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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적인 삶...

요즘 모임에서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땅의옹호'를 읽고있다.

땅의옹호는 녹색평론에 나온글들과 김종철선생님이 지역에 다니면서 강연한 내용을 녹취한 글들이 들어있는데, 읽을수록 내삶을 돌아보는 계기가되어 너무 즐겁다.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 세계를 살리는 길이겠지만 "무작정 귀농을 하여 유기농 농사를 지으라는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고, "땅"이라는 것을 철학적으로 접근하는거 같기도하고... '유기농'이란게 그저 농약안치고하는 유기농이 아니라는것 또한 절실히 공감이되고...

문득문득 나오는 자립적인 삶에 대해서는 지금 역시 알게모르게 국가기구에 의존하는 삶을 살고있는 나에게 많은 반성을 던져준다.

 

많은 사람들이 위급하면 어떻게 극복할까보다도 119에 전화를 거는,

식구중에 누군가가 아프면 보살펴주고 간호해주고하면서 정이 생기는것이 아니라, 병원을 데리고가는것으로 나의 모든 역할을 규정짓는...

사실 짝꿍이랑 함께 살면서 누군가가 아플때 병원에 가라는 걸로 자주 목소리를 높이곤 했으니깐...  

김종철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아플때마다 병원에 가서 문제를 해결하겠다하면, 그때 필요한것은 가족의 사랑이 아니라 돈입니다. 현금만 있으면 돼요. 가족이 뭐가 필요 있어요."

 

알게모르게 우리가 우리삶에 절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국가기구에 의존적이 되어버린거다.

정부가 감당해주는 복지에 의존하는것 역시 마찬가지다.

책에보면 '환대'에 대해 나오는데, 서구의 정복식 이데올로기가 아니면 대부분 사회에 관용을 넘어선 '환대'의 전통이 있었다한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항상 집에 양초와 마른빵 한조각, 이불 한채를 마련해두어 어느누가 집을 찾아와도 초를 밝혀 맞이하고 허기를 달랠수있게 빵을 내어놓고 잠자리를 제공했다는 거다. 그런데 기독교정신이 이를 사회제도적으로 복지관을 만들고 하면서, 이젠 집에서 그렇게하지 않아도 복지관으로 보내면되니깐  자연스레 일반 가정에서는 그런 문화가 사라졌다한다.

 

이런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복원할것인가?

 

어디에서 넉넉하게 돈을 벌고 그것을 주변과 나누는것이 아니라 내가 어려워도 함께 나누는 삶. 우리들의 조상이 그러했다. 내가 못먹어도 낯선 손님을 내치는 일이 없었으니...

그렇게 생활뿐만 아니라 복지, 의료, 주거, 교육, 먹거리등 모든것에 대해 자립의 고민을 해야겠다. 자립이란것은 나하나만의 자립이 아닌 주변과 함께 하는 자립말이다. 그것이 공동체이고, 함께 빈곤해짐으로써 행복해지고 넉넉해지는게 아닌가 싶다.

 

"이젠 근대문명을 넘어설 우리들의 상상력을 극도로 펼쳐야 할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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