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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위스키> _이성철

위스키

이성철 (노동자역사 한내 회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Whisky, 2003, 우루과이)

 

국내에는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루과이산 영화입니다. 2004년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탄 작품이네요. 정말 시간이 나실 때, 시끄럽고 요란스럽고 활극이 난무하는 그런 영화들에 지쳐 있을 때, 함 들여다 보시길 바랍니다.

 

형인 야코보는 우루과이에서 조그만 양말 공장을 경영하고 있습니다(노동자 2명, 현장관리인 1명). 브라질에 사는 동생 에르만 역시 양말 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가업인 모양입니다. 단지 동생은 형과 달리 신기술도 도입하고, 여러 나라에 수출도 하는 등 사업을 넓히고 있습니다. 한편 과묵한 형과 달리 동생은 쾌활한 듯 보입니다만, 형제간에는 무거운 어색함이 감돕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어머님을 형 혼자 모셨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며칠 후면 장례식이 있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동생이 여러 해 만에 형의 집으로 오게 됩니다. 이야기의 사단은 여기서부터 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나이 많은(이제 노인이 된) 형은 결혼을 안한 듯 합니다만, 동생에게는 결혼을 한 것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은 공장의 현장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마르타에게 동생이 머무는 동안 자신의 집에서 지내달라고 부탁합니다. 즉 부인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지요. 마르타 역시 곱게 늙은 홀로 된 여인인 것 같습니다.

 

사진관에서 동생에게 보여줄 전시용 부부 사진을 찍을 때, 사진사는 ‘위스키~’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진 찍을 때 ‘김치~’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형의 집에서 며칠 지내게 된 에르만은 형수(?)에게 많은 정을 느낍니다. 이제 장례식도 끝나고, 내일이면 동생은 다시 브라질로 떠나야 합니다. 형도 동생이 빨리 떠나길 바라지요. 그런데 동생은 갑자기 뜬금없는 제안을 합니다. 두 분을 위해 자신이 좋은 해변 관광도시(피리아폴리스)로 초청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형은 거절하지만, 마르타가 이에 응하는 바람에 셋은 다시 며칠간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호텔에서의 야코보의 생활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단조롭기 그지 없습니다. 혼자 호텔 수영장으로 내려간 마르타는 그녀를 찾아나선 에르만과 수영도 하게 되고, 호텔 노래방에서 에르만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기도 합니다. 마르타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던 야코보지만 이런 몇몇 장면에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의 동요가 느껴집니다. 어쩌면 동생에게 살짝(?) 질투를 느끼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르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에르만은 형에게 “그동안 어머니를 보살펴줘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것은 그에 대한 나의 조그만 보상이다”라면서, 꽤 많은 돈을 형에게 건네게 됩니다. 형은 거절하지만, “새 기계를 사는 데 보태라”는 말을 듣고 어쩐 셈 인지 이 돈을 챙기게 됩니다. 그러나 혼자 카지노에 들러 돈 전부를 칩으로 바꿔 배팅을 하게 됩니다.

 

근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배팅을 했건만, 예상치 않게 오히려 큰 돈을 따게 됩니다. 동생 줄 선물과 이 돈 중 대부분을 곱게 포장해서 나중 마르타에게 주게 됩니다. 동생은 다시 브라질로 떠나고, 마르타와 야코보는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일단 야코보의 집으로 돌아온 마르타는 자신의 짐을 챙겨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택시를 불러주는 야코보는 앞서 말한 선물을 챙겨 줍니다. “내일 공장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마르타 역시, “내일 봐요, 신이 허락한다면...”이라면서 택시에 오릅니다. 택시를 타고 가는 마르타의 눈 가는 촉촉이 젖어듭니다. 마르타 역시 황혼의 사랑을 가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평소처럼 다음 날 아침 7시 30분, 공장 문을 열게 되는 야코보지만, 언제나 자신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다 함께 작업준비를 했던 마르타가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늘 마르타가 타주던 차도 자신이 타 마시면서 마르타를 기다리지만.... 조금 뒤 출근하는 두 여성 노동자들 중 한명이 “라디오를 틀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야코보는 “안 트는 게 좋겠다”고 말하지만, 이내 “마르타가 오면 물어봐”라고 합니다. 영화는 이 장면에서 끝나게 됩니다.

 

줄거리는 그저 단순하게 흘러갑니다. 그러나 두 노 배우들의 가슴 속 연기가 바깥으로 아름답게 배어나옵니다. 황혼의 사랑 역시 “신이 원한다면”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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