 이런 젠장 쫓기면 여유가 없고 날카로워지고 완전 쓰레기가 된다... ------------------- 아니 쓰레기는 괴물 정도로...로 고침... 쓸 때 심정은 완전 자괴감으로 정말 저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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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조금씩은, 확실히,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여럿 있는 데서 우는 일은, 아마도 이번이 벌써 몇 번째로, 이제 나는 단지 '눈물이 많다'고밖에(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할 수 없게 된 버린 듯하다. 공감 능력이 좋다고(만) 하기에는, 눈물과 정리되지 않는 막막한 분노를 티 내지 않고도 마음 깊이 공감할 줄 아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말이야... 그래도 아마, '즐기며 남 눈 신경 쓰지 않고 푹 빠져 노래하는 추하기도 한 - 그 자유로움이 멋진' 모습에 대한 벗의 지지와 칭찬이 힘이 되었듯이, 오늘 괜찮냐며 챙겨 준 문자 하나가 또 내겐 크고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었다. 사실 좀더 자유로워져서 초기의 글 두 개를 공개로 마침내 바꿀 수 있었던 건, 역시나 아주 솔직한 다른 블로그들을 보면서였다. 그동안에도 몇 번 많이 마주쳤지만, 이제야 마일리지가(?) 쌓인 것 같다. 집에 오면서 생각하건대, 예전에는 누군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누가 와 주거나 말거나 한쪽에서 뭔가를 외치고 있고, 이상하게 보거나 경계하는 눈빛에조차 흔들리지 않고 씩씩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하면 '그들'을 보면서, 마치 뭔가를 파는 일이 몸에 밴 사람처럼, '그런 (센) 사람들이 따로 있다' 또는 '정말 철판 깔지 않으면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름 한때 철없이도 사진기를 들이대며 철판은 많이 두꺼워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저렇게 못해, 하는 생각이 좀더 셌던 것이다. 그러나 뻘쭘하고 거절당할 것이 두려운데도 잠시 망설임을 멈추고 자기도 모르게 나서는 작은 용기가, 좀더 큰 두려움에도 망설임이 허용되지 않는 수많은 용기들 앞에는 비할 바 없다는 것 - 대체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갈 용기를 내는 것밖에는 - 동시에 물론 작은 용기 하나하나도, 아무리 겸손 뒤에 숨어 어느 정도 안주하고 있더라도, 이미 각기 소중하고 의미 있고, 충분히 지지하고 긍정할 만하다는 것. 함께 울 수 없다면 함께 웃을 수도 없을 것이다 - 울 일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휙휙 지나가도록 많아서, 마치 지구가 도는 것을 인식하지 않듯이 당연한 것처럼 넘겨 버려야 내 일상이 가능한 것처럼 되어 버려, 그 일상의 틈에도 뭔가 쓸쓸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 계속 고갤 드는데도, 그 아니다 싶다는 느낌이 좀더 기운이 셀 때는 우울과 한숨으로(또는 급눈물로), 둔함이 좀더 셀 때에는 무감각과 잊음으로, 하루하루가 모자이크처럼 얼룩덜룩 지나가고 나중에 그 형체는 잘 알 수도 없게 되어 버리곤 하는데 - 그렇게 함께 웃을 생각, 여유 있게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생각, 어쩐지 이제는 조금씩,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어차피 나는 '그래서 결론은 절망이구나' 하는 냉정한 판단을 택할 용기보다는, 뭐든 간에 다른 것을 택할 마음을 품기가 쉬울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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