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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슬라보이 지젝을 미워하는가2-토니 마이어스 지음

이번에는 지젝이 주체형성의 열쇠로 지목한 광기, 즉 사라지는 매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82-83페쥐)

 

사라지는 매개자vanishing mediator는 지젝이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에서 일관되게

사용하는 개념이다.

 

지젝은 이 개념을 미국의 유명한 포스트 맑스주의 학자인(이견이 있겠으나 아닥!!) 프레드릭 제임슨의 [사라지는 매개자: 혹은 스토리텔러로서의

막스 베버]에서 빌려왔다.

 

여기서 제임슨은 막스 베버의 맑스주의 비판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서 자본주의가 발생했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즉 이 논의는 (맑스식으로 본다면) 상부구조인 종교가

토대에 해당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만들었다는 논리이다. 즉 맑스의 구도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 구도를 다시 맑스주의적 해석하려고 한다. 즉 맑스주의와 일치하는 변증법적 운동속에서 자본주의가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발생했음을 설명하려고 한다.

 

제임슨은 부정을 부정하도록 추동하는 변증법적 매개물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이해한다. 즉 프로테스탄티즘은 봉건제와 자본제라는 두 매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에 불과하며 이 연결고리는 변증법적 이행이 완결된 그 지점에서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칼뱅이 주도한 프로테스탄티즘이 출현하기 전만 해도 종교는 경제와 분리된 영역이었다. 즉 성서적 해석에 의해 노동의 신성함이 강조되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부의 증대를 위해 경주하는 것은 죄악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삭개오가 배척당하는 것도 그의 직업이 세리, 즉 세금을 거두는 관리였기 때문이며,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이 추악하게 묘사되는 것도 그의 직업이 러쉬 앤 캐쉬, 즉 고리대금업자였기 때문이다.

즉 헌금은 신앙의 상징이지 돈이 아니어야 했으며, 교황청이 돈을 밝히는 것은 결코 공공연한 사실이 되어서는 안되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칼뱅이 주창한 프로테스탄티즘은 보편 종교로서 부의 축적과 근면성실한 노동을 자기 내부로 끌어안음으로서 자본주의가 출현할 조건

을 창출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티즘에 빚지고 탄생한 자본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영역에서 종교를 내쫓아 버렸다.

 

제임슨의 분석에 의하면, 프로테스탄티즘은 서로 배타적인 두 항(즉, 봉건제와 자본제) 사이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였다.

하지만 촉매는 자기의 역할을 다하면 분해되어 사라지는 그러한 매개이다.

 

지젝이 주목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사라지는' 매개이다.

지젝이 보기에, 사라지는 매개자는 내용과 형식의 비대칭성으로 발생한다.

 

즉 형식-하나의 체제-은 자기 내부의 약동하는 동인들(홈패인 공간을 벗어나 탈주하려는 자유로운 동학들)을 제대로 포섭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탈주자들이 차고 넘치게 될 경우 형식은 내용에 의해 자신을 잃고만다. 마치 자기를 낳아준 어미를 잡아먹는 괴물처럼.......

 

맑스의 혁명분석에서 형식은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지체된다. 즉, 내용의 논리가 형식의 한계지점까지 작동하여 자기 껍질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형식을 드러낼때까지, 내용은 현존하는 형식의 자장 속에서 변한다.

 

지젝이 제임슨의 논의를 통해 얻어낸 실마리는 다음과 같다.

 

1-봉건제에서 배태된 프로테스탄티즘

2.-프로테스탄티즘에서 배태된 자본제

 

1과 2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1은 내용적 변화이며 2는 형식상 변화이다. 

 

이런 과정속에서 지젝은 헤겔의 부정의 부정, 즉 변증법의 세번째 계기를 마련한다. 첫 번째 부정은 낡은 형식안에서 그 형식의 이름으로 나타

나는 내용의 변화이다. 두 번째 부정은 형식 자체의 소멸이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것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는 와중에 역설적으로 자신의

대립물이 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경우, 종교적 태도의 보편화가 최종적으로는 사적인 묵상의 문제로 치부되는 결과를 낳는다. 즉, 봉건제의

부정으로서의 프로테스탄티즘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 의해 부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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