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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기를 들추다

12월26일

넓고넓고 또 넓어서

수평선이 보이고 파도마저치는 호수를 보지 않고서는,

기존 사회의 모든 관념을 깨는

전통적인 모계사회의 풍습을 보지 않고서는,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어서

매일 보고 접하는 도시화, 발전의 사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좋은 상상을 위한 새로운 경험, 그런 경험을 위한 새로운 여행...

 

12월30일

나시족의 전설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들은 정말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과 자연을 소중히 할줄 아는 민족이므로...

자연과 일체가 되어 그것을 유지하고 보존할줄 아는 지혜.

지금까지 리장고성이 전통방식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는것도 그 지혜때문이리라...

뒤로는 설산을, 앞으로는 초원너머 리장고성이 보이는 신원과 물을 모시는 사당.

나시족은 옥룡설산의 거대함과 벌판의 드넓음 때문에 자연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닫게 된것일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점차 도시화되어가고 발전과 개발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는 우리들이 꼭 되새겨야할 대목이다.

 

1월2일

하루종일 달려 루구후에 도착했다.

대관령고개는 명함도 못내밀 높은 산들을 얼마나 넘었는지 모른다. 오지 산골마을의 장터도 구경하고, 오는 길에 도랑에 빠진 차도 승객들이 함께 꺼내 주었다.

... ...

루구후 입성 기념으로 좀 놀아야 겠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그 긴 산길을 걸어 돌아오는 노인네를 보면서, 이런 오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는 촌로를 보면서, 앞으로 뛰어나가는 삶이 아닌 풍성하게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선을 다하는 삶은 남들보다 먼저 뛰어가는 삶이아닌 함께 슬기롭게 채워가는 삶인 것이다. 올 한해 꼭 그런 삶을 계획해 보자.

 

*루구후는 해발3000미터의 고산호수. 호수의 '00호'자가 중국발음으로 '00후'이다. ^^

 

1월3일

다른 문화를 접하다보면 내가 속한 문화의 한계에 대한 대안을 발견할 때가 많다. 물론 그 문화의 한계도 있겠지만...

 루구후의 모계사회전통은 모성중심이 아닌 가족의 계보가 모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결혼은 해서 아기를 낳으면 엄마가족들이 양육을 하며 키운다. 당연히 결혼제도의 문제점중의 하나인 사생아라든가 아들중심의 분위기는 찾을수 없다. 결혼도 정식 결혼이 아니라 '아쭈'라는 애인관계만 존재한다. 결혼을 부정하고 평생 혼자살겠다던 20대 때의 생각들과 맞아떨어진다 싶어 괜스레 흥분된다. 정말 그런 사회가 있구나...

 

1월4일

루구후에 달이떴다.

누군가 섬진강이 넘 아름다워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시인일수 밖에 없다고 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시인이리라...

달 그림자에 배가비친다.

가슴이 벅차다.

한없이 조용한 루구후에 달그림자가 비친다.

조용히...

묵묵히...

루구후를 내려다본다.

 

1월8일

샹그릴라 고성을 둘러보고, 국수를 먹고, 버터차를 한잔했다.

티벳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 ...

여행!

참 많은 의미가 있다.

경치를 보는 관광, 삶을 체험하는 긴여행...

우린 어떤 여행이었을까?

적어도 내겐 문화를 느끼고 나의 삶을 반성하는 여행.

너무 충분하다.

  

1월9일

여행과 쇼핑, 휴식과 관광, 적당한 문화체험과 유흥(?).

우리의 여행 방식이다.

경치나 모든것을 다보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50%정도 보고 경험하고 나머지는 아쉬움과 함께 놔둔다.

조상들이 뭐든 100%가 아니라 조금 모자라게 채우는 미덕이다.

각자 여행방식이 있겠지만 우리는 함께 즐기고, 휴양겸, 경치구경과 이곳 문화체험을 적당히 섞는다.

처음 접한 중국에 대해 대단한 경외감을 느끼며, 어쩌면 그들 삶에 대해 사대사상 같은 존경심을 갖는다. 나만 죽어라 달리는 것이 아닌 공동체를 생각하고 질주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무한한 가능성이 보이는 곳.

돈이 중심이 아니라 목적이 중요시 되는 곳.

지붕위에 빼곡한 태양열 온수기에서, 모든 마을을 꼬불꼬불 거쳐가는 도로공사에서, 고성의 재건축에서, 질주보다 승객들의 삶을, 아니 주변의 모든것을 챙기며 여정을 떠나는 버스에서, 그 모든 곳에서 느껴진다.

대체 우리사회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언제부터 질주만 아는 사회가 된걸까?

질주가 최우선의 미덕이고 주변의 모든것은 장애물로만 아는...

정말 살벌한 사회다.

모든것에 서열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잘살든 못살든 함께 가는 삶, 모두가 존중되는 사회.

가치에 대한 새로운 관념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사회의 가치관에서...

p.s 난 지금 행복하다.

 

 

 

수평선이 보이고 파도가 치고 저 큰 배가 떠다니는 얼하이호

 

리장의 옥룡설산

 

리장의 동파신원

 

루구후의 전경

 

달뜬 루구후

 

샹그릴라의 송찬림사

 

  

장터전경

 

나시족 축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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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행일기를 들춰보았다.

일기를 다시 읽으며, 그때 보았던 그 높은 설산과 그 넒은 호수,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루구후, 장터에서 한참을 흥정하던 할머니와 담배한모금 빨고 계신 할아버지의 살아있는 표정들...

그 모든것이 생생하다.

그리고...

나의 삶을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 그 문화적 충격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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