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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호네트 정의의 타자

정의의 타자

하버마스와 탈근대의 윤리적 도전

 

 

탈근대의 문제제기

1. 동일성이념에 반대-인간의 자유확대

2. 단순한 질서파괴에 반대-윤리적 무관심에 반대

대안-형이상학 비판을 인도할 규범적 정치적 지향 필요

 

 

탈근대론의 윤리

특수한 것, 이질적인 것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념이 출발점.

그러한 윤리는 비동일자를 적절히 다루어야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을 충족함

문제점

1. 특수자의 의미는 무엇인가

2. 도덕적 보호의 종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다양한 대답

1. 사회적 평등 실현의 확대

2. 윤리적 민감성의 증대

3. 사람들 사이의 비대칭적 의무

 

호네트는 3번관점이 칸트 전통을 잇는 근대 도덕이론들에 대해 참된 도전을 의미하는 탈근대윤리의 형식이 될수 있다고 봄.

정의의 타자=인간적 배려

 

 

호네트의 이론전개

1. 리요타르의 윤리학은 담론윤리에 포섭됨을 보여주면서 비판

2. 후기 하이데거 사상에 기대는 스테판 케이 화이트의 연구제시. 하지만 이 관점도 담론윤리틀안에 재생산 가능

3. 데리다가 레비나스의 저작에 기대어 제시한 윤리적 반성이 대안. 데리다의 반성은 구체적 타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관련해 평등의 이념과 일치하지 않고 긴장관계에 있는 관점을 보여줌.

 

 

1. 리요타르

칸트를 겨냥한 상쟁과 탈근대적 지식이라는 저작.

형이상학의 종말-보편적 이성의 종말=마르크스주의의 거대서사 종말

이성의 우위는 역사철학이 이성에 해방적힘을 부여한다는 상황에 이성이 기생함으로 타당성 확보

 

언어이론을 통한 비판

모든 담론은 독자적 증명논리를 가지는데 그것은 서로간에 불의를 행사하고 있음.

언어체계안에 인간주체 재도입

예: 한 말놀이가 다른 말놀이로 번역되지 않음으로 생기는 불의

1. 노동자의 언어가 경제적 효율성의 언어에 종속

2. 나치 수용소 생존자가 형식법 담론안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않음.

 

리요타르 도덕철학의 핵심

특정종류의 담론이 우위를 보이는 상황을 극복하자

1. 무시와 소외를 겪는 말놀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고발적 윤리학.-결실맺기 어려움

2. 소외된 말놀이의 사회적 의사소통을 개방하자

 

1번은 아도르노식의 자기포기적 한계 때문에 피해야 하는 관점

2번은 하버마스의 담론윤리에 포함되어 버림.

 

 

하버마스의 윤리학

칸트의 절차주의적 도덕윤리의 계승(정언명법은 고립된 당사자 상정)+인간의 언어적 상호주관성 고려

행위주체가 요구하는 실천적 규범의 보편타당성 여부는 행위주체들간의 공론장에서의 절차적 소통을 통해 확보됨-평등한 의사소통기회의 확보가 전제

 

리요타르의 논의는 억압된 말놀이의 해방이 가능하기 위해 절차적 규범이라는 담론윤리에 포섭됨을 확인할 수 있음.

 

 

 

민감한 도덕적 감수성에 대한 고찰

 

탈근대윤리학 정초를 위해 화이트는 타자의 고유성에 대한 무시를 문제삼는다. 그의 반성의 출발점은 칸트전통의 도덕적 보편주의가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

근대의 윤리적 사유는 실천적 결과가 없는 행위는 도덕적 사유에서 배제되고 있음.

비판-칸트는 실상 행위의 도덕적 질을 실천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의 의도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행위에 대한 책임개념으로 논박하는 것은 무리가 있음.

 

화이트의 논의는 근대철학의 사태를 고발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함.

화이트 사상의 논거는 아도르노, 니체, 하이데거에서 발견

근대 도덕이론은 행위에 고정됨으로써 잠재적으로 타자의 고유성을 추방한다.

하이데거-초연한 내맡김 Gelassenheit

아도르노-모방적 반응 mimetische Reaktion

화이트에 의하면 두 개념 모두 행위를 억제하고 대립자의 고유성에 주의력을 향상시키는 태도를 가르킴

타자와 그러한 태도를 취함으로 타자를 도덕적 의무충족의 대상이 아니라 그 인격이 지닌 모든 차이를 고려하면서 타자를 인식하게 됨.

개별적 특수성을 지각하는 방식으로 화이트가 제시하는 방안-덕론의 가공=배려

 

덕론의 역할

1. 타자에 대한 민감성의 증대

2. 평등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으로서의 민감성

로티와 유사한 발상. 로티는 한 사회의 도덕적 진보는 규범적 개선의 제도화가 아니라 소극적으로 불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능-미학적 감수성의 찬양

로티가 예술가의 감수성만을 신뢰한 반면 화이트는 그런 능력을 개별주체의 인륜적 능력으로 뿌리내리고 싶어함.

하지만 이러한 화이트의 윤리학은 칸트의 상호주관성 도덕이론과 보완관계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상호주관적 논증의 주고받기와 아주 유사

하버마스와 화이트는 모두 개별 개인의 고유성을 규범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기회는 단지 우리가 행위의 문제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직접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도덕적 판단을 내릴경우에만 가능함.

 

즉 화이트는 새로운 도덕원칙을 제시했다기 보다는 평등의 이념을 민감성을 가지고 적용해야 한다는 관점

이러한 윤리학은 덕이라는 관점이 하나의 행동방식으로 규범적으로 높게 평가된다는 점

그렇다면 완전히 중립적이고자 하는 담론윤리와 얼마나 결합이 가능한가하는 문제 발생

이러한 역지사지의 관점은 인지적인 것인가 정서적인 것인가

정서적이라고 한다면 하버마스의 비판이 가해진다. 도덕담론은 우연적 정서적 결속에 의존하고 타당성에 근거한 진리추구라는 기능을 상실함.

 

 

또 다른 쟁점

도덕적 담론이 일정한 행동유형에 의존하는 것은 경험적 방법인가 규범적 방법인가

1.경험적 방법-하버마스

도덕적 논증에 참여하게된 의사소통행위는 역사적 학습과정의결과이다

2.규범적 방법-하버마스 비판=부정합적

그러한 속성은 경험에 의해서 가져지는 것이 아니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속성

 

어쨌든 화이트의 윤리학은 하이데거에 기대어 윤리적 민감성의 증대라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담론윤리에서는 도덕적 담론에 참여하기 위한 인격적 전제라고 내세울수 있는 의사소통 덕목의 중심요소이다.

 

 

 

데리다의 방법론

리요타르가 사회내의 갈등을 윤리적으로 의식화하려는 것이든, 화이트가 개별적 인격의 개인적 특수성을 강조한 것이든 이 모두는 하버마스가 칸트의 의도를 상호주관성이론적 전제위에 발전시킨 도덕이론의 발상을 못벗어남

왜냐하면 모든 주체가 자신의 개별성을 강제없이 표현할수 있다는 보편적 이념이 전제되어야만 상호적 이해도달의 장애나 타자의 특수성에 대한 정서적 개방을 이야기할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평을 데리다는 넘어선다.

 

데리다는 개인적 특수성을 정의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대체하려고 하지 않음.

오히려 평등이념에 생산적 대립의 관계를 가지는 관점만이 타자의 차이를 인지하게 해줌.

긴장관계의 필요-엄청난 윤리학적 부담

데리다 윤리학의 전개를 위한 예시

우정의 정치=우정안에서는 대칭적 의무가 없는 비대칭적 책임원칙이 지배

 

우정의 이중적 역할

1. 비대칭적 의무를 수용하라고 호소할수있는 존재

2. 보편적으로 도덕적으로 존중해야할 존재

=긴장관계의 공존

 

하지만 왜 이러한 관계가 도덕적 경험영역 전체를 규정할 수 있는지 드러나지 않음.

데리다는 근대법의 형식으로 설명을 시도함.

근대법이 구체적 경우에 적용되면서 다루는 반성을 주목

정당한 관점을 구현하는 두 가지 책임원칙이 충돌하는 속성을 우정의 정치와 공유한다고 봄

 

 

데리다의 논증

1. 근대법의 규범적 출발점-법적 주체의 자유를 행사하기위해 평등을 보장한다는 이념에 따라 이해갈등을 규제해야함

문제-매 경우 무엇이 어떤 관점에서 평등해야 하고 또 무엇이 불평등해야 하는지 해명요

언제나 새로울 수 있는 해석상의 문제 등장=법적용은 개방적, 해석학적, 절차적 성격

 

2. 데리다는 법적용의 실천이 지향하는 것은 평등원칙이 아니라 구체적 타자의 무한성에 대한 정의의 이념이라고 본다.

 

우정과의 유사점은 정의는 무한하고 계산할 수 없고 모든 규칙에 반항적이고 대칭에 대해 낯설고 이질적이며 독특하다. 하지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의 적용은 비교할 수 있고 명문화되어 있고 계산할 수 있고, 정리되어 쓰여진 부호화된 조항들의 체계이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 긴장관계를 가지고 있다.

 

개별적 타자성의 정의가 확립되기 위해 필요한 도덕적관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우정의 비대칭적 관점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근대의 형식적 권리의 체계를 문제삼는 사회적 수준에서는 도대체 무엇이 그러한 사랑의 인정유형에 해당하는가?

여기서 데리다는 레비나스의 사유를 빌려온다.

 

레비나스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이 존재영역에 앞서 실존적으로 우선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존재론과 윤리학의 관계를 거꾸로 세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레비나스 사유의 단계

1. 타자의 얼굴을 통해 무제약적 배려를 경험-무한성에 대한 세계내적 경험

2. 중립적 관찰자의 관점-수많은 배려의무들 사이에서 어떻게 공정하게 처신할지의 판단의 심급이 필요=보편화된 제3자=칸트적 정의와 유사

평등과 배려의 관계에서 상위의 심급은 발견되지 않으므로 긴장관계를 경험한다.

 

데리다는 레비나스가 법과 자비라는 두 개의 긴장관계로 본 관점을 평등과 배려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한다. 여기서 차이는 레비나스는 법과 자비의 지속적 이행이 가능하다고 보았으나 데리다는 평등과 비려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도덕적 지향의 원천이라고 본다.

데리다는 두 개의 도덕적 관점이 폭력적이고 해소될 수 없으며, 그러나 또한 동시에 생산적이기도 한 갈등관계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결론

하버마스 역시도 평등과 배려라는 관점을 외면할 수 없었다. 길리건의 비판에 의해서

길리건은 칸트의 담론윤리가 타자에 대한 비대칭적 의무를 무시한다고 보았다.

절차적으로 타당한 실천적 담론의 대칭성은 배려를 배후로 밀려나게 하도록 우리를 강제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는 도움주기나 이웃사랑이나 자발적 원조와 같은 도덕원칙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의와 연대라는 논문에서 연대라는 관점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 하버마스가 정의의 타자라고 규정한 이 원칙은 다른 인간의 실존적 운명에 대해 정서적 차원까지 포괄하는 관심이라는 특징을 배려와 공유한다.

그러나 이 연대는 개별적 관심이 모든 인간존재에 똑같이, 다시 말해 어떤 종류의 특권이나 비대칭성도 없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배려와 구별된다. 즉 연대는 정의의 또다른 측면인데 왜냐면 연대관계에서 모든 주체는 평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의사소통적 삶의 형식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서로 노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대는 그것이 형성되는 동기나 경험이 불명료하다. 그러한 연대의식이 생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가치공동체를 전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연대를, 하나의 공동체가 생길 때 어떤식으로든 따라다니는 특수주의의 요소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평등과 달리 연대는 보편적 이념이 아니라 추상적-유토피아적인 것인데 그것은 공동체 성원들이 윤리적으로 설정된 일정한 목표를 위해 통합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또한 특수한 부담의 경험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추상성 때문에 연대는 일방적 배려와 도움주기의 형식으로 언제나 우리의 사회를 초월하는 요소를 형성하고 있는 배려를 대체하는 보편적 이념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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