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 : [1] : ... [9] : [10] : [11] : [12] : [13] : [14] : [15] : NEXT >>

아~ 놔~ 미치겠다...

2007/05/09 02:20

자고 싶다.

푹 자고 싶다...

별 지랄을 해도 잠들지 않는구나...

지랄을 해서 잠이 안오나?

 

자자! 반드시 자자!

나의 목표!

맨 정신에 새벽 2시 전에 잠들기!

절대, 술 먹지 않고 맨 정신에!!!

 

새벽 2시?... 5시 전에라도 잠들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5/09 02:20 2007/05/09 02:20
Posted by 흐린날
태그

왼쪽눈만 졸립다

2007/02/23 23:46

이상하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나?

난 가끔 한쪽 눈만 졸립다. 특히 왼쪽 눈.

왼쪽 눈이 하염없이 졸려올 때,

나는 왼쪽 눈만 재운다.

손가락으로 왼쪽 눈만 눌러서 감겨두면,

졸린 게 확 사라진다.

그래서 때론 왼쪽 눈을 누르고 운전하기도 하고,

왼쪽 눈만 누르고 책을 읽기도 하고,

왼쪽 눈만 누르고 수다를 떨기도 한다.

 

신기하다...

 

왼쪽 눈이 졸려하는 게 아닌건가?

손가락으로 왼쪽 눈을 감겨주는 게 재우는 것도 아닌건가?

그럼 뭐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23 23:46 2007/02/23 23:46
Posted by 흐린날
태그

자유로의 안개.

장난 아니다.

어제 저녁 집에갈 때,

오늘 아침 서울올 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안개.

바로 앞 차의 깜박이는 비상등조차 1미터만 떨어져도 안보일 지경이었다...

 

그 안개 속을 달리는 기분...

알 수 없는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다.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그러다가 아주 가벼운 바람 한점만 불면,

장난처럼 안개가 스르륵 날아간다.

그러다가도 금방 눈 앞을 턱 가로막는 안개.

 

운전하기에는 나쁘다.

그러나, 안개가 좋다.

 

12층 우리집에서 밖을 내다보면,

바로 앞 건물도, 저 아래 땅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안개가 좋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22 15:34 2007/02/22 15:34
Posted by 흐린날
태그

정리가 안되네...

2007/02/16 04:24

설이다.

그럼 진짜 새해가 오는거다.

원래 새해는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건데,,,

 

어렸을 적엔,

가끔 12월31일 자정에 보신각 종 치는 걸 TV로 보기도 했고,

잠 안자고 기다리다가 뭔가 각오를 하기도 했던 것 같고,

때론 술마시며 한 해를 정리하다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는데,

가끔은 깨끗한 공책에 계획을 써넣는 주접도 떨었었다.

요즘은 뒹굴뒹굴,,,

혼자 자빠져 헤롱거리다 문득 정신차려보면 해가 바뀌어있을 뿐,

감흥도 반성도 각오도, 심지어 재미도 없다.

흐흠...

 

돌이켜보면 2006년도 참 예사롭지 않은 해였는데,

2007년으로 넘어올 때는 너무 정신이 없었는지,

연말 연시 시내에 걸린 반짝이 꼬마등 한번 구경 못해보고,

벌써 음력 설이 다가오네,,,

물경 두 달이 흘러갔다.

 

2006년 초!

아~ 참말 처음 겪는 일들로 점철됐다.

여의도 천막 안에서 예수 생일날도 맞이하고,

2005년 마지막날 즈음엔 농민 열사들의 장례행렬을 보며, 천막을 정리하고,

새해 되자마자 천막을 철거하고,,,

그때도 선거를 했었지 아마.

졌고,

 

'출투'도 아니고, '출근'도 아닌 것을 하다가,

동지 한 명을 날리며 찌그러져서 다시 사무실에 채용되고,

그래도 여~엉 적응하지 못해서 주둥아리 댓발 내밀고 다니며,

이것도 불만 저것도 불만 쫑알거리다가,

급기야 2006년 절반이 넘어서자,

'그만둘까? 말까?' 오도방정을 떨다가

2006년 종반에 다다르자 날마다 휴가원을 썼다 찢었다 지랄발광을 했다.

급기야 노동자대회를 얼마 안남기고 냉큼 휴가원을 내고,

집에서 내리 자빠져 자기를 수일...

노동자대회랍시고 갔다가 술먹고 지랄하고,

드뎌 11월17일 두번째 사직서를 스르륵 냈다.

그리고는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던 동지들과 함께 '사직파동(?)'을 마무리짓자는 취지의 토론회를 했었다.

토론회 이름도 거창하게 '상근활동가가 보는 민주노총 혁신 방향'

 

12년만에 난 '상근활동가'가 아닌 게 됐다.

토론회에 와 준 동지들 모두가 감사했고, 뭔지 모를 무엇인가에 들떠 있었다.

사직서 내고도 실감이 안났는데, 토론회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며 정리가 되는 듯 했다.

술 먹다 자다가 다시 술먹다가 토하고 다시 술먹고,

또 토하고 다시 먹다가 아침 8시가 됐다.

 

참, 지지리도 궁상맞게 정리했다...

다음날 시골 집에 내려가 부모님께 예의바르게 '사직'을 고하고,

네팔로 떠났다.

안나푸루나 트레킹이랍시고, 술쳐먹으며 산자락을 싸돌아댕기다가

결국 돌아온 서울.

네팔의 기억은 금새 사라졌고, 나쁜 공기와 탁한 사람들 득실거리는 영등포.

1년만의 선거질에 일로매진했건만,

결과는 참담했고, 쪽팔릴 뿐...

 

그렇게 1년이 갔다.

하~ 참, 놔~

올해는 좀 좋았으면 좋겠다.

뭐든....

 

2005년 10월 사직에서 2006년 3월31일 복귀까지!

이거 참 진중하게 글로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이 어지럽기 이를 데 없어서 생각만 떠올려도 감정이 격해지기를 여러번... 결국 아직도 엉킨 실타래처럼 내 가슴속에 널부러져 있다.

 

2006년 11월 내 12년 삶을 정리하면서!

요거요거, 역시 참말로 진중하게 정리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어지럽기는 매한가지... 역시 여전히 머리속, 가슴속 곳곳에 쪽지들만 겹겹이 꽂혀있을 뿐이다.

 

2007년 1월 선거.

하고싶은 말 많았다. 열받는 것도 많았다.

그러나... 입이 열개라도 할말 없는 듯 해 참고 있다.

언젠가는 선거 사건에 대해서도 정리하리라...

 

이 세가지를 정리하고,

물론 머리속 뿐만 아니라, 폼나는 활자로 깔끔하게 정리해서

매캐한 가슴속까지 확~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듯 밀어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고 내 인생의 한 장 넘어가려 했는데

지랄맞게 끝까지 청소 못하고, 내 바짓가랑이 끝에 실밥 묻듯 묻어서 날 따라다닌다...

 

이렇게 음력 설을 맞아도 되는걸까?

나, 진짜 욕 안하는데,

이런 상황이 너무 181818181818이다...

 

게으른게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는군.... 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16 04:24 2007/02/16 04:24
Posted by 흐린날
태그

난 낯을 가린다.

초면에 낯을 트거나, 아니면 죽 가리거나...

 

설이라고 시골집에 내려간다.

누군가 묻는다. "집에 뭘 가져가니?"

난 대답했다.

"다 비운 김치통, 여름에 덮은 모시이불, 처분할 이불솜, 엄마한테 길이 줄여달라고 할 바지 등등"

대답하다 보니 문득 우울해진다.

 

나를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 아무런 이유없이 느닷없이 상태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마냥 누워있다가 문득 벌떡 일어나 청소를 하기도 하고,

뭔가에 몰두하다가도 갑자기 넋이 나가 어수선한 틈에 퍼져버리기도 한다.

또 희희낙낙하다가도 문득 우울해져서 입을 다물기도 하고,,,

모두들 조용하면, 괜한 책임감에 혼자 계속 떠들기도 한다.

 

큰 일은 피해버리고, 소소한 일에 집착한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무쟈게 우울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엔 가기 싫다.

사람이 많다는 기준은 5명 정도?

 

아~ 우울하다...

시골집에 내려가면, 나까지 우리 가족은 다섯.

게다가 올해는 언니의 남자친구까지 여섯. 기준을 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16 03:46 2007/02/16 03:46
Posted by 흐린날
태그

이석행 민주노총 신임위원장이 새로운 증거물을 제출했다.....

 

[월요 인터뷰] 민노총 새 `船長` 이석행 위원장 "좌파 학자들 `투쟁훈수` 안듣겠다"

 

■ [월요 인터뷰] 이석행 민노총 위원장 "빨간 머리띠 풀겠다"

 

민주노총 내 온건파인 '이석행 호'의 출범으로 강경 일변도의 국내 노동운동에 새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실사구시'의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파업을 위한 파업은 하지 않겠다" "현장조합원들에게 실익이 되는 노동운동을 펼치겠다"는 다짐도 했다.

현장 노조위원장 시절 직접 공장 청소 등 솔선수범을 보이며 리더십을 발휘했던 그가 강·온건파 간 갈등이 가시지 않은 민주노총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관심사다.

한국경제신문 17층 영상회의실에서 이 위원장을 만나 향후 민노총의 운동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민주노총이 위기라는 지적이 많은데,앞으로 조직을 어떻게 꾸려 나갈 계획입니까.

"민주노총의 위기는 상층 간부들의 위기라고 진단하고 싶습니다. 조직력 회복을 위해 현장조합원들을 주체로 세우는 운동을 먼저 할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겸손하고 합리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중앙에서 갖고 있던 권력을 현장에 되돌려 주고,조합원들이 바라는 운동을 위해 곧 현장 대장정에 돌입할 계획입니다."

 

-현장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해 강경 투쟁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싸움 잘하는 사람은 싸움을 자주 안합니다(웃음). 조합원들을 만나봐도 파업을 요구하는 분위기는 아니죠.파업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일 뿐 파업 자체가 운동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전술을 활용한 뒤에도 이뤄지지 않았을 때 마지막으로 칼을 빼겠다는 것이 제 철학이고, 지론입니다."

 

-이 위원장은 온건파로 분류되지만, 일반 국민은 민주노총 내 온건파,강경파 모두를 투쟁세력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 방식이 너무 거칠기 때문 아닌가요.

"기업별 노조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6년간 노조위원장을 해 봤는데 기업별 노조에서는 조합원들의 기대심리가 큰 게 사실이죠. 산별노조를 통해 제도개혁 투쟁을 벌이면서 기업별 노조에서의 투쟁방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조합원들도 임금 인상 투쟁해봐야 학원비, 의료수가, 학교 등록금이 계속 올라가면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죠. 따라서 교육 주거 의료 노후 문제까지 국가와 사회가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임금 인상 투쟁이 노조의 주된 목적이 돼선 안 됩니다."

 

-파업이나 협상을 벌일 때면 늘상 빨간 머리띠를 매고 다녀 더 투쟁적으로 비쳐지는 것 같은데요.

"머리띠를 늘 매니까 흡사 넥타이처럼 비춰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위원장 선거 유세에서 머리띠를 매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다들 매고 나와서 할 수 없이 저도 매긴 했습니다. 앞으로 특별한 일이 아니면 머리띠를 매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 머리띠 매고 나왔을 때는 뭔가 다른 때라는 걸 심어줄 필요도 있겠죠."

 

-무한경쟁시대 기업 간 격차가 커지면서 외국에선 산별 교섭에서 개별 교섭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인데 우리는 반대로 산별노조 전환이 늘고 있습니다. 임금이 주요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데 산별교섭이 제대로 될까요.

"산별교섭을 임금 문제로 규정시키면 노동 운동도 한국 경제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노동자들이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부동산 사교육 의료문제와 같은 사회 공공성 문제를 놓고 토론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총장 시절 당시 이수호 위원장과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습니다. 그 흐름에는 변화가 없습니까.

"정부든 누구든 만나서 대화하고 토론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때 추진하던 노사정 대화의 큰 틀 속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 계획입니다. 집행부의 역할이 조합원들의 뜻과 요구를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사회적 교섭에 반대해 왔던 분들도 굳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좌파 학자들이 중간에 나서서 자꾸 투쟁을 하라고 '훈수'를 두는데,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

"이론가들에 의해 절대로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사무총장 시절에는 (투쟁보다 대화를 중시하는 집행부에 대해) 학자들이 비난을 하면 잘못된 생각이라고 맞받아쳤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동안 (좌파학자들이)너무 성역시 돼서, 그분들 주장에 대해 비판하는 것 자체가 개량주의자로 매도됐습니다. '감놔라,배놔라' 하는 얘기들도 일리가 있다면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얘기하는 위원장이 되겠습니다."

 

-외국에서는 노동운동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데,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민노총이 저임금노동자를 위해 비정규직,최저임금 문제해결을 위해 투쟁을 벌이긴 했지만 과연 얼마만큼 절박한 심정과 진정성을 갖고 수행해 왔는지에는 의문이 듭니다. 반면 민주노총 문제만을 갖고 투쟁할 때는 물불 가리지 않았죠. 민노총은 자기들밖에 모른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오는 겁니다. 현실문제를 하나씩 제도적으로 풀어갈 때 국민의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그게 민노총의 존재 이유라고 봅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노총(AFL)을 설립해 37년 동안 노조위원장을 지낸 새무얼 곰파스는 조합원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췄는데요.

"조합원들도 민주노총이 실사구시의 노동운동, 즉 성과를 남기는 걸 바라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운동을 하겠다고 선거기간 중 얘기했죠. 3년 임기 동안 실사구시의 노동운동을 펼칠 겁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친분이 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양대 노총의 통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이용득 위원장과는 20년지기로 의기투합도 잘 되고 서로에 대한 믿음도 있습니다. 조합원들도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자본과 권력인데 노동계급이 둘로 나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조직을 달리 하는 상황에서 개인의 친소 관계와 조직의 관계는 틀립니다. 인위적 통합은 옳지 않고, 대신 밑으로부터 통합의 기운을 모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리=윤성민 기자 smyoon@hankyung.com

사진=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입력시간: 02/11 18:27

 

■ [월요 인터뷰] 이석행 위원장은‥ 현장 기름냄새 좋아하는 온건파 노동운동가

 

이석행 위원장은 투쟁보다 대화를 중시하는 온건 실리주의 노동운동가다.

민주노총 내에선 온건파인 국민파로 분류된다.

그는 현장 선반기능공 출신으로 1977년 방산업체인 대동공업에 병역특례자로 들어간 뒤 1980년 노동조합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운동에 첫 발을 담갔다.

1984년 노조위원장에 당선된 뒤 1990년 두원중공업에서 해고되기까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그가 소속된 방산분야 특수사업부가 대동중공업으로 분사된 뒤 해고당시엔 두원중공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임).

1980년대 김금수(현 KBS 이사장),천영세(현 민노당 국회의원),문성현씨(현 민노당 대표) 등 노동운동가들을 만나 다양한 노동이론과 이념을 접하면서 대중적인 '투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장 노조를 이끌면서 운동철학을 '실사구시'로 정리한 그는 투쟁지향적인 좌파학자나 강성 노조 간부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장 조합원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쏟아왔다.

2005년 2월 민주노총 사무총장 시절 좌파학자들과 사회적대화 참여여부를 둘러싸고 벌인 성명서 대결은 그의 운동방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좌파학자들이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 위원장은 "투쟁을 부추기지 말라.섣부른 관념적 운동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에게 폐해를 초래했느냐"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기계와 기름은 이 위원장에게 생명이나 다름없다.

그는 "생산현장에서 기름냄새를 맡으면서 기계와 씨름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어머니 냄새 다음으로 좋은 게 기름냄새"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그만둔 뒤 친구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직접 기계를 돌리고 청소를 하며 월수 150만원 정도를 받았다.

가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와 아내가 액세서리에 구슬을 붙여주고 받는 월 60만원 정도의 수입을 합해 근근이 집안살림을 꾸려왔다.

광산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이 위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중학교 때는 학비를 벌기 위해 구두닦이를 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2005년 11월 민주노총 간부의 금품비리 혐의로 지도부가 총사퇴할 때 함께 물러났던 그가 이제 민주노총 수장으로 되돌아왔다.

이 위원장은 국내 양대노총의 한 축인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과도 절친한 사이로 끈끈한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입력시간: 02/11 18:28

 

ⓒ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12 12:19 2007/02/12 12:19
Posted by 흐린날
태그

은행에 갔다.

보무도 당당하게 뚜벅뚜벅 걸어 프론트로 향했다.

씩씩하게 통장을 내미니, 은행 여성노동자 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길...

 

"어머~ 예정일이 언제예요?"

"......................."

 

허걱, 허걱, 허걱걱걱걱..... 럴수 럴수 이럴수가........

내가 아무말도 않자 은행직원, 당황하며

 

"어머, 배를 내밀고 들어오셔서..... 죄송해요"

".......... 괜찮아요..........."

 

괜찮긴 머가 괜찮어. 썩을 년....

 

"몇개월이세요?"라는 말보다 더 치명적인 말이 있다는 걸 오늘에야 깨닫다니!

"예정일이 언제예요?" 흐흠....

 

* 사무실로 돌아와 은행에서 벌어진 일단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상에~ 나더러 예정일이 언제냐고... 흑" 했더니만,

어떤 선배 왈, "너 임신했냐?"

한번 더 허걱!!!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09 10:38 2007/02/09 10:38
Posted by 흐린날
태그

역사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1997년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 등을 거친 뒤

2007년 1월에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된 사람이 

자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을

큰 범죄행위로 판단해 법정에 세울 지도 모른다.

그 때, 이 인터뷰기사는 증거물이 될 수도 있다.

 

 

[펌] 민노총 위원장 "옛 운동방식 고집은 객기"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최근 총파업 투쟁 위주로 극렬 노선을 걷고 있는 민주노총 운동방식에 대해 "힘도 없으면서 과거 운동방식을 지속하는 것은 일종의 객기"라고 말해 방향전환 의사를 강력히 시사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 2일 매일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하면서 "그 동안 잘못한 게 많다. 힘이 없을 때는 맞고, 힘이 있을 때 협상을 해야 하는데, 힘도 안 되면서 때리려고 나선 것이 지금까지 민주노총 운동방식"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존 운동방식을 자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자제가 아니라 지양할 것이다. 힘도 안 되면서 무슨 자제인가"라고 반문한 뒤 "총파업뿐 아니라 어떤 운동도 힘이 받쳐줄 때는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안 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또 "당분간은 조직 힘을 복원하는 데만 전력투구할 생각"이라고 말해 민주노총 `숨 고르기`에 시간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지난해 9월 노사관계 로드맵 통과 과정에서 사이가 틀어진 한국노총과 관계개선 전망에 대해선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는 개인적으로 형제 이상의 사이다. 물론 개인에 앞서 조직이 우선이지만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그 동안 언론과 민주노총간 불편한 관계를 의식한 듯 "만나지도 않고 뭐가 어떻다고 얘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별 언론 논조는 비판할 수 있지만 그 기사를 쓰는 노동자 목소리는 민주노총 위원장인 내가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대화에 열린 자세로 임하겠다. 처음에는 `왜 저런 만남을 갖느냐`는 비판도 있겠지만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전임 위원장들과 본인간 차별성에 대해 "권영길 이갑용 단병호 이수호 전 위원장들이 (지도자로)만들어진 사람이라면 나는 스스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며 "누구보다 현장경험이 많다"고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철학적 기반이 부족하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노동조합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교섭 한번 못해 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항변했다.

 

민주노총에 대한 여론이 가장 악화된 상황에서 위원장으로 취임한 소감을 묻자 "언제나 바닥은 가장 좋은 기회다. 다 걸고 새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내 온건파인 `국민파` 소속인 이 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강경파 후보를 누르고 제5기 민주노총 위원장에 당선됐다.

 

4기 선거에서 이수호 전 위원장과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사무총장을 엮임한 이 위원장은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민주노총 온건파 흐름을 잇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노원명 기자]

< Copyright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07 19:49 2007/02/07 19:49
Posted by 흐린날
태그

대구 성서공단 근처에 있는 어느 노조 사무실에 들를 일이 있었다.

그 곳을 나서며, 아! 오늘 여기 온 건 참 잘한 일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난 정말 그동안 관료였나보다.

대구에서 본 모든 것이 나에겐 멋진 각성제가 됐다.

 

입구에 더덕더덕 붙은 포스터, 소식지, 팜플렛 따위.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난로. 내가 들어선 지 얼마 안 있어 그 사무실에 있던 한 여성동지는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부삽으로 자두알만한 조개탄을 긁어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연통은 기역자로 꺽어져 창문 밖으로 연기를 뿜어낸다.

 

한 켠에서는 이주노동자 서너명이 의자에 앉아있기도 하고, 사무실 안팎을 둘러보기도 한다.

또다른 여성노동자가 그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돈 못 받았어요?" "무슨 일 했어요?" "여권 갖고 있어요?"

이주노동자들의 서투른 한국말을 듣다보면, 상담하는 여성노동자의 어투도 어눌해진다. 말투와 억양을 맞추는 것이다.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도.

 

이곳에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기도 하고,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방송국도 운영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그렇게 이러저러한 용도로 쓰이는 방이 여러개 있는데, 게 중 하나는 식당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정갈하게 정돈해 놓은 씽크대, 식수대, 밥통, 식탁 따위가 있고,

소형 라디오 소리를 틀어놓았다.

네팔, 방글라데쉬, 인도네시아 등 이주노동자들 그네들 말로 진행하는 방송을 틀어놓은 것이다.

이것저것 어떻게 운영하는 것인지 묻고싶은 게 많았지만,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묻는 내 모습이 너무 재수없을듯 해서,

그냥 곁눈질로 훔쳐보기만 했다.

 

또 화물연대 동지들 몇 명을 만났다.

아~놔~참, 이것이 또 감동이다.

그들은 토요일까지 노동일을 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그나마 쉬는 날은 일요일 뿐이라는데, 그 일요일에는 화물연대 투쟁에 함께한다고 한다. 회의며, 연대투쟁이며, 모임이며...

오늘도 일요일인데, 모임이 있어서 나온거란다.

세상물정 모른다는 듯 지나가듯 하는 한마디 한마디 들어보면, 이보다 원칙적이고 건강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자신들 맘같지 않은 지도부에 대해 비판은 하되 절대 비난은 않는다.

일주일에 6일을 노동하고, 남는 하루를 '노동운동'에 쏟아붓는 사람들...

 

부끄럽다. 그러나, 돌아서면 그만이다.

나이가 든 것일까.

갈수록 다짐을 많이 하게 된다...

의식적으로 나를 통제하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그토록 비난하던 모냥새가 돼버릴 지 모른다는 긴장이 요즘 부쩍 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06 21:43 2007/02/06 21:43
Posted by 흐린날
태그

조문익동지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남원에서 88고속도로에 올라 남장수나들목으로 나가니,

금새 '장수논실마을'이라 쓴 정이 옴팡 배인 나무푯말이 보였다.

 

넓은 운동장엔 조문익선배를 찾아온 사람들의 차가 가득했고,

난 너무 늦게 도착했는지, 행사는 끝난 뒤였다.

폐교 직전에 증축했다는 학교 건물은 제법 컸다.

방마다, 아니, 교실마다 얼콰하게 술을 한잔씩 걸친 사람들이

조문익선배에 대한 좋은 기억, 기쁜 기억, 슬픈 기억, 아픈 기억을 나누고 있다.

 

여기 모인 사람들, 사람에 대한 추억을 참말 정답게 하는구나...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음식을 퍼다 먹고,

맛 좋은 막걸리 통이 이리 저리 오가고,

맛난 머리고기 접시는 사람들의 젓가락질이 분주하고,

얼추 밥손님 맞이가 끝난 뒤에는 양푼에 남은 나물과 밥을 몰아넣고 비벼먹는 치들도 있다.

주방에서 는 달걀말이를 부쳐서 내오기도 했다.

 

오며 가며 술잔이 오가고, 나는 덕분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도 많다.

딱 1년만에 보는 사람들도 있다.

조문익선배 장례식 때 보고 1주기 때 보는거다.

 

난 조문익선배를 1994년 쯤 알았나보다.

전북노련에서 일하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활동으로 이어진 조문익선배를

전노협에서 일하다 민주노총 총연맹 활동으로 이어간 내가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회의 뒤풀이 때마다 조문익선배의 입담은 좌중을 휘어잡았다.

고전에서 무협지까지, 재미난 다큐멘타리를 보는 듯할 지경이었다.

 

2006년 1월, 난 친구들과 덕유산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 한참 맛이 오른 대게를 한박스 짊어지고 갔는데, 산에 올라가면 삶아먹기가 영 골치아플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조문익선배다.

선배한테 거기 가서 대게 한 박스를 삶아먹겠노라고, 소주나 한잔 하자고 전화를 했다.

안타깝게도 조문익선배는 회의가 있어서 전주에 나가야 한다며 아쉬워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라도 들르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나, 산행이 끝난 뒤에 난 쫓기듯 서울로 올라왔고,

채 며칠이 지나기 전에 부음을 들었다.

그 당황스러운 소식을 듣던 날의 기억도 생생하다.

영등포에서, 상계동 쪽에 있는 상가를 가기 위해 차를 몰고 막 나섰을 때다.

올림픽도로를 타기 위해 양남로터리에서 당산동쪽으로 가다가,

전화를 받고, 차를 세웠다. 숨이 턱 막혀왔었다.

 

동지들이 떠날 때마다 숨은 턱턱 막혀오지만,

며칠 지나면 금새 그 동지들을 추모하는 데 익숙해진다.

우리 주변엔 죽음이 너무 많다.

죽음이 너무 많은 게 가슴아프지만, 너무 가슴아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동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늦은 밤에 장수논실마을을 나서는데,

잠시 조문익선배가 나를 배웅하는듯한 노곤한 착각에 빠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읽은 조문익선배의 유고집을 펴드니,

내가 몰랐던 조문익선배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2/06 20:00 2007/02/06 20:00
Posted by 흐린날
태그
<< PREV : [1] : ... [9] : [10] : [11] : [12] : [13] : [14] : [15] : NEXT >>

BLOG main image
by 흐린날

공지사항

카테고리

전체 (276)
일기장 (149)
기행문 (20)
좋아하는 글들 (47)
기고글들 (13)
내가찍은 세상 (45)
내가 쓴 기사 (1)
울엄니 작품 (2)

글 보관함

Total : 250395
Today : 31 Yesterday :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