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를 지키겠다!

오마이뉴스의 고정칼럼리스트 고태진 기자가 며칠 전 '조갑제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라'는 칼럼을 올렸다. 월간조선 대표인 조갑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2차례에 걸쳐 올린 '어떻게 싸울 것인가''續-어떻게 싸울 것인가'라는 글에 대한 비판을 가한 것이다.

 

법해석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 글은 꽝이다. 국가보안법 제2조를 적용한 것으로 보이는 반국가단체의 정의에서부터 삑사리를 내기 시작한 이 칼럼은 당연히 제5조(자진지원, 금품수수), 제7조(찬양, 고무), 제8조(회합, 통신) 등의 적용에서 헛다리를 짚고 있다. 국가보안법 제1조 제2항이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런 식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법 적용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비판을 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정권이 국가보안법을 그런 식으로 적용해오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바로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 이놈의 국가보안법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국가보안법 판례를 분석해보더라도 고태진 칼럼이 주장하고 있듯이 조갑제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조갑제는 '좌익'이 아니고 "애국"에 목숨걸고 있는 '보수 우익 애국인사'이기 때문이다. 이거보다 더 확실하게 국가보안법의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방법이 있는가?



칼럼리스트가 법률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고, 과거 정권의 관행이 그러했음을 인정한다면 이 칼럼의 내용이 그닥 비판을 받을 것은 아니다. 일종의 패러디로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조갑제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라'는 이 주장이 가지고 있는 레토릭이 어떤 것이건 간에, 행인은 그 주장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에 전율할 수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고태진이라는 사람이 행한 법률적용이 잘 되었느냐 못되었느냐가 관심사가 아니라는 거다.

 

진짜 주목할 점은 지금까지 좌익세력에 대해서만 칼부림을 해왔던 국가보안법이 국가변란을 도모하는 우익세력에 대해서도 칼부림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공공연하게 번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의 효용성이 좌우 공정하게 적용된다면 그 때는 국가보안법의 존재가치가 달라지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데서 이 칼럼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 도출된다. 좌고 우고 어떤 것이고를 떠나서 국가보안법은 현존해서는 안 되는 법률인 거다.

 

"지금까지 정권이 국가보안법을 그런 식으로 적용해오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던져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 질문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 악질적인 제도가 하루 속히 사라져야하는 이유가 아니었던가? 아무리 국가보안법 제1조 제2항이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어도, 개별 조문이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을 설정하고 있어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공안기관의 법 집행자들은 지들 멋대로 법률을 적용해왔으며 공안사범을 양산해 왔잖은가? 바로 그것 때문에 처절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고, 하다못해 어이 없이 사법살인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잖은가?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두려워 하는 이유는 법 자체가 공안기관의 그러한 자의적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었고, 이를 이용해 "국가보안"이 아닌 "정권보안"을 위해 이 법이 실질적으로 적용되어 왔었다는 역사적 사실때문이다. 우리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두려움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법 적용이 과거완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며, 우리의 미래를 담보로 잡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행인은 조갑제라는 사람의 멘탈리티에 전혀 동조하지 않으며, 그의 언술 하나 하나마다 심각한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러한 혐오감이 동기가 되어 엄격한 법 적용을 받아야 할 그의 언술이 국가보안법과 같은 말도 되지 않는 법에 의해 억압된다면, 그 때는 별 수 없이 조갑제의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다. 조갑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두 글이 가지고 있는 내용상의 위험성과 선동성에도 불구하고 그를 처벌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아니라 그 어떤 법률로도 그가 글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처벌하여서는 안 된다.

 

조갑제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렇게 떠든 것이 어떠한 긴급하고 절실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가? 하다못해 고태진이 오마이뉴스의 칼럼을 통해 꼬집고 있듯이 기껏해봐야 우스갯거리밖에 더 되고 있는가? 조갑제의 글이 아니더라도 이미 대한민국 열혈 보수애국자 여러분은 조갑제가 제시하고 있는 실천방법들을 솔선수범 진행하고 있다. 그런다고 해서 지금 대한민국 국법질서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는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일정한 제재를 받기 위해서는 그러한 사상의 표출이 구체적이고 긴급한 위협으로 국법질서를 실질적으로 흔들고 있어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조갑제를 처벌하자는 이야기를 쉽게 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 아니라 국가보안법 할애비로도....

 

행인이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미 연전에 조갑제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직접 고발할 생각까지 했었다. 여러 사람에게 의견청취까지 했으니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내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판단하에 완전히 폐기했다. 내가 가진 사상이 보호되고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굳은 신념이 있다면, 그 정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사상 역시 보호되고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행여 "조갑제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라"는 구호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조갑제를 위하여 공안기관과 싸워주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현실화된다면 행인은 어떠한 비난과 욕설이 있더라도 조갑제를 위하여 싸울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투쟁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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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5 20:24 2004/09/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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