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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5
    거부
    청올
  2. 2007/07/28
    한미동맹
    청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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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7/04/07
    문득(4)
    청올

거부

나 자신으로부터 거부당해온 듯한 느낌...

또는 그런 착각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된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부담...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고민하며 살아 왔어.

 

할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건 또 점점 작아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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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자신감

싸이월드에서 선뜻 옮겨 오지 못하는 이유를 오늘 잠깐 얘기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자신감 부족인 것 같다.

 

물론 싸이월드가 제공하는 온갖 음악이나 잡동사니 올리는 포맷 등에 익숙해진 것도 있고, 그동안 가진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데로 옮기는 귀찮음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솔직한 심정을 끼적인 것들을  '일촌 공개(그것도 꿈얘기 같은 건 몇몇 특별한 일촌들에게만)'할 수 있다는 것이 포기하기 가장 어려운데, 그 이유가 바로 자신감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내가 솔직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를 얕본다거나 미워한다거나, 가장 크게는 다른 이가 나에게 '실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이다. 



나와 가까운 사람, 서로가(적어도 나는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막 대하지 않으리라는, 타인이어서 상처 주고 받을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진실됨의 힘으로 극복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검증(?)했을 만큼 신뢰가 쌓인 사람이 아닌, 그런 신뢰가 덜한 사람이 내 약하고 부족한 마음 상태와 표현에 무어라 얘기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그것을 보고 내가 자유롭기보다는 상처받을 수 있는 경우가 두려운 것이다.

 

아직은 못 열겠군...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그런 신뢰가 있다고 판단한, 또는 상대도 나를 그렇게 판단한 경우에도 서로 실수로 또는 오해나 변화로 판단이 유보되거나 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여기 분위기를 더 보고 익숙해지면 좀 안심이 되려나? ...

;;;;;;

 

친구 블로그만 가지 말고, 다른 블로거들 것도 보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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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have changed.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 당연히 딴 건 모르겠고 내 삶에서 말이다. 여기 첫 글을 올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비공개로 적어 둔 두 개의 글이 무색하게, 덧없고 덧없지만 또 나를 성숙시킬 거라 믿는(아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 일이 하나 일어났으니,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이 달라진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전에(!) 잘 못 일어나며 '돈 처들인' 학원을 빠져 가며 그럭저럭 살고 있다...

 

밤에는 왠지 잠들기가 두렵고 낮에는 (깨어나기가 두려웠다는 듯 오래 잔 후에도) 기운 없이 헤매기를 계속한다. 



주말에 갈 데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 근교에 있는 외가(또는 큰아버지 댁에서도 아마 반가이 맞아 주실 거라 기대하는데)에 가면 농사 흉내를 낼 수 있다는 거다...

 

서울 촌놈이 두 주 연속 갔다가 그 사이 한 뼘이나 자란 고추 줄기에 감동한 뒤 그 다음 주(바로 지난 주말이다)에는 못 갔다고 향수 비슷한 증세마저 있는 듯했다. 막상 가면 컴퓨터 작업을 하거나 밀린 자료를 정리하게 되지가 않고 영 밖으로만 돌게 되어 작심하고 서울에 남았으나 못내 허한 마음 어쩌지 못해 난생 처음 슈퍼에서('3분' 어쩌고가 아닌) 카레 가루를 사서 요리를 해 먹질 않나(단지 카레밥일 뿐이지만 어쨌든 일산에서 혼자 지낸 한 해 동안에도 배고픔을 버티다 기진맥진 기어 나가 혼자 밥을 사먹는 한이 있어도 또는 반찬 몇 가지와 채소나 몇 가지 사다가 쌈싸 먹은 적은 있어도 혼자 이것저것 도마에 놓고 썰어 볶아서 헉 이러긴 쪽팔려도 할 수 없이 완전 처음이어서 전화기로 사진 찍어 화정에게 보내고 신이 났었다), 혼자 집에 있는 내내 고추 줄기와 앵두와 오디와 몇 그루 안 되지만 오이 같은 것(?)의 넝쿨 등등이 눈에 자꾸 밟히지 않나, 집앞 버스 정류장의 채소 상인 아주머니 물건들에 묻은 촉촉한 흙 냄새가 코에 스칠 때는 콧구멍으로 냄새를 잡아챌 듯 들이마시며 가슴이 다 뛰질 않나(담배 끊은 이가 남 연기 따라가는 기분이 이러겠다 했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부터는 될 수 있는 한 주말 중 하루 또는 반나절이라도 가서 보고 버스 타고 와야겠다 결심하게 된 것이다.

 

혼지 뭘 해먹는 시도(!)를 하게 된 것도 그러고 보면 흙이 준 선물 같은 것이다. 나와 생각은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그 어른들(외할아버지, 이모 등등)과 어울려 고춧잎 뜯은 것 무쳐 먹고 상추 뜯어 쌈싸 먹고 하면서.

 

물론 실은 외가 앞 텃밭보다는 말 그대로 농사를 생업으로 지금껏(빚도 많이 져 가면서 그러니까 농가 부채...) 다리가 망가질 정도로 이래저래 땅에서 허리 굽히고 고생하며 살아오신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댁에서 제대로 일도 배우고 싶지만...

 

친가에 가면 엄청 가부장적인 외가보다도 더 가부장적인 어쩔 수 없는 답답한 분위기(아마도 외가는 내가 애초에 그들 성을 따르지도 않았기에 별다를 것이 없지만 친가는 그들 성을 따른 내가 커갈수록 단지 여자라 출가외인이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더 상대적 소외감이 큰 게 아닐까 싶다)가 있지만...

 

아무튼 텃밭이든 소작이든 자영농이든 뭐든 농사는 흉내만 내도 이렇게 좋은걸... (이제야 알다니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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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지만...

2~3년은 더 일단 노력해 보라든가, 또는 언젠간 떠나라든가...

하는 것도 좋지만-_- 대체 마음 가는 대로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뭔가 그와 나와의 사고방식의 차이로, 고민이 자꾸만 '열린 고민'이 아닌, '닫힌 고민'이 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하면 뭔가 행복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반대로 어떤 것이 두려워서, 그 행복을 미리부터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시 한번 상처 받는 것, 아니 그보다도 자기 세계가 침범받는 것이고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것, 내 사랑을 증명해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체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증명해 보여야 할 사랑이라는 것은 더군다나 무엇이란 말인가.

 

이미 옆에 있다. 충분히... 아니 충분치는 않지만, 이미 꽤 많은 부분 함께이다.

그런데 나는 더 갖지 못해서 안달한다.

 

그의 사랑 방식도 존중해 주어야겠다...

반성이 좀더 필요하겠다.

 

그가 옆에 있어서 행복하다는 내 마음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후회되지 않기를 바라고, 아마도 내 소망대로 될 것이라고, 감히 자신한다. 그것은 설사 언젠가 그나 나나 누군가 서로를 떠날지라도, 내가 지금까지 내 행복을 위한, 또는 그를 사랑하는 내 행복을 위한, 또는 그를 사랑하는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의 사랑과 행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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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화

 

어떤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아림에게 선물받은 <바람에 날리는 비닐 시트>에 나오는 첫 소설의 주인공, 둘째 소설의 주인공, 셋째 소설의 주인공, 넷째 소설의 주인공, 들로부터 영향을 조금씩은 받은 것 같고, 최근 밤잠의 꿈에서 (자세히는 커녕 심지어 소재조차 기억이 안 나는) 남은 인상, 엄마와의 최근 갈등, 그와의 순간 밤 벚꽃 구경, 주변 지인들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 등등...?

 

아, 학원이 또 중요한 요소지. 최근에 그만두기로 한, 안 그만두고 싶어서 딜 한답시고 한 달이 훨씬 지나가 버린 학원, 그런 얘기로 그와 나눈 대화들, 학원 원장과의 소통 마찰, 실장의 지지, 중요한 건 오늘 실장이 '자신도 조만간 나갈 것 같다'고 내게 미리 귀띔한 말이 나를 꽤 고무했다는 사실이다. 출판사에 다닐 때는 사람이 나고 드는 일을 낯설어하고, 특히 나보다 윗사람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의 변화나 그들의 나에 대한 질문에 난 방어적이곤(심지어 그들의 변화에 대해서는 배신감마저 느끼기도) 했는데,  학원이라는 특성도 있겠지만 그런 일들을 겪어 오다 보니 이제는 그런 경험에 그닥 놀라지 않고 담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스스로의 상황이나 마음에 대해 담담하고, 거리낄 것 없이 솔직한 표현도 하고...

 

아무튼 오늘 학원에서는 약간, 어쨌거나 정리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은 역시나, 쓸쓸했지만, 시험기간인 아이들 덕분에 집에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나는, 그의 아직 오지 않은 문자에, 아니지, 내가 퇴근하며 보냈던 문자에 평소보단 조금 시차를 두고 온 답장을 보고(곧 끝난다, 식사는 했냐는), 방금 집에 들어오자마자 문자 봤네, 밥은 대략 때워서 또 먹는 것 좋고, 내가 나갈까, 하는 문자를 보내 놓고 먼저 일단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인 것 같은데, 그 때부터 문득, 그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들기 시작했다).

 

아림의 블로그에서 본, 어린왕자와 장미 이야기, 누구나 자신이 길들인 장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그 구절은 나도 참 좋아라해서, 전에 싸이 미니홈의 대문에 써 두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에야 나는 나의 그 장미가 다름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람을 버려 두고 나 혼자 좀더 나은 삶을 위해, 그 사람이 말한 소위 '최선의 선택'을 위해 - 그는 나는 그에게 '최선의 선택'이지만, 자신은 내게 '최선의 선택'이 결코 아니라고, 그래서 자신이 많이 망설이고 우유부단하고 제어하게 된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것도 내가 한참 징징거리고 조르고 투덜댄 후 거의 억지로 받아낸 듯한 상황이긴 했지만 - 아무튼 그것을 위해 내가 머릿속에 막연히 꿈꾸는 나의 이상적인 배우자 또는 부부로서의 장래를 약속할 수 있는 그 누군가라는 허상을 좇아 다닐 수는, 현실적으로도 어렵지만 (내가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필요한 절차를 계획에 따라 한 걸음씩 차근차근 밟아 가는 유형이 아니므로) 내 자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 원치도 않는 그런 (가상의) 선택지를 좇을 수는, 더욱이 그러기 위해 가장 최우선 절차인, 그를 떠나고, 또는 그를 버리고, 또는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또는 그에게 나를 놓아 달라고 말하고, 또는 그를 내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어놓는 따위의 행동을, 나는 결코 하지 않으리란 걸, 할 수도 없고 원치도 않는다는 걸, 이제야 깨닫고 있는 것이다.

 

오래 전, 그에게 푹 빠져 있을 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 하긴 지금도 그닥 앞뒬 가리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 무작정 그에게 달려들어, 같이만 있으면 좋고, 그는 내 운명이고, 내 세상이라고 느껴, 그가 내 전부가 될 수 없다면 나는 그 어떤 선택지도 거부하고 싶던 적이 있었다(사실은 그때 결혼이든 뭐든 시작했어야 하는 것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조금만 덜 회의적이고 조금만 더 충동과 직관에 신뢰를 갖고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다면, 또는 그와 나의 서로의 조건이(일단 눈에 가장 띄는, 연령이라는 조건) 조금만 덜 격차가 벌어졌어도, 좀더 선택은 앞당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지금의 오만인지는 모르겠지만(역시 회의적인 성향은 버리지 못하는군), 그때와는 다른 각오로 좀더 진지하게 내 선택에 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당시 '엉뚱한 웬 늙은 퇴물을 좋다고 쫓아다니는 철딱서니없고 불효막심한 딸' 때문에 속상해하는 엄마를 보다 못해, 막내 이모는 내게 엄마와 나와의 갈등을 화두로 얘기를 꺼냈다가, 내가 그라는 존재를 숨기지 않고 조금 비쳤을 때, '이미 어느 이상 깊이 마음이 정해졌다면 모르지만, 짐작에 그런 정도가 아니라고 보이고, 그렇다면 조금 냉철히 생각해 보고 일찍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어떨지' 하고 조언을 했었다. 나는 어느 이상 마음이 이미 갔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을 뿐 사실은 그런 조언이 무용할 만큼 많이 가 있었으므로, 예의상 응대하기를 택하고, 속으로는 여전히 어찌할 줄을 모르고 내내 끙끙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나칠 만큼 오랜 세월 지속된 이 끙끙거림은, 대체 내가 서로를 위한 (그러나 실은 그의 나를 위한 일방적인) '놓아줌'이나 '밀어냄'이라든가, 그걸 기회로 활용하든 일부러 스스로를 설득하든, 다른 선택을 하는 일들이라든가, 또 그렇게 멀어져 있었거나 밀어내진 동안에 찾아온 다른 뜨거운 사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겪어 오면서도, 결국은 이것들을 온통 지나온 세월의 '굴곡'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도록, 결국은 그와 나와의 관계의 사이클에 녹아들게 해 버리는 데 힘을 보태는 일이 되어 버렸다. 지금 와서 보면 말이지.

 

때가 되고 - 무르익고 - 있다.

나는 그와 함께 계속 걷기를 택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짐을 지기로 할 것이다...

 

 

-----------

(덧붙임: 2007. 5. 10. 02:48)

(이 게시물을 언젠가 공개하기 전에) 결혼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 어떤 종류의 맺어짐을, 그것을 가령 비독점적 (다자?) 연애라 하든 사랑이라 하든 또는 내가 언젠가부터 사랑과 구별 못 하고 있는 '욕망'(함께하고자 하는, 책임지고자 하는, 등등)이라 하든, 하나의 상징적 언어로 표현하는, 일종의 내 머릿속의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이나 '호치키스'와 같은 대명사였던 것이란 말을, 그만큼 오랜 언어습관이라는 것이 새삼 무섭기도 하지만, 여전히 그날 처음 쓴 표현을 수정하고 싶지는 않아, 이렇게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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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여기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졌다.

 

<플루토에서의 아침>인가 하는 또 하나의 재미난 월척을 보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불길 속에서 탈출하는 세 사람을 보다 말고 



예전에는 '카메라'라고 생각했는데... (카메라를 아낄 때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비싼 물건이어서)

지금은 다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내 방에서 뭔가를 정돈하고 쓰고 살지도 않고, 요즘은 거의 정말 몸만으로 지내는 것 같다. 내 육체와 내 정신으로. 그 외의 물질은 사실 거의 쓰지도 않고... 거의 치지도 않는 피아노가 가장 큰 부피를 자랑하며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너무 풍요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살아갈 내가 뭔가 공통분모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뭔가 생각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막상 뭔가 일관되고 안정된 것보다는 그 반대편인 것 같다는 공통점만 짚인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 또는 계속 사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 에 대해서도 참 모르겠다.

 

한편 치열하고, 한편 덧없어라.

 

심각하게 머리 쥐어뜯던 문제들은 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눈 감고 지나치며 살아왔어라.

그러고 보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머리나 쥐어뜯었고

그 시간에 노력해 바꿀 수 있던 것들에 대해서는 지레 겁먹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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